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차윤선 기자 (yoonsun@skkuw.com)

햇볕이 따사로이 내리쬐지만 심술궂게도 바람이 차갑게 불던 날, 강원도 홍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터미널에서 굽이굽이 산을 돌아 한 시간 반쯤 더 들어가자 살둔 마을 표지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커다란 개 두 마리가 수줍은 듯 컹컹 짖어댄다. 그리 작지도 크지도 않은 주택 뒤편에서 셔츠 한 장 가볍게 걸친 어르신 한 분이 마중을 나오셨다. 그렇게 살둔 제로 에너지 하우스에 도착했다.

살둔 제로 에너지 하우스(Zero Energy House)는 패시브 하우스에 속하는 집으로, 건축주 이대철 씨가 15년간의 독학으로 건설해 2008년 개관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집에서는 석유에너지가 거의 사용 되지 않는다. 전기나 수도세를 제외하면 에너지가 쓰일 곳이 없다.

살둔제로에너지하우스 전경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안에 들어서면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아직 강원도 산골짜기에는 곳곳에 녹지 않은 눈이 건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벽에 걸린 온도계를 들여다보면 영상 25도. 온도계를 의심하는 사이 이 씨가 “들어온 열은 절대 못나가. 햇빛으로 열이 들어오면 문을 열지 않고는 나갈 수가 없지”라고 실내 온도가 높은 이유를 설명해 줬다. 그러고 보니 햇빛을 최대한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장치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집은 남쪽을 향해 길게 늘어서 있고 남쪽 벽엔 커다랗게 창이 나 있다. 반면에 북쪽은 창의 수가 적고 그 크기도 남쪽 창에 비해 작다. 게다가 단열재로 뛰어난 스티로폼이 집안 벽에 내재 돼 있어 한번 들어온 열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거실에는 커다란 모형 하나가 난로 옆에 서 있다. 마치 미로처럼 꼬여 있는 구조다. “이건 굴뚝 내부 모형이야. 열을 잡아 둘 수 있도록 꼬아 놓은 거지” 이렇게 이 씨는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집을 지으려 이 집을 찾아오는 방문객을 위해 친절히 모형도 준비했다. 3년 새 6천여 명이 다녀간 집이라니 큰 수고가 아닐 수 없다.
살둔에너지제로하우스의 건축주 이대철 씨

이러한 공개가 가능한 것은 자신의 안위보다도 한국의 에너지 위기를 우선시하는 이 씨의 신념이 있기에 가능하다. “언젠간 피크 오일에 도달하게 될 거야. 사람들은 그때를 대비해 에너지 절약을 외치고들 다니는데 절약으로는 소용없어. 애초에 쓰지를 말아야 해. 근데 우리나라는 그걸 몰라. 원자력발전소 확대 정책이라니 이건 에너지를 펑펑 쓰겠다는 말밖에는 안돼”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미 EU는 19년까지 패시브 하우스와 같은 친환경주택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인식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이 씨는 피크 오일 후에는 이미 늦는다며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집안 곳곳을 비추는 따뜻한 햇살이 마냥 기분 좋을 수는 없었던 현실이었다.
그러나 살기 좋은 둔치라 해서 살둔으로 불리는 곳에 위치한 제로 에너지 하우스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희망이다. 비록 부족한 인식과 보수적인 건축방식이 만연하지만 이 집이 그 틀을 거부한 시발점이 된 것이다. 이 씨는 건축계에서 ‘정신 나간 노인네’ 취급을 받는다고 말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정신 나간 사람들’이 창조해 내곤 했다. 집에서 나오자 찬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온몸을 휘감았다. 차디찬 바람과 석유 에너지난으로부터 지켜 줄 제2의 제로 에너지 하우스를 상상하며 그렇게 그 집 개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