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정미 사회부장 (sky79091@skkuw.com)

우리말 ‘표준어규정’ 제1장 총칙 제1항.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TV 속 아나운서들,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을 짚어내며 청아한 소리를 낸다. 그럴 때마다 교양 있다는 현대 서울말에 사로잡혔다. 서울에 대한 동경은 여기에서 시작된 것 같다. 사투리 속에 파묻힌 일상에서 탈출하길 원했으니 말이다.

어떤 이의 꿈은 여기에 있었다
어른들은 서울의 물질문명을 수도 없이 풀어냈다. 무용담과 같았다. 변혁의 시기에 서울에 다녀오거나 거주한 경험들은 그들 청춘의 역사였다. 그리고 가야 한다 했다. 도읍 서울로!
“63빌딩 전망대에서 보는 서울 야경이 얼마나 예쁜 줄 아니? 궁궐 처마에 하늘을 찌를 것 같은 고층빌딩들과 한강, 모든 것이 혼재돼 있는 엄청난 곳이지”
“젊은 시절 서울에 살 때 어찌나 지갑을 많이 잃어버렸는지 몰라. 지하철에서는 눈 크게 뜨고 가방은 꼭 잘 지켜야 한다. 서울에선 눈뜨고도 코 베인 사람이 많다더라”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야 뭐라도 해먹고 살지. 여기서 뭐 할 게 있겠니”
그렇게 지방거주민의 설움을 안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지방 대도시에 살았으나 어쨌든 남들이 보기에는 시골소녀 서울 상경기가 시작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옛사람들의 말이 맞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하지 않았나. 이곳은 최첨단에 스마트한 물질문명들이 복합된 곳이니까.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그래도 연락은 해야 한다며, 넌 꼭 잘돼야 한다며.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나도 모르게 본연의 말씨 대신 교양 있는 현대 서울말을 사용한다.
결국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서울이라는 복합적인 근대적 구획체계에 종속돼가고 있었다. 점점 사투리가 농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개그 소재로 자주 등장하니 말이다. 아무리 나  살았던 곳이 문화수도라고 한다지만 한계가 있었다. 서울이라는 벽은 너무도 공고해서 지방 어느 곳도 서울보다 뛰어나지 않았다. 각 지방은 문화적 낙후지역이 됐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개발의 천국이 됐다. 빠르기와 편리함이 가득한 서울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많은 것들을 없애고 만들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얼마 전에는 추억과 낭만이 가득하다던 춘천 가는 기차가 사라졌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보란 듯이 살아야 한다
올해로 서울 살이 삼 년 째. 가끔 서울이라는 이 공간 많은 것이 낯설어진다. 그리고 괜스레 서글퍼진다. 치솟는 물가에 학교 주변 자취방은 상상 초월의 월세를 자랑하는데, 누구 하나 집에 들어가면 반겨 줄 사람은 하나 없는데. 난 왜 이곳에서 버티고 있을까. 내 꿈이 점점 불투명해지는 느낌인데.
견뎌낼 힘이 없을 때마다 기차라는 근대적 교통수단 탄생 이후에 생겼다던 ‘고향’과 ‘실향’이라는 개념이 직간접적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을 수도 없이 맞이했다. 외롭고 헛헛해질 때면 정겨운 고향 집이 생각났다. 그러다 그곳에 조금이라도 오래 있을라치면 온몸이 근질근질하고 심심했다. 섭섭해하는 친구들과 부모님을 뒤로 한 채 서울행 탈것에 올랐다.
여기에 오기 전 서울은 동경과 미지의 세계였다. 상상 속 서울은 청춘이 살아 있었다. 꿈에 그리던 사람들과 너무도 쉽게 소통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것 자체는 모든 것을 좀 더 빨리 체험할 기회였다. △패션도 △IT기기도 △정치사회적 이슈들도.
생각해보면 사투리로 말하는 것이 어색한 지금, 스물 초반까지 지녔던 본연의 정체성은 증발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껍데기 서울사람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서 살아야겠단 막연한 생각을 하며 주택청약저축을 들고 있다.
이곳을 두고 지금도 사람들은 또 꿈꾸고 기대할 텐데. 그 기대들이 가끔은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