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민아 기자 (mayu1989@skkuw.com)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는 구절을 한 번도 접하지 못해 본 이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시인. 그의 시는 때로 따뜻하고 때로 날카롭다. 사탕과 한약이 골고루 녹아든 그의 뜨거움 속으로, 흠뻑 취해보자.

 

-2008년에 더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문학 외적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써서 홈페이지에 올리고 곧이어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신간을 내면 늘 하는 인터뷰, 싸인회를 꼭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있었고,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개설한 홈페이지가 정말 소통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고. 또 강연… 강연을 갈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야. 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씩 반복해야 하는 괴로움이 있었어요. 약장사의 괴로움이지.
그리고 글은 누구와 상의하고 협력해서 쓰는 게 아니거든.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서 구상하고 쓰고 책임져야 하는 거라 그것만으로도 시간에 쫓겨요. 그래서 문학 외적인 이야기와 관계를 좀 끊고 싶다는 거였는데.

-완전히 끊지는 못하신 것 같다.
그 다짐이 지켜졌으면 이 인터뷰도 못했어. 한 2년 쉬었나. 올해부터 망가졌는데, 신간 『연어이야기』, 『남냠』이 나오다 보니까 출판사에서는 계속 뭘 하라고 그러고… 난 안 하고 싶은데. 참 힘들어요. 사는 게.


# 기왕에 멋들어지게 한마당 놀다 가려면, 앞으로 더 험하게 살아가는 나를 보아야 하리라(『서울로 가는 전봉준』 서문)

 

-고등학교 재학시절 각종 백일장과 문예공모전에서 수십 차례 수상했다. 어린 나이에 그렇게 활발한 시작(詩作) 활동을 한 원동력이 있다면.
보통은 중고등학교 때 부모님하고 같이 살잖아. 난 중고등학교 시절에 사촌 형과 자취하며 지냈어요.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외로움과 그리움. 그런 결핍을 책읽기와 글쓰기로 채웠고, 그렇게 해서 시작(詩作)에 빠져든 거지.

-대학생 시절에는 따로 운동하지 않아도 ‘문학 하는 것 자체가 운동’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의미인가.
지금은 그 신념을 그대로 갖고 있지는 않은데, 문학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고 굳게 믿던 때가 있었어요. 문학이 가진 여러 기능 중에서 단순히 즐거움만 주는 것뿐 아니라 독자의 삶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기능, 그런 힘을 믿었던 거지. 심지어 교육운동을 하던 교사 시절에는 ‘문학이라는 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수단이 돼도 좋겠다’고까지 생각했었어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전교조)에 가입해 교육운동을 하다 해직된 교사 시절 얻은 것이 있다면.
그때가 20대 후반 30대 초반이었는데, 앞으로 살면서 그때만큼 그렇게 뜨겁게, 열정적으로 살 일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전교조 활동을 했던 게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부와 명예와도 상관이 없는 거잖아. 순수하게 나 아닌 다른 무엇을 위해서 노력하기가 참 쉽지 않은데.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 많은 사람이 제목을 ‘연탄재’라고 알고 있는. 그 시에서의 ‘너’는 사실 ‘나’를 의미하는 거였어. 그때 만든 시야. 남을 위해서 좀 더 뜨겁게 살라고 스스로 다짐하는 시였지.

-초기 시의 치열한 현실인식과는 달리 후기로 갈수록 시가 ‘대중적이다’는 비판도 있다.
고등학교 때 나는 골방 속에서 내 시만 잘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문학주의자였고 대학 시절과 80년대 후반에는 골방 속에 있던 내 시를 광장 쪽으로 자꾸 이끌어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또 그 이후에는 민주화의 흐름을 타면서 광장에 놓인 내 시를 다시 골방 쪽으로 옮기려고 했던 것 같아. 민중 정부가 세워지고 남북 관계도 화해 분위기로 들어서면서 저항해야 할 대상이 사라진 거지. 이렇게 바뀐 세상에서는 시인들이 계속해서 저항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젠 민주화네 저항이네 하는 거대 담론의 이야기보다는 작은 것. 작은 것에 깃든 의미를 파헤쳐 보고 싶었어. 기러기를 보고 ‘북에서 왔겠지’라며 통일과 연관시키기보다는 기러기 그 자체로 보고 싶었던 거야. 그에 대해 평론가들이 ‘현실을 등지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현실의 모순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것도 많은데.’ 와 같은 비판을 한 거지.
근데 또 좋은 시는 골방에서는 골방 밖의 광장을 그리워하고, 광장에서는 자신이 너무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끊임없이 둘 사이의 긴장을 놓지 않는 시라고 할 수 있어. 나만 생각하고 이웃을 무시할 순 없는 거고, 또 내 모든 것을 팽개치고 이웃만을 위해 살 수도 없어요. 자기 삶에서 그 둘 중 어느 쪽에 치중할지는 때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봐.


# 시가 나를 홀리는 헛것인 줄 알지만,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시를 따라간다.(『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서문)

 

-시인인데 동화를 여럿 냈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여럿 냈는데, 또 사람들은 그거 갖고 오해해요. 재벌 그룹이 문어발  식으로 사업 확장하듯 시도 썼다가 소설도 썼다가 이것저것 한다고. 근데 나는 내가 소설을 쓴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그런 이야기는 내가 시인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나는 나중에 ‘시인’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최근에 나온 동시집도 참 재미있다. 동시를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동시가 중요한 장르임에도 아동문학 판에서는 여전히 변방에만 머무르는 것에 화가 났어요. 한국 신문학 초기부터 윤동주, 정지용같이 굉장히 중요한 시인들이 동시에 관심을 가졌었는데 딱 그 때를 정점으로 근 100년 동안 한국의 동시가 제자리걸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지. 이에 이를 해결하려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내가 직접 동시를 써 보자는 결심을 했어요. 시는 30년 썼지만 동시는 초보야.

-선생님이 생각하는 좋은 시의 기준이 있는지.
달콤한 사탕 맛도 나고 쓰지만 몸에 좋은 한약 맛도 나는 시가 좋은 시야. 시 속에 둘이 같이 함께 들어 있어야만 감동이라는 걸 안겨줄 수 있다고 생각해.

-시가 가진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
우리는 늘 1등, 1등, 1등만을 바라면서 살아오잖아. 정말 진정한 1등이 되고 싶거든 오히려 시 읽는 즐거움을 알아야 해. 시를 읽을 때 답은 없는 거거든. 그러니까… 상상할 수 있는 힘. 상상력이라고 말하는. 힘을 많이 길러주지. 시 속에는 창의적인 생각이 많이 담겨 있거든. 요즘 나오는 광고문구나 대중가요 가사, 그런 것들이 모두 시가 낳은 자식들이라고. 

-그럼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시를 많이 읽지 않는 것 같다.
시를 읽다가 정말 좋은 시를 만나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때가 있어요. 그렇다고 내가 밥을 안 먹었다고는 말하지는 않을게(웃음). 80년대 전까지만 해도 꼭 문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시 읽는 즐거움을 알았단 말이야.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수능공부를 하면서 시에 워낙 치이다 보니 ‘시는 어렵다.’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요. 물론 그런 시도 있긴 하지만 우리를 공중부양 시켜줄 만큼 감동적이고 좋은 시들도 얼마든지 있다고.
또 난 연애를 잘하고 싶으면 시를 읽으라고 말해. 영화 한 편 보러 가는 돈이면 시집 한 권을 살 수 있어요. 애인하고 영화만 보러 가지 말고 시집도 사서 읽고, 선물도 하고 그러세요.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너에게 묻는다> 전문)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이 서거하자 <미안해요, 고마워요, 일어나요 故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추모시를 쓰셨다. 선생님에게 노무현이란.
노무현은 좀 서툴긴 했지만 ‘원칙’과 ‘정도’를 아는 대통령이었다는. 그런 점에서 난 좋아요. 그분만큼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주먹처럼 휘두르지 않고 국민에게 다가설 수 있는 대통령이 앞으로 또 있을까 싶어요.

-지난 6월 지방선거 때 투표를 하는 이에게 『연어』를 증정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법을 근거로 처벌한다고 기사가 났었는데, 처벌당하진 않으셨나.
평소에 잘 알던 임옥상 선생이 트위터로 젊은이들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일을 한다는 말을 듣고 나도 참여하겠다고 말한 거지. 그걸 임옥상 선생이 자기 트위터에 쓴 거고. 그랬더니 이런 안내문이 날라 왔어. 봐봐. ‘~그러나 귀하의 위와 같은 행위는 투표 참여를 촉구하기 위한 것으로 공직 선거법을 위반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위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안내한다.’라는 안내야. 이게 말이 안 되는 게, 선거법을 위반하려는 의도가 없는 단순 투표 촉구라고 판단되면 계속 투표 참여를 촉구하라고 해야 하는 거잖아. 왜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지(웃음). 젊은 층한테 투표를 독려한 것은 오히려 상을 받을 일인데, 이건 뭐 말이 안 되는 거지.

-요즘 젊은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덜 뜨거운 것 같아. 머리는 차가워졌는데, 이 심장이 좀 덜 뜨거워. 특히 자신의 주변에 대한 사유를 거의 하지 않으려고 하고, 일부러 무관심한 건지 귀찮은 건지 역사의식이 없어. 사실, 스펙 쌓기가 청년들을 망하게 하는 것 같아. 그 스펙이라는 게 자기 삶을 살찌우는 스펙이 아니고 단순히 취업을 위한 준비물 정도라는 것. 그게 문제지. 요즘 대학생 청년들의 탓만 할 것은 아니로되, 하여튼 그 뜨거움 부족. 어떤 일을 하더라도 열정 부족. 그런 것은 우리 아들, 딸한테도 가끔 잔소리를 해.

-아들이 우리 학교 재학생인 걸로 알고 있다.
아들이 농구를 참 좋아하고. 뭐 나보다 잘생기고 키도 크고 말도 잘 들어서 큰 불만은 없는데, 입학하고 나서 공부를 잘 안 해. 적어도 자기 전공에 대해서는 푹 빠지는 공부를 했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꿈이 있다면.
지금 와서 꿈꾼다고 뭐 되겠어?(웃음) 그래도 나중에 가서 ‘그 사람 시가 참 좋은 시인이었다.’ 그런 말을 듣고 싶어요. 또 한 가지. 좀 조용히 살았으면 하는 거야. 사람들 덜 만나고 바깥으로 덜 다니고. 혼자 좀 심심해 봤으면 좋겠어요. 근데 그게 참 잘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