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뜨기에서 끈 이론까지… 우리 삶에 녹아나

기자명 차윤선 기자 (yoonsun@skkuw.com)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요리조리 꼬이는 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엉키는 듯 아슬아슬해도 용케 매듭이 지어지지 않는 실뜨기. 실뜨기의 모양은 취향따라 갖가지로 변하곤 한다. 그런데 실뜨기 놀이에서의 모든 실 모양이 같은 매듭이라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순순히 수긍할 수 있는가? 아마도 십중팔구 부정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 모든 실뜨기 모양은 항상 같은 매듭일 뿐이라고 결론짓는 수학자들이 있다.

실뜨기의 모양이 모두 같다는 것은 매듭 이론(knot theory)에 의한 ‘정당한’ 주장이다. 언뜻 보기에 매듭과 수학을 접목하는 것은 부조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매듭 이론은 엄연히 위상수학의 한 분야로서 존재한다. 일상적인 의미의 매듭은 대체로 긴 줄을 꼬아 묶은 것을 말하지만 수학적인 매듭은 끈의 양 끝이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일상적인 매듭과 다르다.

실수는 매듭 이론의 어머니
지금의 매듭 이론은 장장 1세기를 거쳐 자리 잡은 이론임이 자명하지만 그 시작은 한 과학자의 실수에서 비롯됐다. 아일랜드의 과학자인 켈빈 남작(Baron Kelvin)은 원자가 꼬인 관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가설을 세웠고 스코틀랜드의 수리물리학자 피터 거스리 테이트(Peter Guthrey Tait)는 켈빈의 가설을 토대로 관들이 꼬였을 때 이룰 수 있는 매듭들을 분류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연구가 매듭 이론의 기초를 이루게 됐다. 켈빈의 원자에 관한 가설은 약 20년 동안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다가 오류로 밝혀졌지만 테이트가 시작한 매듭에 대한 연구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매듭 이론은 선행된 연구를 발판 삼아 더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백 년이 지난 지금 매듭에 관한 수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매듭 이론은 아직 빙산의 일각만이 밝혀진 미개척 분야로 남아 있다.

수학의 눈으로 본 매듭
매듭을 분류하는 기준 중의 하나는 교차점의 개수이다. 교차점이 없는 고리 모양을 ‘영매듭’이라고 하는데 이는 교차점의 수가 0(영)개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실뜨기의 경우가 영매듭에 속한다. 매듭 이론에서는 줄을 자르고 붙이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변형시킬 수 있으면 같은 종류의 매듭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실뜨기의 모양은 하나의 매듭에 속한다. 아무리 교묘히 모양을 변형시킨다고 해도 매듭이론의 눈에는 교차점이 없는 다 같은 영매듭이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 더 나아가서 교차점이 3개인 ‘세잎매듭’을 보자. 다음 그림 속 매듭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수학자들은 이 두 매듭을 전혀 다른 매듭으로 보고 있다. 실뜨기의 경우와는 달리 모양을 변형시켜서 다른 매듭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듭 이론은 사람의 눈으로 쉽게 구분 할 수 없는 매듭의 종류를 교차점의 개수와 줄의 위치 관계로 정확히 구분해낸다. 수학자들의 노고로 오늘날까지 교차수가 10개 이하인 매듭의 종류가 총 249개임을, 이보다 교차수가 조금 더 많은 16개 이하인 매듭의 종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무려 170만 1,935가지가 존재함이 밝혀졌다.

매듭 이론, 어디에 쓰일까?
그런데 잘못된 가설로 시작한 매듭 이론으로 매듭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애석하게도 실제 생활에는 그리 쓸모가 있지는 않다. 매듭 이론은 응용에 대한 고려 없이 개발된 수학 분야의 실례라고 보아도 좋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DNA가 이중나선의 구조로 이뤄졌음이 밝혀지고 세상을 이루고 있는 기본 단위를 1차원의 개체인 ‘끈’으로 보는 물리학의 ‘끈 이론’이 나오면서 매듭 이론의 응용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세포의 크기를 축구공으로 가정하면, 세포의 핵 안에 들어 있는 DNA 이중나선의 길이는 2백 킬로미터에 달한다. 축구공 안에 그만한 길이의 끈이 들어가려면 상식적으로 꼬여져 있을 수밖에 없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상 DNA는 두 가닥이 압축돼 꼬여 있는데 꼬이는 과정에서 매듭이 지어진다. 과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는 DNA 사슬이 어떤 매듭들을 형성하고 또 어떻게 그것들을 다시 푸는가 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포를 형성하려면 기존 세포로부터 DNA 복제가 이뤄져야 하고 이때 매듭지어진 DNA 이중나선이 풀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매듭의 모양과 종류는 DNA 복제 과정을 밝히는 데 활용되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관심을 사고 있다.
끈 이론에 의하면 기본 입자들은 고차원 공간 속에 들어 있는 미세한 끈으로서 이론상 끈들은 서로 엉키고 매듭지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끈 이론에서 매듭 이론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가장 최근의 매듭 이론을 활용한 예로, 작년 1월 영국의 한 연구진의 물리학 실험이 있었다. 빛으로 매듭을 만드는 데 성공한 연구진은 “이는 물리학자들이 매듭 이론과 같은 기존 순수 수학을 적용해 물리학 현상으로 나타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며 점차 넓어지는 매듭이론의 활용범위를 시사했다.

매듭은 자연의 섭리일지니
우리는 줄로 된 무언가의 매듭을 항상 풀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매일 아침 이어폰에 꼬인 줄을 풀 때, 크리스마스 시즌 일 년 내내 상자 속에 담아두었던 꼬마전구 전깃줄을 풀 때도, 혹은 목걸이의 매듭을 풀어야 할 때면 꼬이기만 하는 줄이 원망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DNA 사슬이 스스로 꼬이듯, 매듭지어짐은 인간의 힘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이제는 꼬인 매듭을 풀며 찬찬히 마음을 가다듬어 보자. 매듭 속 숨겨진 수학을 곱씹다 보면 어느새 매듭을 다 풀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