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양명지 기자 (ymj1657@skkuw.com)

유난히 날이 추워서인지 마을 곳곳을 헤집고 다녀 봐도 주민들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 타워팰리스 옆 판자촌, 내지는 대한민국 양극화의 자화상이라고 알려진 포이동 266번지는 낯선 외부인에게 쉽게 속내를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지난 달 구청에서 마련해 줬다는 새 공동화장실도 반 이상이 동파돼 ‘사용금지’ 표시가 붙어 있었다. 마을 주민들에게 보다 생생한 생활상을 듣고 싶어 어렵게 말을 붙여 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사수위(포이동266번지사수대책위원회)에 가보라’는 말 뿐이었다.
처음 주민들의 차가운 반응을 접했을 때는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서 누군가 나의 녹록찮은 일상을 들춰보려 든다면 당연히 반감을 가졌을 테니까. 하지만 물어보는 사람마다 마치 미리 입을 맞춘 듯 같은 대답을 주는 주민들의 모습에 한편으론 의아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렵사리 취재에 응해주신 주민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나서야 왜 주민들이 취재에 대해 똑같이 냉담한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한 진상을 알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포이동이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을 당시, 몇몇 언론은 포이동 주민들의 단편적인 일상만 보고 그들이 알박기를 한다거나 땅 투기를 위해 이곳에 거주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이들을 한없이 불쌍하고 동정 받아 마땅한 존재, 측은지심의 대상으로 묘사해 아이들을 비롯한 주민들에게 언짢은 마음을 심어줬다고 한다.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대중의 입맛에 맞춰 보도를 하다 보니 막상 외부에 알려져야 할 마을의 속사정은 뒷전이고 억측과 왜곡만 난무했던 것이다. 이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주민들은 그 후부터 언론을 비롯한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게 됐다고 한다.
취재가 쉽지 않아 속상하기도 했지만, 주민들이 상처를 받고 마음의 문을 닫아 그들의 사정을 외부에 활발히 알리기 힘들다는 점도 필자에게 안타까움을 줬다. 얼토당토않은 땅 투기 의혹은 물론이고 그들에 대한 우월의식도 더 이상은 안된다. 다가올 봄에는 외부의 따뜻한 관심이 동파된 수도와 함께 주민들의 마음도 따뜻하게 녹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