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가작] 겨울날
[소설 가작] 겨울날
  • 성대신문
  • 승인 2010.12.01 18:23
  • 호수 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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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C를 만났다.

 그는 내가 사랑하는 남자다. 또한,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은 없지만 그 역시 나를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만은 확실하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관계는 진작 깨어져버렸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는 열 두 간지를 두 번 돌고 또, 거기에 2년을 더한 만큼의 시간 차이를 두고 태어났다. 가끔 내가 태어날 때의 그를 상상해 본다.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진리 탐구를 위해' 연구실로 매일 출근을 하는, 전도유망한 젊은 학자. 지금의 내 모습과는 전혀 공통점이 없다. 도대체 어떤 운명이 우리를 만나게 했을까. 이 점에 대해서는 아주 오랜 시간 생각해 왔으나 한 번도 답에 이른 적이 없다. 언제나 답에 이르기 전에 울음이 먼저 터지곤 했으니까.
 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우던 그는 내가 다가가자 환하게 웃는다. 낡은 청바지에 아무렇게나 구겨 신은 운동화가 우습다. 환히 웃던 그는 그러나 곧 얼굴을 찌푸린다. 그러면서 나의 치마 길이와 액세서리 같은 것에 대해 뭔가 말을 꺼낸다. 툴툴거리는 그가 재밌어서 나는 일부러 이 사람과 만날 때 더 짧은 치마를 입고 더 야한 액세서리를 착용한다. 세대 차이에 대해 말을 꺼내면 그는 곧 입을 다물어 버린다.
 "나는 아직 청년이야."
 잠시 뒤 그가 작게 항변한다. 그러더니 버스에서 읽을 무가지를 챙기기 시작한다.
 "그런 점이 바로 중년 같은 거예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신문지를 다시 돌려놓는다. 뾰로통한 표정이 소년 같다. 벼룩시장이니 교차로니 하는 얇은 종이뭉치들이 바스락거리며 그의 손에서 떨어진다. 나는 집에서 가져 온 신문 한 부를 백에서 꺼내 그에게 준다. 그의 표정이 순간 환해진다. 어린아이처럼, 웃는다.
 
 버스가 오고 그는 신문 사설을 정신없이 읽고 있다. 나는 신경림의 시집을 꺼낸다. 봄의 노래, 를 읽는다. 하늘의 달과 별은/ 소리내어 노래하지 않는다/ 들판에 시새워 피는 꽃들은/ 말을 가지고 말하지 않는다/ 서로-
 
 서로, 사랑한다고는. 그의 옆얼굴을 한 번 본다. 우리는 코가 닮았다고 했던가?
 
 대학에 처음 입학하던 나에게 그는 만년필을 하나 사 주었다. 목걸이나 반지처럼 반짝거리는 것을 기대했는데 입학 선물로 투박한 펜을 받은 나는 한동안 그에게 전화도 걸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받아서, 라기보다는 내가 생각한 나의 이미지는 반짝거리는 작은 돌인데 그가 생각한 나는 이런 두꺼운 필기구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퍼졌었다.
 그러나 입학 후에, 나는 그 만년필을 들고 매일을 도서관에 갔다. 과학 학술 정보관이라는 도서관의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순전히 그런 이유로, 동기들이 동아리 활동과 선배와의 술자리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나는 도서관으로 갔다. 그가 사 준 만년필로 코를 문지르면서 글을 쓰기도 하고 가끔은 학과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그를 만났다. 나와 똑같은 모양의 코를, 똑같은 만년필로 문지르면서 무언가를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평소였다면 허락되지 않았을 일이지만 그의 코 때문에, 순전히 그것 때문에 나는 슬그머니 그의 앞에 가서 섰다. 그때 당황한 C가 나를 데려간 곳이 과학학술정보관의 서고였다.
 어두컴컴한 서고에 처음 발을 딛던 때를 기억한다. 그 매캐한 먼지의 냄새- 나는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었다. 그는 조용히 나를 안아 주었다. 우리는 밝은 곳에서는 서로 안지 못한다. 서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에게는 검은 세단이 있지만 우리는 한 번도 그 차에 함께 타 본 일이 없다. 만나야 할 일이 있을 때- 그러니까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우리는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정류장에서 만나 이동하곤 했다. 내가 재학 중인 대학교가 그의 근무지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휴일에 함께 그의 세단에 탈 수 없는 사이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멀미가 날 것 같다. 지금은 허물어져버린 서고의 매캐한 먼지들이 코끝에 내려앉은 듯, 미간이 찡하고 아려온다.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 본다. 잠든 척을 한다. 신문지를 넘기고 싶은데 내가 깰까봐 어정쩡한 자세로 남아 있는 그의 손가락을 보고 웃는다. 그러다가 그의 손에서 결혼반지를 발견한다. 언제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수수한 반지. 하지만 그는 나를 위해 신문지도 넘기지 못하고 있잖아? 어쨌거나 이 휴일을 그와 함께 보내고 있는 것은 나라고, 속으로 외친다. 그가 다른 쪽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준다.

 그의 이런 행동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데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될까?

 광역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함께 지하철역으로 간다. 그는 헤매지도 않고 나를 이끌고 간다. 상행이나 하행을 결코 헷갈리는 법이 없다. 어떤 칸의 몇 번 문 앞에 서 있어야 환승하기 쉬운지도 모두 알고 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즐겁게 그를 따라 간다. 전동차 안에 올라한 우리는 여전히 조잘거린다. 단 한 자리 남은 곳에 그는 나를 앉힌다. 그리고 나의 가방을 선반 위에 올려 놓아준다. 키가 크다. 그는 정말로 키가 크다.
 "백 팔십 삼 이라고요?"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렇게는 안 될걸, 백 팔십 이점 오 정도일 텐데."
 "정말 엄청난 차이네요. 시험 문제 채점하실 때도 그 정도의 아량으로 하시죠?"
 "채점은 내가 하지 않지만, 아마 나한테 배운 조교들도 나와 비슷할 걸. 다들 관대하지."
 우리는 같이 웃는다. 그 사이 자리가 나서 그도 내 옆에 앉는다.

 바로 다음 역에서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한 노인이 무거운 삶을 넣은 보따리를 짊어지고 힘겹게 지하철 칸 안으로 들어온다. 미처 '여기 앉으세요.'라고 할 새도 없이 그가 일어난다. 노파의 옆 자리에 어정쩡하게 앉아 있으면서 그가 입은 청바지를 본다. 모양새 없는 가방과 아무렇게나 깎은 듯한 머리 모양도 한참을 본다. 그가 검은 양복을 입은 것을 나는 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처음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았다. 먼저 전화한 것은 나였다. 대답도 하지 않고 그는 병원으로 달려왔지만, 장례식장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겨울인데도 눈이 아니라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이었다. 그는 병원 입구에 그냥 서 있었다. 한참을 서 있다가, 돌아갔다. 나는 빗속에 서 있는 그와 그의 아내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아내와 함께 교수진의 무슨 모임 엔가에 참석 중이었다고 했다. 주황색 체크무늬의 넥타이는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조문객 중 몇몇이 욕지거리를 씹어뱉었었다. 나는 울지 않았지만 아직까지도 단 하나만은 잊을 수 없다.

 그때, 그의 아내가 들고 있던 새빨간 우산.
 
 전동차에서 내렸을 때 나는 울적해져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나를 언제나 우울하게 한다. 그러나 그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내서 우리의 즐거운 하루를 망칠 수는 없다. 오늘이 지나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신이 나서 오늘의 계획을 말한다. 큰 거북이를 보고 싶다고, 펭귄도 오랜만에 봐야겠다고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한다.
 지하철역에서 바라본 높은 건물은 아주 가깝게 보인다. 우리는 걸어가기로 한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그 건물은 그대로 거기 있고 우리는 가까워 질 수 없다. 기분이 이상해진다. 사막의 신기루, 를 보는 것 같다.
 
 그 사람은 언제나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에게 닿아 본 적이 없다.

 그는 툴툴거리기 시작한다. 그의 팔짱을 끼고 씩씩하게 걸어 본다. 한강에 같이 온 건 처음이잖아요, 화 내지 말아요. 그가 이내 조용해진다. 얼굴을 올려다보니 웃고 있다. 이 웃는 얼굴을 그대로 닮았다는 그의 아들을 생각한다. 피아노 콩쿨에서 세 번이나 입상했다던 그의 딸을 떠올려 본다. 주말이면 공원이라든지 계곡이라든지, 그런 곳에서 깔깔거리는 그의 가족을 그려본다. 그의 아내는, 나를 모른다. 내 어머니의 장례식 날 그의 아내가 따라왔지만, 왜 제자라는 나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가 그냥 돌아갔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 새빨간 우산 속에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고 하던 숏 커트 머리의 세련된 여자.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나는 빗소리와 함께 남겨졌었다.
 나는 한 번도 그에게 닿아 본 적이 없다.

 드디어 도착한 건물 일층의 일식집에서 그는 초밥을 먹고 나는 스시롤을 먹는다. 괜찮은 맛이다. 초밥과 함께 나온 마끼를 보더니 그가 그의 아내에 대해 뭔가 말하기 시작한다. 처음 보는 마끼를 한 입에 넣다 체한 적이 있다는 그의 아내. 나는 나의 어머니에 대한 말로 날카롭게 응수한다.
 "장례식에 빨간 치마를 입고 오실 정도로 교양 있으신 분이, 음식은 왜 급하게 드셨을까?"
 그는 도무지 그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에 왜 성숙한 태도로 반응할 수 없는 것일까. 순식간에, 우리 사이에 26년이라는 세월이 가로놓인다. 가로놓인 세월을 어쩌지 못하고 그도 나도 말이 없다. 사실 그날 그녀는 연두색 플레어 스커트를 입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아내에게는 빨간 치마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식사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음식을 입에 넣는다. 식사는 아주 오래 걸린다. 그가 값을 치르고, 현금 영수증을 끊고, 다시 전망대의 이용권을 구매해 온다. 나는 그 동안, 어릴 적 아버지가 놀이공원에서 사 주었던 풍선을 생각한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풍선의 실을, 생각한다.
 
 그저께 내린 눈이 막 녹기 시작한 서울은 더러운 꼴을 하고 발밑으로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한강은 아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아파트들을 내려다보는 것이 더 즐겁다. 저런 아파트들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기의 삶을 가지고 살아간다. 내뱉는 숨결이 테라스 밖으로 나와 합쳐지고, 그 공기들은 다시 구름을 만들고, 그 구름이 만든 눈을 맞으면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그는 창가 근처에서 어슬렁거린다. 정말이지 ‘어슬렁’거린다. 그런 몸짓이 낯설고 또 낯설지 않아서 나는 웃었다.
 서고를 어슬렁거리던 나날들이 있었다. 하루 종일, 사람이라고는 거의 없는 책들의 무덤 속에서, 아무도 읽을 것 같지 않은 제목의 책들에 둘러싸여 나는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는 나만의 책장을 구석에 마련하기도 했다. 아무도- 사서조차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구석진 곳에 빈 책장이 하나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 책을 모았다. 눈이 아주 파랗고 커다란 예쁜 고양이가 나오는 사진책, 지중해 연안의 역사가 나오는 지루하고 두꺼운 책, 회로이론에 대한 구식 연구를 모은 책, 그리고 그가 집필한 책들.
 병적일 정도로 그의 책을 모두 모아 한꺼번에 꽂아 둔 날이 있었다. 누구도 그의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그의 글은 나만의 것이었다고 모두에게 공언하고 싶었다.
 
 처음으로 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은 것은 그였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그는 나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

 그 날, 처음으로 폭음을 했고 함께 술을 마신 같은 과 선배 K는 내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책을 나르느라 먼지를 뒤집어 쓴 블라우스 속에서 이두근은 계속 욱신거렸다. 결국 불을 켜 둔 채로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잠을 청했었는데,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과 그의 가족과 서고의 어두침침한 공간과 고양이의 파란 눈이 뒤섞인 꿈을 꾸었다. 꿈자락의 마지막에서는 수많은 풍선 줄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빨갛고 노랗고 하얀 풍선들이 끊임없이, 창공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서고에 올라가니 나의 책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무슨 책을 찾으세요?”
 “이쪽에 놓여있던 책장들이 없어졌네요.”
 “아, 도서관 이사 때문에 제4서고부터 정리중이에요. 공지사항을 안 읽으셨나 봐요?”
 “도서관이 이사를 하나요?”
 “새 도서관을 지을 거예요. 도서관 뒤 잔디밭에서 이미 공사는 진행 중인데, 모르셨어요?”
 “전혀 몰랐는데요……”
 “지금 아셨으니까 됐네요.”
 달려 나가서 공사장의 판넬들을 본다. 커다랗고, 번쩍이는, 멋진 건물의 조감도가 곳곳에 달려 있다. '새로운 도서관의 이름을 여러분의 손으로 지어주세요!'라는 이름 공모 안내와, 과학 학술 정보관의 이용 중단 일시도 함께 적혀 있다. 그의 연구실 앞인 이 길은 일부러 한번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런 사실을 몰랐다. 모르는 채로, 어두운 서고에서 나의 모든 시간을 보냈었다. 그가 와 주지 않는 어두운 먼지 굴 속에서.
 놀이공원에 가면 언제나 마지막 순간에는 풍선을 놓아야 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풍선의 실 끝에는 반드시 플라스틱 손잡이가 매달려 있다. 그것을 잡기만 하면 풍선은 잃지 않는다. 그런데 왜인지, 한 번도 그 손잡이를 잡아 본 일은 없다.

 전망대에서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낸다. 몇 바퀴고 돌아보기도 하고,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나누는 이야기란 이런 것 들이다.
 “대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학점이 아니야.”
 “그거야 저도 알아요.”
 “하지만 전공 진입에 필요한 최소한의 평점 정도는 취득해야지 않겠니?”
 “그거야 그렇지요.”
 “도서관에 자주 간다면서, 공부에는 진척이 있는 거냐?”
 “얼마 전부터 가지 않고 있어요. 신축 기숙사니 도서관이 들어선다고 온통 어수선해서.”
 “독서실이라도 끊어 줄까?”
 “보호자 놀이는 그만 하세요.”
 그리고 한참의 정적, 동안 나는 죄책감과 묘한 승리감이 뒤섞인 심사로 창밖을 본다. 아이들 몇몇이 뛰어다니다 넘어져 운다. 옷을 예쁘게 차려입은 안내원이 황급히 다가가 아이의 옷을 털어 내 주며 이것저것을 묻는다. 창밖의 서울은 여전히 꾀죄죄하다- 모든 풍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도 아이였을 때가 있었고, 그도 언젠가는 반드시 아이였을 텐데 우리는 그런 시간을 전혀 공유하지 못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내 말에서 비롯한 충격에서 헤어 나온 그가 다시 말을 건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힘겹게 대화를 이어 나간다.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전망대를 내려와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수족관의 이용권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선 그가 대형 화면의 극장을 홍보하는 안내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안내원은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있다. 이집트의 신비, 라는 제목 때문에 그가 쓴 모자는 파라오의 흉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끔찍하게 못 생긴 모자라고 생각하는데 옆의 C가 넋을 놓고 그 모자를 바라본다.
 “저렇게 멋진 모자는 처음이네요.”
 내가 조금 빈정거리듯 말한다. 그는 멋쩍게 웃는다. 나는 다시 말한다.
 “수족관보다, 영화가 보고 싶은데.”
 그는 신이 나서 영화표를 사 온다. 신이 났다는 것이 모든 표정에서 읽힌다.
 
 “360도 서라운디드 화면이래.”
 허벅지를 만졌던 선배 K는 영화를 보러 가자고 조르면서 온갖 말을 꺼냈었다.
 “아이맥스 영화는 몇 개월만에 한 번씩 바뀌는데, 이집트의 신비는 아주 오래 방영 중이야. 너무 스케일이 크고 재미있어서.”
 “영화는 안 봐요.”
 “그냥 영화가 아니야.”
 “어쨌든 안 봐요. 서울까지 가서.”
 K는 귓속말을 시작한다.
 “너, 요즘 이상한 소문이 나서 그래. 너랑 C교수랑 붙어 다니는 걸 연극 동아리 애들이 다 본 모양이야. 연애라도 시작해야, 그런 소문 쑥 들어가지 않겠어?”
 차라리 허벅지를 쓰다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K에게 손을 잡힌 채로 그 영화를 다 봤다. 그의 손에서는 땀이 무지막지하게 많이 났다. 그 날 집으로 돌아가서는 영화의 줄거리와 감상과 그가 나에게 사 준 싸구려 밥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우리가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를 공들여 써서 미니홈피에 업데이트했다. 활짝 웃는 모습의 셀카도 몇 장 올렸다. 어두운 서고에서 나와 먼지를 터는 기분으로 미니홈피의 배경음악도 유행하는 것으로 바꿨다.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음악이지만 같은 과 학생 중 열에 여덟은 배경음악으로 채택한 곡이었다. 이번 주 학과 모임에 참여할래? 라는 문자에는 이모티콘을 잔뜩 섞어 그러마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과학 학술 정보관이 무너지던 날의 나를 생각했다. 언제쯤이면 누구와도 연관되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만 신경 쓰면서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나이가 아주 많이 들면, 그런 일이 가능해질까.

 C가 팝콘을 사 온다.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언제까지든 저런 모습의 그를 보호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나보다 나이가 아주 많이 든 그는 사랑하는 것들로만 둘러싸인 삶을 살고 있을까? 젊음을 보낸 도서관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을까? 풍선의 손잡이를 힘껏 그러쥘 수 있을까.
 커다란 화면으로 이집트의 역사가 방영되는 동안 그는 연신 움찔거린다. 화면이 커서 어지럽다고 말한다. 재미있다. 권위적인 그가 마음껏 망가지고 있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보면서 정말 가지고 싶다는 표정을 짓는다. 또, 더러운 서울 위에 올라 어슬렁거리며 즐거워한다. 하루뿐이지만, 이런 일들이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렇게, 앞으로도, 사랑하고 싶다.

 과학학술정보관의 철거가 시작되던 날, 나는 만년필을 가지고 공사 현장으로 갔다. 눈이 아주 많이 내렸던 한 주여서, 학교는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나는 하얀 세상 속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공사장의 인부들이 설치해 두었던 화장실 쪽으로 몰래 들어가, 간이 화장실에 만년필을 던졌다. 누군가 나를 불렀으나, 대답하지 않고 돌아섰다.
 과학 학술 정보관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와 C의 모든 것을 함께 품고서.

 철거가 한참 진행되던 중에 나는 주차장에서 그의 세단을 찾아낸다. 그리고 세 시간 삼십 분을 기다린다. 그가 왔을 때, 나는 조용히 그에게 안겼다. C는 놀라지도 않았고, 점심을 먹으러 가려던 참이었다며 나를 데리고 새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그전까지 나는 한 번도 새 도서관에 들어가 본 일이 없었다.
 커다랗고, 반짝이는 건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척 밝았다.

 어디에도 어두운 공간이 없었다. 전면 유리로 처리된 벽들이 어디서고 반짝거리며 햇빛을 양껏 받아들였다. 학생들의 표정도 아주 밝았고, 더 이상의 조도가 필요 없을 텐데도 어디에나 조명등이 켜져 있었다. 꼭대기 층의 카페에서 그는 나에게 티라미스 케익과 아메리카노 커피를 사 주었다. 케익에 손을 대지 않자 그는 눈이 많이 왔으니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과학 학술 정보관에서의 어두침침한 서고 대신 온갖 밝은 것들로 가득한 삼성 학술 정보관의 빛 속에 우리는 앉아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만년필을 새로 사 달라고 말했다. 그는 조금 웃었던 것 같다. 그리고 조금 후 아내의 전화를 받고 급히 사라졌다. 결국 그는 나를 집에 데려다 주지 않았던 것이다. 삼성 학술 정보관에는 먼지 한 점 없는데도 밝은 빛 때문인지 나는 자꾸 재채기를 했다. 혼자 그 꼭대기 층에서, 열심히, 재채기를 했다.
 
 영화가 모두 끝난 뒤 여전히 이집트의 장대한 문화로부터 받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그에게 유람선을 타러 가자고 말한 후 높은 빌딩을 나왔다. 지나치게 어두워 져 있어 둘 다 놀란다.
 “수족관까지 갔으면 유람선은 못 탈 뻔 했다.”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나는 한강변의 잡상인을 바라본다. 매대에는 헬륨 풍선들이 잔뜩 매어져 있다. 처음 보는 캐릭터 모양도 있고, 한강과는 하등 상관 없어 보이는 상어나 문어 같은 바다 생물 모양의 풍선도 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상인이 먼저 내게 말을 건다. 나는 묻는다.
 “이거, 그냥 두면 하늘로 날아 올라가나요?”
 “에이, 아가씨. 그럴 리가 있나요. 이거 보세요. 손잡이가 무거워서, 이렇게. 그냥 놔 둬도 절대, 절대로 올라가지 않아요. 여기 매여 있어요.”
 “예전엔 놓치면 그냥 날아가 버리곤 했었는데.”
 “에헤이, 요즘엔 절대 그렇게 안 나와요. 이틀 정도 있으면 바람이 빠지니까 그 전까진 가지고 있을 수 있어요. 아니면 구멍 내서 헬륨 가스를 마시면 목소리가 변하는데….”
 “사 줄까?”
 C가 묻자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상인은 바람 빠진 표정으로 풍선을 다시 매대에 묶는다. 그가 민망해하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우리는 천천히 선착장 쪽으로 간다.
 마음대로 되는 것으로 이루어 진 세상은 없다, 고 그는 조금 더 어렸던 시절의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놀이공원에 함께 가면 그는 언제나 헬륨 풍선을 사 주었지만 한 번도 그걸 집에 들고 오도록 허락한 일은 없다. 처음 몇 번은 울면서 보챘지만, 언젠가부터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풍선 줄의 느낌과 눈이 아플 때까지 작아져가는 풍선을 보는 일을 즐기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처럼 나의 유년 시절에 자리한다. 나는 그렇게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맥주 한 캔만 사 주시면 안 될까요.”

 “안될 것 없지.”
 K는 영화를 함께 본 이후로 나에게 이것저것을 요구해 왔다. 주로 밥을 먹거나 어딘가에 같이 가자거나 하는 것들.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서 함께 다녔다. 생각해 보면, 능글맞다는 것을 빼고는 꽤 괜찮은 선배였던 것이다.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나오는 길에 나는 갑자기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었다.
 이유는 이렇다. 도서관의- 온통 백색인 책상들에는 수많은 대학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책은 대부분 똑같다. 학기 중에는 토익이나 대기업 입사용 책, 그리고 공무원 준비 문제집. 시험기간에는 각자의 전공과목 책이나 전년도 선배들이 읊어 준 기출 문제. 예전에, 나는 어둠을 먹고 자랐었다. 하지만 새 도서관에서는 어둠의 한 쪽도 얻지 못하였다. 그리고 사유하고 고민할 공간들은 모두 무언가를-토익점수라든가 학점을 생산해 내기 용이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도서관의 이름 공모전 결과가 발표되었다. 1등상을 받은 학생의 의견대로, 신축 도서관의 이름은 ‘삼성 학술 정보관’으로 정해졌다. IT학부 3학년이라는 그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학교의 재단이기도 하고요, 또 이번 도서관을 짓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워주신 감사한 기업입니다. 그 정신을 본받아 모두 열심히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그 정신’이 도대체 무슨 정신인지는 모르겠지만, 과학을 무너뜨린 학교에서 학생들은 모두 삼성으로 갔다. 학교에서는 나서서 과학을 모두 부숴 버렸다. 정문에서 바로 보이는 건물은 으리으리하고 밝은 건물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밝고 영롱하게 빛나는 삼성학술정보관을 가린다는 이유로 모두의 어두운 추억을 머금은 과학 학술 정보관은 무너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처음 서고에 들어갔을 때 느꼈던 먼지의 따끔함과 매캐함이 어디선가 계속 나를 찾아왔다. 무엇이라도 마시고 싶었다. 맥주라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도서관 앞 벤치에 둘이 앉게 되었다. 홀짝이는 내 옆에서 K는 계속 말을 걸었다.
 “나, 어때?”
 “멍청해요.”
 “왜?”
 “그냥. 안될 걸 알면서 나만 쫓아다니니까.”
 “맥주, 그만 마셔. 다음 주부터 시험이다.”
 “연애하자고 하면 차라리 나을 것 같아요. 선배가 자꾸 비굴하게 구니까 그게 더 싫어.”
 추운 겨울이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우리의 숨이 가시화되었다. 서로가 내뱉은 숨을 보면서, 한참동안 우리는 말없이 맥주를 마셨다. K는 끝내 그럼 연애하자, 는 말은 하지 않았고 그 후로는 연락해 오지 않았다. 나는 미니홈피를 폐쇄하고, 포털 사이트에서 탈퇴해 버렸다. 학과 행사에도 나가지 않았다. 도서관에도 더는 가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들 조금이라도 더 무거운 손잡이를 매달기 위해 애쓰는 풍선 같다.
 절대, 절대로 올라가지 않도록. 언제나 ‘여기’ 매여 있도록.

 “맥주, 그만 마셔라.”
 “별로 마시지도 않았는걸요.”
 “아니, 충분히 마셨어.”
 “오늘 많이 걸어서 괜찮아요.”
 “내가 너무 걷게 했나?”
 그는 금세 아이 같은 표정이 된다. 걱정스럽다는 듯이 나의 눈치를 본다. 이럴 때면 C는 이십여 년이나 어린 K보다 더 미숙해 보인다. 연구실에서 평생을 보낸 학자라서 일까.
 “즐거웠어요.”
 그는 안타깝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만 본다.

 "너희 아버지를 펴,평생 용서하지 마라."
 병에 걸린 엄마의 눈은 푹 꺼져 있다. 하지만 안광만은 무서울 정도로 밝았다.
 “유학 자금 마련하려고 빚까지 냈어. 나 여기서 너 키우면서 안 해본 일 없이 다 했다. 그,그러는 동안, 그 자식은 미국에서 젊은 년 만나서 호의호식했지.”
 눈을 희번덕대며 엄마는 하루에도 같은 말을 십 수 번씩 반복했다.
 “한국에 돌아올 때는 이미 그 년이랑 애까지 낳았더라. 호,혼인신고를 안 했다는 이유로 구 년이나 같이 산 나는 개차반처럼 버려지고, 그 사립 대학 이사장 딸년, 그, 그 여시같은 년이랑 결혼했으니 교수직 얻어서 지금도 잘 살고, 내가 집 앞에 찾아가기를 몇 번이나 했는데…. 구, 구년이나 살 비비고 산 나는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나는 조용히 냄비를 가스렌지 위에 올린다. 바닥이 새까맣게 눌어붙은 낡은 냄비.
 “너 앞세워서 그 집에 갔지. 너도 기억나냐? 그때 그 새끼가 너보고 뭐라고 했지?”
 “몰라요.”
 “그래! 바로 그랬지. 모른다고 했지. 하하하하하하 모른다고 했지. 그년이 어머, 누구에요? 하고 새침하게 물었지. 그 자식은 모른다고만 했어. 지금 이렇게 내가 압류 당하고 네가 대학도 못 다니게 되었는데, 양육비라고는 꼴랑 아하, 아하하하”
 엄마는 미친 여자 같았다. 내가 대꾸를 않자 약 기운 때문인지 곧 잠에 빠졌다.

 C는 너무 춥다며 몸을 옹송그린다. 강은 넘실대고, 오리배를 타는 사람조차 없이 고요하다. 고인 물 근처에 살면 우울증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통계치를 읽은 바 있는데 아마 이런 고요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학교 앞에도, 그러니까 C의 아파트 앞에도 저수지가 있다. 내 어머니가 빠져 죽은 그 저수지.

 미쳐가는 엄마를 위해 마지막으로 해 놓고 나온 음식은 고등어조림이었다. 압류를 알리는 전화를 받은 후 집 앞 슈퍼마켓에 나가 고등어를 사 왔었다. 사실은, 썩은 생선의 눈을 바라보고 싶어서 가서 서 있던 것인데, 고등어는 이미 머리가 떼어지고 내장도 없어진 상태였다. 잘 손질되어서, 조림용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파란 등을 하고-
 바다를 헤엄치던, 생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저 유기물의 중합체인 코아세르베이트쯤 될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점원이 짐짓 눈치를 주었다. 주머니에 있던 마지막 돈으로 무와 고등어를 사서, 솜씨 없는 양념을 해 가지고는, 오래도록 조렸다. 잠들어 있는 줄로만 알았던 엄마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어 김치와 함께 상에 냈다. 엄마는 지치지도 않고 먹는다. 뼈까지 오득오득 씹어 먹는다. 나중에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으로 들고 무와 생선을 게걸스럽게 먹는다. 손가락까지 집어 삼키지 않는가 바라보다가, 옷장 구석에 잘 접어두었던 청바지로 갈아입었다. K와 만날 때 자주 입었던 청바지였다. 팬티에 구멍이 났네, 엄마가 웃는다. 나는 웃지도 않고 바다를 헤엄치던 고등어를 생각한다. 한 순간이라도,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다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기라도 한다면 자작자작 졸여 낸 조림으로 삶을 마감해도 좋을 텐데.
 엄마는 구역질을 하기 시작한다.
 그녀와-엄마도 여자였다-눈을 마주치지 않고 나는 생선의 살들을 맨 손으로 쓸어 담는다. 긴 머리칼이 바닥에 가닥 가닥 내려앉는다. 간장 양념이 묻어 더러워진다. 머리카락은, 내 몸에 남은 마지막 여성성의 상징이다. 흔적 기관처럼, 꼬리뼈처럼 평소에는 있는지도 몰랐다가, 다쳤을 때에야 스스로의 존재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그런.
 그가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넘겨주는, 내 머리카락.
 나는 더러워진 손으로 아무렇게나 머리를 당겨 묶는다. 노란 고무줄에 낀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아프게 끊어진다. 누워 있는 엄마를 발로 찬다. 흐끄, 하는 소리를 내면서 엄마는 입에서 뭔가를 더 뱉어낸다. 문을 잠그지 않고 집을 나선다. 누군가 집에 들어와서 모든 집기들을 다 가져가버렸으면. 스티커로 가득 찰 내일, 집은 조금 덜 붉어질텐데. 그리고 바라건대 엄마까지 집어가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그날 집 문을 잠그지 않았다.
 돌아 왔을 때, 엄마는 집에 없었다.

 “어, 눈 온다.”
 “그러게요.”
 “너 어릴 때 눈을 참 좋아했었어.”
 “눈은 내릴 때만 예쁘잖아요.”
 “같이 놀이공원 갔던 것은 기억나니? 집이 가까워 자주 갔었는데.”
 “기억 안 나요.”
 “나 미국 가기 전에는 자주 갔었어. 곰도 보고 그랬는데 기억 안 나?”
 “몰라요.”
 
  처음으로 나를 이 곳에 데려다 놓은 것은 그였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그는 나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

 “엄마, 죽었어요.”
 “무슨….”
 “죽었어요. 죽었어요.”
 “이 년은 남았다고 분명히 들었는데….”
 “물에, 빠져 죽었어요. 유서, 있어요.”
 물은 끔찍할 정도로 차가웠을 것이다. 밤에 빠진 엄마는 아침이 되어서야 둥둥 떠올랐다. 조깅하던 사람들은 소리를 질러댔고, 나에게는 그로부터 하루가 더 지난 다음에야 연락이 왔다. 엄마가 오지 않는 이틀의 겨울밤동안, 나는 난방이 되지 않는 집에서 옹송그리고 잤다. 나는 그날 집 문을 잠그지 않았다.
 나는 그날 집 문을 잠그지 않았다.
 
 “그 날 네가 한 전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못 할 짓 너무 오래 했다는 거 알겠더라. 그런데 너무 늦었더라고. 완전히 늦었더라고.”
 “그만 해요.”
 “양육비 보내고 너와 밥 먹고 그런 게 아버지 역할 전부라고 생각한 거였다. 가정이 새로 생겼고, 연구 과제가 너무 많았고, 살아가야 할 삶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어.”
 “그만 해요.”
 “이렇게밖엔 말을 못 하겠다. 잘 커 줘서, 고맙다. 미안하다.”
 “…….”
 C는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인 양 급하게 이것저것을 내뱉는다. 죄책감 때문일까, 그가 나를 안아 주고 도서관에 데려가고 빛으로 충만한 가운데에서 케이크를 사 주었던 것은?
 나는 악다구니치고 싶고, 어머니를 살려 내라고, 하고 싶다. 우리를 왜 버렸느냐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느냐고, 내가 왜 당신이 근무하는 대학에 입학했을 것 같느냐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때 그의 뭉개진 코 끝과, 턱선을 본다.
 그가 나보다 더 살아낸 시간들을 생각한다.
 나 없이 살아낸 그 시간들을.
 한강에서는 바다도 아닌데 파도가 치는 모양이다. 가끔 철썩이는 소리가 난다. 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앉아 있는다.

 목이 멘 듯한 목소리로 그가 말을 다시 시작한다.
 “어떻게 이렇게 벌써 어두워졌지?”
 “해가 금방 떨어졌네요. 잠깐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 저녁을 못 먹었네, 어쩌지? 너무 늦게 들어가면 걱정할 거야.”
 아내가 말인가요, 라고 날카롭게 응수하고 싶지만 그만둔다.
 “배는 다음에 타지?”
 그가 제안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시시하지만, 그건 그런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나는 포기하는 법을 배워 오지 않았던가? 사랑하는 것들만 신경 쓰면서 살 수 있는 삶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청해를 가르던 고등어들은 모두 조림이 되어 식탁에 오른다. 이번 겨울에는 밝은 빛을 머금고 공무원 시험이라도 준비해야지. 모두가 가는 미래로 가 보는 거야. 아주 무거운 손잡이를 달아야지.
 절대, 절대로 이 곳에서 날아가지 않도록.
 그렇게 생각하니 그제야 눈물이 났다. 엄마의 발인 날에도 울지 못한 울음이었다. 눈물이 흐르니 후련한 마음에 웃음이 났다. 내가 이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정도의 밝은 웃음. 앞서 가는 그의 뒤를 나는 울면서 웃으면서 따른다.
 
 “한강에 왠지 고등어가 살 것 같지 않아요?”
 앞서 가는 그의 등에 대고 읊조려 본다.
 
 그리고 밤이었다. 아버지와의 즐거운 하루가 갔다.


수상소감 - 김세희(약07)
씨앗 중에서 가장 작다는 겨자씨가 싹을 틔워 나무가 되면, 나무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나무가 되어 울창하게 자란다고 합니다. 어느 겨울날, 졸업 준비와 함께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오래 전 제가 심었던 겨자씨가 싹을 틔웠다고요. 작지만 파랗게, 폭설 속에서도 꿋꿋이.
열심히, 즐겁게, 잘 쓰겠습니다. 지금은 조그마한 싹 하나로 시작하지만, 큰 나무가 되어 열매도 많이 맺고, 쓰는 즐거움, 읽는 즐거움 나누면서 살겠습니다. 눈 속에서도 작은 싹 발견하여 알려주신 성대신문에 감사드립니다.
글 가르쳐 주신 고정욱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더 자랑스러운 제자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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