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및 시나리오 가작] 자기만의 방
[희곡 및 시나리오 가작] 자기만의 방
  • 성대신문
  • 승인 2010.12.02 11:24
  • 호수 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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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윤(영문03)
 
#1. 어느 주택 옥상 / 밤
 
검은 화면. 잔잔한 음악이 깔리기 시작하더니
 
           (v.o.)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줍니다.’
           한때 어느 회사의 광고문구였다. 이 잔혹한 문장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난 어떤 사람일까.
 
전형적인 고시원의 복도가 보이고, 경수가 여행용 가방을 들고 복도 안쪽으로 걸어간다.
 
           (v.o.) 대학에 합격한 후, 서울에 올라와 처음 머문 곳은 고시원이었다.
 
관처럼 좁은 고시원 방.
 
           (v.o)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싶었다.  
 
침대위에서 새우잠을 자는 경수.
 
           (v.o.) 밤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옆방 남자의 떠드는 입이 보인다.
 
           (v.o.) 오른쪽 방 남자의 여자친구가 그날 저녁 뭘 먹었는지 알 수 있었고. 
 
다리를 떨고 있는 왼쪽 방 여자의 모습에 이어 큰 방구소리가 들린다.
 
           (v.o.) 그때 이후로 다리 떠는 사람이 싫어졌다.
           여자의 방구소리도 저렇게 당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다시 침대위에 누워 있는 경수의 모습.
 
           (v.o.) 나는 내가 두더지 같다고 생각했다. 고시원은 두더지 굴.
           어두워지면 좁은 곳에 웅크려 잠을 청할 뿐. 그곳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방청소하는 경수의 손과 걸레가 보인다.
 
           (v.o.) 일 년 후, 다행히 난 두더지 굴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걸레질을 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공간이었지만, 혼자는 아니었다.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는 동거남의 뒷모습을 경수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v.o.) 지금 같이 사는 은규형이다. 형이 집에서 하는 유일한 행위는 잠자기와 게임하기다.
 
어두운 방안에 어슴푸레 모니터 불빛이 경수의 얼굴을 비추고, 작게 게임 소리가 들려온다.
 
           (v.o.) 난 문득 저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곧 내가 소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담배를 태우고 있는 경수. 담뱃불을 끄고 옥상에서 방으로 걸어 내려온다.
 
           (v.o.) 내일이면 더 이상, 은규형의 뒤통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자취생활.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을 그런 소중한 공간.
 
타이틀이 뜬다.
‘자기만의 방’
 
#2. 경수의 하숙집 / 밤
 
경수는 조용히 두루마리 화장지를 챙기고, 헤드셋을 착용 후, 컴퓨터에 앉아 야동을 본다. 점점 몰입하는 경수. 손의 움직임은 조금씩 빨라지고 절정에 다다르기 시작한다.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집중하는 경수. 온신경이 컴퓨터 모니터에 집중해있다. 오르가슴에 막 오르려는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동영상을 정지시키고 추리닝 바지를 치켜 올린다. 그때 등장하는 은규.
 
           은규     어유, 방이 왜 이리 덥냐? (능글맞게 웃으며) 너........ 딸쳤지?
 
은규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잠시 멍해있던 경수, 갑자기 정색하며 큰 목소리로 대답한다. 
          
           경수     예? 아뇨~ (웃음) 모기 땜에 문을 닫아놔서 그래요. 
 
웃고 있지만 표정이 영 어색하다.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여는 경수.
 
           은규     그래? (머리를 긁적거리며) 아니면 아니지, 뭘 그렇게 정색을 하냐?
                        하하!  괜찮아, 임마~! 하하!
 
경수의 어깨를 툭툭치는 동거남.
 
           경수     ...(실없이 웃는다)  
 
다시 컴퓨터에 앉아서 인터넷을 하는 경수,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어쩌면 슬퍼 보이는 표정 같기도 하다. 
 
           (v.o.) 며칠만 참자. 
 
#3. 경수의 자취방 / 낮
 
방금 이사를 마친 듯, 좁은 방 구석구석에 많지 않은 박스가 쌓여 있다. 방은 전형적인 원룸으로, 현관 쪽에는 주방이 있고 안쪽 침대를 제외한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경수는 짐을 정리하고 영철은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영철     미영이는?
           경수     아, 스터디땜에 저녁에 온데.
           영철     요즘 너네 둘을 보면, 연인사이가 맞나 싶다. 걘 하는 게 왜 그렇게 많냐?
                        스터디만 몇 개씩 하구.
           경수     취업준비가 다 그렇지 뭐.
           영철     너 섹스 안한지 오래 됐지?
           경수     (얼굴을 붉히며) 그치...
 
영철 갑자기 일어선다.
 
           영철     그럴 줄 알았지, 내가. 얼굴에 다~ 써있네. (웃으며) 욕구불만.
 
경수 그저 웃는다.
 
           영철     요새 내가 프로이트 이론에 빠져있는데, 들어봐. 사람은 누구나 일정량의 성적
                        에너지를 갖고 있어. 이 성적에너지를 섹스나 뭐 그게 아니더라도 자위 같은 걸
                        통해서 풀어야 사람은 행복감을 느끼는 거지. (하던 일을 멈추고 이야기에 집중
                        하는 경수)  그런데 이 빌어먹을 사회가 네가 행복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거지. (자신의 사타구니를 가리키며) 사회는 너의 충만한 성적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가져다 쓰는 거야. 즉 성적에너지를 노동력으로 환원시키는 거지. 이
                        거대한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끊임없는 노동이 필요하잖아.
                        우리는 아직 학생이니까... 우리의 노동은 공부겠지, 뭐. 평생 공부하고 일하느라
                        우리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거야, 아마.
 
           경수     (호기심에 찬 얼굴로) 그럴듯한데?
           영철     그치? 그래도 넌 이제 좋아질거야.
           경수     ...(의아해하며) 왜?
           영철     응용을 해야지, 임마. 넌 이미 여자친구도 있고, 이제 자취도 하겠다.
                        금상첨화지. 앞으로 너의 성적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하도록!
           경수     그런가? (조금씩 밝아지는 표정)
 
cut to
 
바닥에서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는 두 사람. 그들 옆에 고량주병도 눈에 띈다. 건배하는 경수와 영철.
          
           경수     술 마시기에 시간이 너무 이르지 않나?
           영철     잔소리말고, 마셔! 이럴 때 한 잔 하는 거야, 임마.
 
cut to
 
비어 있는 고량주병과 소주 두 병이 보인다. 꽤 취한 경수와 영철.
 
           영철     컴퓨터 설치 다 됐지?
           경수     응.
 
영철은 컴퓨터 쪽으로 향한다. 곧 음악을 재생한다. 70,80년대의 신나는 디스코 음악이 흘러나온다. 음악소리에 천천히 몸을 움직이는 영철. 움직임이 우스꽝스럽다.
 
           영철     볼륨 업, 볼륨 업.
 
어리둥절한 표정의 경수.
 
           영철     볼륨 업, 플리즈, 임마! 플리즈!
           경수     시끄럽지 않을까?
           영철     아직 낮이니까 괜찮아.
 
볼륨을 올리는 경수. 영철의 춤이 점점 더 격해진다. 우스꽝스러움에 더해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영철     야, 같이 추자.
 
머뭇거리는 경수.
 
           영철     빨리. 우리 밖에 없어, 임마.
 
경수 머뭇거리다 조금씩 몸을 움직인다. 그런 경수를 보고 웃는 영철. 두 사람 얼마 지나지 않아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영철     더워, 더워!
 
셔츠를 벗고 계속 춤을 추는 영철. 그때 한 남자가 경수의 방으로 다가와 문을 두드린다. 큰 음악소리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두 사람. 남자는 한 번 더 문을 두드려 보고 반응이 없자, 문을 열어본다. 잠기지 않은 문. 남자가 방으로 들어선다. 남자 둘이서 미친 듯 춤추고 있는 장면에 넋이 나간 듯 바라본다. 더구나 셔츠까지 벗고 있는 영철의 모습. 경수는 남자를 보고 춤을 멈추지만 영철은 꽤 심취해 있는지 계속 몸을 흔들고 있다. 이에 경수는 음악을 끈다.
 
           경수     누구세요?
 
문 밖에는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많지 않은 머리는 이대팔로 가르마를 이루고 있고, 이마는 심하게 반짝거린다. 왠지 모르게 능글맞은 웃음을 짓는 중년남성.
 
           집주인   아, 나 이 집 주인입니다~
           경수     아, 예...
  
신발을 신은채로 방으로 들어서는 집주인. 그런 집주인의 신발을 바라보는 경수, 무슨 말인가 하려하지만 이내 마음속으로 삼킨다.
 
           집주인   아무리 낮이지만, 너무 커, 학생
           경수     죄송합니다.
           경수     예...... (웃음) 근데, 저기 신발....
           집주인   아!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네.
 
신발을 벗어놓고 다시 집에 들어서는 집주인.
 
           집주인   아, 다름이 아니고, 여기 살면서 학생이 지켜야 할 게 있는데 말야, 좀 부탁
                          좀 하려구 왔지~
           경수     아, 예...
           집주인   화장실 변기에다가 똥만 싸고, 다른 건 넣으면 안 돼~
 
묵묵히 이야기를 듣는 경수. 
 
           집주인   저번에 살던 여학생이 그 뭐냐, 매번 휴지를 변기에다 버려서, 몇 번이나 막혔
                          다구. 그래 놓구서 나한테 전화하면 어떡하냐고 하면 내가 뭘 어째? 내가 해 줄
                          수 있는게 없단 말이지~ 
           경수           (억지로 웃으며) 아, 예...
           집주인   어쨌든, 변기에다가 뭐 넣으면 안 돼~ 학생은 여자친구 있나? 
           경수     예.
           집주인   앞으로 자주 놀러오고 그럴 테니까 내가 미리 얘기하는 건데, 특히 생리대
                          변기에 넣으면 절대 안돼~ 그거 뚫으려면 사람 불러야 한다구. 알겠지, 학생?
           경수     예.
           집주인   여자친구한테도 말해주고.
           경수     예.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는 집주인.
 
           집주인   하던 거 계속 해요. 소리는 줄이고!
 
집주인이 나가고 난 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경수와 영철.
 
#4. 자취방 / 저녁
 
자취방을 돌며, 여러 가지 소품들로 방안을 꾸며보는 경수. 방 안에 몇 장의 영화포스터를 붙인다. 그때 초인종이 울리며 미영이 들어온다.
 
미영 작은 화분을 내밀며,
 
           미영     선물.
           경수     어?! (받으며) 고마워.
           미영     (집안을 둘러보며) 많이 정리했네?
           경수     응, 영철이 덕분에. 배고프지?
           미영     조금? 나 얼른 과제해야해. 내일까진데 시작도 못했어.
 
미영 침대에 앉아서 주섬주섬 노트북을 꺼낸다. 
 
           경수     이사 왔는데, 떡이라도 돌려야 하는 건가?
 
경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울리는 전화벨.
 
           미영     여보세요? (사이) 예. (사이) 아, 그거 내일까지 완성해서 카페에 올릴게요.
                     (사이) 네.
 
경수 영미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cut to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경수와 침대 위에서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고 있는 미영.
 
           경수     끊임없이 공부하고 일하고, 그래서 우리는 결코 행복해지기 힘든 거지.
 
뭔가에 집중한 듯 몇 초 동안 대답이 없는 미영.
 
           미영     응?
           경수     안 듣고 있었어?
           미영     아.. 이거 좀 하느라... 미안.
           경수     (웃으며) 아냐, 얼른 해.
 
경수, 사람 좋게 웃지만 곧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cut to
 
밤은 더욱 깊어지고, 침대위에서 섹스를 하는 두 사람. 동물적인 움직임으로 미영의 위에서 몸을 움직이는 경수와 달리, 미영은 집중하지 못하고, 뭔가 불안함을 느낀다. 누군가 1층인 경수의 자취방 창으로 안을 훔쳐보고 있다. 아직 경수와 미영은 알아채지 못한 듯.
 
그 때, 카메라 셔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에 깜짝 놀라 경수를 밀어내는 미영. 경수도 이상한 낌새를 채고 소리치지만 당황한 듯하다.
 
           경수     누구야?
           미영     나가 봐.
 
밖의 검은 물체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우물쭈물하다가 밖으로 뛰어 가는 경수. 복도를 거쳐 밖으로 나가보지만 이미 아무도 없다. 황망한 표정의 경수. 곧 방으로 되돌아온다. 미영 옷을 입고 있다.
 
           경수     (사이) 혹시 얼굴이나 뭐 입었는지 봤어?
           미영     ...... (고개를 흔들며) 순식간이라.... 연두색 후드티 입은 거 밖에 안보였어.
           경수     연두색 후드티?
           미영     응...
 
가방을 챙기는 미영을 보고
 
           경수     가려고?
           미영     응. 여기 못 있겠어. 기분 나빠.
           경수     조금만 더 있다가.
           미영     싫어.
           경수     우리 영화도 보기로 했잖아.
           미영     나 그냥 갈래.
 
미영 서슴없이 나가고, 경수 우두커니 침대에 앉는다. 허망한 표정의 경수.
 
#5. 자취방 / 새벽
 
침대에 누워 있는 경수,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다. 잠이 오지 않는 듯 이리저리 뒤척여본다.
그때 울리는 핸드폰 진동 소리. 경수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을 집는다. 핸드폰을 살피지만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핸드폰 진동. 경수는 의아해 하다 그 소리의 원인지를 찾는다. 이리저리 살펴보다 침대 바로 옆 벽에 귀를 대는 경수. 진동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옆방에서 전화를 받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통화를 하는 목소리가 꽤 선명하게 들린다. 복잡한 표정의 경수. 한숨을 쉬며 자리에 누워보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cut to(시간 경과)
 
간신히 잠든 경수, 옆방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잠을 깬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최신가요에 경수는 이불을 뒤집어 써보지만 더운지 이내 이불 밖으로 머리를 내민다.
 
#6. 자취방 복도 / 아침
 
초췌한 얼굴로 밖을 나서는 경수, 문을 잠그고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옆집에서 한 여자가 나온다. 잠시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걸음을 떼는 경수. 이미 여자는 밖으로 사라지고 현관을 여는 순간, 문이 끝까지 열리지 않고 쿵하는 소리가 난다. 당황한 경수는 문을 반대로 당겨서 연다. 문 바로 앞에 옆집 여자가 서 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머리를 감싸고 있고, 그 앞에는 한 남자가 경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경수     괜찮으세요?
 
경수를 신경 쓰지 않고 남자는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남자     괜찮아?
                     (경수를 쳐다보며) 문을 그렇게 갑자기 열면 어떡해요?
 
           경수     (고개를 살짝 숙이며) 죄송합니다.
 
남자는 대꾸하지 않고 여자의 머리를 살피고 있다.
 
           남자     어디 피나는 거 아냐? 봐봐.
 
경수, 다시 한 번 고개를 살짝 숙이고 그들에게서 벗어난다.    
 
#7. 학교 어딘가 / 아침
 
학교 밖의 경치가 한 눈에 보이는 높은 곳, 경수와 영철이 나란히 서서 담배를 물고 있다.
 
           영철     곧 있으면 인터넷에 사진이랑 동영상 돌아다니겠네?! (웃음) 딸칠려고 야동
                        다운 받았는데 너네 커플이면 어쩌냐? 하하
           경수     좋아? 그만해, 피곤하다.
           영철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그러니까, 단서가 하나뿐이란 말이지? 연두색 후드티?
           경수     응, 어두워서...... 순식간에 사라지더라.
           영철     흠....... (사이) 내 생각에 범인은 근처에 사는 사람일 확률이 높아. 저녁에 편한
                        복장으로 담배나 한 대 피러 나왔든지, 아님 슈퍼라도 갔다 오는 길에 뭔가
                        야릇한 소리를 들은 거지. 가까이 가 보니, 이게 웬 횡재냐! 혼자만 보기 얼마나
                        아까웠겠냐?!
 
멍한 표정으로 영철의 이야기를 듣는 경수.
 
           영철     그리고 범인은 현장을 다시 나타날 확률이 높아. 야, 나 같아도 계속 얼씬거리              겠다. 그만한 구경이 어디 있냐.
 
초점 없는 경수의 눈,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8. 학교 컴퓨터실 / 오후  
 
경수는 컴퓨터로 한 기업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차분한 손놀림으로 로그인을 하는 경수. 모니터엔 그가 서류전형에 합격하지 못했다는 분명한 메시지가 보인다. 뚫어져라 모니터를 응시하는 경수.
 
#9. 골목길 / 오후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걷는 경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어느덧 집 앞에 도착한다. 그런데 자신의 방 창문 앞에 누군가 어슬렁거리는 것이 보인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경수.
 
           경수     누구...세요?
 
경수의 말에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경수는 순간 당황하지만 그를 쫓아간다. 골목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는 두 사람. 둘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경수     저기요! 잠깐만요.
 
갑자기 속력을 내는 남자, 그들이 달리는 골목 끌에서 큰길 방향으로 꺾는다. 경수도 그를 따라 큰길에 들어서지만 이미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경수. 한참동안 남자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린다.
 
#10. 자취방 / 오후
 
방에 들어선 경수. 방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화분에 정성스레 물을 준다. 자신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이리저리 꾸며보는 경수, 벽에 영화포스터도 붙이고, 책장도 정리한다. 그리고는 기타를 꺼내 서툴게 코드를 잡아가며 노래를 불러본다. 쿵쿵쿵. 누군가 방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
 
           경수     누구세요?
   
밖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다. 잠깐의 정막 후, 다시 쿵쿵. 경수 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경수     (더 크게) 누구세요?
           문밖     집주인입니다.(off)
           경수     아, 예...
 
경수, 문을 열어준다. 한 쪽 손에 검은 비닐봉투를 들고 있는 집주인.   
 
           집주인   뭔 악기소리가 들리던데...
 
침대 앞에 놓여 있는 기타를 바라보는 집주인.
 
           집주인   학생 여기서 기타치면 안 돼~       경수     아, 그런가요? 하하...
           집주인   예전에~ 밤중에 누가 첼론가 뭔가 연주해가지고 시끄럽다고 나한테 전화하고,
                          결국 여기 주민들끼리 삿대질하고 싸우고 난리도 아니었어.
           경수     예...... (웃음)
           집주인   다름이 아니고, (검은 비닐봉투를 들며) 이거. 이거 학생이 버린 건가?
           경수     아뇨.
           집주인   진짜 아냐?
           경수     아닌데요.
           집주인   항상 얘기해도 누가 자꾸 이렇게 버려. 규격봉투에 담아서 버려야지, 이거.                            그거 몇 십 원 아끼겠다고, 참 나.                     
 
나가려던 집주인,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돌아서며
 
           집주인   그리구 말야, 제발~ 제때 제때에 월세 넣어 주고,   
                     저번 학생은 꼭 내가 통보를 해야 넣드라구~ 
           경수     (사람 좋게 웃으며) 예... 걱정마세요.
           집주인   뭐 불편한 건 없고?
           경수     방음이 좀 안 되는 거 같던데요.
           집주인   그래도 이만한 집이 없어. 봐봐. 뭐 없는 게 없잖아. 침대,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이런 방 구하기가 쉽지 않아~ 가격도 이만하면 괜찮지~ 나중에 나갈
                          때 물품에 이상 있으면 다 물어줘야 하니까 조심해서 써야 돼~ 여기서 살던
                          학생들 다 잘됐어. 전에 살던 여학생은 구급 공무원 합격해서 나갔잖아. 학생도
                          여기서 공무원 시험 준비하면 잘 될 거야.
 
문 밖으로 나가는 주인, 문을 닫으려다
 
           주인     월세 납부는 23일인 거 알지, 학생?
           경수     예.
           집주인   관리비 3만원 잊으면 안 되고. 사람들이 꼭 몇 번 씩 빼먹어서 전화하게
                          만든다니까. 
           경수     예. (허리 숙여 인사하며) 안녕히 가세요.
 
집주인 나가면서 문을 꽝 닫는다. 갑자기 큰 소리에 경수는 깜짝 놀라고, 어이 없이 문 쪽을 바라본다.
 
#11. 어느 술집 / 밤
 
동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작은 규모의 선술집. 네모난 테이블에 경수와 영철이 마주보고 앉아있다.
 
           영철     야, 그 정도로 잠을 못잘 정도였으면 너도 대응을 해야지, 임마.
           경수     (별 수 없다는 듯)어떻게?
           영철     흠...... 넌 음악 말고, 좆나 끝내주는 야동을 볼륨 이빠이 올려서 틀어놔.
                     아앙, 앙. 아아앙. 모또, 모또. 야메떼 구다사이. 아아앙, 아. 아.
 
진지한 표정으로 포르노 배우 흉내를 내는 영철.
 
           경수     (웃으며) 그러다 오히려 신고당할라.
           영철     이에는 눈, 눈에는 이. 나의 방식이지. 가만히 있지 마. 가만히 있으면
                        개새끼들은 괜찮은 줄 알고, 계속 깔아뭉갠다구.
 
경수, 영철에 말에 대꾸 없이 웃을 뿐이다.
 
           경수     조금 더 지켜봐야지 뭐. 집을 잘못 골랐나봐
 
cut to(시간경과)
 
테이블 위에는 몇 가지의 안주와 소주 3병이 놓여있다. 영철은 술에 꽤 취했는지 얼굴이 상기되어 있고 턱을 괴고 있다.
 
           영철     (살짝 꼬인 혀로) 너, 경수. 이 새끼야. 넌 행복한 거야, 임마. 여자 친구도 있고
                        이제 니 방도 있겠다. 부럽다~ 짜식!
           경수     부럽긴... (술잔을 빼앗으며) 야, 너 이제 그만 먹어라. 술도 못하는 놈이.
           영철     너 내 이상형 알지?
           경수     (피식 웃으며) 알지~ 자취하는 여대생
           영철     그래, 임마. 자취하는 여대생이 완벽한데 말야. 나중에 여자친구 생겼는데
                        고시원에서 놀 순 없잖냐. 씨발, 모텔갈 돈도 없고.
           영철     경수야, 나 고시원 4년차다, 4년. 씨발. 고시원에 처음 들어간 날에 누웠는데,
                        이건 마치 관에 누워 있는 기분인거야. 정말 한동안은 미치는 줄 알았다. 근데,
                        엿같은게 뭔지 알아? 지금은 너무 익숙해. 그게 무서워. (사이) 그 좁은 방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결국엔, 씨발, 내가 가진 전부가 돼 버릴까봐.
 
생전 처음 보는 영철의 진지한 모습에 경수는 조금 당황한 표정이다.
 
#12. 골목길 / 새벽
 
어두운 골목길 구석에서 토하는 영철. 그리고 경수는 그의 등을 두드려준다. 일을 마치고 자리를 뜨려는 두 사람.
 
           경수     가자. 고시원까지 데려다 줄게.
           영철     나 집에 가기 싫어어. 씨발, 집 같지가 않아. 먹을 것도 없고, 아무도 없어.
                        오늘 니네 집에 가자.
           경수     알았어, 가, 가.
 
두 사람 비틀비틀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13. 자취방 / 새벽
 
영철을 눕히고 경수도 그 옆에 눕는다. 잠을 청하는 경수. 둘의 숨소리만이 가득한 공간속에 옆방의 소음이 섞여 들어온다. 뭔가 떠드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원초적인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고조되는 소리. 경수 갑자기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14. 집 앞 / 새벽
 
집 현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 미영에게 전화를 거는 경수.
 
           미영(off)           여보세요.
           경수                안 잤어?
           미영(off)           잤어. 시간이 몇 신데. 술 먹었어?
           경수                응, 조금.
           미영(off)           밖인가봐?
           경수                응
           미영(off)           얼른 들어가. 춥잖아.
           경수                미영아.
           미영(off)           응?
           경수                ......
           미영(off)           여보세요?
           경수                미영아.
           미영(off)           말해.
           경수                나 외로워.
           미영(off)           ......
           경수                나 외롭다구.
           미영(off)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얼른 들어가.
           경수                ......
           미영(off)           내일 봐, 우리. 나 피곤해.
           경수                미영아......
           미영(off)           잘자구. 내일 연락할게.
 
통화가 끊긴 후, 경수는 전화기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15. 자취방 / 새벽
 
방으로 다시 들어온 경수. 영철의 코고는 소리가 낮게 들린다. 경수 자리에 눕는다. 이번엔 옆방에서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린다. 몸을 뒤집어 베개 속으로 얼굴을 파묻는 경수.
 
#16. 자취방 / 늦은 아침
 
따사로운 햇살이 누워 있는 경수의 뺨에 짙게 묻어있다. 경수는 곧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 물을 마신다. 그리고는 책상위에 있는 쪽지를 한 장 발견한다. 영철이 ‘고맙다’라고 남기고 간 것. 잠시 뭔가 생각하는 경수. 책상에 앉아 쪽지를 쓰기 시작한다.
 
‘옆방 사람입니다. 어젯밤 음악 볼륨소리가 너무 커서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셔서 볼륨을 낮춰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cut to
 
방을 나서는 경수 아까 써둔 쪽지를 옆방 문에 붙인다.
 
#17. 학교 강의실 / 오전
 
수업시간, 강의는 한창 진행 중. 모두들 수업에 집중하고 있지만, 경수는 한쪽 구석에서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고 있다.
 
#18. 교정 / 오후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는 경수. 누군가 지나가다 알은체를 한다.
 
           승진     어, 경수 오랜만이다.
           경수     어, 그래.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승진     응. 요새 바빠서 정신이 없다. 잘 지내지?
           경수     뭐, 그냥. 하하.
           승진     피곤해 보인다, 너. (시계를 보고) 나 가봐야겠다. 조만간 밥 한 번 먹자.
           경수     그래. 가아.
 
#19. 커피숍 / 오후
 
미영과 경수가 한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아있다. 미영은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고, 경수는 책을 보고 있다. 한 남자가 그들 옆을 지나가다 실수로 들고 있던 커피를 경수의 바지위에 쏟는다.
 
           남자     아, 죄송합니다.    
 
냅킨을 건네는 미영
 
           경수     (웃으며) 괜찮아요.
 
바지를 닦는 경수
 
           남자     정말 죄송해요, 제가 세탁비 드릴게요.
           경수     (웃으며)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남자     아뇨, (지갑을 꺼내며) 정말 죄송해서 그러는데 세탁비 드릴게요.          
           경수     정말 괜찮아요. 어차피 빨려고 했던 건데요. 진짜 괜찮아요.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미영. 남자 다시 한 번 사과하고 사라진다.
 
           미영     뭐가 괜찮아.
           경수     응?
           미영     뭐가 괜찮아. 세탁비 받아야지.
           경수     뭘 받아. 괜찮아.
                     경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미영.
 
#20. 자취방 / 저녁
 
컴퓨터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는 경수. 옆방에서 들려오는 큰 음악소리 속에 집중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 반복한다. 경수는 결국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간다.    
#21. 자취방 복도 / 저녁
 
경수는 옆방의 문을 두드린다. 반응이 없다. 조금 더 크게 두드린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온다.
 
           남자     누구세요?
           경수     저기, 옆방 사는 사람인데요. 죄송한데,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요. 조금만 줄여주시                    면 안 될까요?
           남자     아, 예.
 
남자는 순순히 대답하지만 표정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경수     감사합니다.
 
문을 쾅 닫는 남자. 경수는 남자의 반응에 문 앞에 잠시 서 있다가 곧 발길을 돌린다.
 
#22. 자취방 / 저녁
 
경수는 책상에 다시 앉아 하던 일을 계속 하려하지만 옆방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는 변함이 없다. 얼굴을 감싸 쥐는 경수. 
 
#23. 자취방 / 밤 
 
경수의 방에 미영이 찾아온다.
 
           경수     왔어?
           미영     잠깐 들렀어.
           경수     밥은?
           미영     점심을 늦게 먹었어. 
           경수     배 안고파? 뭐 좀 줄까?
 
침대에 눕는 미영.
 
           미영     아니.
 
cut to (시간경과)
 
침대에 나란히 누워 영화를 보는 두 사람. 경수가 미영에게 키스한다. 잠시 키스를 하던 두 사람의 숨이 가빠지는 순간, 경수를 밀어내는 미영.
 
           경수     왜?
 
미영 창문 쪽을 힐끗 쳐다본다.
 
           미영     불안해.
 
경수도 창문 쪽을 한 번 본 후
 
           경수     문 닫혔어.
 
미영을 다시 안으려는 경수. 하지만 미영은 그의 손길을 거부한다.
 
           미영     그래도 불안해.                
 
미영 시계를 본 후, 일어나면서
 
           미영     나 가야될 거 같아.
           경수     영화도 아직 안 끝났는데?
           미영     약속 있어.
           경수     이 시간에 무슨 약속이야.
           미영     친구들 만나기로 했어.
           경수     조금만 더 있다가
           미영     늦었어.
           경수     조금만 더 있다가라, 응?
           미영     안 돼.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옷을 입는 미영. 그런 그녀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는 경수.
 
           경수     (혼잣말로) 뭐가 그렇게 바빠.
 
신발을 신다가 경수를 쳐다보는 미영.
 
           미영     뭐라고?
           경수    (큰소리로) 뭐가 그렇게 바빠! 오랜만에 같이 시간 보내는 거잖아. 뭐가 그렇게 바                    빠!
           미영     왜 갑자기 큰 소리야. 그래서 잠깐 들렀다고 했잖아. 
 
미영의 손목을 잡는다.
 
           경수     가지마. 너 항상 이렇게 가고나면 내 기분이 어떤지 알아?
 
미영을 바라보는 경수. 두 사람 한 동안 말이 없다. 미영은 경수의 손을 살짝 뿌리치며
 
           미영     나 피곤해. 갈래. 
 
미영이 나가고 경수는 허망한 표정으로 방에 서있다. 침대에 눕는 경수. 잠시 뭔가 생각하다 휴대전화를 챙겨서 밖으로 나간다.
                    
#24. 원룸 건물 현관 / 밤
 
경수는 미영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받지 않는다. 그때 누군가 그를 지나쳐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옆집 남자다. 남자를 보는 경수. 남자는 연두색 후드티를 입고 있다. 경수의 시선이 그의 뒷모습을 느리게 훑는다. 전화기에서는 미영의 ‘여보세요?’ 소리가 여러 번 들리지만 경수는 전화기를 닫는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 골목 구석에 있는 벽돌을 집어 든다. 벽돌을 들고 경수방 옆집 창문 앞에 서는 경수. 무표정하지만 결의에 찬 그의 얼굴. 경수는 큰 동작으로 몸을 젖힌 후, 벽돌을 있는 힘껏 창문을 향해서 던진다.
 
벽돌은 아주 느리게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벽돌은 천천히 창문을 향해서 날아가지만 시간은 멈춘 듯하다.
 
곧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사람이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남자     어떤 새끼야?
 
경수는 그 자리에 박힌 듯 꼼짝하지 않고 서 있다.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경수. 기세등등하게 나오던 모습과는 달리 경수에게 아무 말 하지 못한다. 오히려 경수의 시선을 피하는 옆집남자. 경수는 남자를 한참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 걸어간다. 멀리 사라지는 경수.
 
#25. 자취방 / 밤 
 
침대에 손을 머리 뒤로 한 채 누워있는 경수의 모습이 직부감으로 보인다.
 
           (v.o.) 그 후로, 삼 개월이 지났다. 이렇게 누워 있으면 가끔 그때가 떠오른다.
 
벽돌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24의 장면과 그 벽돌을 바라보는 경수의 모습. 
 
           (v.o.) 허공을 가르는 벽돌. 그 찰나의 순간. 그 후에 내 삶에 일어난 변화.
 
경수의 자취방에서 무엇인가 작업을 하는 미영과 그를 바라보는 경수.
 
           (v.o.) 미영이는 여전히 바빴다. 나는 벽돌을 던진 것처럼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우리        는 어쩔 수 없는 우리 사이의 침묵과 무관심을 견디기 힘들었다. 미영이는 덤덤하게 이별을       받아들였다. 
            
침대 위에서 아이같이 웅크리고 누워 우는 경수.
 
           (v.o.) 생각보다 이별은 아팠다.
 
어떤 손이 경수 방문을 힘껏 두드린다.
 
           (v.o.) 바뀌지 않은 것도 있었다. 가끔 찾아오는 주인아저씨는 여전히 불편했고,
 
방에 누워 있는 경수의 모습.
 
           (v.o) 옆방 커플도 여전했다. 듣기 싫은 가요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의 뜨거운        사랑까지 뭐라고 할 순 없었다. 어떤 것보다 솔직한 저 소리.
 
경수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영철.
 
           (v.o) 영철이도 여전하다. 자취하는 여자친구는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유쾌한       녀석. 
 
경수의 방에서 술에 취해 춤을 추는 경수와 영철.
 
           (v.o.) 가끔 우리는 낮에 고량주를 마시고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아무 생각 없이.
 
영철을 부축해서 침대에 눕히는 경수(밤). 그리고 자신도 옆에 눕는다.
 
           (v.o.) 그리고 가끔 우리 집에서 함께 잠을 잤다.
 
곧 일어나는 경수, 밖으로 나간다. 곧 번화한 거리가 나오고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는 경수.
 
           (v.o.) 수많은 사람들. 가끔은 생각한다, 모두 어디서 살고 있을까.
 
끝.  
 

 

수상소감 최기윤(영문03)
서울의 삶은 팍팍하다. 많은 이들이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도시로 몰려들지만 정작 그들에게 주어지는 공간은 방음이 되지 않는 좁은 방이 대부분이다. ‘자기만의 방’은 그들 중 하나인 경수의 이야기이다. 나는 서울에 올라와 생활하면서 수많은 경수를 보았다. 경수는 절친한 내 친구이기도 했고, 한때는 내 자신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경수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순간의 나는, 미안하게도, 따뜻하고 은밀한 ‘나만의 방’에서 소감문을 쓰고 있다. 아주 가끔은,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서고 싶지 않지만, 그 곳에는 어쩔 수 없는 내 흔적들이 날 기다리고 있다.
본 단편을 완성했을 때 성심껏 읽어준 모든 이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하게 뒤에서 지켜봐주시는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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