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수(전자전기07)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20대, 이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대체적으로 밝다. 젊음, 열정, 도전, 미래, 가능성. 그러나 정작 20대의 대부분은 고민으로 보내게 된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고민, 이성친구를 사귀기 위한 고민, 군대에 대한 고민, 학점을 잘 받기 위한 고민 등을 거치고 나면 취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그 뒤를 잊는다. 그러한 의미로 20대는 처음 펼친 종이와 비슷하다. 그 옆에는 종이를 담아두는 박스가 하나 있다. 우리 손에는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가지게 된 색연필, 붓 따위의 필기구들이 쥐어져 있다. 그러나 눈앞의 텅 빈 종이는 점 하나 찍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로 깨끗하고 처음 시작하는 시도는 막막하기만 하다. 우리는 넓디 넓은 종이 위에 글을 쓸지 그림을 그릴지, 검정색 펜을 쓸지, 아니면 연필을 쓸지 조차 정하지 못한 체 혼란스러워 한다.
20대를 가능성의 시기로만 바라보는 것은 이미 자신의 짝을 찾은 사람들이 솔로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하는 것과 비슷한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솔로들은 세상의 수많은 여자들과 이루어 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목적은 짝을 찾는 것이지 가능성을 향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20대를 보낸 사람이 20대를 부러워하는 것은 아마도, 좀더 좋은 짝을 찾지 못한 아쉬움이거나 더 이상 새로운 짝을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정도로 표현 할 수 있겠다. 마치 시험을 본 뒤에 좀더 열심히 할 걸 하고 후회는 것이랄까.
나는 20대의 방황을 드로잉 혹은 초고라고 생각 한다. 20대에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삶에 대한 답은 30대가 된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그녀는 왜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까? 내가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가? 같은 가벼운, 그리고 무거운 고민들을 해가며 우리는 텅 빈 종이 위에 그림을, 하다못해 낙서라도 그리고 있다. 그렇게 그려진 종이는 과거의 더미 위에 한 장 올려지고 눈앞에는 새로운 종이가 한 장 더 펼쳐진다. 자신을 찾기 위한 방황을 거듭 할수록 우리는 그 종이를 좀 더 세련되게, 어쩌면 불안한 릴케의 소설이나, 입체적인 피카소의 그림처럼 바꿀 수도 있고, 아니면 세련된 클림트의 그림처럼 화려하게 꾸밀 수도 있다. 
현재라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종이 한 장의 두께와 같다. 그러나 이 얇디 얇은 종이가 쌓여서 과거라는 한 권의 책이 된다. 그 책은 우리가 살아온 흔적이고, 시간이 지나서 보면 어릴 때 쓴 일기처럼 우스울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책이 더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종이, 현재, 를 외면하지 않고 선을 긋는 시도를 한번 이라도 더 할수록 우리의 능력은 향상 될 것이고, 물감을 나이프로 칠 해 본다거나 크레파스로 그린 뒤에 수채물감으로 빈 곳을 메우거나 장르문학에 시도해보는 것과 같은 시도는 앞으로 채워질 새로운 종이에 더 많은 다양성을 확보 해 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시도가 방황이라고 생각 한다.
종이 한 장 한 장을 더 열심히 채워감에 따라 책은 더 두꺼워 질 것이고, 아마도 그 책이 두꺼울수록 가장 위의 종이는 더욱더 아름답고 찬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