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뮤지컬 <6시 퇴근>

기자명 박하나 기자 (hana@skkuw.com)

징징징 일렉 기타 소리가 퍼지고 둥둥둥 드럼 소리가 울린다. 키보드와 베이스가 조용하면서도 무게 있게 소리를 받쳐내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화음 위로 시원하게 내지르는 목소리가 올려진다. 저절로 고개를 까닥이게 하고 손뼉을 마주치게 하는 이곳은 마치 열광으로 들어찬 락밴드의 공연장 같다. 바로 밴드뮤지컬 <6시 퇴근>의 한 장면이다.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사랑마저 조심스러운 ‘이종기’, 펀드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왕년의 기타리스트 ‘윤지석’,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아버지인 ‘안성준’, 정직원보다 더 열심인 열정 넘치는 신입 인턴 ‘고은호’, 회사 최초의 여성 임원을 꿈꾸는 ‘최다연’, 수험생 아들을 홀로 키우는 직장 엄마 ‘구성미’,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노부장’까지. 그들은 여느 직장인들과 다를 바 없이 출근하기 싫어하고 회식자리에서는 ‘부장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를 외쳐대는 너무나도 평범한 직장인들이다.

지루함으로 점철돼 있던 그들의 직장생활은 점점 조여오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위기 속에서 변화의 계기를 맞이한다. 시작은 언제나처럼 실적을 위한 프로젝트였지만, 신제품 홍보 UCC를 위한 밴드연습을 하던 그들은 어느새 술이 아닌 음악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음악인이 된다. 내친김에 직장인 밴드 ‘6시 퇴근’까지 결성하면서 그들 사이에는 사무적인 관계를 넘어 사랑과 우정이 생겨난다.


그런데 아름답게만 흘러가던 그들의 이야기가 여느 ‘직장인 밴드’ 스토리와는 다르게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다. 비정규직인 종기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정직원인 다연에게 고백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단순히 여자보다 돈을 적게 벌기 때문이 아니다. 이건 마치 정직원과 비정규직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는 것 같다. 이야기는 점점 더 진지해진다. 비정규직은 계약이 만료되고 인턴은 정직원이 되지 못해 다시 백수로 돌아가야 한다. 비정규직과 인턴이라, 이 이야기를 웃어넘기기에는 지금의 우리 자신과 너무나도 가깝다.

언제나 그의 곁에 있어줄 것만 같았던, 당신도 우리 회사 직원이나 다름없다고 말해주었던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은 혼자였고, 오늘도 혼자 걷고 있다고 노래하는 종기의 두려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와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잠시 후에 비정규직인 종기의 옆에 인턴 은호가, 그 옆에는 그들의 편에 서기로 마음먹은 다연이 자리를 잡는다. 그 반대편에는 정직원인 성준과 지석, 성미가 있다.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보이지 않는 계급이 어느새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한 집안의 가장인 성준도, 어차피 세상은 다 그런 거라고만 생각하며 살아왔던 지석도, 회사의 촉망받는 여직원에서 출산과 육아로 인해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성미도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관심이 없었던 일들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늘 함께 했었던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외면해왔던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아보기로 한다.

결국 모두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은 빈주먹을 쥐고 빈고함을 지르며 살겠지만 함께 울었던 사람들이 여기에 있기에 ‘Live together’를 외친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노래하는 것 같기도, 그러나 그 속에도 희망은 있음을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들의 현실을 향해 한 발짝씩 다가서고 있는 우리를 위한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을 꿈으로 삼지 않기를. 

△공연명 : <6시 퇴근>
△공연일시 : ~ 2011년 1월 2일
△공연장소 : 예술극장 나무와 물
△공연문의전화번호 : 02-766-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