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듣는 명강의- 미술사는 왜 인문학인가

기자명 차윤선 기자 (yoonsun@skkuw.com)

지난 4일, 살짝 포근한 날씨가 사람들을 유혹하던 날 한국 중앙 연구원으로 소풍을 떠났다. 그곳에서 한국미술사학회 50주년을 맞아 이성미 명예교수의 다시 듣는 명강의 ‘미술사는 왜 인문학인가’가 열렸던 것. 강의실 문을 열기 전까지 미술사가 어떻게 인문학이라 할 수 있는지 의아했다. 강의가 끝날 때쯤이면 주제에 대한 해답을 얻길 바라며 자리에 앉았다. 강의는 미술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됐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미술사가 역사보다는 미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지적하며 “미술사는 역사 학문으로 대우받아야 하는데 예체능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애석하다”고 생각을 표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평생을 받쳤던 미술사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봤다.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이어서 이 교수는 왜 미술사가 인문사인가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미술은 사람이 만들어낸 산물이고, 그 시대 기록과 물건들이 그러하듯 미술도 사람을 둘러싼 것들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미술은 어떠한 장르이든 간에 시대의 △감정 △사건 △인물 △풍경 등을 그대로 그려낸다. 따라서 인문학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미술사가 인문학이라 명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그림을 예로 들면서 이 그림이 지닌 인문학적 의미를 풀어냈다. 외젠 들라크루아는 7월 혁명을 배경으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렸다. 당시 샤를 10세를 왕위에서 몰아내고자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시민들이 화폭으로 옮겨졌다. 들라크루아는 왼쪽 구레나룻이 있는 총을 든 남성을 자신으로 표현하면서 시민들과 동조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사건을 배경으로 그려진 그림이지만, 단순한 사건 표현에만 그치지 않았다. 프랑스 깃발을 들고 있는 여신은 비너스와 잔 다르크의 모습을 본떠 그려졌는데 비너스의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모습과 잔 다르크의 강인한 모습을 담아냈다. 이후 그림 속 자유의 여신은 미국 독립 1백 주년을 맞아 자유의 여신상으로 재탄생했다. 이렇게 한 점의 그림에서 우리는 작가 개인의 사상뿐만 아니라 그림이 그려지기 이전의 과거, 그려질 당시, 그리고 그 이후가 연결됨을 확인할 수 있다. 미술 작품처럼 전 시대를 망라할 수 있는 것은 드물기 때문에 미술사는 인문학으로 충분한 의의를 가진다. 

윤이삭 기자 hentol@skkuw.com

이 교수의 강의는 수강자들의 박수갈채 속에 그 막을 내렸다. 옛 제자들이 많이 찾아와 사인회도 갖고 단체 사진도 찍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 교수는 “옛 강단에 다시 서 보니 기분이 남다르다”며 잠시 옛 추억에 잠겼다. 이어서 “제자들과 미술사에 관심 있는 분들이 찾아줘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그녀의 깊은 주름에서 묻어나는 연륜과 온화한 미소는 그녀가 한평생 공부한 미술사가 무엇이었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