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정미 사회부장 (sky79091@skkuw.com)

나라는 청춘이 한 살을 더 먹었다. 한 살, 한 살, 먹어갈 수록 언젠가는 소멸하고 말 청춘의 무게도 짐짓 무거워진다. 몸은 원래 무거웠다 치고, 마음의 무게가 늘어나는 것이다. 새삼 우리네  모든 먹는 행위가 새롭다. 그러다 갑작스레 ‘먹다’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뜻이 한 20가지 되나보다. 우리가 자주 쓰는 몇 가지 의미를 간추려보니, 지난 방학동안의 시간이 녹아있다.

일정한 나이에 이르거나 나이를 더하다.
지난 1월 1일, 우리 모두 한 살 씩 더 먹었다. 벌써 두 달이나 지난 이 시점에 누군가는 스물이 되어 입학을 했고, 누군가는 생일케이크에 꽂는 촛불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부여되는 중압감에 몸서리치겠지. 어떤 이는 올해만큼은 더더욱 성숙해 지겠다고 다짐을 했을 테고. 나이를 먹으면서 온갖 고뇌와 상념에 빠지거나 아니면 특별한 생각 없이 시간 속에 흐르거나……. 그렇게 다들 나이를 먹어간다.
그러다 잠시, 뭔가 몽롱하면서도 여린 빛이 보이면서도 그렇다고 명확하지도 않은 미래를 생각하니 지레 겁을 집어먹었다.

겁, 충격 따위를 느끼게 된다.
게다가 대학 입학 후 최절정으로 망조에 다다른 수강신청 페이지를 보니 충격도 먹게 된다. 등록금도 올랐는데, 알찬 수업 들어야하는데. 아, 모르겠다. 이 막막한 사태 어찌해야할지. 모든 걸 잠시 잊어보기로 하고 신문을 본다.
지난 2월 12일, 30년 장기독재로 정권을 주무르던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했다. 연일 시위가 일었고 각종 매체, 특히 소셜네트워크 여기저기에선 민주화가 춤췄다. 그리고 기쁨을 맛봤다. 온 세계가 드디어 이집트에도 시민들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축복했다. 이어 아랍권 국가들에서 속속 들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겁먹은 독재정권은 시민들을 무차별 진압하기 시작했다. 리비아의 시민들은 독재가 행사하는 핏빛 분노에 또 다른 범주의 분노로 맞서고 있다. 충격을 먹었다. 사망자가 2천여 명을 돌파했다. 권력이 무엇이기에.

수익이나 이문을 차지하여 가지다.
음식 따위를 입을 통하여 배 속에 들여보내다.

‘권력을 삼킨다’ 그 삼킨 권력에서 수익이나 이문이 나면 그 이익은 또 권력자에게 돌아간다. 철저한 순환구조다. 그래서 그렇게 놓으려 하지 않나보다. 인간의 손아귀에 어찌 그리 욕심이 움켜쥐어져 있는지 뇌물을 먹었다던 정치인들, 공직자, 기타 누구누구들 얘기가 내내 귓가에 맴돈다.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삶을 마감해야했던 어느 작가의 이야기가, 세계 자본권력이 가난한 이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현실이 들려오는데도 말이다. 시간이 흐를 수록 이 사회 내 모든 권력과 먹을 것이 점점 더 양극화 되어가는 것 같다.
지난 2월 25일, 모든 욕심을 비우고 평등한 먹을거리를 나누는 ‘문턱없는밥집’에 다녀왔다. 이곳에서 인간이 권력 삼키기를 포기하고 얻을 수 있는 행복이라는 가치를 너무도 쉽게 잊고 산다고 느꼈다. 돈 잘 버는 직장에 취업하지 않더라도, 값비싼 무엇인가를 섭취하면서 허영을 부리지 않더라도 밥집 같은 곳이 이 사회의 전부라면 그냥 우리 모두가 평등해 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생각해보면 무언가 얻기 위해, 세밀히 분류하자면 무언가 먹기 위해 사는 우리 대부분은 스놉(snob, 속물)이었다.

어떤 마음이나 감정을 품다.
새 학기, 마음 단단히 먹고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기대감 잔뜩 안고 입학식 온 새내기들과 이제 드넓은 사회로 나가는 졸업생들까지. 봄이 내림과 함께 많은 이들이 마음먹었으면 좋겠다. 열정어린 마음을, 사랑을 시작하려는 마음을. 나눔을 비움을. 말로는 풀어낼 수 없는 그 수만 가지 것들을. 어찌됐든 우리는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