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책, 갈피〉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윤이삭 기자 hentol@skkuw.com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여자는 나직이, 그렇지만 북받치는 가슴으로 시를 읽는다. 가만 바라다보던 남자가 곧 그것을 힘차게 받아 왼다. “그 숲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두 시선이 마주 웃는다.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이다.
연극〈책, 갈피(이하:책갈피)〉공연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잠깐 망설인다. 진짜 서점인양 감쪽같이 꾸며진 세트장 때문이다. 여기에 시침 뚝 떼고 책을 읽으며 한가롭게 책장 사이를 누비는 배우들까지 한 몫 단단히 한다. 그러다 지금 밟고 서있는 곳이 무대라는 것을 인지하곤 황급히 객석으로 종종걸음 친다. 자신이 관객인지 서점 손님인지 헷갈릴 때 즈음에야 연극의 막이 오른다.
책갈피는 1991년부터 2002년까지 한동네 서점을 다니며 자라난 이들의 이야기다. 앳된 양 갈래머리 소녀에서 트렌치코트가 잘 어울리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사회인으로 거듭나는 그들을 따라 달력은 팔랑팔랑 넘어간다. 뚜렷한 스토리나 극적인 반전은 여기 없다. 그야말로 청춘의 기억 한 토막을 잘라내 정성들여 펼치고 다린 딱 그만큼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대전 한 귀퉁이의 ‘한밭서점’을 구심점으로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난 여섯 남녀의 단편선이라고 해도 좋다. 그 속엔 흔해빠진 사랑, 질투, 이별, 방황, 그리고 책과 ‘가지 않은 길’이 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냐는 물음에 사람들은 대답한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니까, 책은 가장 훌륭한 선생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려할 때 섣불리 펜을 굴리지 못한다. 무얼 느끼고 깨달아야 하는지는 정작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 책을 찾아야 하는지, 어떤 것을 골라 먹으며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한밭서점 사람들은 조곤조곤 일러준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이혼녀의 딸내미 양육서로, ‘알바트로스’는 소설가를 꿈꾸던 남자의 비망록으로, ‘가지 않은 길’은 떨리는 손으로 펼쳐보는 학생시절의 앨범으로 그들에게 존재한다. 여주인공의 독백 중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서점을 찾는다”는 말이 겹쳐 들리는 순간이다.
길을 찾느라 헤매고, 그러다 지치면 책에 기대어 쉬던 여섯 사람들은 이내 걷던 길에 익숙해진 어른으로 다시 무대에 선다. “무엇인가가 하고 싶었어요. 모두가 바라던 그 무언가를” 풀이 많고 발자취가 적었던, 그래서 가지 않았던 그 길에 대한 아쉬움은 홀연한 혼잣말이 돼 무대 위에 울렸다. 다행히 그들은 가지 않은 길을 솔직하게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이상을 좇던 그 시절을 순수했다고 치부하며 얼마나 많은 젊음이 메마른 미소를 짓고 있는가.
현실과 이상. 두 갈래 길 사이에는 벽이 없을 뿐더러 영원토록 평행하게 이어지지도 않는다. 다만 길 위로 갈팡질팡 찍힌 발자국이 우리가 결국 무엇을 향해 걸어갔는지를 추억처럼 말해줄 뿐이다. 
 

△공연명:책, 갈피
△공연일시:2011년 2월 27일까지
△공연장소:대학로 상상아트홀 블루
△공연문의전화번호:02-3676-3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