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차윤선 기자 (yoonsun@skkuw.com)

작년부터 서점에 가면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항상 베스트셀러 선반에 꼿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학생의 멘토로서 각광 받고 있는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가 강의를 하는동안 해주었던 조언들을 모아 출판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만 원짜리가 구겨진다고 천원이 되더냐”라고 묻는다. 물론 그렇지 않다. 만 원은 구겨지든 빳빳하든 만 원의 가치를 간직한다. 그렇듯 인생도 다를 바가 없다. 가끔은 실패를 하고 구겨져도 그대의 가치는 그대로다. 이는 서울대학교 김난도(소비자) 교수가 말하는 인생론이다. 대학생들의 멘토로서, 유망한 학자로서 촉망받는 김 교수를 만나봤다.

#1. 젊은 날, 아름답던 시행착오

■ 82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굉장한 수재였는데
중ㆍ고등학생 때는 모범생이었다. 점수가 잘 나왔고 성적에 맞춰 입시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주위 사람들의 권유도 있었지만 치열한 목적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정치학에 관심이 많았다.

■ 성적에 맞춰 서울대 법학과를 들어오다니, 타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닌가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성적이 못 나오면 못 나오는 대로 잘 나오면 잘 나오는 대로 대부분이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간다. 성적에 맞춰 대학에 들어오다 보니 적성에 맞지 않는 과에 들어섰고 결국 법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 사법고시를 안 보고 행정고시를 봤던데 행정에 관심이 있었나
그렇다. 법이 잘 안 맞았고 그래서 사법고시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다 4학년 때 행정 관료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검사나 판사는 일이 터지고 나서야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행정 쪽에서 일하면 적극적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느꼈다. 도로를 건설한다든지 건물을 세운다든지 하는 일들 말이다. 그래서 그쪽에 관심이 갔다.

■ 박사학위는 행정학이었는데 또 지금은 소비자학과 교수다
사실은 행정고시를 서너 번 떨어졌다. 만일 내가 행정고시에 붙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정고시에서의 낙방으로 행정고시를 포기해버리고 행정학 석사와 박사를 나오게 됐다. 교수직에 올 때는 소비자 행정을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행정과는 상관이 없는 소비자학을 하고 있다. 이렇게 전공을 바꾼 것이 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변하는 것보다 두렵기 때문이다.

■ 행정고시에 떨어졌을 때, 그 충격이 컸을 텐데
그랬다. 행정고시에서 자꾸만 낙방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떨어지니 맘고생도 심했다. 그러나 어쩌랴. 앞서 말했지만 나는 과감히 포기했다. 사람들은 포기하는 것이 비겁하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포기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바탕으로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모든 게 끝장났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이 글을 읽는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끝장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다.

■ 대학원생이 됐을 때는 많은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
정말 많이 힘들었다. 화불단행이라고 불행은 한 가지씩 오는 것이 아니라 수십 가지가 무리를 지어서 오고는 한다. 하지만 누구든지 불행은 있다. 남들 보기에 아무리 잘나 보여도 누구나 고민은 있고 불행을 피해 갈 수 없다. 나는 그러한 불행을 좀 크고 격하게 겪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소비자의 아버지로 우뚝 서다

■ 소비자학의 권위자이다. 특히 매해 트렌드(Trend) 분석을 하고 있는데
트렌드 헌터(Trend Hunter)그룹이 있다. 그들이 정보를 수집하면 이를 보고 분석하는 일을 한다. 또 신문이며 잡지, 책을 자주 보면서 트렌드가 어떻게 흘러 가는지를 항상 생각한다. 특히 한 달에 한 번씩 일간지에 칼럼을 투고하는데 이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강제적으로라도 칼럼을 쓰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안주하지 않도록 하는 원동력이라고나 할까. 

■ 09년도 타이거노믹스(TIGEROMICS) 10년도 투 래빗츠(TWO RABBITS)같이 그 해의 동물에 맞춰서 트렌드를 예측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웃음) 07년도가 황금 돼지의 띠였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황금 돼지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그러다 보니 그 해 처음으로 트렌드를 예측할 때 골든 피그스(GOLDEN PIGS)를 내놓았다. 처음 시작할 때 그렇게 하다 보니 다음 연도부터 항상 12 지신과 연관 지어야 하는 것처럼 틀이 지어졌다. 주의의 반응도 그렇고. 역시 처음 시작이 참 중요하다.

■ 고유가 시대를 맞아 소비자들이 어떠한 소비를 해야 할까
합리적 소비를 해야 한다. 합리적 소비를 위해서는 첫 번째로 충동구매를 줄여야 한다. 충동구매는 합리적 소비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타인 지향적 소비를 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 지향적 소비란 것은, 친구가 아이폰(iPhone)을 산 것이 부러워 자신도 따라 사는 행위를 포함한다. 07년도에 나온 『럭셔리 코리아』에서 어떤 소비가 지혜로운 것인지를 명품에 대한 집착 현상과 결부시켜 설명하고 있다.

#3. ‘란도샘’으로서의 인생

인터뷰 도중 한 지상파 방송사로부터 섭외 전화가 왔다. 김 교수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꽤 유명한 퀴즈 프로인데.
■ 왜 방송 출연을 거부했나
나의 목표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학자와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 나의 목표인데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은 그에 맞지 않는다. 간혹 가다 아침 프로그램에서도 전화가 오고는 하는데 그 프로그램을 거절했던 이유 또한 내 목표와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 대부분이 주부인 프로그램에 출현한다는 것은 좋은 학자가 되는 것도,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도 아닌 듯하다. 이번 퀴즈 프로그램도 비슷한 이유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건대 퀴즈 틀리면 창피하지 않나(웃음).

■ 시대의 멘토로 각광받고 있는데
요즘 들어 ‘시대의 멘토’라고들 추켜세우고 그러는데 솔직히 부담스럽다. 시간이 없고 귀찮기보다도 내가 하는 말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두렵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모두 옳은 것이 아닌데 나의 말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거창하게 멘토까지는 아니더라도 학생들과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다. 같이 고민도 하고.

■ 저서에서 “좋은 선생이란 학생들을 꿈꾸게 만들고,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대학생들에게 ‘꿈’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나
학생들도 그렇고 부모들도 그렇고 망하지 않을 최소한의 기대를 바란다. 예를 들자면, 약사를 해서 약국 차려 살만한 정도가 그들이 바라는 최소한의 기대이다. 또, 대기업에 들어가 정년을 보장받는 정도를 소망한다. 그리고선 그것을 꿈이라고 정한다. 근데 그게 무슨 꿈이라고 할 수 있는가? 꿈은 최소한의 기대가 아니라 최대한의 발현이다. 좋은 선생은 학생이 가진 최대의 가능성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어떤 학생도 최대치는 정해져 있지 않다.

■ 최대한의 발현을 이뤄내려면 수많은 도전이 필요한 만큼 위험도 따르기 마련이다. 부모님과의 마찰이 예상되는데
책에서도 썼듯이, 엄마를 이겨야 한다. 그런데 이 방법이 무조건 반항을 하라거나 집을 나가라는 말은 아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을 수 있도록 부모를 설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간혹 여자 혼자서는 유학을 갈 수 없고 결혼을 한 후에야 유학을 보내겠다는 부모님들이 계시다. 만일 이러한 가정에 있다면 자신의 간절함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남들이 쉽게 받을 수 없는 점수와 사전 조사의 치밀함 같은 것이 부모를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이다.

■ 대학생들에게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인생 시계’를 비유로 들곤 하는데 어쩌면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나태를 불러올 수 있지 않나(인생 시계: 80세를 24시로 비유해놓은 시계로 20살의 대학생은 오전 6시로 비유된다.)
인생 시계는 비유일 뿐이다. 아침이 조금 힘들다고 해서 하루가 다 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용기를 주고 싶었던 비유이지 나태해지고 싶을 때 위안을 얻으라는 비유는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받아 들이냐는 것이다. 언젠가 24시를 넘은 즉, 80세를 넘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기분 나쁜 비유가 아니냐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24시를 넘어서 보너스 인생을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좋은 쪽으로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보너스는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고 그런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더 행복한 것이 아닌가.

#4. ‘내일’을 말하다

■ 지금이 전성기라고 생각하나
전성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말했듯이 나의 목표가 유명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유명해지는 것이 목표였고 지금이 전성기라고 생각한다면 보다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조금 전에도 SK 자문단에게 자문을 해 주었는데, 만일 10년이 지난다면 더 좋은 자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전성기는 기한을 알 수 없는 ‘내일’일 뿐이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아까도 말했지만 좋은 학자, 좋은 선생이 되는 것이다. (굉장히 간략한데) 말이 길면 그건 거짓말이다. 사랑하면 ‘사랑해’라는 말로 충분한 것처럼 나의 계획도 짧게 언급하고 싶다.

■ 끝으로 성대신문이 1500호를 맞았다. 한 마디 부탁한다
1500호면 몇 년 된 건가? (57년 된 걸로 알고 있다.) 그렇게 긴 세월 동안 대학 정론의 위치를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점에 대하여 축하를 보내고 한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을 한다. 서울대학교 학보사에서 부주간 교수를 해봐서 아는데 학보사 일이 쉽지 않음을 익히 알고 있다. 한 가지 당부할 점이 있다면 학생과 소통할 수 있는 기사를 썼으면 한다는 것이다. 대학 언론의 위기라고 하는데 학생 기자가 독자에게 강요하는 식의 기사는 대학 신문의 외면을 부추긴다. 독자와 호흡할 수 있는 기사를 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