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준 작가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그에겐 유독 수식어가 많다. 크리에이터, 미디어 아티스트, 미래파 예술가 등등. 하지만 자신을 소개해야 할 때 그는 그냥 ‘작가’라고 말하곤 한다. 이것저것 다양한 일을 골고루 해보고 싶은 만큼 아직 구체적인 수식어로 옭아 매이기 싫다는 것이 그 이유다. 작가라는 단출한 명명마저 사회를 편리하게 살아가기 위한 임시 타이틀일 뿐. 그를 정의할 단어는 아직 이 세상에 없는 듯하다. 





엄보람 기자(이하:엄) 특이한 전공이 인상적인데 대학 시절 어떤 학생이었는지
송호준 작가(이하:송) 전기전자전파공학은 이름답게 정말 온갖 것을 다루는 학과였다. 교과 과정 자체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어 수업도 잘 듣지 않았지만 그 너머에는 꽤나 관심이 있었다. 자연현상이 공식화 되는 과정이라든지, 양자 역학 같은 이론으로 사람들이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는 이야기라든지. 과학에서 파생되는 그 어떤 것에 더 매력을 느꼈다. 그 때는 주로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그걸 풀어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엉뚱하게 인문학 관련 과목이나 문학 교양 수업을 참 많이도 들었고 태권도부 활동에, 선수가 될 생각까지 할 만큼 한동안 스노보드에 푹 빠져있기도 했다. 정말 온 동네 찌르고 다니는 학생이었다.

엄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송 예술 작품이라 할 만한 물건을 만들기 시작한 건 2005년부터다. 대학 졸업할 때쯤 누구나 ‘뭘 할까’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나. 나도 물론 그 시기가 왔다. 일반 대학원에 진학하기는 싫고 즐거운 일이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 대학과 연계해 새로운 발명과 창조 활동을 하는 외국 대학원 과정에 대해 알게 됐다. 여기 들어가면 재밌겠다 싶어 유학길에 올랐지만 분명 흥미로운 경험이었음에도 나는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 좀 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예술을 찾게 된 것 같다. 예술로는 나만의 필터로 걸러낸 나만의 생각들을 남에게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엄 주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지
송 초창기에는 전자 전기를 재료로 하면서 심미적 요소를 내포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전선들이 얽혀 있는 모양에서 색감과 구조의 아름다움을 찾기도 하고 회로 기판을 좀 더 예쁘고 세련되게 만들어 보기도 했다. 요즘에는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강하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물건을 만드는데 골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시리즈. 핵폭탄에도 파괴되지 않고 방사능을 감지하면 오히려 아름다운 메시지를 리본처럼 뽑아내는 구, 공사용 망치로 내리치면 ‘I LOVE YOU’를 외쳐대는 쇠붙이 같은 것들. 아날로그적 인상을 가지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의미를 가질 만한 아이디어를 기술적으로 재현해 낸 작품들이 많다. 기술을 통해 사회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엄 과학과 예술을 접목시킨 이유와 그 둘의 조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듣고 싶다
송 난 문과, 이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도 ‘왜 그래야 하지’라는 의문이 너무 컸다. 사람이 특정 카테고리 안에서 서로 구분 지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싫었다. 그런 구분을 당연시 하는 사회와 우리나라가 불만스러웠다. 과학 기술에 있어 인문 사회적인 고민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고 인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현대 과학 기술의 발달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는 것처럼, 내게는 과학도 중요하고 예술도 중요하다. 둘은 딱히 별개가 아니며 우열을 매길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예술의 범주는 점점 ‘모든 것’이 돼가고 있다. 사회비판적이고 참여적인 목소리를 담고 있으면서 작업할 때 즐거운 일이라면 그게 바로 예술 아니겠나.

엄 인공위성 프로젝트,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려 하는가
송 인공위성 발사는 국가나 군 주도로만 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부터 우주에 대한 과학 기술 개발은 국가들 간의 마초적인 정복 경쟁으로 변질돼버렸다. 그것을 개인의 영역에서 순수하게 시도해보고 싶었다. 이 인공위성에는 지금껏 우주공간에서 볼 수 없었던 ‘문화적 요소’를 담았다. 상용 부품으로 만든 인공위성이 우주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 LED장치들이 마치 별똥별처럼 반짝이며 우주에서 지구로 보내올 모스 코드(Morse Code) 메시지. 이 두 가지가 사람들 마음 속에 내재한 우주적 판타지로맨스를 실현해줄 것이라 믿는다. 일종의 로또 이벤트도 마련했다. 인공위성 자금 마련을 위해 판매하고 있는 티셔츠에는 열 두 자리 고유 숫자가 적힌 카드가 함께 들어있다. 인공위성이 궤도에 오르면 우주공간의 온도에 따라 열 두 자리의 랜덤 숫자를 보내올 예정인데, 그 번호와 같은 숫자가 새겨진 카드를 가진 행운의 주인공을 위해 인공위성을 쏘아주려 한다.

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다면
송 어린 시절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는 순수한 궁금증과 함께 ‘나도 언젠가 꼭 가봐야지’라는 참여 욕구에 불탔었다. 하지만 점차 현실을 알아 가면서 그 꿈을 당연하다는 듯 포기해버리곤 한다. 훌륭하게 발달된 기술을 고상한 전문가들의 영역으로만 넘겨주면서 개인이 뭘 할 수 있는 가에 대한 고민이 사라져 버렸다. 당연히 안 된다고 생각했던 무언가에 의문을 던질 수 있도록 건드리고 자극해 주는 일. 내가 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잊고 있었던 자신 안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우쳐 줄 방법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일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우주의 평등성, 우주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되찾을 기회로 그나마 가장 쉬운 길이 그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엄 이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따끔한 충고 하나 건네 달라
송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무조건 그것만 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부모님이나 부와 성공, 그런 것 생각하지 말고 좋아하는 일만을 위해 살다보면 그게 바로 결국엔 효도고 성공이 되더라.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세상도 재미있어진다. 뉴욕이란 도시가 왜 재밌는 줄 아나. 바로 이런 의미 있는 백수가 많아서다. 우리나라에는 직업의 종류가 정말 몇 개 안된다. 난 우리들이 새로운 직업군을 개척해 가길 원한다. 다원화된, 다양한 색깔의 즐거운 세상이 보고 싶다면 일에 귀천 없단 생각을 가지고 용감하게 좋아하는 일을 하길 바란다. 즐거우면 그것으로 충분히 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