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석(사과계열10)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올해 40살이 된 고고학자이자 보물발굴업자 조지 맥스웰은 독일의 거부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의 유적지를 발굴해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순식간에 전율에 휩싸였다. 심장이 그 어느 때보다 두근거렸다. 그것은 마치 맹수와 마주선 사람의 기분과도 같았을 지도 모른다. 그는 조용한 흥분을 금치 못하였다. 그 역시 트로이가 신화의 일부였을 뿐이 아니라 실재했던 곳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흥분하여 양손으로 신문을 펼친 상태로 그의 천막 안을 이리 저리 걸어 다녔다.
 “이 독일놈이! 이 독일놈이!”
 조지는 멈추어 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신문을 들여다 보았다. 유적지에서 의기양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슐리만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신문 기사는 사실임에 틀림없었다. 흥분도 잠시, 그는 그 독일인에게서 묘한 경쟁 의식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사실 그 독일인은 돈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아마추어 고고학자 아닌가?>
 “이 독일인도 해냈는데… 내가 해내지 못할 이유는 없지…”
 조지는 신문을 쓰레기 통에 구겨 던져 넣어버리고 탁자 앞에 다시 앉았다. 탁자 위에는 그가 모은 것처럼 보이는 자료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그것들은 조지에게 있어서 마지막 희망이자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자료들이었다.
 ‘트로이도 발견 되었는데… <엘 도라도>가 없을 리 없다.’
 그는 하인리히 슐리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이미 그의 마음은 엘 도라도에 있었고, 아마 적어도 며칠 후에는 자신이 하인리히 슐리만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엘 도라도의 황금궁전 앞에서 사진을 찍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다시 한 번 고문서들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조지 맥스웰, 이 남자는 영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다. 그의 아버지 에드워드 맥스웰은 영국의 유명한 고고학자였다. 그는 중국에서 유적 발굴 작업을 하다가 조지의 어머니 샤오린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들은 영국으로 돌아와 삼 형제를 낳게 되었는데 그 중 둘째가 조지 맥스웰이었다.
 조지는 자료를 검토하다 말고 가방에서 백토파이프를 꺼내어 물었다. 이윽고 금방 천막 안은 담배연기로 자욱해졌다. 그는 그에게 지금 닥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상기한 것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언제나 자신감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는 그의 눈동자의 한 구석에는 ‘돈’이나 ‘채무’같은 현실적인 단어들이 들어 있었다. 그랬다. 엘 도라도의 발굴 작업을 위해서 그는 자신의 친형인 나이젤 맥스웰에게서 엄청난 돈을 빌렸었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조지는 이내 활기를 되찾았다. 황금의 도시만 찾으면 문제가 없었다.
 그의 엘 도라도 탐험을 응원해 주는 사람들 보다 비웃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때때로 그는 스스로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것은 아닌가 자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일은 의미가 있었다. 굳이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조지는 엘 도라도의 전설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는 그것이 자기 스스로 인간으로서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줄 만한 유일한 그 무엇이라고 여겼고, 그걸로 이유는 충분했다. 두 달 전, 그는 이미 엘 도라도가 매장되어 있다는 높은 산의 봉우리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캠프를 세우고 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삼 형제는 모두 탈없이 자랐다. 장남 나이젤은 젊어서부터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손을 대는 일마다 족족 일이 잘 풀려 지금은 런던에서 손가락에 드는 부호가 되어 있었다. 차남 조지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고고학에 다른 형제들보다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고고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그는 보물발굴사업에 정력을 쏟았다. 그것은 경제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일이었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바탕에는 고고학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성공적이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삼남은 린턴 맥스웰이라는 자로 나이젤 맥스웰과는 무려 10살 차이가 나며 조지 맥스웰과는 8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였다. 그는 착실하지만 자기 잇속만을 챙기는 조금은 비열한 면모가 있는 첫째 형 나이젤보다도 약간 광인 기질을 보이면서도 의리가 있는 둘째 형 조지를 따랐다. 그는 자기 자신이 참으로 순수하다고 여기고 살았지만 주위에서는 그를 바보라고 놀려댔고 조지와 린턴 형제는 런던의 호사가들로부터 <광인과 백치 듀오>라고 불렸다. 그리고 지금은 기약 없는, 하지만 성공한다면 나이젤을 능가하는 아니, 그 뿐만 아니라 영국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조지의 발굴사업을 도와주고 있었다.
 조지는 그의 발굴단 조직을 비롯한 사업 준비를 위해서 이곳 저곳에서 돈을 끌어다 썼는데 최대 채권자는 그의 형 나이젤이었다. 나이젤은 이미 몇 번 조지가 손을 뻗은 발굴사업을 밀어주었지만 거의 손해를 입었다. 그는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 보다 손해를 입는 것에 민감한 사내였다. 그러나 조지는 ‘엘 도라도’ 발견 사업에 대해서 만큼은 목숨을 걸고 그의 형을 구워 삶았으며 나이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여 자료를 모으고 그를 만날 때마다 사업 계획을 말해주었다. 그런 노고로 나이젤은 조지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삼형제의 아버지 에드워드 맥스웰은 런던의 한적한 교외에 있는 허름하지만 가문 대대로 내려온 저택에 하인 둘을 거느리고 홀로 살고 있었다. 막내아들 린턴을 낳을 때 그의 부인 샤오린은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가끔씩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런던의 이런 저런 대학으로 가는 일 외에는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독서와 저술활동으로 보내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나이젤이 조지의 사업에 관한 일로 그를 방문했던 그 날도 어김없이 서재에서 독서를 하고 있었다. 하인 해리가 그의 서재 문을 노크했다. 에드워드는 독서를 하고 있을 때면 누군가의 방해를 받는 것을 매우 성가시게 여겼다. 하지만 그는 이미 승용차 한 대가 그의 집 앞에 도착했다는 것을 소리로 들어 알고 있었고 해리가 첫째 아들 나이젤이 방문했음을 알리러 온 것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
 “들어와.”
 해리가 문을 열고 들어와 나이젤이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하였다. 에드워드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기에 그를 서재로 불러오라고 말하려 했지만 나이젤이 자신의 서재로 들어오는 것이 싫어서 직접 거실에서 나이젤을 만나기로 했다.
 2층 서재에서 거실로 통하는 복도에서 거실을 내려다보니 나이젤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이젤은 매우 거만한 태도로 소파에 앉아 있었겠지만 나이젤은 아버지 에드워드만큼은 어려워하였기 때문에 매우 경직된 상태로 소파에 앉아있었다.
 “오랜만이다, 나이젤. 일 때문에 바쁠 텐데, 뭐 하러 여길 다 찾아 온 거냐? 그리고 실내에서 그 답답한 모자 따위는 벗어두는 게 어떠냐?”
 에드워드는 계단을 내려가며 말했다. 나이젤은 모자를 벗으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는 모자를 벗는다는 것을 깜빡 하고 있었다.
 “포츠머스에 가던 길인데 잠시 들렸습니다.”
 “앉아라. 해리, 내 궐련을 가져오도록.”
 해리가 곧장 에드워드의 궐련갑과 성냥을 가져왔다. 에드워드는 지독한 골초였다.
 “그래, 나이젤. 너, 조지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면서?”
 에드워드는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나이젤에게 말했다. 그는 이미 조지가 나이젤에게 발굴사업을 돕게 해달라고 부탁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네, 알고 계시는군요. 저는 조지에게 ‘굉장히’ 많은 기대를 합니다.”
 에드워드는 소파에 거의 몸을 누운 자세로 궐련만 피워대고 있었다. 나이젤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반응이 없자 나이젤은 어쩔 줄 몰라 무안함을 없애려 집안을 두리번거리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두리번거리지 말아라, 촌놈 같으니. 조지에게 좌절감을 주려는 일 따위를 하려고 막대한 돈을 그런 데 쏟아 붓다니… 너도 정말 조지만큼 이해 할 수 없는 아이다.”
 “마흔이나 되어서 아직도 제 어릴 적 꿈 못 버리고 아등바등 하는 그 녀석의 모습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에드워드는 그 말을 듣자 껄껄 웃었다. 나이젤의 말에 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을 깎아 내리는 식의 유머는 불쾌할 때보다 재미있는 때가 더 많은 법이다. 아버지가 웃는 것을 보고 나이젤도 함께 웃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킬킬거리며 대답했다.
 “미친놈, 별걸 다 재미있어 하는구나.”
 “저는 조지가 더 이상 허황된 꿈을 좇으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걸 깨닫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돈도 빌려주었고. 물론 그는 갚지 못하겠지만요.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교습비가 조금 비싸더라도 돈은 또 벌면 그만이니까요.”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그 의기양양하던 놈이 좌절하여 굳어버리는 모습을 재미있게 감상하려는 목적이겠지 이 변태 같은 녀석 같으니라고.”
 에드워드는 궐련을 깊게 한 번 빨더니 다시 연기를 내뱉고는 말했다.
 “하지만 정작 이해가 안가는 건 나이젤 바로 너야. 넌 가진 것도 많으면서 항상 조지에게 열등감 같은 것을 갖고 있었지. 하긴, 그럴만도 했어. 한창 성격형성이 될 시기에 넌 조지에게 뭐든지 항상 밀렸으니까 그웬이니 엠버니 하는 네가 좋아했던 여자애들을 모두 조지가 빼앗아 갔었지. 아, 넌 옛날 얘기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했지? 껄껄껄”
 나이젤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온 몸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그는 시간 핑계를 대고 자리에서 빨리 일어나려고 했다. 그는 외투를 집으며 말했다.
 “그가 실패하던 성공하던 나는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실패하면 형으로서 동생에게 깨우침을 주었다는데 만족할 것이고 성공하면 투자자로서 만족하겠지요. 그것도 ‘대만족’ 일겁니다. 시간이 얼마 없어서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그래, 가봐라. 배웅해주지.”
에드워드는 떠나는 나이젤의 승용차를 보며 아쉬워했다. 그에게는 악취미가 있었는데 남을 놀리는 것이었다. 나이젤을 더 가지고 놀고 싶었던 것이다.
나이젤은 세 아들 중에서도 유난히 먼저 떠난 부인 샤오린을 닮았었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나이젤에게 유난히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었는데 학자의 길을 걸으라는 자신의 뜻을 저버리고 사업을 택하자 아들에게 아주 실망해버렸다. 그래도 나이젤의 성실한 모습을 보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둘째 아들 조지는 이도 저도 아닌 아들이었다. 반항만 했지 제 형처럼 뭔가를 꾸준히 하여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었다. 공부를 조금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보물을 찾는답시고 한몫 잡으려는 꿈만 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에드워드가 보기에는 그랬다. 에드워드는 그저 린턴이 가엾을 뿐이었다. 어머니 없이 자란 린턴에게 형들, 특히 조지는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에드워드는 잘 알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와 서재로 올라갔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하던 독서를 마치려고 하는데 벽에 걸려있는 잘 손질된 가죽 위에 그려진 세계지도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곰가죽이었다. 의자에 앉은 에드워드는 책상에 발을 올리고 허공을 응시했다. 그가 뭔가를 회상할 때의 버릇이었다.
 조지의 어릴 적 별명은 <떠벌이>였다. 온갖 허풍이란 허풍은 다 치고 다니고 실속은 없는 그런 남자였다. 그래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모험심과 호기심은 다른 아이들보다 충만했다.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의기양양한 태도에 또래 아이들은 그에게 매료되었다. 특히 린턴이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린턴이 조지에게 순종하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에드워드는 그 날 삼형제를 데리고 곰 사냥을 나섰던 것이다. 나이젤이 22살, 조지가 갓 20살이 되었을 때였다. 린턴은 12살이었다. 에드워드는 나이젤과 조지에게 엽총을 주었다. 밤이 되어 그들은 야영지를 찾던 중, 오래된 듯한 바라크를 발견하여 그곳에서 밤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모닥불 주위에서 모두가 잠들었을 때, 린턴이 깨었다. 오줌이 마려웠던 것이다. 그는 볼일을 보러 모닥불로부터 꽤 먼 곳까지 걸어갔다. 수풀 속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반짝였다. 린턴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달빛이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야생동물의 번뜩이는 눈과 마주쳤을 때 12살 어린아이가 느꼈을 공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빨을 드러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맹수임에 틀림이 없다고 린턴은 확신했다. 소리를 지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주변을 맴돌던 그것이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린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총성! 천둥이 울리는 듯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성! 그리고 한 발 더. 린턴은 얼굴에 자신을 죽이려던 그 무엇인가의 피가 튀었음을 느끼는 동시에 육중한 무엇인가가 발 앞에서 쓰러졌음을 느꼈다. 뭔지는 몰라도 대단히 큰 동물이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멀리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린턴은 다시 한번 굳어버렸다. 저것은 귀신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은 천천히 린턴에게로 다가왔다. 다가온 그는 둘째 형인 조지였다.
 “큰일 날 뻔했잖아. 린턴, 너무 멀리 와버렸는데.”
 조지는 그 물체가 뭔지 확인하며 린턴을 나무랐다. 바로 뒤따라 에드워드와 나이젤이 달려왔다. 에드워드가 소리쳤다.
 “야!”
 “곰 잡았어요!”
 조지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엽총의 개머리판으로 죽은 곰의 머리(총알은 정확히 곰의 머리통에 박혔다.)를 툭툭 치며 소리쳤다. 에드워드는 눈 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고작 20살 밖에 안된 풋내기가 달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숲 속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야생동물의 머리통에 정확히 총알을 박았다니.
 사냥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린턴은 더욱 조지에게 의지하였고 에드워드 역시 조지가 약간의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한다거나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어도 그를 예전처럼 나무라지 않았다. 심지어 에드워드는 <옛날의 비범한 인물들은 일부러 미친 척 했다던데 혹시 저 녀석도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기까지 이르렀다. 동시에, 에드워드는 몽상가적 기질이 다분한 조지의 성격이 그 스스로를 망쳐버리지 않을까 두려웠다. 어쨌든 린턴으로 인해 동네로 퍼진 조지의 영웅담은 삽시간에 런던 전역으로 퍼졌고 그에게는 <명사수>라는 별명이 하나 덧붙여져 <광인 명사수>가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명사수가 아니었다. 그 날밤의 일은 순전히 우연에 불과한 것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조지 맥스웰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갑자기 닥쳐왔다. 그는 중대한 일에 있어서 자기에게는 운이 항상 따른다고 느껴왔다. 그는 어떤 일을 함에 불운이 따라주었다면 그것은 놓쳐도 상관 없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업은 이 자신만만한 사내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은 일생일대의 도전이었다. 하지만 엘 도라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불행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지 않던가.
 조지는 광산 발파전문가이자 작업 현장의 총 감독관인 미국인 리처드와 함께 있었다. 조지에게는 자금이 별로 많이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리처드와 갱도 발파 속도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작업 일수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조지에게는 불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조지의 재촉에 리처드는 매우 곤란해 하고 있었다.
 “이곳 지반이 생각보다 굉장히 약하다고 저희 측 검사관이 말하더군요. 더 이상 빨리 작업을 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사고가 날 수도 있고… 게다가 지금 갱도를 네 개나 파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 지역은 가끔 지진도 난다고 해서 평소보다 더 신경 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당신들이 베테랑들이라고 이름값이 높기 때문에 이곳에 고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작업은 계속 지연되고만 있고, 돈은 거저 나오는 줄 아십니까?”
 그 둘이 한창 논쟁 중일 때, 멀리서 한 남자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린턴이었다. 그의 얼굴은 환희로 가득해보였다.
 “형! 이것 좀 봐!”
 린턴은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흙투성이의 무엇. 하지만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그 무엇이 린턴의 손에 들려있었다.
 “하느님…”
 조지 맥스웰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하느님을 부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운을 주관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신’이라고 조지는 믿고 있었다. 그리고 린턴이 가져온 그것은 신이 그를 돕고 있다고 믿게끔 할 만한 것이었다.
 “그래! 황금이야! 공사장의 어떤 인디오가 발견해서 훔치려던 것을 뺏어왔어.”
 린턴이 손에 든 것은 재규어의 형상을 새긴(그리고 확실히 고대의 디자인으로 보이는) 금관이었다. 조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털썩 꿇고 말았다. 황금 도시의 부족은 재규어를 신으로 여겼다고 하였다.
 “이건, 분명히 제사장이 썼던 관이 틀림없어! 이것이 어디서 났지?”
 “갱도를 파고 있던 인디오가 주워서 훔치려던 것을 십장이 발견해서 나에게 전달했어.”
 린턴의 말이 끝나자마자 저 편에서 총성이 한 번 울렸다. 조지와 린턴은 그 총성이 왜 울렸는지 알 것만 같았다. 어쨌든 인디오 목숨 하나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조상이 세운 황금의 도시 엘 도라도가 눈 앞에 있다는 증거였다. 비록 엘 도라도 건설자들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이 세운 황금의 도시에 단 1파운드의 황금에 대해서도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총살은 너무 했군…”
조지는 관의 재규어 형상을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싱글벙글한 얼굴로 말했다. 물론 린턴 역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리처드는 아연실색했다. 오히려 이런 총살에는 더욱 익숙해야 할 그였다. 그는 말 그대로 이런 발굴현장이나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자로, 인디오 몇 명 죽임 당하는 것은 익숙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들은 미쳤다!> 조지는 관을 리처드에게 보여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자, 이걸 보십시오.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서둘러 주세요.”
 리처드는 조지가 모르게 고개를 좌우로 도리질 치며 기술자들이 머무는 천막으로 돌아갔다. 그는 매우 불만이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갱도 하나를 건설하는데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하는가를 저 책상물림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떠든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리처드가 어떻게 생각을 하였든 간에 조지는 금관 하나로 굉장한 성취감을 느꼈다. 여기 저기서 폭파 소리가 들리고 지축이 흔들렸다. 공기의 반은 먼지였다. 태양은 작렬했다. 하지만 조지는 그 모든 것들이 전혀 성가시지 않았다. 폭발음이 들릴 때마다 그는 묘한 환희에 젖었다. 그리고 인부들은 끊임없이 마치 개미처럼 흙과 돌과 목재들을 나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갔고 조지는 그 광경을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 곳에, 저 산 아래에 황금의 도시가 매장되어 있다!> 그런데 갑자기 땅이 흔들리면서 이전과는 다른 소리가 들렸다. 조지와 린턴의 몸이 휘청거렸다. 천막들이 무너졌다. 그리고 폭발하는 소리가 아닌, 뭔가가 우지끈 하고 무너지는 소리…
 조지와 린턴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인간의 부질없는 상상력으로도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금방 추측할 수 있었다. 불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백인 십장 한 명이 한 쪽 팔을 부여잡고 힘겹게 그들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마치 마라톤 평원에서의 승전보를 전한 그리스 병사처럼. 하지만 그가 전한 것은 승전보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지진입니다! 지진이 일어났어요! 제2갱도가 무너져서 안에 있던 인부들이 그만…”
 제2갱도에서는 약 150명 가량되는 인디오 인부들과 백인 감독관들이 있었는데 버팀목이 무너지고 천장이 주저앉아 모두 깔려버린 것이었다. 모두 죽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의 강진이었다. 조지와 린턴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날 밤, 발굴 현장의 분위기는 매우 어두웠다. 인부들은 신의 저주라고 하면서 도저히 일 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개중에는 임금도 받지 않은 채 도망친 사람들도 있었다. 발굴 시작 당시 약 2천 명 정도 있었던 인부들 중 죽은 사람들과 도망친 사람, 부상 입은 사람들을 제하면 일 할 수 있는 인부들은 약 1천 8백 명 정도로 줄어 있었고 그나마도 그 동안의 품삯을 요구하며 일하기를 멈추었다.
 조지와 린턴은 울상이 되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금관이 발견 되어 있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견을 눈 앞에 두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린턴은 쓴 웃음을 지으며 조지에게 말했다.
 “젠장, 지진 한 번 따위로…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이게 무슨 난리야? 멈출 수 없어. 지금까지 해온 걸 보라구. 형, 여기서 포기 할 수는 없어.”
 조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귀중한 보물을 신께서 쉽게 내줄 리 없다. 그를 굴복시키고야 말겠다.> 
린턴이 천막에서 떠나고 난 뒤, 조지는 혼자 남았다. 그 때, 누군가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맥스웰씨, 안에 계십니까?”
 목소리를 들어보니 리처드였다.
 “네, 들어오세요.”
 리처드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 역시 표정이 어두웠다.
 “이리 앉으시죠.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조지가 자리를 권하며 물었다. 조지는 생각했다. <또 싫은 소리를 하러 들어왔겠지.> 리처드는 조금 머뭇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리처드는 말문을 열었다.
 “사실 이번 지진 때문에 말씀드릴 것이 있어 온 것입니다. 제 경험상… 물론, 저는 최고의 광산 개발업자는 아니지만, 이 정도의 지진이면 더 이상 발굴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 드리러 온 것입니다.”
 리처드는 처음에는 머뭇거리며 말하다가 침착한 태도로 말을 이어갔다.
 “무슨 소리요? 이제 와서 고작 지진 한 번 일어났다고 포기를 하라니, 지금 나보고 포기 하라는 겁니까?”
 조지는 얼굴에 노기를 띠며 말했다. 안 그래도 심사가 불편한데 리처드가 불 난 데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 된 것이다.
 “아니, 전 포기하라고 권하러 온 게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시오. 난 그저…”
 “그저 뭐요?”
 “이번 일로 인부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저희 쪽 기술자들도 마찬가지이고요. 이 정도 규모의 지진이라면 앞으로 여진도 상당할 거라고 예측하더군요. 그건 저 역시도 잘 아는 바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청하건대 잠시 발굴작업을 중단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모두들 그냥 떠나 버릴 기세입니다. 이대로는 발굴이 어렵다고 한 것이지 포기하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단지 이건 위험을 감수하고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조금 해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나도 직접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감수하는 위험이 어떤 것인지 잘 압니다(이 때 리처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 금관을 보세요. 금관이 출토되었다는 것은 제사장이 머물던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신성한 구역까지 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참고 작업에 임해 줄 수는 없습니까?”
 “저희 쪽 기술자에게서 알아보니 지금 남아있는 갱도들도 붕괴 위험이 다분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저는 고고학이나 이곳 풍습은 잘 모르지만 금관 하나 나왔다고 해서 거의 다 온 것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는 부분이고요. 여진의 위험도 있고… 이대로라면 곤란합니다.”
 이번에 리처드는 꽤 완강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 역시 물러날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의 태도에 조지 역시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일단 조지는 반박을 하지 않고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지진 한 번 났다고 해서 중단이라니… 포기나 다름없잖소. 내 생각에 이제 도시 외벽까지는 1km도 채 남지 않았소. 고지를 눈앞에 두고 그만두라니? 도대체 당신이 뭔데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한단 말이오? 이건 내 인생이 걸린 중대한 일이오. 당신에게는 이 발굴 작업이 어떤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알 턱이 없겠지. 왜냐하면 그저 들어오는 일 중 하나일 뿐일 테니까. 이 금관을 보고도 모르겠나? 이 뿐만이 아니라 이미 여러 순금 출토품들이 나머지 갱도에서 발견 되었소.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은 더 이상 인간의 비천한 상상력을 쫓는 어리석은 짓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일이오. 모든 것이 딱딱 들어맞고 있는데 이제 와서 중단을 하게 되어버리면 다른 발굴업자들이 들개처럼 냄새를 맡고 추잡한 쟁탈전이 벌어지겠지. 나는 그런 것은 상상도 하기 싫소. 내 결론은 하나요. 거의 다 왔으니 밍기적거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이오. 그리고 당신들 멋대로 파업을 한다면 그때는 각오하시오. 나는 다른 기술자들과 업자들을 고용하면 그만이니까. 소문을 듣자하니 당신네들 미국인 기술자 중에 ‘제이슨 블랙’이라는 불가능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던데, 그 자를 불러오면 좋겠군. 당신, 돈 벌기 싫습니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듯이 조지는 평소 그의 성격과는 다르게도 상대에게 매우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리처드는 오늘로서 승부를 본 다는 것은 무리임을 알아챘다. 그리고 제이슨 블랙이라는 이름을 듣고 오기도 생겼다. 그 둘은 경쟁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진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를 설득하기는 무리라고 리처드는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못이기는 척 하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는 조지를 이해하는 마음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는 천막을 나와서 중얼거렸다.
 “난 정말 저런 놈들이 싫어… 남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작자들… 정작 자신들은 목숨을 걸고 뭔가를 해 본적이 있느냔 말이야.”
 다음 날이 되었다. 여기 저기서 복구공사에 필요한 인부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발굴 현장 한 켠에는 사고로 죽은 인디오들의 시신 수십 구가 모여있었다. 대부분의 사체들은 흙더미에 매장되었겠지만 그래도 몇몇은 운이 좋게도(?) 매장당하지 않고 온전히 시신이 거적에 말려 있었다. 산 사람들은 두려움에 질려 그 시체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시신들은 잠시 후 그들을 보며 자기도 곧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동료들에 의해 구덩이에 단체로 파묻혀질 것이었다. 한편, 어제의 사고로 인부들의 정신이 해이해지고 갱도를 파는 작업속도가 늦춰지자 백인 감독관들은 평소보다 더욱 가혹하게 채찍질을 해댔다. 엄연히 임금을 받고 노동을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감독하는 자들은 인부들을 마치 노예 다루듯 하였다. 종종 그들의 어깨에는 장총이 메어져 있었고 허리에는 모두들 권총을 차고 있었기 때문에 인부들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나흘이 지났다. 그러나 유물들이 조금 더 나온 것 빼고는 이렇다 할 발견은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조지도 여진의 위험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고 매우 노심초사하였다. 하지만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어쩌면 다시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지진 때문에 발굴을 중단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에도 리처드는 몇 번 더 조지를 찾아가 중단을 권했다. 지진을 예측 하게하는 이상징후들이 나타났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지는 리처드의 말을 묵살했다. 그는 단지 갱도의 버팀목을 조금 튼튼하게 고정시키도록 지시 할 뿐이었다. 리처드 역시 그 징후들을 대수롭지 않은 것들일지도 모른다고 여기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감은 떨쳐버리기 힘든 것이었고 그런 불안에 살아가는 것 보다 차라리 작업을 멈추었으면 하는 바램이 컸다.
 어떠한 일의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은 간혹 비상식적인 결론이나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대개 그 사람은 그 분야에 굉장히 무지한 사람이거나 형식적으로 그 일의 총 지휘를 맡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비범하고 그 비범함과 경이로운 성품에 걸맞는 대단한 업적을 이루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그것은 그 사람이 운이 따라주었거나 스스로가 대단한 업적을 세운 분야에서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기가 전혀 문외한인 분야에 지휘를 맡게 되었을 때, 큰 일은 벌어지는 것이다. 그들의 상상력은 매우 지극히 깊지만 그 폭이 좁다. 더 위험한 것은 자신만의 방식이 다른 곳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여기는 태도에 있다. 간단히 말해 그의 상상력은 지극히 단편적인 부분에 한에서만 그 역량을 발휘한다. 조지는 그런 인간형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 할 수 있었다.
 지진이 난 이후로 나흘째 되던 날 밤, 다시 한번 사건이 터져버렸다. 야간 보초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조지는 그 때, 나이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경과 보고서를 편지로 작성하고 있었다. 그는 편지를 여러 장 써야만 했다. 돈을 빌린 사람이 나이젤뿐이 아니었으니까. 그는 금관을 비롯한 순금 출토품 몇 개를 동봉해서 보내기로 했다. 그것들만 해도 사실 엄청난 돈이 되었다. 그것들을 본 나이젤은 담보를 잡아서라도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편지를 다 작성하고 난 조지는 야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였다. <어쩌면 내일이라도 베일 속에 가려진 황금의 도시 <엘 도라도>가 그 속살을 드러낼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조지는,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에 관해서만은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는 여기까지 오기 전에도 여러 일을 맡았었다. 페르시아 전쟁 때 침몰되었다고 여겨진 크세르크세스 황제의 보물선을 인양하려고도 했었고(그런 것은 없었고 군선 몇 척에서 유물을 몇 점 건졌을 뿐이었다.) 로마 교황청의 은밀한 의뢰를 받아 노아의 방주가 있다고 여겨지는 히말라야의 어느 높은 봉우리도 올라 간 적도 있었다(그러나 그는 모험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지 종교적인 열정에서 그 사업을 맡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했던지 간에 그는 막판에 가서는 질려버리고 자신이 찾으려고 했던 것들의 가치를 의심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던 것이다. <엘 도라도>는 그가 여태까지 추진 했던 일들 중에서 가장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 자각할 만한 사업이었고, 환상에 빠져있다고도 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조금은 현실적이었다고 볼 수 있었던 다른 일들과는 달리 그는 그가 하고 있는 그 행위에 의심은 눈곱만치도 하지 않았다. 여태껏 경험하지도 보지도 못했던 그 무언가가 한 인간의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독자 여러분은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운명의 장난이란 야속했다. 조지는 자고 있는 동안 야전침대가 뒤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벌떡 일어났다. 눈을 떠서 주위를 보는 순간 그는 기도했다. <이 흔들림이 제발 린턴이나 리처드, 아니면 누구든 간에 나를 깨우려는 의도로 말미암은 것이었으면 좋겠다!>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땅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지진이었다. 그것도 지난번 것보다 큰 규모의 것임을 금새 파악 할 수 있었다. 천막이 무너졌다. 조지는 간신히 큰 사고를 면했다. 천막을 세우는 데 사용된 굵은 막대가 그를 덮쳤지만 피했다.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조지는 무너진 천막 밑에서 기어 나왔다. 밖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제 정신인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뭔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엄청난 굉음. <갱도!> 조지는 섬찟했다. 땅에서 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득 그는 린턴이 무사한지가 걱정되었다. 그는 린턴의 천막으로 달려갔다. 그의 천막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그러나 주위에 린턴이 보이지 않았다.
 “린턴!”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갱도 무너지는 소리에 그의 외침은 마치 큰 바다에 떨어진 돌멩이가 만들어낸 물결처럼 금새 사라졌다. 지진은 어느새 사그라들었다. 린턴의 천막 밑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조지는 냅다 천막을 치우기 시작했다. 린턴을 발견 했을 때, 그는 이마에 피를 흘리며 매우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날 밤 사고로 큰 인명피해는 입지 않았다. 인디오 인부 한 명과 백인 십장 한 명이 아수라장이 된 인파 속에서 넘어져 밟혀 죽은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그 백인 십장은 얼마 전 금관을 훔치려다 걸린 인디오를 총으로 쏴 죽인 인물로 인부들 사이에서 악명이 드높았기 때문에 모두들 그의 죽음을 고소해 했다. 그는 머리통이 터진 채 죽어 있었다.). 어쨌든 그들이 해온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리처드는 당연히 이 일이 영구 중단 될 거라고 여기고 짐을 싸고 있었다. 그러나 조지에게 사업 중단 의사가 없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그는 이성의 한계를 실감했다. 더 이상 그 문제는 자신 스스로가 그만두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여러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조지를 찾아갔다.
 “조지 맥스웰씨, 당신 미쳤습니까? 당신의 미친 짓을 언론에 고발하겠소!”
 “싫으면 여기를 떠나면 되지 않습니까? 다른 기술자를 고용하면 그만이오. 안 그래도 제이슨 블랙과 연결 중이오.”
 조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는 리처드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였다.
 “다른 사람을 데려다 써도 바뀌는 건 없소! 정말 이해할 수 없군. 당신 정말 돈에 미쳤군. 돈보다 귀한 게 사람목숨이오!”
 “뭐라고!”
조지는 돈에 미쳤다는 말을 듣자마자 등을 돌리며 허리춤에 꽂혀있던 총을 뽑아 겨누고 외쳤다. 그는 리처드의 눈을 노려 보았다.
씩씩거리던 리처드는 자기도 모르게 그 눈빛과 총구에 압도되어 몸이 점점 굳어옴을 느꼈다. 그러나 어쩐지 조지에게서 적의나 살기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눈빛 그것은 애절함이었다. 리처드는 그 분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돌아서서 조지에게서 떠나려 했다. 그런데 등돌린 리처드의 뒤에서 조지가 나직이 말하였다.
 “돈에 미친 것이 아니오.”
 조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리처드는 그 음성에서 약간의 울먹임을 들었다.
 “난 돈에 미친 게 아닙니다. 그것만은 알아주세요.”
 리처드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조지가 무릎을 털썩 꿇고 자신에게 애원하는 듯한 자세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 돈이나 뭐 단지 그, 그런 것들 때문에, 이 이, 일을 하려고 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난, 난 그저… 이건…”
 조지의 머리가 점점 숙여졌다. 그의 어깨가 위아래로 떨리고 있었다. 그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리처드는 매우 당황했다.
 “이, 이봐요, 조지 맥스웰. 갑자기 왜 그러는 겁니까?”
 그때 조지가 고개를 쳐들더니 눈물이 그득한 눈으로 리처드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는 명백히 울고 있었다.
 “이건,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 입니다! 그래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일 뿐입니다! 돈에 미쳤다느니 허영심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제발… 제발 돈에 미쳤다는 그 말은 취소해주시오! 난, 그런 인간이 아니란 말이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고개를 떨구고 다시 숨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리처드는 그저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조지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수상소감 - 오현석(사과계열10)
제 소설이 성대 문학상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니 도저히 믿겨지지 않네요.
우선, 제 소설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 고맙습니다. 매우 기쁩니다.
엘도라도라는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잠을 자다 꾼 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느 여름밤, 잠을 자다 꿈을 꾸었는데 배경은 어떤 잠수함의 내부였습니다. 그리고 잠수함의 함장과 보물발굴업자가 있었습니다.
함장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자 더이상의 발굴은 위험하다고 말했고, 보물 발굴업자는 그래도 끝까지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함장이 "당신은 돈에 눈이 먼 작자요!"라고 비난하자 보물발굴업자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었습니다.
그 다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돈에 눈이 먼게 아니에요! 제발 그 말은 취소해주세요!"
아침에 일어나서 그 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기에다 살을 붙여서 소설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틈틈이 쓰고 틈틈이 수정을 거치고 성대 문학상 공모전을 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낸 작품이 나름대로 인정받았다니 다시 한번 정말 기쁘다고 밖에 말 할 수 없네요. 더욱 정진하여 괴테나 토마스 만을 뛰어넘는 소설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