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신방)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정치는 흔히 서로 경쟁하는 이해집단이나 개인들이 정부에서 또는 기타의 집단에서 권력이나 지도력을 차지하려는 행위로 정의된다. 그러나 권력 획득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권력의 획득은 그 힘이 미치는 집단이나 국가에서 재원(財源)이나 자리와 같은 희귀 자원을 권위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것이다. 그 희귀 자원이 국가의 경우에는 예산과 공직 그리고 상벌과 같은 것이고 그에 대한 배분권을 권력을 획득한 집단 즉 집권세력 또는 정권이 행사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배분권을 어떻게 행사하느냐다. 집권세력은 그 배분권을 독단적으로 행사할 수도 있고, 다른 집단과 상호적으로 행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정치에서 소통이 긴요한 요소다. 권력이나 지도력을 차지하려는 경쟁은 정보를 수집하고 평가하고 이용하는 행위, 상대를 파악하고 설득하거나 위협하거나 속이거나 협상하거나 하는 행위를 수반하게 된다. 이 모든 행위들이 다 소통 행위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 희귀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도 그 배분을 위한 결정과정에서 반대세력과 협의하거나 협상하거나 또는 반대세력을 배제한다면 그 명분을 천명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또한 다 소통행위다. 결국 정치는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소통을 필요로 한다. 소통 없이 정치는 수행되기 어렵다.
만일 정치가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 간의 대립을 조정하여 통합을 지향하는 경우 소통은 더욱 더 필요하게 된다. 집단 간에 이해관계의 대립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확인하기 위해서, 그 대립을 조정하기 위한 대화와 협상을 위해서, 그렇게 해서 합의를 달성하고 그 합의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 소통을 필요로 한다. 이 경우 정치는 곧 소통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치는 곧 소통이라고 할 수도 있다. 특히 그 소통은 주로 말에 의한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정치는 곧 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정치가 분열을 감수하는 경우에는 소통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치가 소통 없이 힘으로만 수행될 때 그렇다. 이 경우에는 소통이 있다 하더라도 홍보나 선전과 같은 일방적인 소통일 뿐으로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상호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재국가나 권위주의 국가에서 권력자나 집권세력은 흔히 소통에 의존하는 정치를 하기보다는 힘에 의존하는 정치를 한다. 진정한 소통이 없는 정치는 어떤 면에서는 정치의 실패라 할 수 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을 이루는 것인데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소통을 통한 갈등의 조정과 통합이 없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의제를 밀어붙이는 것은 곧 정치의 포기이고 정치의 실패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의도적으로 분열을 조장하려 할 때--즉, 편가르기를 하려 할 때--에는, 소통이 필요해진다. 이 경우 정치는 우호세력에게는 친화적인 소통을, 반대세력에게는 적대적인 소통을 해야 분열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분열의 정치는 정치의 기본적인 조정과 통합이라는 목표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니 분열의 정치는 정치에 반하는 것이다. 다만 전쟁에서 분열의 정치는 용인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의 수행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전쟁 당사국은 자국민과 동조세력에게는 우애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친화적인 소통을 하고, 적국민과 적대세력에게는 증오와 대결을 부추기는 적대적인 소통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든 정치가 다 소통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고 또 소통이 개재한다 하더라도 위협이나 기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정치라고만은 할 수 없지만, 정치는 기본적으로 소통, 특히 상호적인 소통에 기초하고 대부분의 정치행위는 소통에 의해서 수행된다. 또 소통에 의해서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을 달성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다. 따라서 소통이 없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치는 정치의 실패일 뿐이고,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는 소통에 의존한다 하더라도 정치에 반하는 것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 정치에 소통이 부재하다는 탄성이 많이 들린다. 그 탄성은 곧 정치가 없다는 말과 같다. 불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