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작품전시회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나직이 건네는 인사말이 꾸밈없다. 재주 많은 손이 도록을 건넨다. 그들의 작품 사이 교집합이라곤 ‘졸업’이라는 단어뿐. 발칙한 개성으로 가득 찬 전시회는 지극히 자유롭고 부담 없이 설렌다. 졸업작품전시회. 그림을 짓누르는 휘황찬란한 이름이 아니라 더욱 맘에 든다. 작품과 나 사이엔 유리 한 켜조차 없고, 코가 닿을 정도로 들여다봐도 제지하는 사람 없는 이곳. 붓질 사이 작가의 숨결 묻은 자국까지 선명히 보인다.


오는 30일까지 우리 학교 성균갤러리에는 미술학전공생들의 졸업 작품이 걸린다. 타 계열 학생들이 졸업을 위해 학위논문을 쓰듯 예술학부 학생들은 한 해를 온전히 바쳐 졸업 작품을 탄생시킨다. 전시회장을 지키고 있던 김수주(미술07) 학우가 들려준 졸업 작품 준비과정은 그림의 티끌 하나까지 허투루 볼 수 없게 만든다.

발가벗기듯 적나라한 심사를 네 번, 다섯 번 거치며 불통의 두려움이 그들의 붓 쥔 손을 재촉한다. 실기실에서 먹고 자고 학생회관 샤워실을 전전하는 생활이 연거푸 이어지다 보면 가족들 얼굴 못 보는 건 예사도 아니라고. 그토록 힘겹게 합격점을 받은 작품을 직접 옮기고 배치하고 도록에 싣는 동안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 전시회는 미래와 현재를 잇는 과정 중 눈에 띄는 결실 혹은 증거라고 해두고 싶네요. 이제야 그림이 뭔지, 조형 언어가 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졸업작품전시회가 자신에게 지니는 의미를 말하던 그녀는 앞으로의 이야기도 조심스레 곁들인다. “사회로 나갔다가 다시 그림으로 돌아올 생각이에요. 아무래도 수입이 보장되지 못하니까. 제 졸업 작품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시작이자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이에요.”

몇 해째 졸업생들의 전시회 준비를 지켜봐 온 성균갤러리 손창범(미술02) 조교는 그들이 몸만 힘든 것이 아닌 걸 알기에 더 애잔하다고 말한다. “예상 외로 많은 미술인의 이목이 쏠려요. 오른손 투수의 직구처럼 그간 쌓아온 나 자신을 직선으로 던져 보여줘야 하죠. 너무 잘하고 싶은 부담감에 그림을 그려야 할 시간을 고민과 걱정에 쓰는 모습이 안타까워요” 그의 눈에 다시금 아쉬움이 서리더니 씁쓸하게 덧붙인다. “늘 나오는 말이지만 대중들의 관심이 필요해요. 그림은 결국 보여주기 위해 그리는 건데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쓸쓸한 어투에 휑한 전시회장이 겹쳐 보인다.

우리 학교 출신 현직 미술 작가 박경진(미술01) 동문은 “열심히만 하면 기회가 생길거란 막연한 생각만 했지 정말 중요한 기회임을 그땐 몰랐었죠. 모든 것을 토해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시점이었는데”라며 자신의 졸업작품전시회를 회고했다. 겨울이 한 해의 끝을 알리는 이맘때 전국 2백여 개의 대학에선 크고 작은 졸업작품전시회가 희미하게 반짝이다 사라지곤 한다. 수천 갈래의 길목에 선 어린 예술가들의 한 번뿐인 순간. 그 순간을 기록하는 축제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바로 알고 있는지. 전시회장을 나오다 문득 시야에 들어온 홍태림 학우의 작품 ‘가변적 크기’ 속 투박한 글귀가 귓전을 돈다.

‘이번 전시는 졸업전이지만 관람을 올 대상을 생각하면 학예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나는 요번에 전시를 통해서 목표를 삼은 것은 부모님이다. 부모님은 내가 작가로서 살아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신다. 따라서 나는 이 전시를 통해 조금이나마 안심을 시켜 드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