라병선(문정09)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날씨가 꽤나 쌀쌀해졌다. 집 밖을 나서며 피부에 닿는 차가운 공기가 시간의 흐름을 가늠케 한다. 오늘의 날짜로 쓰인 숫자를 받아들이기에 삶은 때론 너무 무감각해서 이렇게 피부로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놀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마다 이날 이때 즈음이 되면 벌써 올해도 다 지나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올 한해는 어떻게 지나갔던가.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없었구나 하는데 까지 이르고 만다. 그럼 괜스레 서글퍼져서 남들은 -어쩌면 나조차도- 이해해 줄 수 없는 생각들을 떠올리거나 지나간 일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이었는지, 아니 어쩌면 그냥 기분 탓이었던 것 같지만, 며칠 전에 갑자기 졸업앨범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만의 수고 끝에, 방안 구석에서 찾아낸 그곳엔 먼지 쓴 동창들의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억의 자취를 더듬어가며 그들과의 추억을 잠시나마 회상했다. 그리고 찰나의 소소한 행복감 뒤에 찾아온 건 그들의 뒷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낯선 사실이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첫 만남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비록 기억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만남이라는 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안녕. 그동안 즐거웠어. 이제 만나지 말자. 같은 대사를 날리게 되는 경우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니까. 우리는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끝을 마주하기에 결별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쓸쓸해졌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는 버릇이 하나 생겼다. 혼자서 쓸쓸해하기보다는 누군가의 뒤돌아서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거다. 내게 있어 소중한 사람들의 뒷모습. 또 비록 나에게는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일 누군가들의 뒷모습을 말이다. 잊혀지는 것은 슬프지만 잊는 것은 더 슬프니까.
이 때문인지 전보다 더 누군가를 멍하니 보게 되는 것 같다. 오늘도 지하철에 올라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학교까지는 아직도 몇 정거장이나 남아 서서 간다는 것이 힘들었지만 금방 내릴 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감을 가득품고 이 사람의 인생은 어떨까 그려보기 위해 무심코 그의 핸드폰 화면을 바라본 그때 눈에 비치는 우리학교 모바일 학생증. 그의 뒷모습 따위는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