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욱(화학) 교수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올해로 우리 학교에서 생활한 지 7년째로 접어들면서 교수란 직업에 대해 생각해본다. 교수란 직업은 연구와 교육을 하는 것이다. 이일을 함에 있어 행복이란 무엇일까?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아내는 과정이며 또한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연구분야에서 흔한 유명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개인 명예욕이 동기가 아닐지라도 그 연구자체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일이기도하다. 이런 면에 있어 필자에게 있어도 연구의 낙(樂)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콕 집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면 교육에서의 낙이란 무엇인가? 아빠의 마음으로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마음도 즐거울 것이다. 교수자가 먼저 배웠던 지식을 단지 시간적으로 후학도들인 학생들에게 전달할 뿐인데 존경심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낙일 것이다. 하지만 7년간의 경험으론 교육이란 연구에 비해 쉽지 않고 간단한 일이 아니며 더군다나 실제로 보람과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교육자로 마음가짐이 더 성숙해져야하겠다는 막연한 반성이 든다. 교수자가 교육활동에 있어 쉽게 행복할 수 있도록 학생들이 도와주는 방법은 무엇일까에 대해 이 지면을 빌어 소통을 하고자 한다.       
 
“물통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불을 지피는 것이다”

참 시적인 표현답게 192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교육에 대한 표현이다. 배움에 있어 주체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리라. 즉 배울 것에 대해 또는 배우는 필요성에 대해 학생 개개인이 진정성있는 철학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하며 학습 행동에 있어 가장 안달을 해야하는 사람은 교수자가 아니라 학생이어야 한다. 더군다나 간섭을 싫어할 충분한 성인인 대학생들은 스스로가 배움에 있어 주체적이어야 한다. 물통을 채우는 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교수자도 무거운 사명에 대해 부담감을 가질 수 밖에 없고 학생입장에서 학습활동 자체를 즐기기란 어려울 것이다. 교수자가 가르치는 데 있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학생 스스로 열의가 있고 넓은 열려 있는 시각과 자세를 가지고 있으며 불만 지펴주더라도 스스로 활활 타오르는 학생을 만났을 때이다. 심지어 이런 경우에는 후학도를 가르친다는 보람을 뛰어넘어 청출어람의 더 참신하고 창조적이며 능력있는 사람으로 발전하는 모습에 제자에게 도리어 존경심이 들 법도 하다.
또 한가지는 본인이 간절히 좋아해서 그리고 필요해서 학습하고 있거나 혹은 타의에 의해서 뜻이 없는 학습에 참여하고 있더라도 동료학우들에 대해 존중하고 배려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이 편리한 개인주의 경향으로 흘러서 개개인들의 성향과 개성이 강조되며 같은 학과 친구들과도 어울릴 일이 줄어들어 서먹서먹하기까지 하다. 이런 편리한 개인주의 이면의 외로움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은 결국 과학도가 된다면 많은 분야전문가들이 필연적으로 서로 같이 만나 도움을 주고 받게 되니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인 듯도 싶다. 다만 대학 생활에서도 동료학우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는 가져야겠다. 수업에 지각한 학생이 자신감을 뽐내며 소리내며 걸어 들어와서는 차도남/녀의 분위기로 동료학우들에게 미안한 제스추어 없이 당당하게 앉는 모습은 도리어 심리적 위압감을 줄 지경이다.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 강의를 청강하고 있는데 놀랍고 재미있는 경험이 있었다. 10분 정도 늦은 시간에 여학생이 문을 빼꼼히 열더니 교수님의 코앞자리만 비어 있는 의자로 소리 없는 닌자처럼 움직인다. 심지어 그 학생은 늦어서 먹지 못한 아침을 가방에서 꺼내서 먹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의 상황이라면 수강생이나 교수자나 짜증스런 마음에 사건이라도 있을 법한데 오히려 분위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우며 늦지 않을려고 노력했을 텐데 늦었을 학생을 푸근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실제 놀라운 만큼 소음과 음식냄새가 없기도 하였지만, 학생의 미안해하는 제스추어나 상황을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학생과 교수자의 모습은 신선하고 유쾌하였다. 이런 자연스러운 유쾌한 모습은 결국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사회의 일상에서 습관화 되어 있는 타인을 존중과 배려하는 평소 생활 습관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한다. 기분 좋은 봄날 우리의 아름다운 캠퍼스에 “불을 지피는 교수자와 동료학우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습관이 밴” 성균인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