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주민등록 등재됐지만 생활고ㆍ토지 변상금 문제 여전해

기자명 양명지 기자 (ymj1657@skkuw.com)

 

번듯한 건물들을 지나 양재천 다리를 가로지르면 나오는 그곳, 그 다리를 사이에 두고 소위 잘 사는 동네와 아픈 간극을 가진 그곳, 포이동 266번지. 유난히도 찬바람이 불던 날, 대한민국 양극화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포이동을 찾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판잣집들 사이에 홀로 우뚝 선 마을 회관에는 그곳이 아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음을 알리는 붉은 깃발이 차웁게 펄럭이고 있었다.




정송이 기자 song@skkuw.com

대한민국 속 신(新)식민지,  포이동 266번지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이하:포이동)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주소다. 지난 2008년 개포4동 1266번지로 통합됐기 때문. 본래 이곳은 타워팰리스 옆 판자촌으로 더 유명하다. 실제로 포이동을 찾아가다 보면 비교적 높고 현대적인 건물들 일색인데, 다리를 건너 포이동에 다다르면 이내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부촌에 둘러싸여 있어서인지 포이동은 그간 ‘도심 속의 섬’ 혹은 ‘내부식민지’로 불리어 왔다. 내부식민지론에 따르면 식민지는 국가 간에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극심한 불평등으로 인해 국가 안에서도 형성된다. 포이동의 경우, 극심한 가난과 국가로부터의 차별 대우 등 정치경제를 통한 간접적 지배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내부식민지로 볼 수 있다.
윤이삭 기자 hentol@skkuw.com

포이동의 아픈 역사는 지난 79년 박정희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권은 사회정화라는 명목 아래 △거지 △넝마주이 △전쟁고아 등 가난한 도시빈민들을 ‘자활근로대’라는 이름으로 묶어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81년, 전두환 정권은 이들을 분산이주 시켰는데 그 중 한 곳이 바로 포이동 200-1번지(후에 266번지)였다. 당시 이곳은 양재천변 쓰레기 하치장으로, 수도ㆍ전기ㆍ화장실도 없는 황무지였다. 이곳에 강제 이주된 주민들은 주로 고물을 주워 모으는 일을 했는데, 이마저도 공무원들의 감시 때문에 충분한 수입을 얻지는 못했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당시에는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낮에는 마을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이런 인권 유린적 처우도 모자라 89년 국가는 이곳을 시유지로 지정해 주민들을 국가 토지 불법 점유자로 몰았다. 주민들에게는 토지 변상금이 청구됐고, 주소가 200-1번지에서 266번지로 바뀌었지만 구청은 주민등록을 해당 주소로 재발급해 주지 않았다. 당시를 떠올리며 주민 송희숙 씨는 “우편물도 받아보지 못하고 남의 집에 위장 전입해서 아이들을 먼 곳의 학교에 보내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주민들은 직접 일군 땅에 살면서도 불법 점유자라는 딱지가 붙은 채 설움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인간다움을 위한 질긴 싸움과 쟁취, 그러나 여전히 냉혹한

윤이삭 기자

거주자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주민들은 지난 2003년부터 ‘포이동266번지사수대책위원회(이하:사수위)’를 조직해 강남구청과 서울시를 상대로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대학생 사람연대 △빈민해방철거민연합 △한국사회당 서울시당 △행동하는 의사회 등 많은 단체들이 사수위를 도왔다. 이들은 주민들의 건강 실태를 조사해 실태 보고 대회를 열기도 하고, 강남역 근처에서 주민들을 위한 유령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기나긴 몇 년간의 싸움 끝에 지난해 8월에는 포이동 주민들의 주민등재가 이뤄졌다. 21년 만에 주민등록을 되찾은 포이동 주민들은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온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점은 남아 있다. 아직도 토지 변상금에 이자가 붙고 있고 포이동이 시유지인 것은 똑같다. 주민등록 등재가 됐으나 땅은 시 소유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조철순 사수위 위원장은 “우리는 정부에 의해 강제 이주됐기 때문에 불법 점유자가 아니고 따라서 변상금은 철회돼야 한다”며 변상금 자체가 부당함을 주장했다.
생활 속 불편함도 여전하다. 약 100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마을에 공동 화장실은 세 군데뿐이었다. 그나마도 추위에 동파돼 사용할 수 없는 곳이 많았고, 화장실이 없는 집도 아직 많다. 고철이나 폐지 등을 팔아 생계를 잇는 이곳 주민들에게는 추운 겨울을 나는 것도 큰 고역이다. 주민 유도관 씨는 “주민등록 등재로 기초생활수급 혜택은 받게 됐지만 생활은 여전히 어렵다. 이렇게 날씨가 추울 땐 보일러가 얼어 전기장판에 의존해 지내야 한다”며 고충을 전했다. 이곳은 판잣집이 대부분인데, 판자가 썩어 추위를 견디지 못할 뿐 아니라 쥐나 바퀴벌레 등 해충도 들끓고 있다. 주거환경 개선이 절실하지만 변상금 처리 문제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강남구청은 포이동은 서울시 땅이므로 시에서 결정을 내리면 구청은 그에 따른 후속 조치만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청 주택공급과는 “시유지를 점유하고 있으면 당연히 그에 대한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주민들의 염원과 달리 변상금 철회 문제는 앞날이 불투명해 보인다.

대한민국 양극화의 자화상

정송이 기자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곳 주민들의 빈곤은 대를 이어 가고 있었다. 교육 환경이 열악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곳의 답답한 현실을 견디다 못 한 이주 2세대들이 집을 나가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자연히 가정교육 역시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다행히 2005년 공부방이 생긴 뒤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는 아이들도 생겼고, 대학생 선생님들의 가르침 덕에 나쁜 길로 빠지는 아이들도 없다. 현재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인연맺기학교’는 사교육이 전무한 포이동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으로, 이곳으로 빈민현장활동을 나왔던 대학생들이 마련했다. 지난해부터 인연맺기학교의 교사 대표를 맡고 있는 우리 학교 오태우(고분자05) 학우는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들이 커가면서 잘 사는 친구들과 자신의 차이점을 깨닫고 상처를 받고는 한다”며 마음 아파했다. 부모 세대에 이어 빈곤과 사회적 차별을 대물림 받고 있는 포이동 266번지 아이들은 민주화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보이지 않는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비민주성을 방증한다.
주민들은 하루 빨리 토지 변상금 철회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강남구청에서 서울시청으로 변상금 면제 민원을 올려 협의 중에 있긴 하지만, 포이동은 여전히 외부의 관심과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대학생사람연대’의 신혜진(우리 학교 조경05) 사무국장은 “토지 변상금 문제로 주민들이 기본적 생활조차 보장받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대학생들도 강남구청에 청원을 하거나 온라인 게시판에 항의 글을 올리는 것 등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며 행동을 촉구했다. 시청 차원의 협의가 잘 이뤄져 다가올 봄에는 포이동 주민들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길 기대해본다.
 
윤이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