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최우수작] 먹지도 않을 도라지 삼 천 원치 사들고
[시 최우수작] 먹지도 않을 도라지 삼 천 원치 사들고
  • 성대신문
  • 승인 2010.12.02 11:08
  • 호수 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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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되지 않은 시 같은 일상을
빗나간 복권처럼 흩어버리고 나선 퇴근길을 끌고
들어선 동대문 환승역에
도라지를 다듬으며 일상의 태엽을 감는 할머니를 본다

‘1588-친구친구’를 외치며 광고판을 돌리는 톱니바퀴와
도라지를 다듬으며 도는 등 굽은 톱니바퀴가
등을 맞대고
삐걱대며 시간을 돌리고 있다

태엽도 서로 등을 맞대고 달리면
초침이 흐른다는데
손자 젖 물리듯 도라지를 만지는 할머니의 손등은
고등어 등처럼 휘어 광고판위를 자꾸자꾸 미끄러진다

달리는 구두 굽 소리에 쫓겨
늙은 젖을 흔들며 외치는 할머니의 ‘쌉니다 싸요’가
싸구려 술판의 노래가 되어 부도난 수표처럼 흩어진다
둘러앉아 고스톱이라도 쳤으면 좋을 사람들은
순대 속 당면처럼 자꾸자꾸 지하철 내장으로 채워져 갔다

먹지도 않을 도라지 삼 천 원치 사들고
먹먹해진 기분으로 도시의 단면을 오르며 보니
나는
‘마을버스’만 유랑하는 도시의 골목에서
양수(羊水) 속을 유영하는 태아가 되어,
또 다른 당면이 되어,
완결 될 수 없는 시가 되어,
시체처럼 걷고 있을 뿐이었다

봉지에 담긴 도라지 흰 속살이
겨울밤에 뜬 달처럼 쓸쓸히 차갑다
 

 

수상소감 박종혁(국문02)
바다에 철길이 놓인다면 그 철길은 바다에 속한 것일까 허공에 속한 것일까? 어디에 속했다고 규정지을 순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철로를 달릴 기차는 바다에도 바람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에만 머무르게 될거란 것이다.
시는 매순간 나를 그 경계에 올려놓는다. 내가 걸어온 길은 항상 바다를 부러워하는 바람 같았고, 물을 벗어나고픈 파도 같았다. 어디에도 오롯이 속하지 못한다는 공허감이 때로는 시를 집어 던지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 경계의 외줄타기가 나의 모습임을 알게 해 준 것도 詩였다.
용기내어 시를 쓰는 길에 접어들었지만 처녀 출항을 떠나는 어부의 마음처럼 시의 바람과 파도는 높아만 보였고 작은 목선 같은 나는 자꾸만 흔들렸다. 그런 때에 성대문학상 당선의 소식을 접했다. 감사하고 부끄럽다.
작은 격려에 힘입어 큰 용기를 내어 끝 모를 시 쓰기를, 경계의 외줄타기를 계속해보려 한다.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옆에서 항상 나를 믿어주던 글벗 원기형, 그리고 고독한 시 쓰기를 말없이 격려하며 술잔을 나눠준 친구 승안, 창모들과 기쁨을 함께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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