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경영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 없이는 못 마십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천지에 널려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매개물 없이는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다. 이 노랫말이 어울리는 경우가 또 있다. ‘예술’과 ‘문화예술경영’의 관계가 바로 그것. 문화ㆍ예술을 보다 청량감 있게 들이킬 수 있도록 돕는 이 신기한 도구에 세상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경영’이라 쓰고 ○○○이라 읽는다
문화예술경영에 대해 정의 내리기 전에 생각해보자. 문화예술경영이란 단어를 접했을 때 △문화예술을 위한 경영 △경영을 위한 문화예술 △문화예술을 이용한 경영 중 무엇을 떠올렸는지. ‘앱솔루트 워홀(Absolut warhol)’은 셋의 상호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사례다. 앱솔루트의 CEO를 만난 앤디 워홀은 “보드카 병이 인상적이다. 이것으로 뭔가 해보고 싶다”고 말한 후 색채가 인상적인 작품 한 점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는 1985년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캠페인의 시발점이 됐다. 이후 △키스 해링(Keith Haring) △로메로 브리토(Romero Britto) △조지 로드리그(George Rodrigue) 등 유명 예술인이 차례로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원천’을 구매한다는 의식이 소비자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앱솔루트 보드카는 판매량이 급증했을 뿐 아니라 감각 있는 자들의 술로서 현재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앱솔루트 광고캠페인의 사례는 미적 가치를 활용해 상품의 품질을 높였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예술을 이용한 경영’이다. 하지만 초점을 달리하면 ‘예술을 위한 경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예술에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를 계기로 작가들의 작품 활동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화적 수준이 높은 브랜드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긍심에 입사희망자와 더불어 업무 효율까지 증가한 현상은 ‘경영을 위한 문화예술’로의 해석마저 가능케 한다. 김주호 씨는 본인의 저서 <예술경영>에 ‘예술경영은 한마디로 예술과 관객(소비자)의 만남을 효과적으로 주선하는 방법론’이라고 정의했다. 즉 문화ㆍ예술 영역을 현실에 보다 잘 적용하고 활용하기 위한 경영법을 고민하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경영이며 그 형태가 위의 세 가지 모두를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넌 어느 별에서 왔니
1980년대 이후 다양한 문화시설 및 예술 행사가 국내에 도입됨에 따라 보다 체계적인 관리와 운영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예술가들이 문화ㆍ예술의 생산자라고 해서 그 결과물을 어떻게 경영하고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문지식까지 갖춘 것은 아니다. 또한 예술을 예술 밖의 것과 연결 짓는 일이 순수성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여기는 풍조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그들과 소비자 사이의 틈새를 메우는 역할에 문화예술경영이 낙점됐다. 경영ㆍ경제학적 측면에서 예술을 바라보고자 하는 분위기가 우리나라에도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박신의 교수는 문화예술경영의 도입으로 기대되는 사회적 효과에 대해 “문화예술경영의 가장 큰 목적은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사회화하는 데 있다”고 전하며 “창의성이 중요한 국가경쟁력이 된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것을 발견하고 관리해 전체적인 삶의 질을 높여주는 구실을 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는 수혜자 개개인뿐 아니라 기업에도 경영 정신과 윤리 측면에서 도움을 주며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가 문화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보탬이 될 전망이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박 교수는 “학문으로서의 교육체계가 불안정하며 노동시장 또한 비정규직과 계약직이 많아 열악한 상태”임을 국내 문화예술경영의 한계로 지적하며 문화ㆍ예술적 수요와 인식수준의 부조화에서 오는 아쉬움도 드러냈다.


현실에 뿌리내린 문화예술경영
문화예술경영의 분야는 △문화ㆍ예술 공간 경영 △예술인과 조직 관리 △예술작품 실연 및 재생산 등으로 다양하다. 공간은 예술이 표출됨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로 그 분위기와 여건이 예술행위의 수준을 좌우하기도 할 만큼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극장 △미술관 △박물관 등을 예술을 접하는 데 있어 최적의 조건으로 기획하고 관리하는 일과 더불어 예술가에게 창작에 필요한 환경을 갖춰주는 것 또한 공간 경영에 포함된다. 예술인과 조직 관리는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예술적ㆍ경제적 가치를 목표치까지 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예술작품의 실연 및 재생산은 공연기획이나 음반제작 등으로의 연결을 꾀하는 과정에서 경쟁력을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밖에도 문화예술경영은 문화ㆍ예술의 장르에 따라 △공연예술 △전시예술 △영상예술 △복합 문화행사 등으로 끊임없이 세분화되고 있다. 문화예술경영이 여러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만큼 관련 업종의 유형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공연ㆍ전시 예술 기획자나 연출가, 마케팅 디렉터부터 시작해 △큐레이터 △영화 미술감독 △예술가 매니저와 같은 직업도 문화예술경영과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발자취 돌아보며 꿈꾸는 내일
일부에서는 문화예술경영이 우리나라로 도입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공연과 전시 위주의 경영에만 국한돼 정착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화의 의미가 점차 복합적이고 광범위한 것으로 변화하는 데 발맞춰 문화예술경영 또한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관점과 시각, 범위의 확장이 필요한 것이다. 관련업 종사자의 사회적 목소리마저 미미한 상황에서 문화예술경영이 여전히 과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소 희망적인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예술경영 지원센터 △한국문화콘텐츠 진흥원 △한국예술경영협회  등 문화예술경영과 관련된 기관과 단체, 연구 등이 생겨나고 있을뿐더러 그 중요성과 가능성에 매료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점점 유망 진로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 △경희대학교 △상명대학교 △성공회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중앙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는 문화예술경영 일부를 포함하거나 전체를 다루는 학과가 신설돼 관심과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큐레이터가 되고 싶어 문화예술경영학과를 선택했다는 상명대학교 조한나 학생은 “공연, 전시 기획과 더불어 공연 행정과 법 등도 배우고 있으며 이론 보다는 현장 실습이나 실무 인터뷰로 수업이 구성된다. 3학년부터는 직접 자신만의 공연과 전시를 제작할 기회도 생긴다”고 자신의 학과를 소개했다.
문화예술경영은 자칫 그 범주가 애매해 보일 수 있으나 그만큼 유연하고 무궁무진한 적용 가능성을 지녔다. 문화예술경영이 안정적으로 우리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문화ㆍ예술을 대하는 소비자들의 의식 수준 향상과 동시에 학문적으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확립이 필요하다. 문화가 문화로, 예술이 예술로 그치지 않도록 독려하고 있는 그 행보에 관심과 기대를 보태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