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영화제 등 다양한 영화제 나타나… 일부선 우려 제기도

기자명 양명지 기자 (ymj1657@skkuw.com)

 

전 세계 영화인들의 축제 칸 영화제. 올해로 64회를 맞은 이 영화의 장(場)에 3명의 한국인 감독이 수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2명의 감독은 심사위원장으로 참석하게 됐다. 세계 최대 규모의 여성영화제인 서울국제여성영화제(IWFFIS)는 해외 여성영화제의 롤 모델로 손꼽히는가 하면 해외 영화제 출범에 적극 도움을 주기도 하고, 전주국제영화제는 세계 영화제 사상 최초로 스마트패드 전용 매거진을 발간해 화제를 모았다. 세계 각국에서 열린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와 영화인들이 수상함으로써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것도 더 이상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다종다양한 영화제, 질적 성장과 세계화 병행


세계 무대에서 한국 영화는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다. 더불어 최근 국내 영화제들의 성장세가 유독 눈에 띈다. 단순히 그 수가 늘거나 과거보다 해외 영화 유치가 쉬워진 것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해외 무대에서도 한국의 부산국제영화제(PIFF)에서 왔다는 소개에 어깨가 으쓱해지고 외신들도 국내 영화제들을 회자하기 시작하는 등 질적 발전과 세계화를 병행하고 있다. 
지난 1996년, 한국 영화제의 시초인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한 뒤로 작년 한 해에만 열린 국내 영화제는 소규모까지 포함하면 2백 개가 넘을 것으로 문화체육관광부는 추산했다. 이 중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와 같이 작품 그 자체와 영화인들에만 초점을 맞춘 전형적인 영화제는 이미 대중에게 친숙한 존재다. 하지만 여기에는 △성(性)소수자 △여성 △장애인 △청소년 문제 등 특정 주제를 내걸고 진행되고 있는, 아직 역사가 깊지 않거나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테마 영화제도 포함돼 있다.
이렇듯 한정된 범위의 주제나 계층을 타깃으로 한 영화제의 경우 영화제라는 형식을 빌려 평소 대중이 무관심하거나 편견을 갖기 쉬운 문제에 대해 홍보와 더불어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례로 성(性)소수자의 삶의 가치를 생각하고 그들의 세계를 조망하는 서울LGBT영화제는 아직 성소수자 문제에 덜 익숙한 우리 사회에 그들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보다 친숙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이다. 테마 영화제와 함께 열리는 각종 부대행사도 사회 저변의 목소리를 보다 크게 하고 있다. 한국농아인협회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영화제의 경우 영화 상영 이외에도 비장애인이 휠체어나 점자 등 장애인의 불편을 직접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장애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영화제만이 지닌 긍정적 파급효과 커


이처럼 국내에서 영화제가 활성화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영화제는 단기간에 큰 파급 효과를 낼 수 있는 문화 축제다. 때문에 많은 지자체는 지역 경제 활성화와 지자체 홍보의 수단으로 영화제를 택했다. 국내 6대 영화제로 꼽히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소속 지방자치단체의 후원을 받는다. 여기에 더해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집단도 영화제를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강연이나 여타 운동으로 한다고 해도 대중은 딱딱하고 지루하다고 느껴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서소은희 사무국장은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매우 대중적”이라며 “영상의 특성상 글이나 강연 등 다른 매체보다 효과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난립에 따른 부작용 발생해
하지만 비슷한 성격의 영화제가 같은 지역 안에서도 몇 개씩 생기고, 영화제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감에 따라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짧은 시간에 영화제가 우후죽순식으로 급증해 독자적인 특색을 갖추지 못한 닮은꼴 영화제가 양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같은 지역에서 특징이 비슷한 영화제가 동시에 열리게 되면 제 살 깎아 먹기 식 과열 경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각 영화제는 국내에서 상영되지 않은 작품(프리미어)을 끌어오기 위해 배급사에 치열한 로비를 벌이는데, 이에 따라 배급사들이 요청하는 상영료가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결국 프리미어 상영에 집착한 나머지 영화제들의 전반적인 완성도는 떨어지게 되는 셈이다.


관객에 대한 홍보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부산영화제처럼 국내외에서 인지도가 높고 나름의 특색을 갖추고 있는 영화제와는 달리 각지에 산재해 있는 지역 영화제와 여러 테마 영화제의 경우 예산상의 문제로 대대적인 홍보를 하기가 어렵다. 이에 대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최재호 집행위원장은 “소규모 영화제다 보니 재정적 어려움이 크다”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인터넷 광고를 적극 활용하고 관공서와 대학 위주로 홍보하고 있지만 사실 호응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씁쓸해했다. 또 테마 영화제의 경우 대중이 갖는 선입견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서울청소년영화제 홍보팀의 조연희 스텝은 “청소년 영화제라는 이유로 아마추어 취급을 받기도 한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단발적 계약직으로 운영되는 인력도 문제다. 진행이나 안내 인력은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충당할 수 있지만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기술 인력의 부족은 곧 상영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화제와 관객 모두의 노력 필요


이렇듯 국내에서 개최되는 영화제들이 가진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선 방향 모색이 절실하다. 전문가들은 수많은 영화제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각 영화제 스스로 프로그램의 다변화를 꾀하고 특색 있는 부대 행사를 운영하는 등 자신만의 색깔을 갖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소도시 영화제의 경우에는 다른 영화제와의 연대를 통해 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또 관객들이 요구하는 점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들을 꾸준히 제공하려는 자세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에 여러 영화제가 대중에게 인기 있는 스타를 기용해 관객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유명 배우나 감독이 영화제 공식 트레일러(홍보 영상물)에 참여하는가 하면 DMZ영화제의 경우 아예 배우 조재현과 유지태를 각각 집행위원장과 부 집행위원장으로 두고 있다. 
영화제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관객의 호응 없이는 영화제의 존립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소 사무국장은 “관객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며 단순히 관객으로서뿐 아니라 자원봉사 활동 등 다방면에서 대중의 참여가 필요함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