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택(국어국문학과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1939년 9월, 정지용은 문예잡지 '문장'에 박목월과 박두진을 추천하면서 “이십 전후에 서정시로 쨍쨍 울리는 소리가 아니 나서야 가망이 없다”고 하였다. 시의 “쨍쨍 울리는 소리”는 어떤 것일까?
올 성대문학상 시 부문에 20대 청춘들 61명이 126편의 시를 보내왔는데, 작년 58명이 127편의 작품을 응모한 것과 비슷한 분량이었다. 이번 성대문학상에 응모한 작품들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서사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돈되지 않는 청춘의 불안과 외로움을 자기 연민의 심정으로 호소하는 작품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답답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 또는 상처로서의 기억, 가족에 대한 연민, 사랑 혹은 실연 등을 푸념하듯이 풀어놓았다. 이러한 넋두리로서 과장된 자기 연민, 감상적 표현, 상투적인 비유, 산문적인 진술이 응모 시들의 주조를 이루고 있었다. 20대 청춘의 내면이 안쓰럽고, 이를 장악하지 못하는 파편적 언어가 더욱 안타까웠다.
시와 관련된 2010년의 사건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에서 ?시?는 정직하게 세상과 자기를 대면하는 양식으로 해석되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거북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그렇다. 정직하게 세상과 자기를 대면하는 가운데 시의 언어가 빛을 발하고, 마침내 정지용이 말한 바 “쨍쨍 울리는 소리”가 나지 않을까? 
다수의 응모 시가 자기 안에 갇혀 있을 때, 박종혁의 <먹지도 않을 도라지 삼 천 원치 사들고>는 세상과 타인에 대한 관심과 관찰을 시도하고 있었다. 또한 세상 풍경 속에 자신을 배치하여 재발견함으로써 시인으로서 자기를 단련시킨다. 다만, 풍경과 이미지가 작위적인 도식성을 노출하거나, ‘먹지도 않을 도라지를 사든’ 동정심과 감상성은 문제로 지적되지만, 그의 다른 작품 <타자기> 등을 통해 시적 수련이 만만찮음을 보고 믿음을 가졌다. 최우수를 끝까지 겨룬 조성진의 <철수야 사막 살자>는 자본에 저당 잡힌 생의 지리멸렬과 파산한 가족사, 이에 대한 울분을 내용으로 한다. 이런 사태를 직면했을 때 그의 시는 자조적 비애에 떨어질 듯하면서도 풍자와 역설로 상황을 우회하거나 전복하는 통쾌함을 보여준다. 사막, 선인장, 낙타 등의 이미지를 통해 생명력을 충전하는 것이 좋았다. 이것이 시의 효용인가 싶다. 이구익의 <지뢰>는, 밟고 있다 발을 떼는 순간 폭발해 버리는 발목 지뢰와 같은, 아득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아쉽게도 뒷부분에서 시어들이 엉켜 길을 잃고 서정의 폭발력이 감소했다. 김혜선의 <울 할미>도 끝까지 망설이게 한 작품이다. 이밖에도 지면관계상 언급하지 않은 작품이 있다. 부디 좋은 시를 많이 읽고 정진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