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서준우 기자 (sjw@skkuw.com)

어두운 무대, 작업용 테이블 위엔 인형이 놓여 있다. 정적을 깨고 “아빠, 사랑해”를 외치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애타게 사랑을 바라는 목소리엔 끝끝내 응답이 없고 나중에 가선 절규에 가까워진다. 환하게 조명이 밝아오는 무대에 작업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인형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 한 유명한 인형 장인 다니엘의 평범한 하루는 예상치 못한 방문객에 의해서 완전히 다른 양상을 맞게 된다. 펠로피아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그 손님은 15년 전 아버지 다니엘에게 성폭행을 당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먼 곳으로 보내졌던 막내딸 에스텔이었다.
그러나 15년 만에 돌아온 에스텔은 복수를 위해 독기를 품고 돌아온 딸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에스텔은 성형수술까지 하며 외면을 바꿨지만 아버지가 자신을 혹여나 알아볼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다. 심지어 때로는 마치 아버지가 자신을 알아봐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또한 그녀는 아버지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엄마 쥬디트와 언니 브리짓트가 나타나자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리고 그들에게 과거의 그 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지난 인생을 거칠게 하소연한다.
돌아온 막내딸을 대하는 엄마 쥬디트나 언니 브리짓트 또한 평범하지는 않다. 그들은 에스텔을 보고 그녀의 지난 인생을 불쌍히 여겨 따뜻하게 맞아주지도, 그렇다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녀를 한눈에 알아봤음에도 그녀가 에스텔이 아니고 정말 펠로피아라는 이름을 가진 그저 평범한 방문객이기를 바란다.
인간은 때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의 행동, 생각을 정당화 하려는 바보 같은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인지 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행동과 인지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할 때 그것이 불편하므로 제거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행동을 한 후에 그 행동이 자신의 인지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행동에 맞게 인지를 끼워 맞추려고 한다.
15년 전 에스텔에게 가해진 성폭행은 명백한 잘못이었고 한 가족의 균형을 깨트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쥬디트는 눈앞에서 일어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잘못이 다니엘에게 있음을 알았지만 그의 그러한 행동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에스텔을 멀리 보내는 것으로 당장의 불일치를 해결한다. 이렇게 먼 곳으로 보내진 에스텔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자신의 인지를 일치시키기 위해 전전한다. 그러나 끝내 그 불편함을 해소하지 못한다. 불편함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당시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다고, 아버지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믿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에스텔은 상처를 준 그곳에 상처를 치유하고자 다시 돌아온다.
극중 쥬디트와 에스텔은 가끔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세우며 ‘균형을 잃지 말아야해’라고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들의 그런 행동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이성을 유지한 채 살아가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5년 전 아버지의 엇나간 사랑으로 인해 그 균형은 이미 그때부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유지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딸에 대한 집착은 긴 세월을 거쳐 안타깝게도 그 집착을 정당화 시키고자 했던 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연극의 시작과 함께 들려오던 소녀의 애절한 절규처럼 결국 응답을 받지 못한 채 끝내 비극적인 운명과 마주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예정되었을지 모를.
 

△공연명:유리알 눈
(Des yeux de verre)
△공연기간:~ 3월 13일
△공연장소:산울림 소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