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황보경 기자 (HBK_P@skkuw.com)

“저도 성균관대 다녔어요, 전공은 미술이었고…”, 저자 소개. “그럼 지금부터 관광지로 잘 알려진 인도에서 오지를 탐험했던 경험을…”, 목차. 지금 단순히 누군가의 발표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간직한 생생한 정보를 독자가 ‘읽고’ 있는 것, 리빙 라이브러리 속 살아 있는 책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삼성학술정보관 제공

지난 17일, 축제로 떠들썩했던 자과캠 한편에서 독특한 축제가 진행됐다. 바로 삼성학술정보관(관장:이은철 교수ㆍ문정)에서 열린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 살아 있는 도서관이라는 뜻이 가리키듯 독자는 여기서 종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정보를 담고 있는 ‘사람 책’을 읽는다. 즉, 가치 있는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행사에서 ‘책’을 자처하면 독자는 대화를 통해 그 책의 정보를 읽어내는 것이다.
리빙 라이브러리는 10년 전 덴마크의 한 청소년 축제에서 학생 사이 소통을 위한 행사로 시작됐는데 이 창의적 발상은 이후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국내에서도 교회, 도서관 등 여러 기관에서 개최됐지만 대학 기관에서는 최초로 우리 학교에서 열렸다. 그렇기에 1회를 맞는 이번 행사에는 김준영 총장과 서경덕 교수 등 평소에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인사들이 직접 책으로 참여했다.
오후 2시, 현장을 담으려는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룬 도서관은 개회식으로 막을 올렸다. 책 대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스태프는 독자들을 책이 있는 테이블로 안내했다. 여러 독자의 원활한 참여를 위해 책 한 명당 대출 시간은 20분, 또 한 책을 동시에 대여할 수 있는 독자는 3명 이하로 제한된다.
이번에 대여한 책은 오지 탐험가이자 여행 전문가 정찬호(미술01) 동문. 대학 시절부터 온갖 종류의 여행과 탐험을 다녀본 그는 ‘여행 그리고 탐험’이라는 주제로 한 권의 책이 됐다. “쪽배를 타고 갠지스 강으로 인도를 횡단했어요. 저와 친구 단둘이 두 개의 노를 저어 갔는데 한 개가 부러지는 바람에 결국 노 하나로 77일을 저었죠” 70여 일을 쪽배로 그것도 노 하나만을 저어 이동한 탐험가는 전 세계 몇 명이나 될까? 그뿐만이 아니다. 도움을 청하러 들어간 어부의 집이 해적 소굴이었고, 총기를 난사하던 그들에게서 4박 5일을 밤낮으로 쫓기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워낙 탐험을 좋아해서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그렇지만 오지 탐험에는 목숨을 걸 각오가 필요해요”
탐험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 끊임없이 오갔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로운 대화가 20분간 이어졌다. 이렇듯 리빙 라이브러리에서는 정보에 대한 독자의 욕구가 질문으로 전달되고 그에 대한 답변이 생생히 전달되는 ‘맞춤형’ 독서가 이뤄진다. 또 같은 내용을 다시 읽어도 매번 다른 형태의 정보가 전달돼 형식의 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진솔한 대화를 통해 ‘입체적인 지식’을 얻는 것이 바로 리빙 라이브러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본질인 것이다.
짧았던 대화를 마치고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독자를 위해 대화 시간은 엄격히 준수된다. 대학 기관에서 첫 시도인 만큼 큰 관심을 받은 행사였고 책과 독자가 총 200여 명이나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비록 행사 초반에는 계속되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빈번한 취재 요청이 대화의 흐름을 멈추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내용과 감동은 머릿속에서 한참을 맴돌았다. 마치 책의 마지막 장을 읽고 난 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