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활동가 성혜영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박물관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후 2시의 박물관』. 두 저서는 제목만으로도 박물관을 편하고 친숙한 공간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자신의 책과 똑 닮은 그녀의 삶은 소중한 친구 찾듯 박물관 주위를 맴맴 돌고 있다. 자기 안의 답을 찾거나 위안을 얻기 위해 유물들을 돌아본다는 그녀. 그 애틋한 박물관 사랑과 유물과의 소통 가능성을 들어봤다.

엄보람 기자 (이하:엄) 학창시절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성혜영 박물관 활동가(이하:성) : 난 이것저것 재주가 많은 모범생이었어요. 한때 그림을 그리고 싶단 생각도 했었는데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어요. 어찌어찌 하다가 역사학과로 진학하게 됐죠. 역사 공부도 재미있었지만 미대를 가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늘 있었어요. 근데 그 예술에 대한 열정이 엉뚱하게 박물관 쪽으로 터진 거예요. 그 후 미술사도 함께 공부하면서 박물관에 구체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어요. 대학원에서 박물관 경영학을 전공하기도 하면서요. 지금까지도 계속 박물관 언저리를 맴돌면서 관련된 뭔가를 하는 형태를 띠고 있어요. 도대체 원래 꿈은 뭐였는지 모르겠어요. 화가도 하고 싶고 역사활동가도 하고 싶고 그랬던 것 같아요.    

엄 : 그간 박물관과 관련해 어떤 일을 해왔고 현재 진행 중인 활동은 무엇인가
성 : 어딘가에 확실히 소속돼 기존 사회 틀에 맞는 일을 꾸준히 해온 게 아니었어요. 말했다시피 꽤 오랫동안 박물관과 관련된 공부를 해왔죠. 그 후로 개인 갤러리를 운영하기도 하고 전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어요. 직접 큐레이터로 활동했던 시기도 있었고요. 좋게 말하면 프리랜서고 어떻게 보면 비정규직으로 짤막짤막한 일을 해온 셈이죠. 박물관과 인간의 소통을 돕는 쪽의 일을 시작한 건 일과 공부에서 완전히 놓여난 다음이에요. 전적으로 수용자의 입장이 되니까 박물관이 이래야 하고 저랬으면 좋겠다, 하는 게 훨씬 잘 보이더라고요. 그 내용을 책으로 묶거나 신문에 칼럼으로 싣고 가끔 강연도 하고 있어요. 공부하는 입장이 아니라 일반인의 입장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박물관을 찾으면서 결과적으로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 거나 다름없죠.

엄 : 박물관이라는 존재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하다
성 : 내 기억에 맨 처음 가본 곳은 국립중앙박물관이었어요. 그땐 보통 어린 애들이 생각하는 거랑 똑같이 박물관을 받아들였겠죠. 뭔가 적어야 할 것 같고 따분하고 그런 공간으로요. 역사학 공부를 할 때는 보조학문 내지는 참고자료 정도로 박물관을 찾았고 미술사 공부를 시작하면서는 예술품에 대한 접근법을 배우러 가는 정도였어요. 항상 조금씩 다른 입장에서 박물관에 갔었죠. 지금의 존재 의미도 한 가지로 명확하게 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일단 공부 자체를 위한 박물관은 아니에요. 요새는 그 공간이 필요해질 때가 있어요.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거나 답을 얻고 싶을 때 찾게 돼요. 울적하거나 쉬고 싶을 때도 찾고, 누군가를 만날 때 마땅한 장소가 없으면 박물관에서 만나자고 하기도 하고. 이젠 좀 여러 가지 용도로 활용하는 편이에요.

엄 : 박물관을 친숙하게 즐기고 감상하는 비결을 알려 준다면
성 : 일단 많이 가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더 중요한 건 어깨에 힘을 뺄 것. 부담 없이 거닐어야 만날 수 있는 순간이 있어요. 막 돌아다니다가 어느 한 군데 앞에 딱 멈춰 서게 되는. 그런 경험을 한 번 하고 나면 박물관에 가고 싶은 마음이 계속 생겨요. 전시는 무작정 가는 게 아니에요. 수많은 것 중에 지금 내 안의 잠재적 문제나 알고 싶은 것과 맞아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는 거죠. 어느 유물 앞에 멈춰 서냐 하는 것도 똑같은 맥락이에요. 보는 순간 문득 깊은 생각에 빠진다거나 위로를 받았다면 자기 안의 욕구나 호기심이 전시물과 만났다는 뜻이에요. 박물관에서 자기 방식으로 사물을 본다는 건 자기 문제에 천착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엄 :『오후 2시의 박물관』에 나오는 뮤지엄 테라피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무슨 뜻인지
성 : 뮤지엄 테라피는 제 두 번째 책 『오후 2시의 박물관』의 부제이기도 해요. 여기서 뮤지엄 테라피는 박물관에 가서 유물을 통해 자신의 문제나 기억을 되살려 성찰의 기회를 얻는 걸 말해요. 박물관을 통해 내 삶에서 이건 잘했다, 이건 후회가 된다 등의 카타르시스를 이 책을 쓸 때 유독 강하게 느꼈어요. 이게 일상적으로 하나의 치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만들어본 말이에요. 결국 자기 안의 문제를 스스로 끌어내지 못한다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지만 말이에요.

엄 : 왜 박물관의 이미지가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공간으로 굳어졌다고 생각하나
성 : 유물은 삶의 흔적이지 학문의 업적이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박물관을 학문적으로만 접근 한단 말이에요. 그건 활동가나 연구자들의 몫이지 일반인들까지 그럴 필요는 없거든요. 우리가 노래방 가고 클래식 듣고 하는 게 다들 작곡가가 되려고 그러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즐기면 되는 건데 그런 마인드가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지 않나 싶어요.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알게 된다는 식의 시너지 효과를 쌓아갈 필요가 있어요. 박물관 쪽에서도 편하게 놀러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기획에 힘써야 할 테고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우리나라가 좀 모든 면에서 급하잖아요. 누리고 공급하는 문화수준은 성숙하지 않았는데 박물관을 짓고 싶은 욕망과 의욕은 넘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과시적인 성향이 많고 정작 내용은 다 못 채우는 ‘유물 없고 기본 없는’ 박물관들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 같아요.

엄 : 현대인에게 박물관은 무엇으로서 존재해야 할까
성 : 박물관이 담당하는 역할은 시대를 따라 바뀌어왔어요. 아주 옛날엔 귀족 등 특권 계층의 보물창고로, 근대 국가가 형성됐을 무렵엔 나라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한 국가 기관으로 취급되기도 했죠. 박물관이 상징하는 나라의 독립성이나 자주성에 대한 과시도 커서 식민지국가가 독립하면 가장 먼저 박물관부터 세울 정도였어요. 그에 비해 현대에 와서는 그 성격이 굉장히 다양화되고 특화됐어요. 종합 박물관에서 탈피해 개별적 주제를 지닌 사립 박물관들이 늘어나는 걸 박물관의 민주화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요. 어떤 이념을 떠나서 일상으로 초점이 맞춰진 만큼 그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는 점이 참 반가운 변화예요. 요새는 종친회나 동창회도 박물관에서 한다면서요. 그렇게 사람들에게 약간의 문화적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나들이 공간으로 존재해 준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엄 : 20대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성 : 글쎄, 내가 말한다고 들을까?(웃음) 사람은 사회나 자기 문제에 대해 항상 생각하면서 거기서 어떤 욕구를 만들어야 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게 잘 안되지 않나 싶어요. 공부와 스펙 쌓기에 치이느라 정작 모순적으로 뭘 하고 싶다, 뭐가 되고 싶다 같은 생각을 못하는 게 큰 문제예요. 참 좋을 땐데 말이에요. 어깨에 힘 빼고 박물관에 열심히 드나들어 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그 시간에 자신을 방목하다 보면 뭐 한 가지라도 자기 경험과 매치되는 순간을 만날지도 모르니까요. 그게 앞으로의 삶에 중요한 매개가 돼 줄 수도 있고. 갈 곳, 놀 곳 없는 그들에게 박물관이 도움을 주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