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학교로 전문성 더해… 도시농사의 종합적 가치 인정받아

기자명 유정미 기자 (sky79091@skkuw.com)

옛사람들은 이 시기, 그러니까 음력으로 따지면 3월인 지금 농사를 두고 이렇게 노래했다. “삼월은 모춘이라 청명 곡우 절기로다/ 춘일이 재양하여 만물이 화창하니/백화는 난만하고 새소리 각색이라/… /전산에 비가 개니 살진 향채 캐오리라/ 삽주 두룹 고사리며 고비 도랏 어아리들/ 일분은 엮어 팔고 일분은 무쳐 먹세/ 낙화를 쓸고 앉아 병술로 즐길 적에/ 산처의 준비함이 가효가 이뿐이라(정학유, <농가월령가> 3월령 중)”. 그런데 이 모습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도시에서도 낯설지 않다. 최근 ‘도시농사’가 도시 사람들 삶 일부분으로 자리하면서 도시농사꾼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정미기자 sky79091@skkuw.com
도시농사란 도시 안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시민들이 직접 농사를 짓는 것으로 도시농업으로도 불린다. 이는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개개인이 작은 규모로 농사를 지어 도시 안에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는 방식이다. 현재는 △베란다 △아파트 화단 △옥상 △주차장 같은 가까운 자투리땅 상자텃밭에 농사짓는 형태로 확대되고 있다. 도시와 사람, 흙과 자연을 살린다는 취지에 맞게 자투리땅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도시농업포럼 도시농사꾼 신동헌 공동대표는 “농약 사용이나 최근 방사능 유출 우려 탓으로 먹을거리 불안이 지속되면서 유기농법을 통한 도시농사가 더더욱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시농사가 DIY(Do It Yourself) 개념에서 GIY(Grow It Yourself) 개념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농부학교와 모임으로 전문성 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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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흐름에서 최근 도시농사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교들도 생겨나고 있다. 농사 경험이 없는 이들이 보다 전문적이고 재미있게 농사를 짓게 하려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설되고 있는 것. 현재 △경남 양산 도시농부학교 △광명도시농부학교 △마포도시농부학교 △수원도시농부학교 △인천도시농부학교 △전국귀농운동본부 도시농부학교 등이 전국각지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들 학교에는 20대부터 노년층까지 참여할 뿐 아니라 기술 이외에도 유기농 농사의 가치와 의미를 함께 배우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도시농업에 대한 인식을 기를 수 있다.
(사)흙살림에서는 도시농사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생물로 만든 농자재를 개발하고 공급한다. 이곳의 함선녀 간사는 “도시농사를 짓다 보면 수확하고 나눠 먹는 즐거움과 여유를 동네 사람들과 함께 즐기게 된다”고 말했다.
도시농사의 청소년 교육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하자센터에서는 <자.란.다>라는 청소년 생태디자인 및 텃밭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얼티즌코퍼레이션은 농업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한 30대를 주축으로 만들어졌다. 얼티즌팜카페를 통해 농촌과 직거래를 주도한다. 얼마 전에는 서울형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카페 매니저 한정태씨는 “작년 가을부터 야외 베란다에 2백 상자 이상 상자텃밭을 경작하고 있고 올해는 규모를 키워 일반인들에게 분양할 예정”이라며 “주로 잎채소를 많이 길러서 식사 메뉴를 만들 때 사용한다”고 회사의 운영 방법을 소개했다.
1인 가구들이 모여 함께 농사짓는 모임도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1인 가족 에코네트워크 이웃랄랄라가 대표적. 홀로 사는 △미혼남녀 △독거노인 △기러기 아빠 △자취생 등 대한민국 인구의 20%가 1인 가구라는 점에 착안한 단체는 1인 가족이 스스로 챙기기 어려운 건강관리를 돕고 이웃을 만들어나가고자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 옥상에 농사를 짓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희망제작소에서 개최한 2009 사회창안대회에서 1위를 수상하면서 계속 지평을 넓히고 있다.
카페운영자 이정인 씨는 “우리와 비슷한 사례가 많이 생겼으면 하는데 이러한 문화 창출이 우리 사회 구성원을 위한 문화적 배려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바람을 전했다.

 디자인 요소 결합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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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업법’도 추진 중

최근 들어서는 도시농사에 디자인이 접목되고 있다. 지난 3월 30일부터는 종로구 관훈동 한국공예ㆍ디자인문화진흥원(KCDF) 갤리러에서 ‘도시농부의 하루’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도시농사에 정원과 텃밭 가꾸기 개념을 도입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장이 되고 있는 것. 이들은 ‘그린문화 네트워크’를 제안하며 인사동 열한 번째 골목에 파머스마켓, 옥상정원을 조성하는 등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이러한 부분을 현실화시킬 도시텃밭디자인 교육 수강신청도 받고 있다.
작년 12월부터는 한나라당 안성시 김학용 국회의원을 통해 ‘도시농업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실제로 도시농사가 활성화된 △독일 △영국 △일본 △쿠바에서는 도시농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사회경제적 측면의 활성화를 위해 시설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 서울시 강동구에서 도시농업 관련 조례를 제정하는 등 지역단위로 조례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아직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 귀농운동본부 박용범 사무처장은 “도시농업법 제도의 핵심은 시ㆍ국가기관이 시민들에게 경작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법률안은 공청회 등을 열어 다각도의 의견을 수렴해가는 중이다.

 도시의 삶 전반적으로 변화시키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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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사의 여러 가치에도 혹자는 도시농사가 농촌 기반의 농업에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닐까 우려하기도 한다. 외국은 평균적으로 도시화 정도가 50~60%이지만 우리나라는 95% 정도로 도시화 비율이 매우 높고 농촌과 도시의 분리가 더욱 심화돼 점점 농촌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농운동본부 박 사무처장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농산물 대부분 외국산인데다 외식문화로 직접 요리해 먹는 것이 사라졌는데 이 점은 결국 국내 농산물 소비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러한 측면에서 도시농사는 국내에서 이뤄지는 농사를 다양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반박했다. (사)도시농업포럼 도시농사꾼 신 공동대표 역시 “도시농사가 전체 농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일부분”이라며 “이는 우리 농산물 소비 전체의 파이를 키우고 채소 소비문화를 확산시키는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도시농사는 가치를 인정받아 △농사를 통한 생산적 여가활동 △도심 녹색생태계 조성을 통한 생활환경 개선 효과 △인간과 자연의 교감 체험 △로컬리티와 친환경에 대한 재인식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환경단체가 그간 해왔던 투쟁적인 운동보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측면의 운동이라는 평이다.
도시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지금도 누군가는 그 땅에 빌딩을 짓고 막대한 이익을 추구한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공생을 위해 자그마한 공간에 지금도 씨를 뿌린다. 물질문명이 혼재된 도시에서 수확의 기쁨을 맛보는 것, 삶의 소소한 기쁨이 될 테다. 그렇기에 도시 농사는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