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수(법04)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등장인물
암컷  배수지(21) 안주리(24) 박은지(21) 조인애(23)
수컷   이진구(23) 고중래(26) 최동수(26) 유상권(24) 한경남(21)
 
 
 
S#1. 자취방 동네 길가 / 밤
공허하고 흑암(黑暗)이 깊은 밤. 한쪽은 보도(步道)고 다른 쪽은 차도다. 차도에는 차가 없고, 보도에는 사람이 없다. 붉은색 십자가가 꽂힌 교회가 보인다.
 
 
S#2. 자취방 / 밤
화장실 변기 위에 놓인 피 묻은 생리대.
현관에 널브러진 붉은색 뉴발란스 신발.
짧은 반바지를 입은 수지의 다리.
물을 마시는 수지. 세수를 한 듯 얼굴이 촉촉하다.
 
수지가 물병을 냉장고에 넣고 불을 끈 뒤 침대에 눕는다.
 
 
S#3. 모의법정실 / 오후
판사는 중래, 검사는 수지, 변호사는 상권이다. 판사를 기점으로 양쪽에 원고 측과 피고 측이 자리하고 있다. 좌석에 앉아 구경하는 학생도 보인다.
 
중래   변호인, 심문하세요.
 
상권이 원고 측으로 다가간다. 원고와 수지가 나란히 앉아 있다.
 
상권   원고는 사건 당일 밤 11시 피고와 어디에 있었죠?
원고   술을 마시고 모텔에 갔습니다.
상권   억지로 끌려간 건가요?
원고   아니요.
상권   피고의 권유를 승낙한 겁니까?
원고   네.
상권   본인이 원해서 갔는데 왜 바로 나가려고 했습니까?
원고   그냥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상권   피고와는 무슨 관계였죠? 사귀는 사이였나요?
원고   사귀지는 않았습니다.
상권   서로 사랑했나요?
 
원고가 대답을 망설이며 수지를 본다. 수지가 대답을 해도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원고   네.
상권   (중래에게) 이상입니다.
 
상권의 심문이 끝나고 수지가 반론한다.
 
수지   원고가 모텔을 떠나려고 했을 때 피고는 폭행과 협박으로 원고를 1시간 동안 가둬 두었습니다. 이것은 엄연한 감금행위입니다. 또한 피고는 원고가 사는 자취방까지 쫓아와 원고를 강간했습니다. 과연 피고가 원고를 진정으로 사랑했을까요? 피고 측은 감금과 강간치상을 포괄적 1죄라고 주장해 형벌을 경감시키려고 하지만, 감금과 강간치상은 행위 일시 장소마저 다르므로 같은 죄라고 볼 수 없습니다.
 
모의재판이 끝나고 학생들이 실내를 정리한다.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중래, 상권, 수지가 한곳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상권   이게 워낙 저한테 불리한 사안이다 보니까.
중래   야 그러면 그럴수록 니가 준비를 더 많이 해 왔어야지.
상권   (수지를 가리키며) 얘가 또 말을 잘하잖아요.
수지   아니에요. 선배가 더 잘한걸요.
중래   뭐 아무튼. 야 배고프다. 밥 먹었어?
상권   같이 하실까요?
중래   수지는?
수지   아 저는 어디 가 봐야 돼서.
중래   너는 맨날 바쁘냐. 어디 가는데?
 
 
S#4. 진구의 방 / 밤
진구가 메신저로 친구와 대화한다.
 
푸시푸시베이베오푸시베이베 님의 말:
학원에 여신 있다. 진짜 장난 아니야.
내 귀에 했니 님의 말:
예쁘냐? ㅋㅋ
푸시푸시베이베오푸시베이베 님의 말:
여신이라니까 못 알아듣냐?
내 귀에 했니 님의 말:
어떻게 생겼는데? 몸매 좋냐?
푸시푸시베이베오푸시베이베 님의 말:
얼굴은 진짜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몸은 좀 말랐어.
내 귀에 했니 님의 말:
아무리 예뻐도 빈약하면 꽝이지. 뭐 번호라도 땄냐?
푸시푸시베이베오푸시베이베 님의 말:
그분은 너무 고귀하셔서 감히 범접할 수조차 없는 분이시다.
내 귀에 했니 님의 말:
미친놈ㅋ 그림의 떡이구만. 그런 애들은 백방 남친 있다.
푸시푸시베이베오푸시베이베 님의 말:
오늘 보니까 반지 없던데? 아 남친 있으면 안 되는데.
내 귀에 했니 님의 말:
관찰력 쩌는데?ㅋ 남친이 없다 해도 너처럼 노리고 있는 애는 많을걸.
푸시푸시베이베오푸시베이베 님의 말:
아 미치겠네. 말이라도 걸어볼까?
내 귀에 했니 님의 말:
사진 보내 봐.
푸시푸시베이베오푸시베이베 님의 말:
뭔 사진?
내 귀에 했니 님의 말:
그 여자
푸시푸시베이베오푸시베이베 님의 말:
사진이 어딨어!
내 귀에 했니 님의 말:
폰카로 안 찍었냐?
푸시푸시베이베오푸시베이베 님의 말:
미친ㅋ 찍긴 뭘 찍어 임마
내 귀에 했니 님의 말:
나는 예쁜 애 있으면 몰래 찍고 혼자 보는데ㅋ
푸시푸시베이베오푸시베이베 님의 말:
이색히 존나 위험한 놈이네 진짜ㅋㅋ
내 귀에 했니 님의 말:
싸이 가봐야겠다. 걔 이름이 뭐냐?
 
 
S#5. 영어 학원 / 저녁
한 학생이 자기소개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간다. 다음 차례는 수지. 수지가 교실 앞으로 나온다.
 
수지   Hello. I’m nervous because my English is no good. But I will start introduction myself. My name is Diana. Korean name is Bae Su-ji. I’m 21. I’m a student at Sungkyunkwan University. My major is Law. I hope I make good relationship with you. Thank you for listening my introducing.
 
수지가 부끄러워하며 자리로 돌아간다. 학생들이 환호하며 박수 친다. 특히 남학생들.
 
 
S#6. 영어 학원 로비 / 밤
학생들이 북적인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학생이 많다. 수지가 학생들 틈에 끼어 학원을 빠져나간다. 멀리서 진구가 학생들 틈을 비집고 수지를 뒤쫓는다.
 
 
S#7. 지하철역 / 밤
수지가 지하철을 기다린다. 진구가 근처에 서서 수지를 힐끗한다. 수지와 진구, 눈이 마주친다. 진구가 인사하자 수지도 얼떨결에 인사한다.
 
 
S#8. 지하철 / 밤
같은 칸에 탄 수지와 진구. 둘 다 자리가 없어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다. 서로가 옆에 있는데도 말이 없다. 어색한 분위기. 진구가 말을 걸려고 하나 용기가 나지 않는다. 잡상인이 수레를 끌고 수지와 진구 옆을 지나간다. 수지는 몸을 피하나 진구는 피하지 못하고 잡상인과 부딪힌다. 잡상인이 중간에 서서 물건을 소개한다.
 
잡상인   여러분 가정 내에서 수도관 사용하실 때 머리카락, 음식물, 이물질이 들어가서 답답하셨죠? 이거 하나만 있으면 고생 끝입니다. 고리 부분을 앞으로 해서 수도관이나 막힌 곳에 넣어주시고 몇 번 쑤시기만 하면 시원하게 뻥 뚫립니다. 고무 재질라 부러지지도 않고 잘 휘어져서 어디에서든 사용 가능합니다. 하나에 천 원, 하나에 천 원.
 
가만히 서서 잡상인이 하는 말을 듣는 수지와 진구.
 
 
S#9. 법학관 / 낮
추리닝을 입은 사시 수험생 남녀가 배드민턴을 친다.
 
 
S#10. 법대 강의실 / 낮
수업이 시작되기 전 한산한 강의실.
 
은지   원래 자기가 다 해 오기로 했으면서 막상 발표하는 날 지각하고 아무것도 안 해 온 거야. 진짜 어이없지 않냐? 자기 때문에 발표 못 하게 생겼는데. 그리고 다음 날 미안하다고 전체 문자를 돌린 거 있지. 짜증나서 씹었어. 앞으로 우리끼리만 할 것 같애.
수지   맞다! 어제 문자 왔다.
은지   문자? 무슨 문자?
수지   학원 남자.
은지   학원? 어떻게? 번호 알려줬어?
수지   응.
은지   진짜? 너 남자한테 번호 안 주잖아.
수지   (귓속말) 잘생겼거든.
은지   어머! 얘 봐. 진짜야?
 
수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은지   그 남자가 뭐래? 만나재?
수지   아니. 그냥 잘 들어갔냐고. 간단한 안부 정도?
은지   알려달라 그래서 알려준 거야?
수지   응.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역까지 쫓아왔더라고.
은지   헐. 대박! 너 진짜 좋아하나부다.
수지   그래서 그냥 그렇게 된 거야.
은지   진짜 잘생겼어?
수지   막 짐승남 같은 스타일은 아니고 웃는 모습이 되게 예뻐.
은지   사진 봐봐.
수지   무슨 사진.
은지   사진 안 찍었어?
수지   사진을 어떻게 찍어. 만나지도 않았는데.
은지   나는 잘생긴 남자 있으면 폰카로 찍는데.
수지   야 걸리면 어쩌려구.
은지   에이 안 걸리게 잘 찍지. 히히.
 
 
S#11. 자취방 / 오후
수지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진다. 묶어 보고, 풀어 보고, 올려 보고, 앞머리를 정돈해 보고.
 
 
S#12. 로쉐프 스파게티 전문점 / 저녁
대학로에 위치한 음식점. 수지와 진구가 스파게티를 먹는다.
 
진구   그럼 원래 집은 어디에요?
수지   인천이요. 아무래도 통학하기 힘들어서 학교 근처로 옮긴 거거든요.
진구   혼자 살면 무섭지 않아요? 밤에 잘 때나.
수지   집에서는 그냥 잠만 자니까, 무섭다기보다는.
진구   외로울 때가 많겠네요.
수지   초큼? 하하.
진구   제가 뭐 하나 맞춰 볼게요.
수지   뭐요?
진구   음 강아지 기르죠?
수지   자취방에서요? 아니요.
진구   정말요? 아무것도 안 길러요?
수지   네.
진구   제가 보니까 자취하는 여자들은 외로워서 개 같은 거 기르던데.
 
수지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진구   아 오해 마세요. 제가 가본 게 아니라 친구들한테 들은 거예요.
수지   (웃으며) 아니에요. 저 그런 생각 안 했어요.
 
 
S#13. 동아리실 / 저녁
동아리실 바닥에 앉을 수 있도록 장판이 깔려 있고, 한쪽에 마련된 상에는 십자가와 성경 몇 권이 놓여 있다. 지각한 사람을 기다리는 중래, 동수, 상권, 주리, 경남. 모두 침묵. 노크 소리가 들리고 수지와 은지가 들어온다.
 
수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중래   일찍 일찍 다니자.
수지/은지   죄송합니다.
 
모두 둥그렇게 둘러앉아 두 손을 모으고 묵도한다. 분위기가 엄숙하다.
 
 
S#14. 피쉬앤그릴 술집 / 저녁
동아리원들이 술집에서 뒤풀이를 즐긴다.
 
동수   (술을 권한다) 야 수지야, 받아.
수지   저 많이 마셨는데.
동수   아 그래도 한 잔 해.
수지   죄송해요.
동수   야 선배가 주는 건데. 아 팔 아프다.
수지   제가 술이 약해서.
동수   주량이 얼만데?
수지   소주 네 잔이요.
동수   에이 그럼 한 잔 정도는 괜찮아. 받아.
수지   그럼 잔만 받을게요.
동수   에 그러면 안 되지. 마셔. 자.
중래   야야야 너 왜 그러냐? 안 마신다잖아. 강요는 하지 말라고, 강요는.
동수   니가 주는 건 마시고 내가 주는 건 못 마시냐?
중래   선배라는 권위를 악용하지 말라고. 응? 그거 진짜 안 좋은 거다.
동수   여기에 무슨 권위, 악용이 왜 나와.
중래   수지야, 잔 내려 놔. 괜찮아.
수지   (미안해서) 저 마실게요. 주세요.
동수   그치? 마실 거지? 아 역시. 흐흐.
 
동수가 좋아하며 술을 따라준다. 수지가 한 잔 마신다.
 
 
S#15. 맘마미아 노래방 / 밤
수지와 은지가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나머지는 박수를 치며 춤과 노래를 감상한다.
 
은지   ♪ 앞에선 한마디도 못 하더니 뒤에선 내 얘길 안 좋게 해 참 어이가 없어
 
수지   ♬ Hello Hello Hello. 나 같은 여잔 처음 으로 으로 으로 본 것 같은데 왜 나를 판단하니. 내가 혹시 두려운 거니.
 
은지   ♪ 겉으론 bad girl 속으론 good girl.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겉모습만 보면서 한심한 여자로 보는 너의 시선이 난 너무나 웃겨.
 
수지   ♬ 춤 출 땐 bad girl 사랑은 good girl. 춤 추는 내 모습을 볼 때는 넋을 놓고 보고서는 끝나니 손가락질하는 그 위선이 난 너무나 웃겨.
 
 
S#16. 맘마미아 노래방 앞 길거리 / 밤
동아리원들이 뒤풀이를 끝내고 작별한다. 동수와 은지는 중래의 차에 탔고, 나머지는 보도에 서서 잘 가라고 인사한다. 중래의 차가 떠난다.
 
 
S#17. 자취방 건물 앞 / 밤
경남이 수지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수지가 집 앞에서 멈춘다.
 
수지   여기야.
경남   (자취방 건물을 보며) 아 여기였구나.
수지   괜히 나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 아니야?
경남   아니야. 나 어차피 요 앞에서 택시 탈 건데, 뭐.
수지   그럼 나 들어갈게.
경남   응. 잘 가.
 
경남이 수지가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떠난다.
 
 
S#18. 서울대공원 입구 / 낮
수지와 진구가 팔짱을 끼고 걷는다. 다정해 보이는 두 사람. 소풍 온 유치원생들이 보인다.
 
수지   오빠, (하늘을 가리키며) 저것 봐. 진짜 높지?
진구   이제 가을이네. 날씨 진짜 좋다, 야.
수지   평일에 오길 잘했지? 사람도 없구. 일요일에 왔으면 우리 죽었겠다.
 
 
S#19. 원숭이 우리 / 낮
수지와 진구가 원숭이에게 먹이를 던진다. 원숭이가 먹이를 받아먹으려고 애쓴다. 즐거워하는 수지와 진구.
 
 
S#20. 서울대공원 길 / 낮
수지와 진구가 오르막길을 오른다. 수지가 힘들어하며 진구에게 손을 내민다.
 
수지   잡아 줘.
 
진구가 수지의 손을 잡고 이끈다. 도와주는 모습이 예쁘다.
 
 
S#21. 말 우리 / 낮
수지와 진구가 말을 구경한다. 말이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다. 삶에 의욕을 잃은 듯한 모습.
 
진구   (말에게) 야야 좀 움직여 봐. 야야. (수지에게) 쟤네들 되게 불쌍한 것 같아.
수지   뭐가?
진구   아니 그렇잖아. 옛날에는 쟤네들이 전쟁터를 막 뛰어다녔을 거 아니야. 죽어도 들판에서 멋지게 전사하고. 근데 지금은 봐봐. 동물원에 갇혀 있잖아. 얼마나 초라해.
 
말이 진구가 뭐라고 하든 말든 가만히 서서 눈만 깜박인다.
 
수지   전쟁터보다는 여기가 낫지.
진구   (말에게) 먹고 자고 살 만하지?
수지   몇 시야?
진구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한다) 어 1시 7분.
수지   배 안 고파? 뭐 먹자.
 
수지와 진구가 밥 먹으러 떠난다. 말이 수지와 진구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S#22. 호랑이 휴게음식점 / 낮
수지는 비빔밥을, 진구는 춘천막국수를 먹는다. 진구가 비빔밥을 한 숟갈 빼앗아 먹는다.
 
 
S#23. 서울대공원 화장실 / 낮
진구가 소변을 보는데 한 남자가 들어와 무엇을 찾는다.
 
분실남   혹시 여기 지갑 못 봤어요?
진구   예? 못 봤는데요.
분실남   아 분명 여기 위에다 뒀는데.
진구   아무것도 없었는데.
 
 
S#24. 서울대공원 언덕 / 낮
풀이 깔린 언덕에 사과나무가 있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사과를 따려고 막대기를 휘젓고, 나무를 발로 찬다.
 
진구   저런 건 농약 안 치겠지?
수지   자연산이니까 아마도.
진구   하나 따 줄까?
수지   저런 거 함부로 따면 안 돼. 그냥 기다리면 저절로 떨어지는 거야.
 
수지가 진구를 이끌고 다른 곳으로 간다. 진구가 사과나무를 돌아보며 아쉬워한다.
 
 
S#25. 서울대공원 벤치 / 낮
수지와 진구가 손을 잡고 벤치에 앉아 있다. 진구가 주변을 살피고 수지에게 입술을 내민다. 수지가 당황한다. 진구가 입술을 내민 채 키스를 기다린다. 수지가 주변을 살피고 진구의 볼에다 뽀뽀한다.
 
 
S#26. 유흥가 / 저녁
길가에 술집과 모텔이 즐비하다. 진구가 어깨로 수지를 모텔로 밀며 장난을 친다. 수지가 장난 치지 말라고 진구의 팔뚝을 때린다.
 
 
S#27. 자취방 건물 앞 / 밤
진구가 수지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수지가 자취방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수지   다 왔어. 여기야.
진구   여기? (건물을 둘러보며) 그래도 꽤 좋아 보인다.
수지   오늘 정말 고마워.
진구   고맙긴 뭐가.
수지   이제 헤어질까? 잘 때 전화할게.
진구   나 너희 집에 쫌만 있다 가면 안 돼?
수지   우리 집?
 
수지가 고민한다.
 
진구   그냥 잠깐만 있을게. 진짜로.
수지   다음에 안 돼? 오늘 너무 늦었잖아. 나 방도 더러워. 응? 다음에. 다음에 내가 꼭 초대할게.
진구   (섭섭)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잘 들어가. 전화할게.
수지   오빠 잘 가.
 
수지와 진구가 작별한다.
 
 
S#28. 법학관 / 오후
공부하다 쉬러 나온 수험생들이 축구 시합을 구경하고 있다.
 
 
S#29. 동아리실 / 저녁
동아리원들이 찬송가를 부른다. <기도하는 이 시간>(찬송가 480장).
 
모두   ♪ 기도하는 이 시간 주를 의지하고 크신 은혜 구하면 꼭 받으리라. 의지하는 마음에 근심 사라지리. 크신 은사를 주네. 거기 기쁨 있네. 기도 시간에 복을 주시네. 곤한 내 마음 속에 기쁨 충만하네.
 
찬송가가 끝나고 중래가 말을 잇는다.
 
중래   전에 다니던 교회 집사님 중에 한나라당, 그 내가 직책은 얘기 안 하겠지만 사무총장급 집사님이 있었거덩. 그분 사모님이, 진짜 거짓말 안 하고 매일 진짜 매일 새벽마다 교회 와서 기도했거든. 하루도 안 빠지고. 헌금도 엄청 많이 내고. 그랬더니 그 아들은 서울대 갔고, 딸은 삼성 취업해서 판사랑 결혼했잖아.
은지   우와 둘 다 잘됐네요.
중래   장난 아니지? 그게 다 기도빨이라니까. 열매라고. 예수님 믿고 기도해서 얻은 열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진짜 무언갈 원하고 바라면 그대로 이루어져. 진짜야. 나도 사시 할 때 그랬어. 매일 아침마다 기도했거든. 결국 나도 기도 때문에 합격한 거라구.
 
 
S#30. 투앤디 술집 / 밤
동아리원들이 게임을 즐긴다. 진실게임. 모두 돌아가면서 소주 뚜껑 꼬리를 손가락으로 튕긴다. 경남이 손가락을 튕기자 꼬리가 떨어져 나간다.
 
동수   야 걸렸어. 걸렸어. 질문, 질문해. 대답 못 하면 마시는 거다.
중래   야 내가 할게. 만약에 지구가 멸망했어. 그래서 세상에 딱 이렇게 (주리, 수지, 은지를 가리키며) 세 여자만 남은 거야. 그럼 너 누구랑 결혼할래?
 
모두 즐거워하며 웃는다. 경남은 혼자 심각하다.
 
동수   야 그냥 빨리 말해.
 
경남이 손가락으로 수지를 가리킨다.
 
동수   오 역시. 난 예상했어.
 
다음에는 동수가 걸린다.
 
중래   니가 생각하기에 법대에서 제일 예쁜 애가 누구야? 법대 여자애들 전체 중에서.
동수   아 이거 좀 생각해 봐야겠는데.
중래   그냥 딱 떠오르는 애. 없어?
동수   음 수지?
중래   수지? (수지를 가리키며) 얘?
동수   응. 흐흐.
중래   이야 수지 인기 많네.
 
수지가 부끄러워한다.
 
주리   수지 원래 인기 많잖아. 법대 남자 중에 수지 안 좋아해 본 사람 없다면서?
중래   누가 그래?
주리   나 들었어. 법대 남자애들 한 번씩은 다 수지 좋아했다고.
수지   (부끄러워서) 언니.
중래   어쩐지. 아니 내가 동아리 만든다고 했을 때 처음에 애들이 안 들어온다고 그랬었거든. 근데 수지 있지 않냐면서 막 들어오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안 된다고 그랬지.
동수   잘했어.
 
이번에는 은지가 걸린다.
 
동수   야 은지 걸렸다. 경남아 네가 물어 봐.
경남   법대에서 사귀고 싶은 남자.
동수   이야 이것도 센데.
은지   저 그냥 마실게요.
 
은지가 대답을 피해서 모두 아쉬워한다.
 
동수   야, 야, 야. 안 돼. 질문 바꿔, 질문.
중래   은지야! 너 이 중에 마음에 드는 남자 있지? 있으면 마시지 말고, 없으면 마셔.
동수   야 이거 질문 좋다.
 
은지가 술을 마시지 않고 가만히 있다.
 
주리   어! 안 마시네. 진짜 있나 봐. 누구야, 누구?
중래   나는 누군지 알지.
동수   알아? 흐흐. 누군데? 나는 아닐 테고. 경남이? (알았다는 듯이) 아 상권이? 상권이밖에 없네.
 
은지는 부끄러워서 가만히 있고, 상권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주리   진짜야? 상권이 맞아?
은지   예?
중래   주리야, 뭘 또 물어보냐.
 
 
S#31. 진구네 아파트 단지 / 낮
비싸 보이는 아파트 단지. 수지와 진구가 손을 잡고 아파트로 들어간다. 수지가 입구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접질린다.
 
수지   아!
진구   괜찮아?
수지   응. 별 거 아니야.
 
 
S#32. 진구네 집 거실 / 낮
거실이 넓고 깨끗하다. 가구와 가전제품이 비싸 보인다. 수지가 거실을 구경한다.
 
진구   원래 낮에는 사람이 없어. 다들 밤에 오거든. 엄마는 가끔 안 들어올 때도 있고.
 
수지가 가족사진을 구경한다. 무뚝뚝하게 생긴 아버지, 곱게 생긴 어머니, 군복을 입은 누나, 어려 보이는 진구.
 
수지   (누나를 가리키며) 누나야?
진구   어. 군인이야. 장교.
수지   와 멋지다. 근데 왜 군인 하셨어?
진구   몰라. 원래 오래 사귄 남자 친구가 있었거든. 근데 헤어지니까 갑자기 군인 하겠다 그러더라. 내 생각엔 시련에 대한 슬픔? 뭐 그런 것 같애.
수지   에이 설마. 울 아빠도 예전에 군인이었는데.
진구   그래? 지금은 아니야?
수지   옛날에. 아주 젊었을 때. 지금은 인테리어 하셔.
진구   건물 같은 거 짓고 그러시겠네?
수지   목공예. 나무로 가구도 만들고, 조각도 하구.
진구   예술 하시는구나?
 
수지가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다.
 
 
S#33. 진구네 집 방 / 낮
수지가 침대에 다리를 뻗고 앉았다. 치마를 입은 수지. 진구가 수지의 발목을 주무른다. 부끄러워하는 수지.
 
진구   괜찮아? 어때?
수지   그냥 살짝 삔 거야.
진구   편하게 운동화 신고 오지. 갑자기 웬 힐이야.
수지   (애교) 오빠한테 잘 보이려구.
진구   (웃는다) 근데 너 발하고 다리 진짜 예쁘다.
수지   (자기 다리를 보며) 좀 통통하지 않아?
진구   아니야. 너무 마르지도 않은 게 그렇다고 통통한 것도 아닌 게 딱 적당해. 볼륨감 있고 좋아.
수지   그래? 앞으로 치마만 입구 다녀야겠다.
 
진구가 주무르다 말고 수지에게 다가간다. 동작이 음흉하다. 수지가 부담스러워서 몸을 뺀다. 진구가 수지를 눕히고 끌어안는다.
 
수지   오빠.
진구   괜찮아. 아무도 안 와.
 
진구가 손으로 치마 속을 더듬는다.
 
수지   오빠! 거긴 안 돼.
진구   (놀라서) 어? 어 미안.
 
진구가 키스를 시도한다.
 
수지   (고개를 돌리며, 콧소리) 으응~
진구   왜? 키스도 안 돼?
수지   (진구를 바라본다) …….
진구   알았어.
 
진구가 고개를 떨군다. 가만히 포개져 누워 있는 수지와 진구.
 
 
S#34. 동아리실 / 저녁
동아리원들이 성경을 읽는다. 요한복음 12장 2절~6절.
 
은지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경남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상권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롯 유다가 말하되.
수지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동수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S#35. 마찌마찌 술집 / 밤
역시나 동아리 뒤풀이 자리. 몇몇이서만 이야기를 나눈다.
 
상권   남자 친구랑은 잘 지내?
수지   네.
상권   남자 친구가 잘 해죠?
수지   제 남자 친구는 저만 바라봐요.
상권   오 그래? 너 예전에 남자 친구 안 사귄다고 그랬었잖아.
수지   제가요?
상권   기억 안 나? 너 전에 사귀었던 남자랑 헤어졌을 때 나랑 통화하면서 그랬잖아.
수지   아. 그때는 뭐.
주리   둘이 무슨 얘기해?
상권   어 수지 얘 남자 친구 생겼잖아. 잘 사귀냐고 묻고 있었지.
주리   아유 우리 수지는 진짜 좋은 남자 만나야 되는데. 애기 같아서 남자가 잘 챙겨줘야 돼. (수지 볼을 꼬집으며) 이그 우리 애기.
수지   헤헤.
상권   오래오래 사귀어. 전처럼 또 깨졌다고 울지 말고.
수지   (애교) 아 선배, 제가 언제 울었다고.
 
 
S#36. 혜화역 4번 출구 / 오후
진구가 벤치에 앉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수지를 기다린다.
 
수지   (달려온다) 오빠. 많이 기다렸어?
진구   어 왔어? 뛰어오지 말랬잖아. 이그.
 
 
S#37. 대학로 CGV 2관 / 오후
영화를 보는 수지와 진구. 영화관에 빈 좌석이 많다. 진구가 영화를 보면서 수지의 허벅지를 만진다. 수지가 만지지 못하게 진구의 손을 잡는다. 진구가 수지의 손을 풀고 다시 허벅지를 만진다. 수지가 진구의 손을 잡고 깍지를 낀다.
 
 
S#38. 커핀 그루나루 / 저녁
커피와 케이크를 먹는 수지와 진구.
 
수지   (커피를 건네며) 오빠 이거 마셔 봐. 아메리카노인데 달다.
진구   (커피를 마신다) 음 정말 그러네?
수지   탐앤탐스 것두 맛있다던데. 다음엔 거기 가보자.
진구   수지야.
수지   응?
진구   넌 뭐 나한테 바라는 거 없어?
수지   바라는 거? 어떤 거?
진구   그니까 우리가 지금 사귀고 있잖아. 사귀는데 뭐 마음에 안 들 거나 섭섭했던 점. 그런 거. 없어?
수지   (생각한다) 음 오빠는 있어?
진구   나? 음.
수지   말해 봐. 괜찮아.
진구   나는. 그러니까. 가끔 우리가 연인 같지 않은 것 같아.
수지   연인 같지 않다니. 무슨 말이야?
진구   솔직히 말하면, 그냥 친구 같아. 편한 친구.
수지   왜?
진구   오해 말고 들어. 음 아무래도 접촉을 안 하니까 더 그런 게 아닐까.
수지   접촉? 스킨십?
진구   뭐 그런 거지. 맞아.
수지   내가 어떻게 해야 돼? 근데 이런 곳에서 할 수는 없잖아.
진구   그럼. 당연하지. 이런 데서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아까처럼 영화관에서는 할 수 있었잖아.
수지   응.
진구   싫었어?
수지   (시무룩해진다) 아니 싫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있구. 그럼 영화 못 보잖아.
진구   괜찮아? 내가 괜한 말을 했나 부다. 너무 신경 쓸 거 없어. 그렇다고 내가 뭐 마음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 알지?
수지   (고개를 끄덕인다) …….
진구   너는? 이제 수지 차례. 말해 봐.
수지   (생각한다) 오빠한테 바라는 거라.
 
수지에게 전화가 온다.
(벨소리) ♪ 사랑해 널 이 느낌 이 대로 그려 왔던 헤매임의 끝.
수지가 전화를 받는다.
 
수지   여보세요? 어. 아니 나 지금 밖인데. 응. 저기 미안한데 내가 나중에 전화하면 안 될까? 어. 알겠어. 어.
 
수지가 전화를 끊는다.
 
진구   누구야?
수지   어 경남이.
진구   또 걔야? 뭐야 도대체.
수지   왜에?
진구   전화하지 말라고 안 그랬어?
수지   어떻게 그래. 친군데.
진구   친구면 그냥 친구답게 굴라 그래. 왜 맨날 전화하는 건데?
수지   얘 나랑 동아리도 같고 수업도 같이 듣는단 말이야.
진구   아 그럼 학교에서만 만나라고. 왜 전화를 해?
수지   얘가 하는 걸 나 보고 어떡하라고.
진구   그니깐 니가 하지 말라고 말을 했어야지.
수지   과제 때문에 전화한 건데 이것도 받지 말라고?
진구   과제 때문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걔가 지금 그런 거 빌미로 계속 너한테 전화하는 거 아니야.
수지   얘 나랑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냥 친구라고.
진구   친구인데 맨날 전화하고 그래?
수지   맨날 안 해.
진구   걔가 지금 널 좋아하는 거라니까. 모르겠어? 너도 알잖아. 근데 아는 애가, 남자 친구도 있는 애가 알면서 그래? 어?
수지   오빠 또 왜 그래, 갑자기.
진구   니가 날 이렇게 만들잖아. 안 그래? 넌 내가 다른 여자랑 통화하고 연락하면 기분 좋겠어?
수지   전화 안 할게. 안 하면 되잖아.
진구   나한테 말로만 그러지 말고 니가 직접 걔한테 말하라고.
수지   알았어.
진구   꼭 해. 아니면 내가 한다.
 
 
S#39. 자취방 건물 앞 / 밤
진구가 수지를 집에 바래다주었다.
 
진구  나 집에 가서 전화할게. 잘 들어가고.
수지   오빠. 들렸다 갈래?
 
수지가 진구를 이끌고 자취방 건물로 들어간다. 건물 계단을 내려가면 자취방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나온다.
 
진구   야 여기 무슨 동굴 같다.
수지   발조심해.
 
 
S#40. 자취방 / 밤
수지와 진구가 침대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스킨십을 즐긴다. 진구의 손이 수지의 가슴 쪽으로 간다.
 
수지   오빠 거긴.
진구   왜? 여기도 안 돼?
수지   …….
진구   키스도 안 되고, 가슴도 안 되고. 계속 이러고만 있을 거야?
수지   …….
진구   수지야, 왜 그래? 내가 못 미더워? 아직은 아니라서 그래?
수지   오빠가 조금만 기다려 주면 안 돼?
진구   그럼 언제? 언제 되는데?
수지   몰라.
진구   (답답) 모르긴. 너 나랑 사귀면서 아예 안 할 생각이야? 어? 진짜 그런 거야?
수지   꼭 해야 돼?
진구   (황당) 야! 그럼 너 너랑 왜 사귀는데? 안 하면 의미가 없잖아. 이게 뭐야. 친구 사이랑 뭐가 달라.
수지   오빠는 나랑 이런 거 하려고 사귀는 거야?
진구   당연 아니지. 근데 이건 좀 너무하잖아. 수지야, 순결 그런 거 아무것도 아니야. 사랑하면 해도 돼.
수지   내가 오빠 싫어해서 이러는 건 아니잖아.
진구   싫어하지 않는데, 근데 왜 안 하는데? 지금 너 말에 모순이 있잖아.
수지   아무튼. 몰라.
진구   아 진짜. 너는 너밖에 모르지? 어?
수지   (울먹인다) 내가 뭘?
진구   너는 순결 지키고 싶어서 안 하는 거잖아. 결국 너는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고. 나는 계속 참아야 하고. 그렇잖아. 아니야?
수지   오빠는? 오빠도 자기가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잖아.
진구   아 나 진짜. 이럴 거면 왜 데리고 왔어.
수지   참으면 안 돼? 안 하고도 사랑할 수 있잖아.
진구   (침묵) 내가 너랑 왜 사귀는지 모르겠다.
 
진구가 등을 돌리고 눕는다. 수지도 등을 돌린다. 한동안 말이 없다.
 
진구   (수지를 덮치며) 아 나 못 참겠어.
수지   오빠.
 
진구가 수지의 옷을 벗긴다. 수지가 저항한다.
 
수지   하지 마아!
진구   한 번만 하자. 딱 한 번.
수지   오빠 정말 이럴 거야?
 
진구가 수지의 윗옷을 올려 브래지어를 드러내나 아래옷은 청바지라 벗기는 데 실패한다. 애쓰는 진구.
 
진구   가만히 있어 봐. 빨리 끝낼게.
수지   아흐 안 돼.
진구   왜 임신 때문에? 가서 콘돔 사올까?
수지   누가 그런 거 필요하대?!
진구   딱 한 번만. 아니면 그냥 집어넣다가 뺄게. 넣고만 있을게.
수지   오빠 이러면 나 정말 힘들어.
진구   (한숨을 쉰다) 그럼 입으로 해줘.
 
수지가 진구를 밀치고 돌아눕는다. 진구가 누워 있다가 화가 나서 자취방을 나간다.
 
 
S#41. 자취방 길거리 / 아침
수지가 학교에 간다. 중학생 두 명이 수지 옆을 지나간다.
 
 
S#42. 동아리실 / 저녁
중래와 은지가 성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머지는 화장실에 갔거나 바람을 쐬러 나갔다. 주리는 벽에 기대어 자고 있다.
 
중래   그니까 어쩌면 마리아가 사도의 첫 모델일 수도 있어. 근데 바티칸은 그걸 인정 안 하지. 왜냐면 베드로가 교황의 선임자이라는 걸 약화시키니까. 그치? 아니야?
은지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요.
중래   교황이 인정을 안 하는 것도 초대교회에서 인정을 안 했기 때문이라는데 이게 좀 잘못된 게 뭐냐면 여성이 사제가 되지 못한다는 거에 대한 성서적 근거는 없거든. 오히려 막 마리아가 예수의 아내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잖아. 이건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아. 내가 봤을 때 이건 그냥 여성이 남성의 권위를 강탈했다는 그 기독교의 근원적인 여성 혐오증이랄까? 그거랑 관계가 많아. 인정해도 솔직히 상관없잖아? 그치?
은지   예 맞아요.
중래   그치? 내 말이 틀려?
은지   아니요. 오빠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아는 것도 많구.
중래   (겸손한 척) 에이 뭘. 이까짓 거 가주구.
 
 
S#43. 법학관 2층 마당 / 저녁
동수와 경남이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운다. 경남이 동수에게 불을 붙여준다.
 
동수   라이터 좋다.
경남   비비안이스트우드예요.
동수   (라이터를 구경하며) 멋있다. 비싸지 않아?
경남   집에 좀 있거든요.
동수   (라이터를 돌려주며)그래? 나 하나만 주라.
경남   네?
동수   농담이야.
 
담배를 피우며 사람을 구경하는 상권과 경남.
 
동수   야 저기 봐봐. 저기 치마 입은 여자 보이지?
경남   검은색이요? 네.
동수   만약에 여자들이 저렇게 치마를 많이 입고 다니면 그날은 비가 오는 거야.
경남   진짜요? 왜요?
동수   비가 오는 날은 아침에 기온이 높거든. 그니까 여자들이 학교 올 때 날씨가 따뜻하니까 치마를 입는 거나 노출을 하는 거지.
경남   아.
동수   지금은 저렇게 치마 입은 여자가 별로 없잖아. 그래서 오늘 비가 안 온 거야.
경남   진짜 그렇네.
동수   왜, 일기예보 못 봤을 때는 이렇게 여자들이 치마를 입었나 안 입었나 관찰하면 그날 날씨는 정확히 알 수 있지. 어때? 멋있지?
 
 
S#44. 취화선 술집 / 밤
술자리가 무르익었다. 수지가 휴대전화로 진구에게 전화를 건다. 진구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모두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수지와 은지가 따로 대화한다.
 
은지   안 받아?
수지   응.
은지   진짜 화났나 보다. 아예 꺼놨어?
수지   아니. 통화 연결은 되는데 받진 않아.
은지   왜 싸웠는데?
수지   그냥 뭐.
 
TV에 여가수 성관계 영상 유출 사건에 관한 기자회견이 나온다. 모두 술을 마시다가 TV에 집중한다. 기자들이 질문 공세를 퍼붓자 여가수가 울먹이며 대답한다.
 
동수   좀 황당하네. 쟤 저런 이미지 아니잖아. 그치?
경남  진짜 좀 놀랍네요.
동수   저거 지금 인터넷에 다 퍼졌을 텐데. 쟤 이제 어떡하냐? 활동 못 하는 거잖아.
경남   활동뿐이 아니라 아예 밖에도 못 나가죠. 사람들 다 봤을 텐데. 불쌍하다.
중래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다 지가 저지른 짓인데.
은지   근데 쟤 남자 친구 있지 않아요?
경남   응. 맞아. 그 영화배우. 이름이 생각 안 나네.
동수   이야 남자 친구 어떡하냐. 어후 나 같으면 진짜.
중래   차라리 잘 된 거지. 저게 만약 안 밝혀졌어 봐. 남자 친구 평생 속고 살았을 거 아니야. 안 그래?
동수   그렇네.
중래   하여튼 깨끗한 척하는 것들이 더 한다니까. 앞에서는 말이야 순진한 척, 있어 보이는 척 다 하면서 뒤에서는 호박씨나 까고 말이야. 에이 정말!
동수   야 너 갑자기 왜 화를 내고 그러냐. 애들 있는데.
중래   아니 생각을 해 봐. 여자가 말이야 몸을 소중하게 생각해야지. 저렇게 막 함부로 굴리고 다니면 되겠어? 어?! 결혼도 안 한 여자가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면서, 그게 맞는 거야? 내 말이 틀려?
동수   글쎄 뭐 그건 자기 맘이니까.
중래   뭐가 또 지 맘이야. 너 너랑 결혼할 여자가 남자랑 저런 거 찍고 막 그랬다면 좋아?
동수   안 좋지. 그러면 안 되지. 결혼도 안 했는데 당연 안 되지.
중래   내 말이. 하여간 요즘 것들은 벗고 흔들고 비비고 아주 지랄도 아니라니까 진짜.
 
중래가 화를 내서 분위기가 사늘하다. 모두 말없이 술만 마신다.
 
수지   근데 저건 꼭 여자 잘못은 아니잖아요.
 
수지에게 이목이 집중된다.
 
수지   그렇잖아요. 여자는 사랑해서 한 거뿐인데, 남자가 유포했잖아요.
동수   야 얘 좀 말려 봐. 수지 좀 취한 것 같다.
중래   수지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수지   저런 걸 보고 퍼뜨린 게 잘못이죠!
중래   보고 퍼트린 게 죄냐? 찍은 여자가 잘못이지. 내 말이 틀려?! 어?!
수지   …….
동수   야 그만 해라. 우리 수지 울겠다.
중래   (조금 미안한 듯) 야 수지야, 너 선배가 무슨 말 한지 알지?
수지   네.
 
상권이 뒤늦게 와 자리에 합석한다.
 
동수   야 어때? 괜찮아?
상권   많이 아픈가 봐요. 열 나고 땀 흘리고.
동수   아유 아까 보니까 아파 보이더라.
중래   그거 우산은 뭐냐?
상권   지금 비 와요.
동수   비? 비가 온다고?
상권   네. 막 쏟아지는 건 아닌데 조금씩 와요.
동수   그럴 리가 없는데.
 
 
S#45. 취화선 술집 앞 길거리 / 밤
비가 내린다. 동수와 은지가 중래의 차에 탔다. 경남이 자기는 택시를 타고 가겠다며 고집을 부린다. 보도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수지와 상권.
 
경남   전 저기에서 택시 타고 가면 돼요.
중래   택시를 왜 거기까지 가서 타. 어차피 너 방향 같잖아. 빨리 타.
경남   아 저 진짜 괜찮습니다.
은지   (차 안에서) 경남아, 그냥 타.
중래   너 진짜 선배 실망시킬래? 어?
 
경남이 중래의 강압에 못 이겨 차에 탄다. 수지와 상권이 떠나는 차에게 인사한다.
 
 
S#46. 자취방 앞 / 밤
상권이 수지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술에 취해 문 앞에서 주저앉는 수지. 상권이 우산을 팽개치고 수지를 일으켜 세운다. 수지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자꾸 주저앉는다.
 
상권   수지야, 집에 다 왔다. 일어 나. 자자. 으쌰.
수지   (술주정) 좀만 기다려어! 오빠가 전화 안 받잖아.
상권   집에 가면 오빠가 전화 받을 거야. 자. 비밀번호 뭐야? 도어락. 수지야, 도어락 번호 뭐야?
수지   (술주정) 전화 왜 안 받아.
 
 
S#47. 자취방 / 밤
침대에 누워 자는 수지.
침대 옆에 서서 수지를 바라보는 상권. 상권의 시선이 수지의 발에 가 있다.
청바지에 드러난 수지의 맨발.
 
 
 
S#48. 진구의 학교 / 오후
진구가 친구랑 하교한다.
 
친구남   진짜 다 괜찮은 애들이라니까. 아까 사진 봤잖아. 어때? 괜찮았지?
진구   나쁘진 않더라.
친구남   야 뭘 또 나쁘지 않아야. 그 정도면 완전 여신이지. 야 그리고 걔네들 (두 손으로 가슴을 부풀리며) 이것도 진짜. 그런 애들 만나기 쉽지 않다니까. 야 너 나 믿잖아. 내가 언제 여자 외모 가지고 거짓말한 적 있어? 없지? 내가 걔네 만나봤다니까. 지난 주에 같이 술 마셨어. 내가 말했잖아.
진구   아 모르겠다.
친구남   뭘 또 몰라. 아 나 진짜. 너만 가면 된다니까. 안 그러면 여자애 하나 남아. 걔 혼자 뭐 하라고. 가자. 왜? 여자 친구 때문에? 너 뭐 싸웠다매. 내가 봤을 때는, 니 여자 친구 그래 예쁘긴 예뻐. 진짜 예쁜 건 맞아. 근데 솔직히 섹시한 건 아니잖아. 그치? 니가 생각해도 그렇지?
진구   푸흡.
친구남   웃는 거 보니까 맞네. 그렇잖아, 뭐 섹시랑 글래머랑은 거리가 멀잖아. 오히려 뭐랄까 그 귀염둥이나 애교에 가깝지. 그니까 오늘 거기 가서 색다른 여자 좀 만나보라니까. 응? 야 누가 뭐 걔네랑 자래? 그냥 노는 거야.
 
휴대전화가 울린다. 진구가 발신자를 확인한다. 수지다. 진구가 전화를 받을까 말까 망설인다.
 
친구남   누구야? 여친?
진구   응.
친구남   이야 타이밍 죽인다. 어떻게 딱 전화하냐. 받아 봐. 받고 딱 말해. 나 오늘 여자 만난다고. 연애 초반에 그렇게 잡는 거야. 너 지금 안 잡아 놓으면 나중에 후회한다.
 
진구가 전화를 받는다. 친구가 귀를 대고 통화를 엿듣는다.
 
진구   여보세요.
수지   오빠.
진구   어.
수지   어디야?
진구   나 학교.
수지   수업 끝났어?
진구   어.
수지   집에 가게?
진구   글쎄 아직. 왜?
수지   시간 있으면 만날까 해서.
진구   …….
수지   바빠?
진구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수지   잠깐 얼굴만이라도 보면 안 돼?
진구   (고민하다가) 어디서 만날까?
수지   지금 괜찮아?
진구   어.
수지   그럼 커핀 그루나루 어때?
진구   알았어.
수지   거기서 봐.
진구   응.
 
진구가 전화를 끊는다.
 
친구남   너 진짜 만날 거야?
진구   야 미안하다. 다른 애 데리고 가.
친구남   남진구, 너 어쩌다 이렇게 됐냐. 나는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어. 이게 도대체 무슨. 내가 알던 남진구는 이런 남자가 아닌데. 친구로서 정말, 나쁜 길로 빠져들지 않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참 미안하다.
진구   내가 나중에 밥 살게. 진짜 미안하다. 먼저 간다.
 
진구가 수지를 만나러 간다.
 
 
S#49. 커핀 그루나루 / 오후
수지와 진구가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대화한다.
 
진구   원래 거기가 한국 사람들이 좀 많이 사는 데거든. 그래서 지하철역 같은 데서 사람 막 잡고 그래. 근데 내가 그날 딱 가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나를 붙잡고 묻더라고.
수지   뭐라고?
진구   한국 사람 아니냐고. (흉내) 저기 한국 분 맞으시죠? 그래서 내가 뭐라 그랬는 줄 알아?
수지   뭐랬는데?
진구   아니요.
수지   하하하.
진구   무슨 소리인지 알겠지?
수지   (웃으며) 응.
진구   숙소 와서 생각해 보니까 내가 말해 놓고도 너무 웃긴 거야, 그게.
수지   아 귀여워.
 
분위기가 즐겁다.
 
 
S#50. 대학로 길거리 / 저녁
수지가 진구에게 팔짱을 끼고 걷는다. 팔짱을 낀 모습이 다정해 보인다.
 
수지   이제 뭐 할까?
진구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수지   글쎄. 오빠는?
진구   너 하고 싶은 거 하자.
수지   음 영화 보자.
진구   영화? 저번에 봤잖아. 뭐 보고 싶은 거 있어?
수지   가서 뭐 하나 보려구.
진구   지금 몇 시인데?
수지   (휴대전화로 시간을 보고)  6시 38분.
 
 
S#51. 대학로 CGV / 저녁
수지와 진구가 매표소에서 상영시간표를 확인한다.
 
수지   다 8시네. 가장 빠른 게 20분. 저거 볼까?
진구   …….
수지   여기서 좀 있다가 영화 보구 그럼 되겠다.
 
진구가 수지를 남겨 두고 영화관을 나간다.
 
수지   오빠? 어디 가?
 
 
S#52. 대학로 길거리 / 저녁
진구가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진구   어디냐? 일찍 헤어졌어. 어딘데? 알았어. 내가 지금 택시 타고 갈게. 어.
 
 
S#53. 1차 술집 / 저녁
남녀 넷이 짝을 이뤄 논다.
 
진구   야 창수 안 왔어?
친구남   갔어.
진구   갔다고?
친구남   여기 왔다가 얘 친구랑 눈 맞아서 나갔다니까.
진구  지금이 몇 시인데 벌써 따로 놀아?
친구남   그니까 원래 셋 셋으로 놀려고 했는데 너 안 온다 그러고 걔네 먼저 가고. (인애를 가리키며) 너 오늘 얘한테 잘 해야 돼. 얘 남자 없다고 삐쳐서 가려고 했다니까. 근데 너 온다 그래가지고 아까부터 거의 1시간 기다렸어.
진구   (인애에게) 아 미안. 진짜 미안해. 여기 오는데 차가 밀려서.
인애   미안하면 한 잔 해.
 
인애가 술을 따르고 진구가 원샷 한다.
 
진구   누구 닮았는데.
인애   나? 누구?
진구   그 있잖아. 가수.
인애   가수 누구?
진구   그 걸그룹 뭐지?
친구남   소시?
진구   아니 소시 말고.
친구남   포미닛? 카라? 에프 엑스? 미스 에이?
진구   어! 에프 엑스! 그 귀여운 애 있잖아. 이름 특이한 애.
친구남   설리?
진구   응! 설리. 닮았지? 웃는 게 비슷해.
인애   하하. 정말?
친구남   또 이빨 까고 있네.
인애   하하하. 너도 닮았어.
진구   누구?
인애   얘 좀 송중기랑 비슷하지 않아?
 
모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는다.
 
친구남   니들 지금 뭐하냐?
인애   아니 이미지가 비슷해. 깔끔하게 생겨가지고 미소년 그런 이미지?
만남녀   음 뭔지 알겠다.
인애   그치?
만남녀   여자 많을 것 같아.
인애   아까 보니까 전화랑 문자 오구 막 그러던데.
만남녀   아 인기남인 거 티 내고 있어. 인기남.
진구   아니야. 전화 꺼 놨어.
인애   누군데? 여자 친구?
 
진구가 대답하지 않고 술만 마신다.
 
인애   여자 친구 있어?
진구   친구는 많지.
인애   친구 말고 애인.
진구   (침묵하다가) 있을 것 같아, 없을 것 같아?
만남녀   아 뭐야. 있네 있어.
인애   있어? (친구에게) 있어?
진구   아니 갑자기 뜬금없이 왜 물어 봐.
인애   있으면 빨리 마음 접게.
진구   하하. (조그맣게) 있어.
인애   있어?
 
진구가 고개를 끄덕인다.
 
인애   (아쉬워한다) 아 뭐야 여자 친구 있으면서 다른 여자랑 놀고 있구.
 
술자리가 무르익고 게임을 즐긴다. 왕게임. 각자 담배를 뽑고 왕 표시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다. 짝끼리 편을 지어 왕이 있는 쪽이 다른 쪽에게 명령을 내린다.
 
만남녀   아싸! 나 왕이야. 처음이니까 좀 살살 할게. 얘 눈에 키스해.
친구남   너무 약하다.
 
진구가 인애의 눈에 키스한다. 다음 왕은 친구가 된다.
 
친구남   내가 왕이다. 이번에는 좀 수위 높은 걸로. 얼음! 입으로 왔다 갔다 세 번. 아니, 네 번.
진구   아 뭐야. 그건 좀 아니다.
친구남   걸렸으면 해야지.
진구   니들 이거 짰지? 왜 우리만 걸려?
만남녀   (얼음 잔을 건네며) 빨리 해.
진구   아 나 못 해. 그냥 술 마실게.
친구남   뭐야. 그런 거 없어. 빨리 해.
진구   진짜 하라고?
 
얼음 잔을 들고 기다리는 인애.
 
 
S#54. 2차 술집 / 밤
모두 술에 취해 풀어져 있다. 짝끼리 각자 이야기를 나눈다.
 
인애   (손부채를 하며) 더워. 너무 많이 마셨나 봐.
진구   봐봐. (인애의 볼을 만지며) 뜨겁네. 얼굴도 빨개.
 
진구와 인애가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다.
 
인애   여자 친구랑 사귄 지 오래됐어?
진구   한 달 좀 넘었지.
인애   별로 안 됐네? 뭐야 한 달 됐는데 다른 여자랑 손 잡고 있구. 원래 되게 좋을 때인데.
진구   좋긴.
인애   왜?
진구   아 그냥 뭐랄까. 사귀는 것 같지 않다고 해야 되나?
인애   자주 못 만나?
진구   만나는 건 자주 만나지. 근데.
인애   근데 왜?
진구   (침묵하다가) 다 안 줘.
인애   응?
진구   다 안 준다니까.
인애   (알았다는 듯이)아하하. 한 달인데 뭐. 아닌가 요즘은 좀 빠른가?
진구   한 달이 문제 아니라니까. 평생 안 줄 것 같아.
인애   평생?
진구   결혼할 때까지 안 하겠대.
인애   진짜? 하하하. 대단하다.
진구   아니 솔직히 내가 뭐 그걸 만날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진짜 사랑한다면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안 한다는 건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나는 그게 섭섭한 거야. 여자 친구가 나랑 왜 사귀는지 모르겠다니까.
인애   음 그래서 나 만난 거야?
진구   아 그건 아니지. 절대 아니야.
인애   계속 사귈 거야?
 
진구가 인애의 허리에 팔을 두른다.
 
인애   (좋아하며) 뭐야? 대답도 안 하고.
 
진구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인애가 진구의 어깨에 기댄다.
 
 
S#55. 길거리1 / 새벽
진구와 인애가 길을 걷는다.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이 연인 같다. 길가에 모텔이 즐비하다. 진구가 인애를 모텔 쪽으로 이끈다. 인애가 안 가려고 버틴다.
 
진구   왜?
인애   진짜 가자고?
진구   하기 싫어?
인애   하고 싶지.
진구   근데 왜?
인애   오늘 이러면 우리 다음에 못 만난다니까.
 
진구가 한숨을 쉰다.
 
인애   나도 너 좋아.
 
인애가 진구의 손을 끌고 모텔 쪽을 벗어난다.
 
 
S#56. 길거리2 / 새벽
진구가 인애를 택시에 태워 보낸다.
 
인애   연락할게. 잘 가.
 
떠나는 택시를 바라보는 진구의 표정이 씁쓸하다.
 
 
S#57. 자취방 앞 / 새벽
진구가 초인종을 누른다. 한 번이 아니라 두세 번 계속 누른다. 술에 취해 문에 기대는 진구.
 
수지   누구세요?
 
진구가 대답하지 않고 초인종을 누른다. 수지가 문을 열자 진구가 문에 밀려 비틀거린다. 수지가 진구를 부축하고 자취방으로 들인다.
 
 
S#58. 자취방 / 새벽
수지와 진구가 침대에 앉아 있다. 수지에게 미안한 탓인지 아니면 술에 취한 탓인지 진구가 수지를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수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진구   …….
수지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리구. (울먹인다) 화장실 간 줄 알고 계속 기다렸잖아.
진구   미안해.
수지   전화도 안 받고.
진구   …….
 
침묵이 흐른다. 수지가 일어서 진구 앞에 선다. 진구가 수지를 안는다. 수지가 윗옷을 벗는다.
 
 
S#59. 자취방 건물 앞 / 아침
상큼한 아침. 수지와 진구가 자취방에서 나온다. 수지가 진구에게 팔짱을 낀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예쁘다.
 
 
S#60. 신의주 찹쌀순대 / 아침
수지와 진구가 순대국밥을 먹는다.
 
진구   수건 버렸어?
수지   아니. 빨려고 세탁기에 넣어놨어.
진구   버려.
수지   괜찮아. 빨면 돼.
진구   됐어. 그걸 어떻게 또 쓰냐.
 
 
S#61. 동아리실 앞 복도 / 저녁
기도 모임이 끝나고 모두 동아리실 밖으로 나온다. 회식이라도 할 듯한 분위기. 수지가 마지막으로 나와 문을 잠근다. 먼저 나온 경남이 수지와 함께 걸으려고 문을 잠글 때까지 기다린다.
 
 
S#62. 법대 계단 / 저녁
중래, 동수, 상권, 주리, 은지가 수다를 떨며 계단을 내려온다. 뒤따라 수지와 경남이 계단을 내려온다.
 
경남   밥 먹으러 갈 거지?
수지   난 오늘 못 갈 거 같아. 약속 있어서.
경남   (아쉬운 듯) 아 그래?
수지   …….
경남   남자 친구?
 
수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S#63. 반디앤루니스 종로타워점 / 저녁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수지가 바닥에 앉아 책을 읽는다. 종교에 관련된 서적. 수지가 책장을 넘기자 중세시대 남자들이 여자를 마녀사냥 하는 그림이 나온다.
 
 
S#64. 명동역 / 밤
수지가 출구 쪽에서 진구를 기다린다. 진구가 나타난다. 수지와 진구가 손을 잡고 길을 걷는다.
 
 
S#65. ABC마트 명동중앙점 / 밤
수지가 신발을 신어 보고 맵시를 살핀다.
 
수지   (다른 신발을 가리키며) 저게 더 낫지 않아?
진구   흰색이 깔끔하고 좋은데. 청바지랑도 잘 어울리고.
 
수지가 고민한다.
 
진구   이걸로 주세요.
점원   사이즈가 몇이세요?
수지   230이요.
 
점원이 230 신발을 찾으러 간다.
 
수지   (진구에게) 고마워.
 
 
S#66. 지하철 / 밤
수지가 진구의 새 휴대전화를 구경한다.
 
수지   그럼 여기서도 인터넷 되는 거야?
진구   당연하지. 글도 올릴 수 있고 메신저도 되고. 다 돼. 그냥 컴퓨터라고 생각하면 돼.
수지   와 신기하다.
진구   이걸로 영화도 찍을 수 있다.
수지   영화?
진구   응. 동영상 화질 진짜 좋거든. HD야.
수지   이거 얼마야? 되게 비쌀 것 같아.
진구   아니야. 2년 약정해서 한 달에 1만 2천원 정도 내면 돼. 근데 요금 기본료랑 뭐 잡다한 게 많아서 돈이 좀 많아 나가지.
 
수지가 혀를 내두른다.
 
 
S#67. 자취방 / 밤
진구가 수지를 간질이며 침대에 눕힌다.
 
수지   (웃으며) 하지 마.
 
수지가 발버둥을 친다. 진구가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틈타 수지의 옷을 벗긴다. 수지가 옷을 벗지 않으려고 손으로 막는다.
 
수지   (싫다는 듯이 콧소리로) 으응~
진구   왜?
수지   어제도 했잖아. 그리고 오빠 이제 가야지.
진구   아까 왔는데 뭘 가.
수지   안 돼. 오늘은 참자.
진구   딱 한 번만. 우리 내일 못 만나잖아. 빨리 끝낼게.
 
수지가 말없이 진구를 째려본다. 진구가 수지의 눈치를 보며 옷을 벗긴다.
 
수지   (투정) 만날 이런 것만 하려 그러구.
진구   (윗옷을 브래지어까지 올리며) 빨리 끝낼게. 응? 빨리.
 
 
 
S#68. 학교 복도 / 저녁
수지가 사물함을 열고 책을 넣는다. 은지가 다가온다.
 
은지   배수! 다 끝났어?
수지   응.
은지   빨리, 빨리. 나 배고파.
 
수지가 사물함을 닫고 은지와 복도를 걷는다.
 
 
S#69. 자취방 / 밤
수지와 은지가 상을 펴 놓고 술을 마시고 있다.
 
은지   그래서 나도 솔직히 좀 흔들렸거든. 문자 꼬박꼬박 보내주고 전화도 해 주니까. 근데 얘가 학교에서는 별 말도 없고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가는 거야. 나는 또 그게 되게 섭섭하고. 얘가 날 떠보는 건가 그런 생각도 들고. 그래서 내가 연락을 안 해 봤다. 문자 해도 그냥 씹고 전화 안 받고. 그러니까 며칠 후에 미친 듯이 전화가 오는 거야. 진짜 계속 왔어. 그래서 받았더니 어디냐고 잠깐 나오라고 그러길래 나갔지. 키스도 그때 한 거구.
수지   술집에서?
은지   아니. 밖에서. 골목에서.
수지   우와. 하하.
은지   그래서 내가 다음 날 걔한테 물어봤거든. 기억 나냐고.
수지   그러니까 뭐래?
은지   기억 안 난대. 진짜 어이가 없잖아. 그래서 내가 진짜 안 나냐고 그러니까 진짜 진짜 안 난다고 뭔 일 있었냐고 막 그러는 거야.
수지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야?
은지   아 몰라. 왜 만날 이상한 애들만 걸리냐. 괜찮은 남자가 없어.
 
수지와 은지가 잔을 부딪고 술을 마신다.
 
은지   너는? 오빠랑 잘 지내?
수지   응.
은지   이제 안 싸워?
수지   잘 지내.
은지   음 오빠 여기 놀러 온 적 있겠네?
수지   자고 갈 때도 있어.
은지   정말? 여기서 잔다고?
수지   응.
은지   둘이 같이? 침대에서?
수지   응. 왜?
은지   괜찮아? 아무 일 없어?
수지   무슨 일?
은지   그거. 그거 말이야. 같이 자면 할 수도 있잖아.
수지   했지.
은지   뭐라고? 했어? 그거 했다고?
수지   응.
은지   야 너 진짜야? 하면 어떡해! 아 나 진짜 놀라서 말이 안 나온다.
수지   …….
은지   몇 번? 몇 번이나 했어?
수지   되게 많이 했어. 열 번? 스무 번도 넘을걸.
은지   (놀란다) 헤! 너 그럼 오빠랑 결혼할 거야?
수지   결혼? 뭐 계속 사귀면 하겠지. 근데 꼭 결혼 때문에 하는 건 아니잖아.
은지   (수지의 팔뚝을 때리며) 얘가! 얘가! 너 진짜 그건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결혼할 때까지는 지켜야지.
수지   은지야, 나 오빠 많이 좋아해.
 
은지가 한숨을 쉬고 술을 들이켠다.
 
은지   (체념한 듯) 나도 모르겠다. 니 일이니까, 뭐.
수지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은지   또 가?
 
 
S#70. 자취방 건물 앞 / 아침
아침이 밝았다. 출근하는 사람이 보인다.
 
 
S#71. 자취방 / 아침
수지와 은지가 침대에서 자고 있다. 대(大) 자로 누워 침대를 점령한 은지, 옆에서 웅크린 수지. 상에는 어제 먹은 술과 안주가 널브러져 있다. 휴대전화 모닝콜이 울린다. 귀여운 아기 목소리. 수지가 모닝콜을 끄고 자다가 일어난다.
 
 
S#72. 자취방 화장실 / 아침
수지가 양치한다. 세수한 듯 얼굴이 말끔하다. 머리에는 수건이 둘려 있다. 수지가 거울로 가슴 크기를 확인한다. 옆으로 돌아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S#73. 자취방 / 아침
변기 뚜껑을 내리는 소리. 오줌을 누는 소리. 물을 내리는 소리. 바지를 올리다 멈추는 소리. 수지가 화장실에서 나와 다이어리를 펴 본다.
 
 
S#74. 약국 길거리 / 오후
수지가 약국에 들어가서 임신테스트기를 사고 나온다.
 
 
S#75. 커핀 그루나루 / 저녁
수지가 진구의 눈치를 보며 앉아 있다. 표정이 우울하다. 진구는 말없이 주스만 마신다. 표정이 안 좋다. 수지는 진구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진구는 창밖으로 사람을 구경한다.
 
 
S#76. 산부인과 길거리1 / 오후
인적 드문 골목에 자리한 산부인과.
 
 
S#77. 산부인과 대기실 / 오후
수지와 진구가 소파에 앉아 있다. 진구의 겉옷을 걸치고 진구의 어깨에 기대어 있는 수지. 힘이 없어 보인다. 진구가 수지의 손을 잡는다.
 
간호사   배수지 씨 보호자 분! 들어오세요.
 
진구가 수지를 안정시키고 진찰실에 들어간다.
 
 
S#78. 산부인과 진찰실 / 오후
의사   일단 수술은 잘 끝났고요. 환자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니까 꼭 안정을 취해야 하고요. 배란은 아마 2주 후부터 시작될 건데 성관계는 환자를 위해서 한 달 뒤에 하는 게 좋습니다.
진구   한 달이요?
의사   네. 무리하면 출혈이나 염증이 발생할 수도 있거든요.
 
 
S#79. 산부인과 길거리2 / 오후
진구가 택시를 잡는다. 수지가 안쪽에 앉고, 진구가 바깥쪽에 앉는다.
 
 
S#80. 자취방 / 오후
수지가 침대에 누워 있고, 진구가 침대 머리맡에 걸터앉아 수지의 팔을 주무른다. 수지가 진구를 보고 미소 짓는다.
 
수지   안아 줘.
 
진구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 수지 옆에 눕는다. 수지가 진구의 품에 안긴다.
 
진구   괜찮아?
수지   따뜻해.
 
진구가 수지를 안고 있다가 수지에게 몸을 비빈다.
 
수지   (힘없이) 오빠.
진구   하고 싶어.
 
진구가 수지의 옷 속에 손을 넣어 가슴을 만진다.
 
수지   2주 동안 하지 말랬대매.
 
진구가 수지의 말을 무시하고 키스한다. 수지는 저항할 힘도 없어 진구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둔다. 진구가 미안한지 동작을 중단한다. 성욕 때문에 괴로워하는 진구.
 
수지   조금만 참자. 응?
 
 
S#81. 자취방 건물 앞 / 밤
고요하고 쓸쓸한 밤. 웬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S#82. 자취방 / 밤
수지와 진구가 자고 있다. 진구는 수지를 안았고, 수지는 진구에게 안겼다. 휴대전화 진동이 울린다. 진구가 휴대전화를 쥐고 수지가 깨지 않도록 침대에서 일어난다. 행동이 조심스럽다.
진구가 밖에서 전화를 받고 들어와 겉옷을 입고 가방을 챙긴다. 수지가 깰까 봐 조심조심.
 
수지   (전화한 사람) 누군데?
진구   어 깼어? 갑자기 전화가 와서.
수지   지금 만나재?
진구   어 친구 휴가 나왔다고 애들 다 모여 있대. 잠깐만 있다가 올게. 미안해.
수지   (침대에서 일어나며) 오빠, 잠깐만.
 
수지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준다.
 
진구   아 됐어. 나 돈 있어.
수지   아니야. 오빠 오늘 돈 많이 썼잖아.
진구   괜찮아. 그냥 누워 있어.
수지   내가 주고 싶어서 그래.
 
진구가 갈등하자 수지가 카드를 주머니에 넣어 준다.
 
진구   금방 올 테니까 기다리지 말고 자고 있어.
수지   응.
 
 
S#83. 포장마차 / 밤
곱창에 소주를 마시는 인애와 진구. 서로 붙어 앉았다.
 
인애   오늘 뭐 했어? 아까 오후에 문자 보냈는데.
진구   아 나 오늘 진짜 바빴어. 미안해.
인애   여자 친구랑 놀았지?
진구   아니야. 여자 친구는 무슨.
인애   나 안 보고 싶었어?
진구   너? 보고 싶었지.
인애   하하. 그래도 말 잘 듣네. 바로 달려오고. (진구의 볼을 꼬집으며) 이잉~ 귀엽다!
진구   너 취했다. 그만 마셔.
 
인애가 진구의 어깨에 기댄다. 진구가 인애의 손을 잡는다.
 
 
S#84. 모텔 카운터 / 밤
주인   자고 가실 거죠? 4만 원입니다.
 
인애가 지갑을 뒤진다.
 
인애   나 2만 원밖에 없는데.
진구   쉬었다 가는 건 얼마죠?
주인   지금 시간에는 쉬었다 가는 게 안 되거든요.
진구   아.
인애   어떡하지?
 
 
S#85. 모텔 방 / 밤
인애와 진구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키스하면서 옷을 벗긴다.
 
 
S#86. 자취방 / 밤
수지가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 진구한테서 문자가 왔는지 확인해 보고, 진구한테 연락을 해 볼까 망설인다.
 
 
S#87. 모텔 방 / 밤
인애와 진구가 자고 있다. 진구는 인애를 안았고, 인애는 진구에게 안겼다.
 
 
S#88. 서울대공원 입구 / 낮
인애와 진구가 팔짱을 끼고 걷는다. 다정해 보이는 두 사람. 소풍 온 유치원생들이 보인다.
 
인애   (단풍을 가리키며) 저것 봐. 예쁘지?
진구   완전 가을이네. 바람도 시원하고. 날씨 짱인데.
인애   일요일에 안 오길 잘했다. 그치? 사람도 없고.
 
 
S#89. 원숭이 우리 / 낮
인애와 진구가 자판기에서 원숭이 먹이를 뽑아 원숭이에게 던진다. 원숭이가 먹이를 받아먹으려고 애쓴다.
 
 
S#90. 타조 우리 / 낮
진구가 타조에게 과자를 준다.
 
진구   설리야, 여기. 과자 먹자.
 
타조가 과자를 받아먹는다.
 
인애   얘 이름이 설리야?
진구   응.
인애   진짜? 어떻게 알아?
진구   내가 방금 지었어.
인애   푸흡.
 
인애도 타조에게 과자를 준다.
 
인애   배고프다. 몇 시야?
진구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한다) 14시 15분.
인애   (타조에게) 미안. 우리도 뭐 먹으러 갈게. 안녕.
 
인애와 진구가 밥 먹으러 떠난다. 타조가 인애와 진구를 바라본다.
 
 
S#91. 호랑이 휴게음식점 / 낮
인애는 우동을, 진구는 비빔밥을 먹는다. 진구가 우동을 한 젓갈 빼앗아 먹는다.
 
 
S#92. 서울대공원 화장실 / 낮
한 남자가 소변을 보는데 진구가 들어와 무엇을 찾는다.
 
진구   여기 핸드폰 못 봤어요? 위에다 뒀는데.
남자   아니요. 아무것도 없었는데.
진구   아 짜증 나! 새로 산 건데.
남자   주머니 잘 찾아보세요.
 
 
S#93. 서울대공원 길 / 낮
인애와 진구가 오르막길을 오른다. 진구가 인애를 뒤에서 밀어 준다.
 
인애   오오 편해.
 
 
S#94. 사과나무 언덕 / 낮
풀이 깔린 언덕에 사과나무가 있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사과를 따려고 막대기를 휘젓고, 나무를 발로 찬다.
 
진구   저거 맛있겠다.
인애   근데 저거 먹을 수 있는 거야?
진구   그럼! 다른 과일이랑 똑같지, 뭐. 하나 따 볼까?
인애   그냥 가자. 배도 부른데 뭘 또 먹어.
진구   왜? 재밌잖아.
인애   차라리 사 먹는 게 낫겠다.
 
진구가 사과나무로 달려가 학생들에게서 막대기를 빼앗고 사과를 딴다.
 
 
S#95. 서울대공원 벤치 / 낮
인애와 진구가 손을 잡고 벤치에 앉아 있다. 진구가 주변을 살피고 인애에게 입술을 내민다. 인애가 주변을 살피고 진구의 입술에 키스한다. 딥키스, 오랫동안.
 
 
S#96. 유흥가 / 저녁
길가에 술집과 모텔이 즐비하다. 인애와 진구가 모텔로 들어간다.
 
 
S#97. 자취방 앞 / 저녁
수지가 편지함에서 카드이용대금명세서를 꺼내고 집으로 들어간다.
 
 
S#98. 자취방 / 저녁
수지가 카드이용대금명세서를 뜯어 본다. 명세서에 찍힌 이용내역.
 
가맹점(은행)명: 시에스타, 이용금액(해외현지금액): 40,000
 
 
S#99. 모텔 방 / 저녁
인애와 진구가 섹스한다.
 
인애   아아 나 먹으니까 좋아?
진구   헉헉 좋아.
인애   아아 여자 친구랑 나랑 누가 더 맛있어?
진구   헉헉 네가.
 
 
S#100. 자취방 / 밤
진구가 가방에서 사과를 꺼내 냉장고에 넣는다.
 
수지   가방은? 잘 찾아봤어?
진구   없어. 화장실이 맞아. 학교에서 잃어버린 거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수지   어떡해. 비싼 건데.
진구   뭐 기다려 봐야지. 몸은 많이 괜찮아졌어?
수지   응. 아까 학교 갔다 와서 좀 잤거든.
진구   학교? 오늘 학교 갔었어?
수지   저녁에 수업 있어서. 교양 하나였어.
진구   웬만하면 쉬어. 의사가 무리하면 안 된됐어.
 
진구가 떠날 채비를 한다.
 
수지   가게?
진구   내일 9시에 수업 있거든. 일찍 가봐야겠다.
수지   …….
진구   왜 뭐 할 말 있어?
수지   (웃으며) 아니.
 
진구가 신발을 신는다.
 
진구   핸드폰 못 찾으면 임대폰이라도 쓸 테니까 그거 쓰게 되면 연락할게. 메신저에서도 자주 보고. 어차피 집에 매일 찾아올 테니까 걱정 마.
 
 
S#101. 자취방 앞 / 밤
진구가 자취방을 나오다가 편지함을 발견하고 열어 본다. 편지함이 비어 있다.
 
 
S#102. 600주년 기념관 식당 / 낮
학생들이 북적인다. 수지와 은지가 줄을 서고 식판에 밥을 타 간다.
 
은지   환절기라 감기 진짜 조심해야 돼. 요즘 감기 잘 낫지도 않는다더라. 특히 목감기가 되게 위험하거든. 그게 열이 목에서 머리까지 올라가더라고. 어쨌든 다행이네. 나았으니까 말이야.
 
조리사   (수지 식판에 오므라이스를 올리며) 맛있게 먹어.
수지   잘 먹겠습니다. (은지에게) 응.
은지   너 앞으로 아플 것 같으면, 만약에 열 조금이라도 있으면 바로 병원 가서 주사 맞아. 그게 제일이야. 혼자 사는 애가 아프면 서럽잖아.
수지   (장난 말투) 예, 알겠습니다.
 
수지와 은지가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다.
 
은지   오빠한테는 연락 왔어?
수지   아니. 아직도 못 찾았나 봐.
은지   그거 좋은 거라 찾기도 힘들걸. 누가 돌려주겠어? 어따 팔았겠지. 분실 신고 했대?
수지   응. 근데 그것도 별 소용 없나 봐.
은지   연락 못 해도 괜찮아? 나라면 하루만 못 해도 미칠 것 같은데.
수지   기다리면 오겠지.
은지   이그! 맹숭아.
 
한 남학생이 수지를 쳐다본다. 수지가 느낌이 이상해서 고개를 돌리자 남학생과 눈이 마주친다. 남학생이 시선을 피하고 밥을 먹는다.
 
 
S#103. 법대 복도 / 낮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복도로 몰려 나온다.
 
 
S#104. 법대 주차장 / 낮
중래가 수지를 차에 태우려고 한다. 수지는 타지 않으려고 버틴다.
 
수지   선배, 저 오늘 집에 일찍 가야 되요.
중래   야 수지야. 너 선배 실망시킬래?
수지   다음에 가면 안 되요?
중래   뭐 해? 뭐 하는데?
수지   집에 일찍 가 봐야 해서. 누구 기다려야.
중래   누굴? 내가 너 혼자 사는 거 다 아는데, 진짜.
수지   …….
중래   너 나 졸업하면 이제 못 본다. 선배 연수원 가는 거 몰라?
수지   알죠. 근데 오늘은 좀 아닌 것 같아요. 너무 갑작스럽게.
중래   야! 내가 뭐 너 납치하니? 그냥 잠깐 갔다 오는 거야. 집에 데려다 줄게!
 
수지가 머뭇거리자 중래가 손바닥으로 차 위를 내리친다.
 
중래   너 선배 화나게 할래, 증말?
 
수지가 마지못해 차를 탄다.
 
 
S#105. 중래의 자동차(북악스카이웨이) / 오후
수지와 중래가 드라이브를 즐긴다. 룸미러에 달려 있는 십자가.
 
중래   토끼의 간 알지? 동화. 왜, 우리 어렸을 때 많이 읽었잖아.
수지   네.
중래   거기서 토끼가 꾀를 써서 도망치잖아. 근데 그게 원래 이야기가 아닌 거 알아?
수지   아니요. 원래 이야긴 뭔데요?
중래   거북이가 간 때문에 토끼를 꼬시고 바다로 가잖아. 근데 토끼가 바다 가기 전에 그걸 알아차린 거야. 그래서 막 도망쳤지. 거북이는 어차피 느리니까 못 쫓아오고.
 
수지한테 문자가 온다. 수지가 문자를 확인한다. 중래가 수지를 위해 말을 멈춘다.
 
메시지 내용
몸파는년 ㅉㅉㅉ
나한텐안대주냐 ㅋ
받은 날짜
10월25일 02:43PM
연락받을 번호
4444
 
수지가 문자를 무시하고 휴대전화를 집어넣는다.
 
중래   됐어? 그래서 거북이가 울면서 토끼한테 사정사정 빈 거야. 간은 바라지도 않으니까 간 비슷한 거라도 달라고. 그래서 토끼가 자기 똥을 줬대.
수지   똥이요?
중래   응. 똥. 그래서 거북이가 그걸 간이라고 속이고 용왕님한테 준 거지. 근데 용왕님이 그걸 먹고 죽은 거야. 간을 먹어야 하는데 똥을 먹었으니까 당연히 죽었겠지.
수지   그래서요?
중래   그게 끝이야.
수지   거북이는 어떻게 됐는데요?
중래   글쎄. 아무튼 사실은 이게 원래 이야기래. 나중에 사람들이 바꾼 거라고 하더라.
수지   하하.
중래   (수지가 웃는 모습을 보고) 드라이브하니까 어때? 좋지?
수지   예? 네.
중래   선배가 니들 이제 못 보니까 맛있는 것 좀 사주려고 그랬던 거야. 다 같이 우르르 몰려가면 좀 그렇잖아.
수지   네.
 
 
S#106. 횟집 / 오후
수지와 중래가 왕새우를 먹는다. 입맛이 없는지 깨작거리는 수지. 중래가 왕새우 껍질을 까 준다.
 
중래   맛있어. 먹어 봐. 여기가 (트림을 참고) 우리나라에서 왕새우 제일 잘하는 집이야.
 
수지가 두 손으로 왕새우를 붙잡고 먹는다.
 
중래   어때? 맛있지?
 
수지가 입에 넣은 왕새우가 뜨거워서 고개만 끄덕거린다. 뜨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웃는 중래.
 
중래   (술을 따라주려고 한다) 야 잔 비었다.
 
수지가 입을 막고 손사래를 친다.
 
중래   아 마셔. 난 운전해야 돼서 못 마신다고.
수지   저 주량 넘었어요.
중래   주량이 몇인데?
수지   소주 네 잔이요.
중래   야 한 잔 정도는 괜찮아. 받아.
수지  좀 힘든데.
중래   야 선배가 주는 막잔이다. 응?
 
수지가 잔을 받고 원샷 한다. 주량이 넘어서 볼이 빨개진다.
 
중래   야 너 볼 빨개졌다.
수지   (손으로 볼을 비비며) 진짜요?
중래   그게 무슨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없어서 그런 거라던데. (손등을 수지 얼굴에 대며) 봐봐.
 
수지가 놀라서 움찔한다. 중래가 무안해서 손을 거둔다.
 
중래   흠흠! 수지야, 너 주사 있어?
수지   아니요. 주사는 아닌데 술 마시면 그냥 자요.
중래  잔다고?
수지   네. 저도 모르게 그냥 쓰러져요.
중래   아아 그래서 안 마시는 거구나. 근데 아까 나 막 강요한 건 아니다.
 
수지가 왕새우를 씹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S#107. 중래의 자동차(한강고수부지) / 밤
중래가 차를 세워 놓고 생각에 잠겼다. 조수석에서 자는 수지. 중래가 수지를 본다.
 
 
S#108. 한강고수부지 / 밤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수지. 중래가 운전석 문을 열고 나와 수지를 부른다.
 
중래   야 수지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수지가 뒤도 안 돌아보고 걷는다. 중래가 쫓아가 수지를 붙잡는다.
 
중래   아니라니까 그러네. 오해야, 오해! 너 좀 편하게 자라고 그런 거야. 너도 봤잖아. 응? 내 말이 틀려?
수지   저 갈게요.
중래   야 어딜 가니. 선배 이상한 사람 만들어 놓구. 어? 아니래두! 너 자꾸 선배 실망시킬래?
수지   알겠어요. 그니까 저 갈게요.
 
중래가 수지의 손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수지   선배!
중래   너도 봤잖아. 아니지? 나 그런 거 아니지? 응? 마지막으로 좋은 추억 만들려고 하는데 왜 이러니 증말! (침착한 말투) 가서 타. 빨리. 집에 데려다줄게.
 
수지가 마지못해 차에 탄다.
 
 
S#109. 중래의 자동차(자취방 건물 앞) / 밤
중래가 수지를 집에 바래다준다.
 
수지   여기요.
중래   여기?
 
차가 자취방 건물 앞에 선다.
 
수지   저 갈게요.
중래   어 들어가. 아 잠깐.
 
수지가 나가려고 하는데 중래가 잠금 단추를 눌러 문을 강제로 잠근다. 수지가 손잡이를 당기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수지   선배.
중래   아 진짜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침묵) 나 진짜 안 만졌다.
수지   아까 얘기했잖아요.
중래   그니까 나 아무 짓 안 한 거다. 응? 아니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어서 그래.
수지   저 괜찮아요. 근데 선배가 이러면 제가 더 의심하게 되잖아요.
중래   그래. 알았어. 아무튼 그럼 난 진짜 결백한 거다. 그리고 나 강요한 적 없다. 이거 뭐 성희롱 아니다. 그치? 그냥 너 집에 데려다 준 거지? 너도 동의 하에 탔고.
수지   …….
중래   맞어, 안 맞어?
수지   맞아요.
중래   그래.
수지   네. 가도 되죠?
 
중래가 잠금 장치를 푼다. 수지가 차에서 내려 자취방으로 들어간다. 기분이 찝찝한 중래.
 
 
S#110. 자취방 / 밤
수지가 자취방에 들어와 가방을 벗고 침대에 엎어진다. 화나고 피곤해 죽을 지경. 수지가 진구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기가 꺼져 있다.
 
 
S#111. 중래의 자동차(자취방 건물 앞) / 밤
같은 시각 중래는? 아직 떠나지 않은 채 룸미러에 달린 십자가 앞에서 기도한다. 기도하는 모습이 심각하다. 어쩌면 눈물까지 흘릴지도.
 
 
S#112. 자취방 길거리 / 아침
수지가 학교에 간다. 중학생 두 명이 수지 옆을 지나간다. 한 명이 발걸음을 돌려 수지 얼굴을 보고 도망친다.
 
중학생   맞아! 크크.
 
수지가 이상한 눈으로 도망치는 중학생을 쳐다본다. 왜 저래?
 
 
S#113. 법대 전산실 / 낮
수지가 메신저를 켜서 진구가 있는지 확인한다. 진구가 메신저에 없다. 수지가 진구에게 메일을 보낸다. 책상에 올려놓은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수지가 문자를 확인한다.
 
메시지 내용
얼굴만예쁘면뭐해
몸이드러운걸
받은 날짜
10월27일 12:02PM
연락받을 번호
1111111
 
수지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누가 장난 치나?
 
 
S#114. 동아리실 앞 / 오후
동수가 음료수를 마시며 동아리실 문 앞에 서 있다.
 
 
S#115. 동아리실 / 오후
수지가 열쇠로 문을 열고 동수와 함께 안으로 들어온다.
 
동수   너 진짜 수업 있었던 거 아니지?
수지   예, 없어요.
동수   (책을 집어 들며) 내가 깜빡하고 책을 놓고 갔지 뭐야.
수지   아.
동수   수지야, 나 너한테 할 말 있다. 잠깐만 앉아 봐.
 
동수가 수지의 손목을 잡고 바닥에 같이 앉는다. 수지는 어리둥절.
 
수지   뭐, 뭔데요?
동수   너 밥 먹었어?
수지   아니요. 아직 안 먹었는데.
동수   그럼 내가 뭐 사줄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수지   아 저 집에 가 봐야 될 거 같아서. 다음에 먹으면 안 되요?
동수   (섭섭한 듯) 다음에? 그래? 그럼 너 나랑 사귈래?
수지   예?!
동수   나랑 사귀자.
수지   선배 술 마셨죠?
동수   어? 아니. 나 멀쩡해. 정상이야.
수지   저 남자 친구 있잖아요.
동수   헤어진 거 아니야? 헤어졌다던대.
수지   누가요?
동수   어? 누가 그러던데.
수지   (일어서며) 저 갈래요.
동수   (손을 붙잡고) 잠깐, 잠깐만.
수지   선배 갑자기 왜 이래요?
동수   너 진짜 예뻐.
수지   (손을 뿌리치고) 갈게요.
 
동수가 수지의 다리를 껴안고 늘어진다. 수지가 동수를 떼어 내려고 하다가 쓰러진다. 진득이 같은 동수.
 
동수   수지야, 넌 정말 예쁜 아이야. (수지가 발버둥 치자) 잠깐만 이러고 있을게.
수지   아흐 선배 왜 이래요. 다들 미쳤나 봐.
 
 
S#116. 학교 화장실 / 오후
동수가 대변 칸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옷 속에서 소주를 꺼내 들이켠다.
 
 
S#117. 진구네 아파트 / 오후
아파트 단지 전경.
 
 
S#118. 진구네 아파트 복도 / 오후
수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진구네 집 앞에 멈춰 선다. 초인종을 누를까 말까 고민. 수지가 창문으로 진구의 방을 들여다본다. 창문이 닫혀 있어 볼 수가 없다. 수지가 난간에 기대어 하늘을 본다.
 
 
S#119. 아파트 계단 / 오후
계단에 앉아 편지를 쓰는 수지.
 
 
S#120. 아파트 1층 / 오후
수지가 진구네 편지함에 편지를 넣고 간다.
 
 
S#121. 자취방 / 밤
수지가 침대에 누워 있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소리를 듣자마자 문을 열어주러 가는 수지.
 
수지   오빠? 오빠야?
 
밖에서 대답이 없다. 수지가 문을 열어 준다. 술에 취한 상권이 수지에게 쓰러진다. 수지가 상권을 부축하고 안으로 들인다.
 
수지   선배. 선배 괜찮아요?
 
수지가 상권을 침대에 눕힌다. 상권이 수지를 안고 같이 쓰러진다. 수지가 일어나려고 하자 상권이 수지를 덮친다.
 
수지   아흐 선배. 이것 좀.
상권   너도 기다려야 돼?
수지   네?
상권   너도 기다려야 주냐구.
수지   선배 취했어요.
상권   너도 나한테 관심 있지? 우리 서로 알잖아.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잖아.
수지   주리 언니한테 연락할게요. 일어나고 정신 차리자. 얼른.
상권   (수지의 목에 얼굴을 파묻으며) 주리는 안 준단 말이야.
수지   이러면 서로한테만 힘들어. 어서.
상권   한 번만. 한 번만 하고 원래처럼 지내자.
수지   우린 이러면 안 돼, 진짜. 선배까지 왜 이래?
상권   난 못 기다려.
 
상권이 수지의 옷을 벗기고 강간한다. 수지가 소리치고 저항하자 상권이 수지의 얼굴을 구타한다. 수지가 포기하고 체념한 듯 잠잠해진다. 상권이 강간을 끝내고 자취방을 나간다. 수지가 반쯤 벗겨진 팬티와 바지를 끌어올리고 이불을 덮는다.
 
 
S#122. 동아리실 / 오후
중래가 주기도문을 외고, 나머지는 묵도한다. 수지는 없다.
 
중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모두   아멘.
 
 
S#123. 고깃집 입구 / 저녁
중래, 동수, 상권, 주리, 은지, 경남이 고깃집에 들어간다.
 
중래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염소 고기 제일 맛있게 하는 집이야. 나만 믿어.
 
 
S#124. 고깃집 / 저녁
경남이 고기를 굽는다.
 
동수   아 뭐 소금 없나? 이거 쳐야 맛있는데 그래야 잘 익고.
중래   야 됐어. 무슨 소금이야. 그냥 먹어도 맛있어.
동수   다 안 익었어?
경남   좀 더 익혀야 될 것 같은데요.
 
염소 고기를 다 먹은 뒤 찌꺼기만 남은 불판.
 
동수   어우 나 아무것도 안 먹은 것 같아. 왜 이렇게 배가 고프냐.
은지   오빠가 제일 많이 먹었어요. 크크.
동수   1인분 더 시킬까? 2인분?
중래   니가 돈 다 낼래?
 
동수가 헛기침하고 입을 다문다.
 
 
S#125. 고깃집 입구 / 밤
비가 쏟아지고 천둥과 번개가 친다. 고깃집 지붕 아래 서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중래, 동수, 상권, 주리, 은지, 경남. 꼴이 처량하다.
 
 
S#126. 자취방 / 밤
Black 화면.
 
기계음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 주십시오. The dialed number is not in service. Please check the number, and try again.
 
수지가 휴대전화를 쥐고 침대에 앉아 엉엉 운다.
Black 화면.
 
 
S#127. 자취방 앞 / 밤
경남이 자취방 앞에 서 있다. 문이 열리고 수지가 얼굴을 내민다.
 
수지   (자다 깬 목소리) 왜?
 
 
S#128. 자취방 / 밤
수지   알았으니까. 다음에 얘기하자.
경남   내 맘이 어떤 줄 알아?
수지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경남   수지야, 너 그러면 안 돼. 안 된다고!
수지   (경남을 밀며) 가. 나가. 신고할 거야.
경남   (수지의 두 팔을 잡고) 정신 차려! 다 널 위해서야. 너 때문에 이러는 거라고.
수지   너 정말 미쳤구나? 이거 놔. 놓으라고!
경남   내가 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밤새도록 한숨도 못 잤다고!
수지   누가 걱정해 달래? 네가 내 남자 친구라도 돼?
경남   남자 친구? 그 새끼는 이제 그만 좀 잊으라고, 이 멍청아!
수지   네가 뭘 안다고? 착각하지 마. 나 네가 이러는 거 너무 웃기거든.
 
경남이 수지를 침대로 밀친다. 수지가 침대에 쓰러진다.
 
경남   (휴대전화를 꺼내며) 자, 봐! 보라고! (휴대전화 단추를 누르며 만지작거린다) 이게 웃겨? 웃기냐고! (휴대전화를 수지에게 던진다)
 
수지가 휴대전화를 본다. 휴대전화에 수지와 진구가 찍은 성관계 동영상이 나온다. 수지가 놀라서 말을 못 한다. 경남이 바닥에 무릎 꿇고 침대에 앉은 수지를 올려다본다. 수지는 충격을 받아 정신이 멍하다.
 
경남   수지야, 괜찮아. 이런 거 아무것도 아니야. 사람들 금방 잊을 거야. 인터넷에서만 그런 거지 실제로는 네가 누군지 모르잖아. 너 이런 거 때문에 나쁜 생각 하고 그러면 안 된다! 지금은 좀 힘들겠지만 시간이 가면 잊혀질 거야. 다 사라질 거라고. 내가 옆에 있을게. 다른 남자들이 집적거리지 못하게 내가 지켜줄게. 나 이런 거 신경 안 써. 그래도 너 사랑해. 내 맘 알지? (멍하니 있는 수지를 흔들며) 응?
수지   …….
경남   (수지를 안으며) 수지야.
수지   꺼져.
경남   응?
수지   꺼지라고.
경남   오해야. 나는 단지 알려주려고, 나는 아니야.
수지   다 똑같아.
 
수지가 일어나자 경남이 수지를 침대에 눕히려고 한다. 실랑이와 몸싸움이 벌어진다.
 
경남   (수지를 끌어안고) 사랑해. 사랑해, 수지야.
수지   (경남을 밀어내며) 아흐 제발 좀 꺼지라고 이 씨발 새끼야!
 
수지가 경남을 밀치는 데 성공한다.
 
경남   (수지의 뺨을 때린다) 이런 씨발!
수지   아! (맞고 경남을 노려본다)
경남   야, 너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야? 내가 이렇게까지 했으면. 이 씨발 걸레 같은 년아! 니가 그렇게 비싸? 그렇게 깨끗해?
수지   뭐?
경남   사람들이 너 보고 뭐라는 줄 알아? 배걸레래. 배걸레!
수지   이 미친 새끼. 내가 아무리 걸레라도 너한텐 안 줘. 다른 남자들한텐 줘도 너한텐 안 준다니까. 나 너 싫어. 나 너한테 관심 가져본 적도 없고 니 생각 해 본 적도 없거든? 니가 착한 척 순진한 척 잘해줄 때마다 정말 역겨워 죽을 것 같애. 니가 뭔데? 니가 내 애인이야? 나랑 사귀니? 제발 오바 좀 하지 마. 나는 뭐 아무나한테나 주는 줄 알아? 니가 아무리 매달려도 줄 일 없으니까 나한테서 좀 떨어져. 진짜 지겹다.
경남   이런 씨발!
 
경남이 수지의 목을 조른다.
 
화장실에 정돈되어 있는 새 수건들.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하얀 신발.
닫힌 창문.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바닥에 앉아 사과를 한입 베어 무는 경남.
 
 
S#129. 자취방 동네 길가 / 밤
공허하고 흑암(黑暗)이 깊은 밤. 한쪽은 보도(步道)고 다른 쪽은 차도다. 차도에는 차가 없고 보도에는 사람이 없다. 붉은색 십자가가 꽂힌 교회가 보인다. 경남이 택시를 기다린다. 멀리서 들리는 소방차 사이렌 소리.
 
 

수상소감 심우수(법04)
기쁘고 부끄럽습니다. 상을 타고 돈을 받아서 기쁘고, 후지고 망측한 글을 보여서 부끄럽습니다.
기쁨과 감사를 전하고픈 은사님이 계십니다. 작가란 무엇인지, 영화란 무엇인지, 스토리텔링이란 무엇인지 깨우쳐주신 분. “예술은 정신에 말을 거는 행위다.”라는 말,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글을 받아준 성대신문과 글을 심사해주신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