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지난 일 년 간 나름 여러 종류의 기사를 끄적여봤다. 스트레이트, 리뷰, 총론, 스케치 등등. 쓰기 어렵기로 따지면 오십보백보지만 나는 유독 인터뷰 기사에 벌벌 떨곤 한다. 취재원 앞에만 서면 갑자기 식은땀을 장신구처럼 매달고 헛소리를 남발해버린다. 게다가 안달복달 간 쓸개 다 내놓고 컨텍 시도를 하는 일 또한 얼마나 천만근 같은 부담을 허리춤에 푹 찔러주고 가는지 원.
그러다 결국 일이 터져버렸다. 항상 하루살이 벼락치기하듯 약속을 잡아 근근이 마감을 지키는 못난 기자였지만 이번엔 좀 심각했다. 인터뷰 컨텍이 이래저래 꼬여버려 완고를 내야할 금요일까지도 아무런 약속을 잡지 못한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일곱 명의 예비 취재원들에게 다각도로 접근을 시도했지만 전부 실패였다. 일주일에 남자 일곱한테 차이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어느덧 시계는 오후 두시 언저리를 내달리고 있었다. 눈앞에 펑크 난 신문 8면 상단이 어른거리면서 16매 분량의 사과문을 작성할 각오를 살포시 마친 순간. 놀랍고 부끄럽지만 난 울어버렸다. 자취방에서 단 세 걸음을 못 걸을 정도로 혼자 몸살감기를 앓은 날도, 알바를 하다가 억울하게 고개 숙여 사과를 했던 날도, 학점이 내게 세상과 타협하는 법을 가르친 그 날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이젠 늙어서 눈물샘이 말랐나보다 했더니 이런 엉뚱한 포인트에 질질 짜버린 거다. 애증의 인터뷰 기사 같으니. 끝끝내 날 울렸다.
결국 네 시가 다돼 걸려온 한 취재원의 승낙 전화는 날 깊고 깊은 절망으로부터 냉큼 건져 올려줬다. ‘사상 최초 문화인과의 동행 펑크 기자’라는 낙인은 아슬아슬하게 내 등짝을 빗겨갔지만, 고작 손바닥 두개만한 종이 공간에 스스로 얼마나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절감하게 만든 반나절이었다.
열한 시가 넘어서야 인터뷰를 마치고 기사 쓰러 대성로를 오르는데 내가 기특해죽겠어서 비식비식 웃음이 났다. 얻어 마신 막걸리 한 사발에 취했는지 인터뷰가 이번엔 날 웃긴다. 어떡하지, 울다가 웃으면 뿔난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