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집착과 욕망 탈피… 지역사회 신뢰 높여

기자명 유정미 기자 (sky79091@skkuw.com)

돈. 이제는 이것이 인간 삶의 수단과 목적이 돼 물건을 사고파는데 필요한 매개로서 역할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니. 오호통재라. 화폐라 불리는 그 종이들을 산더미처럼 쌓는 것이 인간의 목적이자 수단이라면 삶은 너무 단조롭지 않은가. 여기 그 단조로운 삶에서 벗어난 이들이 있다. 이들은 지역 안 공동체 안에서 ‘지역화폐’라는 지역통화를 사용한다. 이들의 삶에서 돈, 그리고 화폐는 그저 경제활동을 위한 단순한 도구일 뿐.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 정서적 유대이다.



성대신문 자료사진
지역화폐는 한 국가 내에서 정부와 중앙은행에 의해 통용되는 국가화폐와 달리 특정 지역 내에서 지역 주민들이 정한 규율에 맞게 사용되는 돈이다. 이는 △공동체화폐 △대안화폐 △보완통화 △에코머니 △지역통화 등으로 불리며 전 세계적으로 3천여 개 이상의 지역에서 통용되고 있다. 화폐의 발행과 사용에서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며 이를 통해 지역 공동체 내에서 대안적인 통화시장을 구축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이 화폐는 △법정 화폐가 없어도 사람들이 물품과 서비스를 교환할 수 있는 ‘레츠(LETS,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유형의 화폐를 사용하는 ‘아워즈(Hours)’ △물품 거래 없이 자원봉사은행의 성격을 띠는 ‘타임달러(Time Dollar)’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지역화폐를 실천적으로 사용하자는 의미의 지역화폐운동(이하:운동)은 1983년 캐나다 코목스밸리라는 작은 섬마을에서 시작됐다. 당시 지역산업이 붕괴하자 실업률이 20% 가까이 육박하는 등 어려운 경제상황이 지속됐다. 현금을 소유하지 않으면 어떤 경제행위도 할 수 없었던 것. 이때 컴퓨터 프로그래머 마이클 린튼이 컴퓨터프로그램을 이용해 지역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거래 관리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는 레츠라고 불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IMF 당시 국내 도입, 대안적 화폐제도로 각광
국내에 이 운동이 들어온 것은 외환위기로 경제상황이 악화됐던 1996년이었다. 당시 <녹색평론>을 통해 지역화폐의 개념이 알려지고서 1998년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단체에서 ‘미래화폐’라는 지역화폐를 처음 도입했다. 현재는 △경기 과천품앗이 △대구 늘품 △대전 한밭레츠 △부산 사하품앗이 △서울 송파품앗이 △의정부 레츠 △파주 법흥리 해오름마을 등 전국 30개 정도의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마포구에 자리한 성미산마을에서는 ‘두루’라는 화폐를 사용한다. 성미산마을극장에서 스텝으로 일하는 가림토 씨는 “△되살림가게 △매년 열리는 마을축제 △생활협동조합 등에서 적립 형태로 물건을 사고팔 수 있습니다”라고 사용 범위를 설명했다.
지역화폐 ‘송이’를 쓰는 부산 사하품앗이는 앞으로 현금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이와 관련 오혜정 회원은 “현재는 물건을 구입할 때 최대 30% 정도 송이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계산해요. 인터넷 상에서 송이통장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작년 9월에는 예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죠”라고 말했다. 지역화폐를 통해 다양한 사회운동을 실현할 수 있음을 믿고 있기 때문이란다.
과천품앗이의 카페에는 하루에도 몇 건씩 노동력과 물건을 교환하길 원하는 글들이 올라온다. 이때 쓰이는 것이 지역화폐 ‘아리’이다. 공동체의 한 회원은 “지역화폐는 외부 홍보를 통해 알게 됐고, 직접 쓰기 시작한 지 4년 정도 됐네요. 이 운동을 통해 돈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지역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생활정보도 공유할 수 있죠”라며 장점을 강조했다.
이외에도 최근 많은 지역공동체가 운동과 관련한 자문을 얻고자 국내 운동 성공사례로 꼽히는 대전의 한밭레츠에 자문을 구하는 등 운동을 이어가기 위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주민 자발적 참여형태가 가장 이상적 방향
하지만 다양한 시도에도 국내에서의 운동은 초창기에 비해 상당부분 위축된 상태다.
지역화폐를 연구하는 가톨릭대 소비자주거학과 천경희 교수는 국내에서 운동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주민들의 자발성 여부가 큰 문제에요. 최근에 서울시가 S머니라는 지역화폐를 만드는 등 여전히 지자체에서 주도적인 운동을 벌이지만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 없이는 성공하기가 어렵죠. 몇몇 시민단체 역시 이를 활동 수단으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운동을 방해하는 요인이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자체들이 이를 복지 개념으로 인식해 상당부분을 지원하지만 실제로 아래에서 주도하는 운동이기에 복지화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금전적 문제 △가맹점 회원 수 △실질적 회원 부족 등이 운동의 고질적인 한계로 인식되고 있다.

진정한 마을공동체 형성이 관건
국내에 운동이 정착하는 데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 운동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다양하다. 여러 가지 순기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부산 사하품앗이 오 회원은 “지역주민 중 주부들이나 노인들은 노동력은 있지만 노동을 하지 않고 있어 사회에서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을 때가 잦아요. 이런 분들이 지역화폐를 사용하면 노동을 통한 품앗이를 하기 때문에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됩니다”라며 긍정적인 측면을 설명했다.
운동은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소속감을 높이는 역할도 하고 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과 물물교환을 통해 소비를 실현하니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생태주의적 측면도 함양하고 있어 지역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동력으로 인정받는 상황이다. 이에 각 단체도 여러 활로를 모색해 운동을 더욱 발전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일례로 대전 한밭레츠에서는 전 세계 최초로 지역화폐를 통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운동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성미산마을 가림토 씨는 “이 운동은 마을공동체가 형성되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사람들을 연결하는 매개로서 돈이 가지는 가치를 믿어야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죠”라며 운동과 공동체 형성의 연계성을 강조했다.
천 교수는 “이 운동은 집착과 욕망을 버리고 좀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대안적 시스템이에요. 최근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운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삶의 방식을 바꾸는 운동이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을 두고 진행해야 합니다”라고 당부를 전했다. 더불어 국내에서 운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점을 들어 앞으로 활발한 연구가 필요함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