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뿔에 담긴 왕실의 색, 미래를 은은하게 비춰나가니
쇠뿔에 담긴 왕실의 색, 미래를 은은하게 비춰나가니
  • 성대신문
  • 승인 2011.01.26 23:18
  • 호수 149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만 화각장

 

불그스름하고 누르스름한 빛이 은은하게 감돈다. 커다란 장롱부터 작은 보석함까지 매끄러운 표면은 각자의 색을 발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 날카롭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투명한 우윳빛 쇠뿔을 통과하며 한층 여려진 빛이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조선 시대 왕실의 고귀한 아름다움, 그 한 조각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화각 공예. 전통의 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재만 화각장을 만났다. 4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화각에 바쳐온 그의 모습은 각고의 정성 끝에 완성되는 화각 공예와 묘하게 겹쳐진다.
 

 

 

유오상 기자 osyoo@skkuw.com
성대신문(이하:성) 쇠뿔도 공예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이재만 화각장(이하:이) 소의 뿔을 펴서 얇게 갈아내면 뒷면이 비칠 정도로 투명한 판이 만들어진다. 이 판 위에 그림을 그리고 뒤집어서 기물의 표면에 붙여 장식하는 것을 화각 공예라 한다. 이렇게 하면 안료의 강한 색이 쇠뿔을 통과한 뒤에 보이기 때문에 현대의 플라스틱 같은 재료와는 달리 은은한 맛을 준다. 물론 쇠뿔이라는 재료가 흔하진 않아 왕족에서 사용되다 보니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못했다. 큰 장롱 하나를 만들기 위해 소 수십 마리의 뿔이 필요한데 민간인들이 이를 충당할 수는 없었다. 또한 중국이나 남미의 쇠뿔은 휘어 있어서 쓰기 어렵고 일본의 것은 단단하지 못하다. 성인이 되고 2~3년이 된 우리나라 수소의 뿔이 가장 적합한 재료다. 안료로는 쇠뿔이라는 천연 재료에 어울림 직한 돌가루를 사용한다. 색깔을 지닌 돌가루에 어교라는 풀을 섞으면 천연 안료가 만들어진다. 오랜 시간 동안 돌이 변함없이 가지고 있던 색을 사용함으로써 작품의 색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유오상 기자
 자개 공예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단단한 재료를 매끄럽게 연마해서 기물에 붙여 쓴다는 점이 자개 공예와 비슷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화각 공예와 자개 공예는 엄연히 다르다. 화각 공예는 재료로 쇠뿔을 쓰고 자개 공예는 조개껍데기를 쓴다는 원천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색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자개 공예는 조개껍데기 고유의 색을 활용하지만 화각 공예는 작가가 안료를 써서 직접 그린 그림을 활용한다. 따라서 화각 공예는 색채의 화려함이 두드러진다. 특히 왕을 상징하는 적색과 왕비를 상징하는 황색 계열의 색이 많이 사용된다.  
 
성 젊을 때부터 화각 공예를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어려서부터 미술을 좋아했다. 전국미술대회에 나가 수상한 적도 여러 번 있다. 예인 집안에서 태어나 단청장인 할아버지와 자수장인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화가나 만화가가 되는 것을 꿈꾸다가 20대로 들어설 때 즈음 우연히 고(故) 화각장 음일천 선생님의 일을 돕게 됐다. 단지 선생님의 일을 도우려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문양과 그림에서 나오는 이야깃거리에 매력을 느껴 직업으로 삼게 됐다. 선생님 아래에서 10여 년을 배우고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자발적으로 화각 공예에 대해 공부를 했다. 이동안 화각의 기술과 문양을 집대성하고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유오상 기자
성 무엇을 위해 어떤 연구를 진행해 왔는지 궁금하다
 먼저 후대를 위해 지금까지 화각 공예가 발전해 온 과정을 정리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 맞는 화각 공예에 대해서 연구했다. 18세기에 시작된 화각 공예의 전통만 모방했다가는 현대인들에게는 공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화각 공예가 주로 적색과 황색만을 간직하고 있는 한계를 벗어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색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에 새로운 문양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도 힘써왔는데 최근에는 새로 개발한 문양을 가지고 화각 공예를 하고 있다. 또한 재료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도 해왔다. 쇠뿔의 경우, 쉽게 썩고 갈라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쇠뿔의 가공 단계에서 유기물을 제거하고 도료 등을 통해 습기가 스며드는 것을 막아낼 수 있도록 했다.

성 화각 공예라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유오상 기자

 사실 손이 불편한 상태다. 어린 시절, 방 한편에 놓여 있던 화로를 짚는 바람에 손에 큰 화상을 입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새 적응이 돼 살아오면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못했다. 다만 화각 공예라는 것이 35공정에 달하는 매우 긴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일을 하는 데 있어 힘든 적은 있었다. 나무와 쇠뿔을 가공하고 안료를 만드는 과정부터 장식물을 붙이고 옻칠을 하는 과정까지 모두 화각장이 해야 할 일이다. 한 몸으로 이렇게 많은 작업을 하려다 보니 일에 적응하는 동안 고난의 길을 겪었다. 또 손 때문에 섬세한 작업을 하는 데에는 불편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화각 공예라는 일을 통해 열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을 하면서 모든 분야를 섭렵해 나간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신체가 아니라 정신인 것 같다. 강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으니 못할 일은 없었다.

 최근 사라지고 있는 전통 공예가 안타깝지는 않은지
 어려서부터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대가 지나서 취직해야 할 때서야 공예를 배우는 것은 너무 늦다. 먹고 살기 바빠진 나이에 전수받기 시작해 10여 년을 배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어린 아이들에게 공예를 배워볼 기회를 주고 개중에서 공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키워나간다면 전통 공예의 장래는 밝을 것이다. 더불어 현대인들이 전통에 관심을 두고 살길 바란다. 현대 문물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지만 이것도 결국 과거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위해선 부모가 필요하지 않은가. 이제 젊은이들의 관심 없이는 화각 공예를 비롯한 전통 공예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없다. 시대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전통에 관심을 두고 그 미래를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인사캠 - (03063)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25-2 성균관대학교 호암관 3층 50325호
  • TEL : 02-760-1240
  • FAX : 02-762-5119
  • 자과캠 - (16419)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서부로 2066 성균관대학교 학생회관 2층 03205호
  • TEL : 031-290-5370
  • FAX : 031-290-5373
  • 상호 : 성대신문
  • 발행인 : 신동렬
  • 편집인 : 배상훈
  • 편집장 : 박기황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0
  • 등록일 : 2017-04-05
  • 발행일 : 2017-05-01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기황
  • 성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성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skkuw.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