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내 7개 대학 모여 발족… 기본권 침해 헌법 소원 준비 중

기자명 양명지 기자 (ymj1657@skkuw.com)

지난해 11월,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는 학과 구조조정 문제를 다루며 총장과 두산그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배포 3시간 만에 강제 수거 당했을 뿐 아니라 예산 지원도 중단됐다. 이에 『중앙문화』측은 학생과 교수들의 모금을 통해 기업식 학과 구조조정을 비판하는 내용의 무제호 특별판을 발행하려 했으나, 학칙 제65조 ‘학생단체 혹은 학생의 모든 정기, 부정기 간행물은 지도교수의 추천과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발행불가를 통보받았다. 중앙대 학칙에는 이를 위반하면 소속대학 교수의 심의·의결을 거쳐 △근신 △무기정학 △유기정학 △퇴학 등의 징계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학생들은 이 같은 비민주적 학칙과 불합리한 학교의 처사에 반발했지만 여전히 예산 지원은 중단된 상태고 교지 발행 역시 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앙대의 학칙을 두고 ‘헌법 위의 학칙’이라며 비판을 가하고 있다.

비민주적 학칙 개정 위해 한데 힘 모아

이러한 비민주적 학칙에 반발해 올해 상반기 숙명여대에 이어 하반기에는 이화여대와 중앙대에서 내부적으로 학칙 개정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세 학교 모두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에 대학생들은 각 학교의 개별적인 움직임만으로는 대학 사회의 견고한 틀을 이루고 있는 학칙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 한데 힘을 모았다. 이것이 △고려대 △국민대 △덕성여대 △숙명여대 등 서울 내 7개 대학이 모여 만든 ‘대학학칙개정운동(이하: 개정운동)’의 시작이다.
이 운동의 모태는 지난 2008년 만들어진 연합 동아리 ‘인권 더하기 법률’로 학생 개개인의 인권 침해 사례를 수집해 피해자들을 도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들은 대학 사회 전반의 구조 변화가 더 중요함을 깨닫고, 비민주적 학칙 개정을 시작으로 공동 행동에 나섰다. 개정운동의 박현서(이화여대 법06) 준비위원장은 “학생이 학교의 주체가 아니라 학교에 의해 훈육ㆍ감시받는 객체로 비춰지는 것이 현재 학칙이 갖는 가장 큰 문제”라며 학교 운영에 학생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음을 밝혔다.

군사독재의 잔재,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 있어
현재 많은 대학의 학칙은 1980년대 제정ㆍ개정된 것으로 그 내용이 시대에 뒤처질 뿐만 아니라 기준이 모호한 것이 대부분이다. 당시의 학칙은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학교가 일방적으로 제정한 경우가 많아 2010년 현재의 가치 기준에 적용시키기에는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개정운동이 비민주적 학칙을 분류하는 기준으로는 △언론, 출판의 자유 침해 △집회의 자유 침해 △징계규정 △총학생회, 자치단체 대표자격 제한 △학생(자치)단체 구성, 활동 제한 △학칙개정권 등이 있다. 이 중 학생활동 제한의 예로는 학생들의 정치 활동을 금하는 내용이 대표적이며, 다른 조항들 역시 학생단체 조직이나 학내 언론ㆍ출판물에 대해 사전 검열을 통해 승인을 요구하고 있다. 또 학내 집회나 시위의 허가 취소, 학생회장 후보로 지명된 후보의 자격을 학교 측에서 자유롭게 박탈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에 인권 침해가 우려되고 있다.
우리 학교 역시 이런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개정운동 측의 블로그에 제시된 바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약대 출신 정후보가 후배들을 선거운동원으로 조직하자 한 약대 교수가 선거운동원들에게 직접 연락해 ‘선거운동을 하면 장래에 불이익이 생긴다’고 겁을 줘 총학 선거운동을 막았던 전례가 있었다. 정후보가 합동유세 때 이런 사실을 폭로하자 해당 교수는 그런 일이 없으며 징계조치를 내리겠다고 했다. 결국 이 사건은 정후보가 해당 사건이 없었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우리 학교 학칙 중 ‘학생상벌에관한시행세칙’ 징계 부분의 제10조에 따르면 ‘징계 사유에 해당하는 학생이 있을 때에는 부총장, 학부장 또는 학생복지처장이 징계요구이유서와 학생신상기록부, 본인 진술서를 각각 1부씩 갖추면 징계를 발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 조항에 본인 진술서는 생략 가능하다고 첨부돼 있어, 학생의 발언보다는 학교 측의 입장을 더 중시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임을 보여준다. 

겨울 방학 목표로 소송 준비 중
개정운동은 지난 13일 고려대에서 열린 ‘대학 민주화 포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민변)’의 박주민 변호사가 연사로 나선 이번 포럼에서 이들은 현재 대학학칙의 현황을 살펴보고 그로 인한 피해사례 분석, 개정 방향 및 대안 모색의 시간을 가졌다.
개정운동의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학칙개정을 위한)대학생 서명운동 △소송 제기 및 기자회견 △학칙으로 인한 피해사례수집 및 소송 당사자 모집 등이 있다. 특히 이들은 현재 학칙이 학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과 학교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에 개정운동 측은 민변과 ‘민주주의 법학 연구회’에 자문을 구하고 로스쿨 법률지원단을 두는 등 올겨울 소송 제기를 목표로 구체적 피해 사례를 수집 중에 있다. 12월에는 학칙 개정 관련 토론을 계획 중이며, 블로그ㆍ트위터뿐 아니라 웹자보를 발행하는 등 온라인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 준비위원장은 “서명운동뿐 아니라 교육부가 각 대학에 학칙 시정 명령을 내리도록 요구하고 있다”며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시사했다.

학생이 주인이 되는 학교
개정운동은 사회에 대학들의 비민주성을 알리고 그에 대한 관심을 모아내려는 의도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학생이 주인이 되는 학교’다. 대자보 하나 붙이는 것도 학교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비민주적인 현재 상황을 개선하고 결국에는 대학인권센터를 세우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란다.
개정운동이 갖는 의의에 대해 자문을 맡은 민변의 박 변호사는 “80년대 이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비민주적ㆍ위헌적 학칙의 개정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자치를 보장하는 길”이라며 “이러한 운동을 통해 실질적으로는 학생의 자유를 실천할 수 있고, 구조적으로는 보다 헌법에 잘 부합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앞으로 진행될 토론과 소송을 앞둔 개정운동의 정유림(숙명여대 법09) 준비위원은 “현실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다양한 학교 학생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며 많은 학생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그림│엄보람 기자 maneky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