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유착, 패거리 주의, 상업성 문제 딛고 위기 극복해야

기자명 차윤선 기자 (yoonsun@skkuw.com)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누군가 전짓불을 얼굴에 들이대며 당신은 누구 편이냐 묻는다.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음에 생긴 불안감은 사건 이후로도 한 소설가에게 고통을 준다. 한 정신과 의사는 그를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또다시 전짓불을 그에게 들이댄다.

이는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의 주된 내용이다. 평론가들은 소설 속 △전짓불을 사회적 압력 △정신과 의사는 문학 권력 △다시 한 번 들이대는 전짓불을 권위자가 휘두르는 외압에 비유해 사회와 권력으로부터 억압받는 문학을 설명했다. 이 소설은 1998년에 발간됐지만 약 10여 년이 지난 현재도 문학과 문학인의 위기는 여전하다. 특히나 문학 권력을 대변하는 국내 문학상 제도는 한국 현대문학이 처한 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201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

신춘문예, 국내 문학상의 스타트 끊다
국내 문학상의 시초는 1914년 <매일 신보>가 공고한 ‘신년문예 모집’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3.1운동 이후 무조건적 무력통치보다는 제한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내어주는 문화정치가 시행되면서 신춘문예가 등장했다. 이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문인 등단 상을 제창했고 문학상을 받는다는 것은 곧 문인으로 거듭나는 등용문에 들어섬을 의미했다. 신춘문예 제도를 통해 예술적 장인이라는 근대적 문인의 정체성이 형성됐고 한국적 문학 저널리즘이 더욱 활성화 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심판대에 오른 국내 문학상 제도
이러한 신춘문예를 포함한 국내 문학상은 역량 있는 문인을 위한 창구역할을 수행해 왔지만 20세기 후반에 접어서면서 차츰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최근 10년간은 국내 문학상 제도에 대한 문학 평론가들의 신랄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출판사 ‘창작과 비평’에서는 『문학상 제도의 빛과 그늘』을 펴내며 △언론과의 유착 △심사과정과 그 부산물인 패거리 주의 △출판 상업주의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냈다.

#1. 언론과 문학의 부정한 얽힘
신춘문예가 신문사의 권력에 힘입어 탄생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 문학상과 언론과의 유착은 불가피한 문제이다. 권위가 높은 언론일수록 그 폐해는 더 심각해지는데 하상일 문학 평론가는 「문언 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라는 글에서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이 신문매체의 영향력과 최고 액수의 상금을 통해 문단을 지배하여 문화 담론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 학교 황호덕(국문) 교수도 2008년 저술한 『프랑켄 마르크스』에서 국내 문학상 제도의 기원에 대해 언급하면서 제도가 권력으로 변질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름 있는 출판사에서 내거는 문학상도 이와 같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2. 무엇을 위한 심사인가
또한 심사기준과 심사위원에도 문제가 있다. 계간지 <시평>은 2007년 가을 호에서 젊은 시인을 대상으로 국내 문학상 심사제도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작가들은 △심사과정 기준의 불투명성(40%) △같은 심사위원이 여러 문학상을 심사하는 경우(40%) △한 작가가 여러 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는 점(27%)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문학상 지원자의 중복투고는 금지하면서도 한 사람의 심사위원이 서너 개의 문학상을 심사하는 것은 현재로서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굳어졌다. 따라서 누가 심사위원인가는 문학상 수여의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갈지에 대한 결정적 잣대로 작용한다. 심지어는 심사위원이 누구인지를 파악하고 그 심사위원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을 문학 창작의 첫 번째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이렇게 영향력 있는 심사위원의 심미적 기준과 경향은 한국 문학 흐름을 좌우할 만한 힘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이명원 문학 평론가는 비평집 『파문』에서 “신춘문예가 신인의 패기와 미적 혁신에 기여하기보다는 기성문단의 구조적 모순을 사후 승인하고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동된다는 것은 매우 모순적인 현상처럼 생각되지만 이는 전혀 모순이 아니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모든 문학상이 이러한 구조 모순에 자리를 내 주는 것은 아니다. 2009년 미당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김언은 당시 2번의 시집만을 펴냈던 유례없는 수상자였다. “치열하고 어려운 심사과정을 통해 수상한 김언 시인의 사례가 좋은 징조가 될 수 있다”며 고려대(불문)에 재직 중인 조재룡 문학 평론가는 희망을 내다봤다.

#3. 문학성과 대중성의 불협화음
국내 문학상이 상업성과 직결된다는 점도 화두에 올랐다. 몇몇 출판사들을 보면 상당한 액수의 상금을 내걸고 문학상을 운영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의 상금을 투자하더라도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즉각적 상품화로 직결되기 위해 문학성은 다소 떨어져도 독자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게 된다는 데에 있다. 즉 한편으로는 시장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여기에 문학상의 권위를 덧입히는 것이다. 독자는 선정된 작품에 절대적인 신뢰를 갖게 되면서 악순환의 고리는 순환된다. 이런 경향 때문인지 최근 문학상 제정과 심사에서 대중성과 문학성을 어떻게든 결합시켜 의미화하려는 의도가 눈에 띈다. 예전 문학상들을 △김수영 문학상 △소월시 문학상 △이효석 문학상 등 대부분 문학사적 중요성으로 지니는 문인들의 이름을 딴 것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뉴웨이브 문학상과 같이 특정한 장르나 문학적 경향을 표명하는 문학상이 많이 생겼고 이는 변화된 출판시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다.
대학 문학상의 독자적 행보
한편 대학 문학상은 외압에 둘러싸인 기성 사회의 문학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기존 문학상이 지닌 여러 문제점과 한계에 구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출판시장이 바닥을 치는 문학 불황기에 대학 문학상은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문학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역할을 한다. 작년도 성대문학상 시 부문 최우수상을 차지한 박종혁(국문02) 동문은 “<성대신문>에 출품하면서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서 좋았다”며 다른 문학상에 도전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조재룡 평론가는 “대학 문학상으로 아마추어들이 용기를 얻고 기성 문학상에 도전할 수 있다”며 “대학 문학상이 더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도와 문학의 위기 회복을 위해
최근에는 문학상의 수를 실질적으로 세는 것조차 힘들 만큼 문학상의 수는 수백 개를 넘어섰고 수상자조 차 상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받는 일이 쉽지 않은 현실이 됐다. 문학상의 양적 팽창이 일어난 현실을 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권위의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문학상 수의 증가 추세를 반기기도 한다. 오창은 문학 평론가는 “문학상의 양적 팽창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양한 문학상이 생김으로써 문학이 다양화되는 것은 오히려 권유할 만한 긍정적 모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 평론가는 문학의 다양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특색 있는 문학상이 존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사기준을 공정하면서도 정교하게 설정한다면 문학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상 제도는 여러 잡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좋은 작품과 좋은 작가를 발굴해내는 순기능을 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국내 문학상 제도가 이청준 소설 속 ‘정신과 의사의 전짓불’대신 문학 사회 전반을 비추는 태양의 역할을 꿈 꿔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태양 위 구름이 끼든 비가 오든 다시 떠오를 태양에 누구도 의심을 품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