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대학축제도 끝나고 기말시험도 몇 주 남지 않았다. 시험 때가 다가오면, 학생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도서관 열람실의 자리잡기 경쟁도 치열해 진다. 학교도 학생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도서관 열람실을 연장 운영하고, 일부 열람실은 철야로 개방한다. 도서관 자리잡기가 어려울 정도로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일이기 때문에, 특히 시험기간에 더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문제는 무엇 때문에 학생들이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는가에 있다. 물론 평상시에 꾸준히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학생들은 오로지 시험기간에만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그 이유도 단지 좋은 학점 받는 데 머물고 있다. 심지어, 학점을 조금 더 높이기 위해 동일과목을 재수강하거나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과목의 학점을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짧은 시간에 쉬운 방법으로 좋은 학점을 따기 위해 학생들이 애용하는 방법이 이른바 ‘시험 족보’이다. 이 족보에는 기출문제부터 핵심요약까지 각 과목의 시험과 관련된 내용이 모두 담겨 있다. 이 족보만 있으면, 학생은 시험공부를 위해 애써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내용을 정리할 필요 없이 해당 족보를 외우기만 하면 된다. 한꺼번에 많은 시험을 동시에 치러야 하는 학생들 편에서 보면, 이러한 족보는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는 학생들이 원하는 거의 모든 족보가 떠돌고 있으며, 일정한 값을 매겨서 사고파는 ‘족보장사’가 성행하고 있다. 시험 때가 가까워지면, 학생들은 이 족보를 얻기 위해 먼저 수강한 선배나 동기에게 부탁을 하거나 인터넷 사이트를 열심히 뒤진다. 아닌 게 아니라, 대학생 10명 중 4명 정도가 이 족보를 이용한다고 하며, 그 비율이 앞으로도 쉬이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임시방편적인 시험 족보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대학문화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대학에서 이러한 족보가 유용하게 통용되고 있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학생의 편에서 보면, 힘들이지 않게 공부하고 쉽게 학점 따고자 하는 안일한 태도와 자기 주도적 학습 태도의 부재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초ㆍ중ㆍ고등학교의 시기를 거치면서 문제 풀이식 공부와 주입·암기식 학습 습관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학생들은 고통스런 사고의 과정을 거치며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기보다는 이미 잘 정리되어 있는 시험 족보의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교수자의 편에서 보면, 동일한 문제를 반복하여 출제하거나 상대적으로 가르치는 것에 비해 문제 출제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해마다 비슷한 내용을 가르치고 거기에서 반드시 알아야 핵심적 내용을 출제하다 보면, 교수는 어쩔 수 없이 해마다 유사한 문제를 되풀이 하여 출제하거나 쉽게 족보를 구할 수 있는 평범한 문제를 출제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험 족보가 성행하는 데는 사회에도 그 책임이 있다. 약간의 학점의 차이가 대단한 능력의 차이인 것처럼 인식하고 줄 세우는 사회의 풍조가 학생으로 하여금 학점 0.1점에 연연하게 만드는 것이다. 학생의 관심사는 공부 그 자체를 즐기거나 모르는 것을 탐구해 나가는 기쁨을 누리는 것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좀 더 나은 학점을 취득하는 것이며, 이러한 풍조 때문에 시험 족보가 대학에 공공연하게 퍼지게 된 것이다.
얼마나 꾸준하게 열심히 공부했느냐보다는 어떤 족보를 가지고 공부했느냐에 의해 대학 학점이 결정된다면, 대학공부는 요령이나 요행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시험 족보에 의존하는 공부는 대학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이다. 대학(大學)은 문자 그대로 ‘큰 배움’, 즉 학문의 전당이다. 대학(university)은 단편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총체적 혹은 보편적 지식’(universal knowledge)을 추구하는 곳이다. 초ㆍ중ㆍ고등학교보다 오히려 대학에서 단순히 성적을 올리기 위한 시험 족보가 성행한다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큰 배움’을 위해 격물치지(格物致知)하며, 눈앞에 보이는 얄팍한 지식보다는 총체적이고 보편적 지식을 궁구(窮究)하는 대학 정신의 회복을 위해 대학 구성원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이 일은 또한 우리나라 대학 모체로서의  정당한 위상(unique origin, unique future)을 정립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