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 리뷰

기자명 고두리 기자 (doori0914@skkuw.com)

‘나는 누구인가’.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는 말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 우리는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즉,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기반에 두고 자신에게 기대되는 역할이나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타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것임을 의미한다. 한 개인이 정체성을 획득하기까지는 △계급 △민족 △성 △세대 △인종 등 매우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한다. 그 중 ‘성(姓)’은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변수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을 이분화하고, 이들의 역할을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나누면서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발생했다.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위계적인 가족 질서와 권력체계를 통해 여성은 사회의 주변을 맴도는 ‘타자(others)’가 돼버렸다. 물론 오늘날 여성의 정체성이 변화되고, 페미니즘이 확산했다 하지만 여전히 성차별적 역할은 존재했다.

이러한 가부장제 사회 구조를 거부하는 한 여인이 있다. 책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의 저자 이경자 씨는 모계사회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는 중국 운남성의 루그호에 사는 모소족을 찾아 떠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경험할 수 없는 모계사회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게 된다. 모소족의 삶을 잠깐 들여다보자. 모소족 사회에서 가장은 어머니다. 그러나 가부장 사회에서 아버지가 가지는 권력에 해당하는 그것, 가정과 가족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하지 않는다. 모소족에는 남자는 있지만, 아버지는 없다. 남자는 어머니의 아들이며, 한 여자의 연인이며, 모든 여자의 손님이다. 그녀의 여성성에 대한 진중한 고민은 어린 시절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모든 딸이 그렇듯이 그녀에게 아버지란 무서운 아버지, 화를 잘 내는 아버지로 묘사된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잣대로 인해 그녀의 자연스러운 성장의 속도와 정서가 막히고 뒤틀렸다. 그래서 그녀에게 남자 역시 아버지의 연장선상으로 불편한 존재였다. 그녀의 탁 막힌 숨통을 틀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 무언가는 바로 가부장제가 고착화된 한국 사회를 벗어나 남편과 아버지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곳을 경험하는 것. 모소족과의 만남은 이를 말끔히 해결해줬다.

이전에 맛보지 않았던 새로운 사회를 접하는 일은 언제나 힘들고 적응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아버지가 권력을 갖는 지배구조에 진저리가 났지만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모계사회는 그녀가 원했던 곳일지라도 첫 대면에서는 왠지 모르게 떨리고 불안했다. 하지만 그 불안감은 기우였고, 편안함과 평화 그리고 황홀감이 그 자리를 완전히 메워졌다. 어쩌면 이곳은 그녀에게 운명이었을지도. 마치 ‘낯선 천국’ 같았다. 모속족과 한 달 동안 생활하면서 그녀는 오래전부터 꿈꿨던 여성성을 직접 눈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모계사회 속 여성성이 단지 욕심일 뿐이라고? 한쪽은 중심이 되고 다른 한쪽은 주변인이 되는, 누군가를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가 지나친 욕심의 결과물이 아닐까. 모계사회, 이는 여성의 ‘반란’이 아니라 ‘자연’을 되찾는 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