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용(경제08)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김연수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나’와 정민의 연애담이 주축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 속 나와 정민은 둘 다 성대에 다니는 학생으로, 이들의 연애담 역시 성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소설 속 90년대 성대와 주변 풍경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을까. 소설 속 문장들을 한번 음미해보자.
우리가 앉아 있던 한낮의 공원으로는 비둘기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 다리를 꼬고 앉아 오른발을 까딱까딱 흔들던 정민이 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로니에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정민의 몸 위로도 나무 그림자가 까딱까딱 흔들리고 있었다. p19
나와 정민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소는 대학로에 위치한 마로니에 공원이다. 마로니에 공원은 ‘우리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수업한다’라는 카피로 학교 신문광고에 등장한 적이 있을 정도로 성대생들에게는 친숙한 장소다. 아마 성대 CC치고 마로니에 공원으로 데이트를 가보지 않은 커플은 없을 것이다.
정민보다 학번이 하나 낮은 나는 상대적으로 한가한 편이어서, 어쩌다 복도에서 정민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바로 그 손을 움켜잡고는 대자보가 붙어있는 복도를 지나 담배꽁초가 어지럽게 떨어진 계단을 밟고 내려가 수업에 늦은 학생들이 뛰어가는 길을 가로지른 뒤, 라일락나무 아래의 벤치에 정민을 앉혀두고 라일락꽃을 흔들며 윽박지르곤 했다. p105
소설 속 내가 정민의 손을 잡은 곳은 학생회가 있는 학생회관 4층이다(두 사람은 모두 학생회 간부로 설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수업에 늦은 학생들이 뛰어가는 길’은 학생회관의 1층과 이어져있는 대성로가 된다. 대성로로 수업에 늦은 학생들이 뛰어가는 풍경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양이다. 라일락나무 아래의 벤치는 현재 600주년 기념관이 있는 곳으로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정민은 내게 아침 아홉시에서 열시 사이의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만 몇 개 더 있다면 수업이고 학생회 일이고 다 팽개치고 궁궐로 소풍을 가자고 제안했다. p106
학교 근처에 있는 과학관 4층에는 반구형 천장에 불빛을 쏘아 각 계절별 별자리들을 보여주는 별자리 관찰교실이 있었다. 주로 서울 시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온 아이들이 줄지어 서서 단체로 관람하는 곳이었는데, 우리가 거기까지 가게 된 것은 고궁의 잔디밭에 앉아 학교 앞 슈퍼에서 사온 국산 포도주와 김밥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시간이 오후 두시밖에 되지 않아서였다. p108
궁궐은 학교 옆 담장 하나만 넘어가면 있는 창경궁이다. 90년대의 창경궁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미리 예약을 해야만 입장할 수 있다. 게다가 관리마저 엄격해져 잔디밭에서 무얼 먹을 수도 없다. 서울 과학관은 학교에서 창경궁으로 가는 길 중간쯤에 위치해있다. 과학관과 같이 학술적(?)인 곳에서 데이트를 누가 하냐 싶겠지만 다음 문장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어둠 속에서 정민은 내 몸을 더듬더니 내 왼손을 찾아 꽉 잡았다. 내가 정민의 몸을 당겨 입을 맞출즈음 클라리넷 연주와 함께 둥근 천장에 별빛이 나타났다. 봄의 별자리였다. (…) 그 별자리들은 내게 이 세상이 신비로운 까닭은 제 아무리 삼등급의 별이라고 할지라도 서로 연결될 수 있는 한, 사자로, 쳐녀도 목동도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봄의 별자리들이 모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여름의 별자리로 넘어가기 위해 불이 모두 꺼졌을 때, 나는 고개를 돌려 정민에게 입을 맞추었다 (…) 그리하여 각 별들이 서로 이어지고 백조로, 거문고로, 독수리의 모양으로 바뀔 때마다 아이들이 탄성을 내지르는 동안, 우리는 계속 입을 맞추고 있었다. p112~114
더 이상의 내용은 직접 소설을 감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기로 유명한 작가 김연수가 그린 연애담이 우리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진다는 이유만으로 성대생이라면 충분히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을 테니까. 혹여나 소설 속 거리를 걷게 된다면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되새기며 걸어보자. 당신이 걷고 있는 대성로, 마로니에 공원, 창경궁의 길들은 수십 년 전부터(어쩌면 600년 전부터) 수많은 성대 CC들이 걸어왔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CC들의 연애담이 한 편의 소설 속에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그러면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 길에서 꽃피웠던 사랑들이 떠올라 가슴이 따뜻해질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