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부터 가치 인식돼… 좋은 이름에 대한 과욕도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지난 2008년 방영됐던 드라마 <이산>의 제목은 조선 시대 정조의 본명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지난 10월, 우리 학교 안대회(한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자식이 귀했던 정조는 자기 이름인 ‘산’을 조선 후기 명문가의 직계 선조였던 서약봉의 이름인 ‘성’으로 바꿔 부르도록 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름에 운명을 바꾸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여기고 이를 소중히 대했음을 알 수 있다.

 
이토록 중요한 이름
이름은 흔히 ‘존재의 표지’로 불린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이름을 받게 되고 그때서야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 인간은 이름을 갖게 되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일부로 편입돼 사회적 존재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사에서 이름은 오랫동안 중시됐다. 동양에서는 공자의 『논어』를 살펴보면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하지 못하고, 말이 순하지 못하면 일을 크게 이루지 못한다’며 이름과 성공이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내다봤다. 또한 서양의 성경에서도 ‘아름다운 이름은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며 좋은 이름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좋은 이름을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이름을 여러 개 지어놓고 상황에 따라 골라서 사용했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 사대부는 △아명 △관명 △자 △호 △시호 등의 이름을 가졌다. ‘아명’은 어린 시절에 쓰는 이름이다. 성인이 돼 관례를 치르면 ‘관명’과 ‘자’를 지어줬다. 오늘날의 정식 이름에 해당하는 관명은 특히 귀중하게 여겨져 일상생활에서는 자주 쓰이지 않았다. 그 대신 ‘호’가 존재했는데 이는 별명과 같아서 실생활에서 자주 쓰였다. ‘시호’는 충무공과 문순공 등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사후에 주는 이름이었다. 시호는 당시에 그 어떤 상보다도 영광스럽게 여겨졌다.

과도한 집착이 낳은 부작용
이름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오늘날까지 계속된다. 그 옛날 정조가 그랬듯이 이름을 바꿔 운명을 개척하려는 시도는 아직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5년에 방영됐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 ‘김삼순’은 촌스러운 이미지를 벗고 세련된 이름으로 바꾸기 위해 개명을 신청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개명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 작년 1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개명을 신청했고, 이 중 91%가 개명을 허가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이름에 대한 애정은 집착으로 이어졌고, 몇몇 작명소가 이를 돈벌이로 악용하는 사례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본래 작명소는 태어난 아이에게 줄 이름을 다듬어주고, 이름 때문에 한평생 고민하던 이들에게 알맞은 이름을 찾아주는 곳이다. 그러나 지난 5월 방영됐던 TV 프로그램 <소비자 고발>의 ‘작명소’ 편에는 소비자를 우롱하는 작명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이비 작명인은 이름을 바꾸면 운명이 바뀔 수 있다고 환심을 사며 교묘히 설득하고, 근거 없는 작명 기술을 쓰고 그 대가로 무리한 액수를 요구한다. 한편, 이들의 얄팍한 상술에 넘어간 사람들 또한 잘못이 있다. 이름의 가치를 지나치게 신뢰했기 때문에 이름만 바꾸면 노력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름으로 운명 바꿀 수 있을까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예로부터 이어져 왔다. 선조들은 자신의 이름과 나아가 가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행동할 때 항상 신중함을 보였다. 이처럼 이름에 대한 애정은 인생을 아름답게 다듬어나가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름에 대한 애정이 다소 변질된 경우가 많아졌다. 인생 한방의 역전을 노리듯 좋은 이름이 자신의 인생을 단숨에 바꿔주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이는 허황된 꿈에 그칠 가능성이 더 크므로 다른 방도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름을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며 맹신하기보다는 이름을 소중히 지키면서도 이름 그 자체에 얽매이지 않는 균형 잡힌 삶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