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학원의 수익창출 수단… 대학 위상에 영향력 행사하기도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이 끝났다. 수능이 끝난 이후 전국 고등학교에는 가배치표들이 뿌려진다. 전국 수십개 대학의 수백개 학과가 한국 사회의 대학 서열에 따라 나열된 거대한 종이. 수험생은 배치표에 횡으로 선을 긋고, 그 선 위아래 범위 안에 있는 학과에서 ‘자신의 꿈’을 찾는 것으로 배치표와 자신의 낯선 첫 만남을 시작한다. 그러나 배치표는 제작과정도 공개된 바 없고 일관적이지도 않아 대학의 로비가 작용한다는 의혹을 받은 지 오래다. 더 근본적인 문제점은 배치표가 입시생의 진로 선택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사설 기관이 서열을 고착화하고 좌지우지하는 ‘권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현재 사설 기관에서는 학교 측에서 제공받은 자료와 공개되지 않은 기관 자체 평가 기준을 통해 배치표를 작성하고 있다. 사설 기관인 만큼 배치표 작성을 통해 영리를 추구하려는 성격도 강하다. 실제로 2011년도 수능이 끝난 지 만 하루가 지난 19일에는 △대성마이맥 △메가스터디 △비타에듀 등 온라인 입시사이트를 통해 배치표와 입시자료가 6천 원에서 2만 원 이상의 가격에 제공되고 있었다. 입시학원은 매년 거대한 규모의 입시설명회를 개최하며 배치표를 만들어 상당한 수입원을 창출하고 있다.

사설 학원 배치표에 대한 견제 움직임
지난 8월 30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대교협) 측은 “학원에서 임의로 만들어지는 수시 배치표가 입시현장에 혼란을 일으키며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며 학원에서 제작하는 수시 배치표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강력하게 반발한 것은 대형 학원이었다. 당시 중앙학원 김영일 원장은 “실제 배치표로 상담을 해보면 적정 점수에 맞춰 원서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수시 제도를 붕괴시킨다는 대학들의 주장은 지나친 오해”라고 항변했다.
일부 교육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설 학원의 태도에 대해 책임 회피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는 “입시생들은 물에 빠진 사람들처럼 그야말로 다급한 이들인데 이런 상황에서 배치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는 배치표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수험생이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현재 대교협 측의 대응도 날카롭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학원 배치표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지 3개월 남짓 지난 지금도 뚜렷한 방향이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교협의 작업은 학원 자료에 대한 기초조사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대교협 정청교 전문원은 “사설 학원 배치표에 대한 적극적 대응의 방향성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교협 입학관리팀의 구안규 팀장 역시 “현재 이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일이 많아 늦어지는 상태”라는 입장을 밝혔다.

배치표 로비, 진실 혹은 거짓
각 학교에서 학교 홍보와 관련해 배치표에 쏟고 있는 관심은 지대하다. 1308호 <한대신문>에 실린 ‘반복되는 논란 속 신뢰 잃은 배치표’ 기사에 따르면, 작년 11월 20일 한양대에서는 교수와 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배치표 문제를 논의하는 간담회가 열려 자교가 배치표에서 저평가된 점을 문제 삼았다. 당시 한양대 입학처장이었던 오성근 화학공학과 교수는 한양대 배치점수를 저평가한 특정 학원에 자료 제공과 게재를 거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에 대한 후속 조치와 관련해 지난 19일 한양대 입학관리팀 측에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한양대 입학관리팀 측은 관련한 물음에 대해 “그와 관련해서는 답변을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 학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07년 12월 14일에 있었던 정시 최종지원설명회에서 메가스터디 남윤곤 전문위원이 “성균관대에서 특정 등급을 요구했다”는 발언을 해 수험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입시 사이트에서 회자된 적이 있었다.
한편 대학 입학처는 입시 철마다 도는 ‘배치표 로비’에 대한 의혹과 관련해 이를 사실무근이라고 보고 있다. 우리 학교 입학처 한 관계자는 “그런 소문은 들어본 적도 없고 우리 학교가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일축했다.
서울 D모 재수학원의 한 상담실장은 “특히 중하위권 대학은 입시 결과 자료가 부족해, 배치표가 입시생들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구조”라며 “배치표 제작 시 이들의 요청이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 교육의 근본적 문제 인식해야
한 교육평론가는 “학교 현장에서 배치표는 참고용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며 “이성적으로는 신뢰할 수 없는 자료라고 인식을 하면서도 막상 결정의 순간에는 배치표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입 상담을 하는 일선 고교에서는 여러 종의 배치표를 종합해 그 결과를 토대로 입시상담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어 그는 “배치표 로비가 이뤄질 개연성이 충분하다”며 “대학들도 배치표의 위력 앞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갑을관계(甲乙關係)’를 사교육 업체들이 충분히 이용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대학 측에서 로비가 이뤄지는 것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일선 고교 현장에서도 배치표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 수능에 응시한 재수생 유지현 씨는 “작년 경험을 통해 배치표가 입시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매년 고교 3학년생을 대상으로 대입을 지도해온 서울 현대고 권순환 교사는 “공공기관이 만들어야 공정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소위 ‘배치표 로비’도 없어지지 않겠는가”라며 “배치표는 상위권 점수만 일부 추정할 수 있을 뿐이지 그 외의 진학 자료에 대해서는 엉망진창”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권 교사는 “배치표는 다양한 학생들의 소질을 획일화해버리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며 “학원 배치표를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로비의 여부보다는 배치표의 부정적인 영향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배치표가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사교육의 권력이 대학 서열을 지배하고 영향력을 끼치는 구조 때문에 진로정체성이 뚜렷한 학생들마저 배치표 앞에서 흔들린다.
최근 학생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기 위해 입시제도가 다변화되고 있다. 배치표로 상징되는 획일적 입시제도와 서열주의에서 벗어난 사고가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