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영인 문화부장 (youngin@skkuw.com)

“자연스럽게”
나는 말한다. 대단한 형용사라도 되는 양 늘 입에 달고 산다. 머리를 자를 때나 사진을 찍을 때도. 옷을 입을 때도 ‘자연스럽게’를 반복한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자연스럽고자 노력했고 어떠한 일을 시작할 때도 자연스러운 끝을 꿈꿨다. 심지어 남자친구와 헤어질 때도 “뭐, 자연스럽게”라고 말해 버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자연스럽다니 그게 뭐지. 억지로 꾸미지 아니해 어색함이 없는 것, 무리가 없고 당연한 것, 그리고 힘들이거나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되는 것. 좋은 의미다. 편안해 보이고 때 묻지 않은 느낌이다. 단어 주제에 청순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느낌이 든다.
#1. 자연스럽게 2011년이 됐다.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에게도 새로운 해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21살에서 한 살 더 먹었다. 방학 때 이루고자 마음먹었던 것 중 아무것도 해낸 것이 없는데 3학년이 됐고 수강신청은 망해버렸는데 새 학기는 일주일이 지났다. 신문사는 또 어떤가. 신문사 없는 대학생활은 상상도 안 되는데 벌써 퇴임을 2달 남긴 뒷방 늙은이가 돼 버렸고 하늘 같던 선배의 발끝이라도 따라가기엔 멀었는데 이제 나는 누군가의 합격 여부를 가리게 됐다.
#2. 자연스럽게 한 번의 실수가 습관이 됐다. 처음 늦잠을 자고 수업에 지각했을 때 소심한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곧 지각의 위력이 크지 않다는 것에 놀라고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잠과 타협해버렸다. 자연스럽게 습관적인 지각으로 이어졌다.
#3. 자연스럽게 ‘놀라던 뉴스’가 일상이 됐다. 구제역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오는 길에 처음으로 3개의 구제역 방역초소를 지났다. 너무나 속이 상했다. 시답지도 않은 대책을 내놓는 정부를 믿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러나 그 후 너무나도 많이 방역초소를 지났다. 뉴스에서는 더 많은 지역으로의 구제역 확산에 대해 염려하지만 오히려 내게는 너무나 일상적인, 과속 방지턱을 하나 더 넘는 수준의 일이 돼 버렸다. 이런 내 모습에 나조차 놀라다가도 어느새 또다시 자연스럽게 충격을 받아들이고 있다.
#4. 자연스럽게 ‘불합리하다고 느끼던 것’을 이해하게 됐다. 아르바이트를 한다. 2011년 기준으로 4천3백20원의 시급을 받아야 한다. 수습근로자인 경우와 감시 또는 단속적 근로에 종사하는 자를 제외하고서 이러한 최저임금 규정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된다. 그러나 학교 또는 집 근처의 사람이 많이 몰리는 일의 경우 시급 4천 원에도 감지덕지 ‘날 뽑아줬구나’ 고맙기까지 하다. 어느새 그러려니 일에 적응하고 더 이상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급이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쯤 되니 무섭기까지 하다. 도대체 자연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준비가 안 된 느낌, 굳어져 버린 느낌, 타협하는 느낌, 잘 감춘 느낌. 이렇게 게으르고 치밀하고 약아빠진 단어였나. 정말로 이러면 안 되는데. 아무리 큰 문제도 자연스레 잊혀 질 것 같고 누군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도 어느새 자연스레 이해하게 될 것 같다. 무섭다. 겁이 나기도 한다. 조금은 못 자연스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