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구니 방문기 및 김기호 대표 인터뷰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동부이촌동의 어느 한식당. 단청무늬로 장식한 간판에 적힌 ‘초록바구니’라는 이름이 썩 잘 어울린다. 국내 최초로 분자요리를 응용한 한식을 선보이고 있는 이곳은 많은 이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아침 아홉 시, 손님 없는 한산한 시간을 틈타 초록바구니의 김기호 대표를 만났다.
분자요리의 정의에 대해 묻자 곧바로 돌아온 “별거 아니다”라는 답변에 맥이 빠지는 것도 잠시, 이어지는 그의 말은 멀게만 느껴지던 분자요리를 한층 친숙하게 만든다. “단순히 단어의 의미에 집중한다면 전 세계에 분자요리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저 만드는 사람이 분자요리라는 것을 알고 하느냐 모르고 하느냐의 차이죠” 식재료가 가진 맛과 향을 최대로 끌어내기 위해, 혹은 본래 가진 질감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을 참고했다면 모두 분자요리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로 떼어서 존재할 땐 평범했던 음식 둘이 만나 분자요리가 되는 경우도 소개했다. “저희 메뉴에 청양고추 아이스크림이 있는데 꽤 매워요. 유성인 캡사이신의 매운맛을 씻어내기 위해 기름기가 많은 호두 쿠키를 곁들여 내죠. 그럼 확 매웠던 맛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상쾌한 기분이 듭니다”
그가 처음 분자요리를 접한 것은 신문 지면을 통해서다. 5년 전쯤 유명한 스페인 분자요리레스토랑 ‘엘 불리(El Bulli)’를 조명한 그 기사는 외식업에 종사하고 있던 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제겐 상당히 귀중한 정보였어요. 음식을 하는 데에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할까요. 분자요리란 어떻게 하는 걸까 궁금증이 생겼지만 국내엔 자료가 거의 없더라고요” 그 후 △기사 △논문 △인터넷을 뒤지며 퍼즐 맞추듯 흩어진 자료를 모아온 그는 마침내 작년 9월『분자요리의 첫걸음』이라는 책을 펴냈다.

열심히 공부한 그는 마침내 자신의 한식당에 분자요리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도 특이한 ‘공기떡’부터 익히는 방법에 ‘수비드 기법’을 사용한 평범해 보이는 음식까지 초록바구니의 모든 메뉴가 분자요리다. 새로운 분자요리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는 그. 한식과 분자요리의 접목에 대한 의견을 물으니 “한식이 뭐라고 생각하나”라는 새로운 물음이 돌아온다. “분자요리를 한식에 도입했을 때 과연 사람들이 그걸 한식이라고 할지,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해보잔 거예요. 예를 들어 불고기에 트뤼프(송로버섯)를 살짝 갈아 얹었다면 당장에 한식이 아니라고 할걸요. 우리나라는 받아들이는 데에 인색해요”라며 한국인 고유의 폐쇄성이 분자요리와의 융합을 방해하고 있는 현실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분자요리의 국내 보편화 가능성에 대한 염려도 내비쳤다. “분자요리 중에 ‘용가리’라고 부르는 게 있어요. 액체질소를 재료에 넣고 순간 냉각시킨 걸 입에 넣으면 콧김이 뿜어져 나와요. 몇 십만 원 내고 그걸 먹는 우리나라 4,50대 사람들한테 콧김 뿜어보라고 하면 할 사람이 있을까요? 분자요리는 먹는 행위 외의 즐거움이 가미돼야 오감을 자극할 수 있어요. 일단 우리나라는 교감할 수 있는 요소 하나가 빠지는 거죠” 실제로 자신의 요리를 한식으로 대하지 않는 손님들도 많다며 그는 초록바구니를 ‘분자요리 한식’이라는 이름만으로 규정짓지 말길 당부했다. 
한편 분자요리 자체에 대해서는 희망적인 미래를 제시했다. 분자요리에 주로 쓰이는 하이드로콜로지 계통의 재료들은 대부분이 수분과 섬유질로 구성돼 있다. 즉 칼로리가 낮은 건강식이라는 것. 분자요리는 맛과 재미에 더해 웰빙도 갖춘 일급 인턴사원으로서 호시탐탐 도약을 꿈꾸고 있다. 게다가 분자요리는 지구를 생각하는 착한 음식이기도 하다. “분자요리의 주재료인 해조류는 바다에서 나잖아요. 바다는 아직 개발할 것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 주식은 육지에 한정돼 있는데 이제 인류의 식량이 바다로 눈을 돌리게 될 거예요. 그러다 보면 분자요리의 재료도 다양해지고 동시에 지구에도 이롭겠죠”
인터뷰를 마치고 홀에 나오니 따뜻한 음식 향기가 가득하다. 분자까지 생각한 맛 나고 멋 나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이곳. 비행기가 아닌 지하철에 몸을 싣고 찾아갈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새로운 것, 다른 것에 인색한 우리나라의 척박한 토양에서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초록바구니를 주목하자. “분자요리 때문에 초록바구니가 유명한 것이 아니라, 초록바구니가 분자요리를 하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라는 김기호 대표의 자신감은 방문객에게 얹어주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