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몸 담론 일어… 이미지 덫에 걸린 몸 경계해야

기자명 고두리 기자 (doori0914@skkuw.com)

오똑한 코와 V(브이)라인 그리고 8등신 몸매. ‘얼짱’, ‘몸짱’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에 부합하는 TV 속 연예인의 몸매는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며, 이들을 닮기 위해 다이어트나 성형수술도 서슴지 않는다. 더 완벽하게, 더 예쁘게, 더 멋있게 보이기 위한 우리들의 몸만들기 프로젝트는 여전히 가파른 상승곡선을 달린다.
 

'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가. 너무나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지만, 조금만 시간을 두고 고민해본다면 실상 한마디로 정의 내리지 못하는 것이 바로 ‘몸’이다. 어머니의 몸에서 아기로 태어난 우리는 서로 다른 △몸무게 △얼굴 △키를 가지며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 ‘유일한 나’로 살아간다. 또한 몸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함으로써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몸은 생물학적 존재를 뛰어넘어 역사를 일궈낸 사회적 실체다. 즉 몸의 역사가 바로 인간의 역사다. 몸에 대한 인식을 역사적으로 고찰해보면 그 시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기에 우리가 몸에 대해 집중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야한다.

몸에 대한 동서고금의 시선 
동서양을 막론하고 몸에 대한 담론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 논의의 핵심은 몸과 정신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이다. 몸과 정신을 분리할 수 있는가, 분리할 수 있다면 정신이 우위에 있는지 몸이 우위에 있는지 식의 담론이 주를 이뤘다. 이에 대해 동양과 서양은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동양은 몸과 마음을 별개로 보지 않고 하나로 보는 심신일원론 성격을 가진다. 인도철학에서 ‘몸은 마음의 외피이고, 마음은 몸의 내면’이라 정의하면서 몸과 마음을 서로 연결된 하나의 연속체로 보았다. 유교에서도 심신합일(心身合一)을 강조하지만 몸과 마음에 대한 이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몸보다 마음을 우선시하는 태도로, 마음은 몸의 주인이며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 몸을 단련하는 수신(修身)의 철학은 이를 잘 나타낸다. 다른 하나는 앞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마음 못지않게 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은 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이를 추구하기 위해서 몸을 구속하거나 통제해서는 안 된다.

한편 서양 초기의 철학은 몸과 마음을 구분하는 심신이원론에 기초했고, 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언젠가는 소멸하는 몸보다 영원불변한 영혼을 우위에 뒀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n)은 몸을 ‘영혼의 감옥’이라 표현하면서 이성을 방해하는 원천이자 위협으로 간주했다. 몸은 그 자체로 아무 독자적인 의미를 갖지 못했고, 오직 정신 또는 영혼을 이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몸 담론은 여전히 이성과 정신을 중시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의 이원론은 이를 뒷받침하는데, 그는 몸을 자연의 법칙에 작동하는 기계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몸을 통제하고 규율할 수 있게 되면서 마침내 몸은 고유한 자기가치와 목적을 지닌 독립적인 실체로서 등장한다. 몸에 대한 인식의 가능성이 생겨나면서 몸 자체는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로 자리 잡게 된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Nietzsche)가 주장한 “인간은 곧 몸이고, 몸이야말로 큰 이성”이라는 말에서 이제 몸은 더 이상 이성의 주변에서 맴도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중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상품화된 몸, 누구를 위한 것인가  
몸이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몸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증가한다. 과거 몸에 대한 담론이 ‘몸이란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현대사회에서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로 논의가 이뤄진다. 몸에 대한 예찬은 과거 상대적 우위를 점했던 정신의 관심을 약화시켰고, 몸 자체로서 권력을 행사하게 했다. 특히 자본주의가 만연하면서 삶의 초점은 생산에서 소비로 옮겨진다. 당연히 몸도 노동을 위한 도구에서 소비의 대상으로 간주되기 시작한다.

건국대 몸 문화연구소 소장 김종갑(영문) 교수는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시키고 표준화시키는 체계”라며 “몸 역시 상품화되는 순간 홍보되고, 광고되며 팔려야 하는 대상, 즉 이미지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몸의 상품화, 이미지화의 기폭제는 바로 매스미디어다. 각종 미디어는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해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데 주력하고 있다. 몸 역시 하나의 상품이 되면서 몸은 이미지로 압축되고 그 이미지를 우리는 소비한다. 매체에 등장한 연예인, 모델, 스포츠 스타들의 젊고 아름다운 몸이 대량 유통되면서 우리는 그들의 몸에 대해 환상을 갖게 된다.

‘베이글녀(베이비페이스와 글래머의 합성어)’, ‘짐승남(짐승처럼 거친 남자를 이르는 말)’등 각종 몸과 관련된 신조어가 탄생했고, 이러한 용어는 이상적인 신체조건으로 규격화됐다. 하지만 미디어에 비친 그들의 몸은 다수의 몸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상화된 소수자들만의 몸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정상적인 몸으로 규정짓고, 그들과 같은 몸매를 가지려고 엄청난 노력을 한다. 남녀 불문하고 △다이어트 △성형 수술 △운동에 이르기까지 몸매 가꾸기에 여념이 없으며, 몸 관리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오히려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외면받는다. 결국 몸은 개인의 취향과 가치가 반영되는 것이 아닌, 단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상품’일 뿐이다. 진정 누구를 위한 몸 가꾸기인가.

현대사회로 들어오면서 몸은 독립했지만 우리는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오히려 이미지와 시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동의대 김명혜(신방) 교수는 “자기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우리는 몸에 대한 강박증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충고한다. 건국대 김 교수 역시 “‘그들의’ 몸이 아니라 ‘나만의’ 몸을 만들어야 한다”며 성형수술이나 보디빌딩과 같은 운동이 나를 표현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해도 좋다고 말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몸만들기를 통해 자신의 개성과 인격이 표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몸은 상품이 아니라 주체의 자기표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바람직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몸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우리 몸에 대한 광기 또한 끝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