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사학07)

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3월의 대학은 젊음의 활력으로 가득하다. 몇 해 전부터 대학과 자본의 호혜관계 속에 지어지기 시작한 최신의 화려한 건물들은 젊음의 물결로 넘실댄다.
그러나 그 건물들 안에는 ‘어엿한’ 대학생들이 주고받는 웃음과 대화의 그물망 사이에 얽히지 않으려 애쓰며 묵묵히 휴지통을 비우고 바닥을 닦는 여성청소노동자들이 있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파업사건들을 계기로 그들에 대한 관심은 전에 비해 조금이나마 환기되었는지는 몰라도 필자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겪고 느낀 학생들의 그들에 대한 일반적인 감정 혹은 태도는 무관심이다. 간혹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해주시는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기도 하지만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무의식적으로 배태하기 마련인 허위의 안위감은 그들을 자신과는 별 상관이 없는 존재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으로부터 철저히 이격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대학생들은 그들에 대해 미안해야 한다. 청소노동자들의 지난겨울, 아니 지금에도 이어지고 있는 투쟁은 단순히 시급 몇 푼을 놓고, 휴게실 한 칸을 놓고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자본과 노동의 대결이며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애초부터 압살하려는 자본의 선제적 대응이다.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이 구도 안에 묶여있음을 그리고 그들 중 절대 다수는 이 구도 안에서 벌어지는 대결에 곧 밀려들어 갈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겨울 청소노동자들의 뜨거운 투쟁은 결코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자신들이 곧 상대해야 할 혹은 복종해야 할 자본의 폭압적 권력체계에 저항하는 그들과 이런 저런 핑계로 연대하지 못함을 미안해해야 한다.
대학생활이 가져다주는 치기어린 해방감에 빼먹는 하루치의 수업료에도 못 미치는 돈을 위해 그들은 몇 달을 엄동설한 속에서 싸운다. 자신이 비정규직이 되지 않기 위해 몰입해야만 하는 학과공부와 그들의 투쟁이 본질적으로 이 부당한 구조 안에 같이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남자화장실의 변기를 닦는 그녀들의 입술에 촌스럽게 칠해진 립스틱에서 하나의 여자이자 하나의 인간으로 대우받고자하는 그녀들의 작은 호소를 들어야 한다. 연대는 우리들의 미안함이 너무나도 현대화된 무관심에 일으킨 작은 균열의 틈새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