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캠 만남 - 홍성란(문예창작의이해) 교수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강마른 몸매와 고운 얼굴선을 지나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그 형형한 눈빛 속에 일렁이는 열정이 굳어버린 감성을 두드린다. 강단 위에서도 그녀는 온 몸과 마음으로 시조를 노래하고 그려낸다. 시인은 평생에 걸쳐 그 이름을 갈고 닦아 빛나게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녀. 자신만의 ‘현대시조’로 우리 민족 고유의 문학을 지켜가는 홍성란 교수를 만났다.
홍 교수는 1989년 중앙 시조 백일장 장원을 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 후 우리 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면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이렇게 닿은 성균관대와의 인연은 교수로서 강단에 서며 계속 이어졌다. 건강상의 사정으로 잠시 강의를 쉬게 된 이번 학기까지 홍 교수는 5년째 학우들에게 시조를 알려왔다.
시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로 그녀는 ‘결핍’을 꼽았다. 홍 교수는 조선소 일을 하는 남편을 따라 부산 영도 작은 섬에서 한 해를 살았다. “남편 출근시키고 혼자 모래밭을 걸으면 안개 끼고 비 오는 바다가 그렇게 외로워 보이더라.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 항상 곁에 사람이 있을 수는 없잖아. 그 결핍 때문에 시를 썼어.”
홍 교수는 시를 마음을 다스리는 학문이라 정의한다. 자기 안으로 침잠해 자신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그를 절제된 말로 표현하는 일이 소중한 위무가 될 수 있다고. “나를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시를 쓸 수 있는 마음 안에 녹아있어. 내가 시를 써서 그런지 몰라도 시만큼 사람의 아픔을 보상해주는 게 없는 것 같아.” 또한 진솔한 고백과도 같은 시는 외로움과 고통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타인에게 일깨워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나의 이야기며 동시에 그대들의 이야기”를 시에 담아 공감을 나누고 싶다고 덧붙였다.
현대시로 문학에 발을 들여놓은 그녀가 시조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좀 더 나중의 일이다. 시조가 그 정형화된 형식 때문에 쓰기 어렵고 폐쇄적이라며 외면 받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중 문득 그것이 무한한 자유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다. 형식 자체가 시의 매력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녀는 독특한 모양새의 시조를 쓰기 시작했다. 정해진 음량 안에 어떤 요소와 글자 수를 채워 넣느냐에 따라 시조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는 묘미, 행간을 띄우고 붙이는 것만으로 의미가 변하는 진기함을 자유자재로 이용했던 것이다. 이렇게 겉모양은 보통 현대시 같고, 입으로 읊어보면 시조임을 깨닫게 되는 그녀만의 ‘현대시조’가 탄생했다. “서정시는 시행으로 발화한다는 말이 있어. 표현하려는 내용을 시행의 도움으로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흥미롭게 만든다는 거지. 형식이 자연스런 리듬 감각을 불어 넣어 줄 때 비로소 시조는 날개를 달아.”
그녀의 시조 사랑은 하버드 톰슨 홀에서도 울렸다. 지난 해 5월 세계 각국의 문학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나라 말로 시조를 낭송했던 것.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그 △억양 △장단 △고저를 따라 빠져드는 외국인들을 보며 그녀는 더더욱 시조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졌다고 한다.
“시조는 천년을 지켜온 하나뿐인 고유 문학이야. 명색이 한국의 문학인데 우리가 기본은 알고 있었으면 좋겠어. 앞으로도 대중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과 이론으로 다가가 시조를 알리는 게 내 소원이고 목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