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주거비 등 문제 제기돼… 정부와 학생 모두의 노력 필요

기자명 양명지 기자 (ymj1657@skkuw.com)

 

민달팽이에게는 껍데기가 없다. 날 때부터 집을 이고 태어나는 다른 달팽이들과는 다르게 보장된 보금자리가 없는 민달팽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높은 주거비로 고통 받으며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는 우리네 대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최근에는 이런 민달팽이의 특징에서 이름을 따온 단체가 나타나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꿈 많은 20대 청춘이 민달팽이로 전락하게 된 배경에는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값비싼 삶의 터전
서울 YMCA가 △고시원 △전ㆍ월세 △하숙 등에서 거주하는 대학생 706명을 대상으로 주거실태를 조사한 결과, 자취 대학생 10명 중 4명은 최저 주거 기준 평수인 3평(약 9.9㎡)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거 형태는 월세가 58%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하숙 △학교 기숙사 △고시원이 이었다. 전세가 13%로 가장 적게 나타났다. 하지만 주거에 대한 만족도는 전세가 가장 높았고 그다음으로 △학교 기숙사 △월세 △하숙이 뒤따랐다. 사정상 월세를 많이 택하지만 그에 비해 만족도는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펼쳐진 데에는 값비싼 주거비용과 열악한 주거 환경이 크게 작용했다. 대학이 밀집해 있는 신촌의 평균 하숙비는 월 50만 원을 웃돌고 원룸에서 자취하려면 전세 계약에 5천~6천만 원이 든다. 보증금을 요구하는 하숙집이 생겨나고, 6개월~1년 치 하숙비를 선불로 요구하기까지 한다.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하는 우리 학교 이대한(정외10) 학우는 “6개월 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것은 금전적으로 부담될 뿐 아니라 기간을 채우기 전에는 거처를 옮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대학 주변 뉴타운 개발로 인한 하숙ㆍ자취 난은 비싼 방값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최근 학교 정문 앞 일대 재개발 관련, 고려대 총학생회는 반대 서명 운동과 함께 축제 기간에는 재개발 지역 상인들과 연대해 학교 측의 재개발 반대 지지를 요구하는 활동을 벌였다. 경희대와 한국외대 인근에 위치한 이문ㆍ휘경 뉴타운 개발팀의 한 관계자는 “주택 유형 조사 결과 1인 학생 가구가 많아 작은 평수의 다세대 임대 아파트를 짓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려대 윤기성(화공생명공학09) 씨는 “재개발을 통해 캠퍼스 타운을 조성하겠다고 하지만 사실 이는 아파트 단지를 세우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며 불만을 표했다.  

정송이 기자 song@skkuw.com

그러나 열악한 그곳
어렵사리 주거 공간 마련 문제가 해결돼도 문제는 여전하다. 가스비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한겨울에 난방 공급 시간을 줄이는 하숙집을 나와 학교로 피난을 가는 학생들이 허다하다. 하숙집의 공동 화장실과 부엌은 청결하지 못하고 바쁜 아침에는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학생들의 경우 생활비도 만만치 않다. 차민영(행정10) 학우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만 받아서 생활하기에는 빡빡하다”며 “멀지만 편의점보다는 할인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과일값이 비싸 잘 안 사 먹게 된다”며 자취생으로서의 고충을 털어놨다. 비싼 방값 때문에 고시원을 택한 경우에는 생활환경이 더욱 열악하다. 창문이 없는 방은 빛 한 점 안 들 뿐만 아니라 좀 더 싼 방을 찾는 학생들은 침대 없이 맨바닥에서 지내기도 한다. 이런 방들은 비좁고 방음이 잘 안 되며 화재 발생 시 대형 사고로 이어질 위험성도 크다. 
이런 걱정을 조금 덜 수 있는 것은 대학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학교가 제공하는 기숙사는 공과금을 따로 내지 않는 등 비용이 적게 들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제공한다. 지난해 대학알리미의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서울지역 전체 대학중 기숙사 수용률이 20%가 넘는 학교는 불과 9개 뿐이었다. 인사캠의 경우 지난해 기숙사 수용률은 20.2%로 비교적 높은 수치였지만 이는 정식 기숙사보다 학교와 연계한 원룸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 더 많다는 한계를 지닌다.
최근 정책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민자 기숙사들은 월 40~50만 원에 식비도 따로 부담해야 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결국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값비싼 방값을 부담하거나 비교적 싼 방값 대신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감수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해결을 위한 자발적 움직임

정송이 기자

그렇다면 쏟아져 나오는 주거 문제의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가 최근 들어 불거진 사안이 아닌 만큼 관련 활동을 하는 단체들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5일 연세대에서 출범한 ‘민달팽이 유니온(이하:민유)’은 대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작게는 집에 물이 새거나 밥반찬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부터 크게는 △부동산 관련 문제 △이사문제 △무섭게 치솟는 대학가 주변 집세에도 싼 집을 구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까지, 이들은 자취와 하숙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고민과 문제들을 여럿이 풀어 보고자 이 단체를 만들었다. 1차 모집에서만 1백 명이 넘는 연대생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주거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공공 영역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강령 아래 활동 반경을 점차 넓혀갈 계획이다.
성공회대에서는 지난해 4월 학생들로 이뤄진 학내 노숙모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꿈꾸는 슬리퍼(Sleeper)’란 이름을 가진 이들은 대학생과 저소득층의 열악한 주거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하기 위해 매주 수ㆍ목요일 학내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한다.
한국청년유권자연맹(이하:청연)에서는 대학생 주거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그 해결 방안을 입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현재 대학생들의 주거 환경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청연의 성치훈 주니어 운영위원은 “내년 총선에 대비해 정책을 더욱 발전시켜 총선 후보들로 하여금 당선 시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서약을 받아낼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간 정부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았았다. 민자 기숙사 건립 장려와 대학생 보금자리 주택사업 등 굵직한 정책들을 내놓았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했다.
정송이 기자

주거권 문제와 관련해 활동하는 단체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바가 있다. 바로 값비싼 민자 기숙사가 아닌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공 기숙사를 지어달라는 것이다. 청연과 대학생유권자연대 ‘2U’가 지난 6ㆍ2 지방 선거 후보들에게 제안한 공약 가운데에는 월 20만 원 선의 시립 기숙사에 대한 요구가 들어 있었다. 참여연대 역시 공공 기숙사의 필요성에 동감하고 있다. 안진걸 사회정책팀장은 “지방 정부는 재정 지원을 하고 대학은 가능하다면 무료로 기숙사를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며 “주거 환경이 보장돼야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신당 나영정 정책연구위원도 “공공 기숙사와 더불어 학생들에게 전세 보증금을 낮은 이자로 빌려주고 졸업 후 돌려받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며 학교와 지자체 차원의 움직임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 진보신당은 선거 당시 35세 미만 단독 가구주에게도 전세 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며 집단 민원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당사자의 관심
정책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문제 당사자인 대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라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 안 팀장은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투표와 온라인 활동 등 다양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연의 성치훈 운영위원 또한 “돈 없고 권력 없는 대학생들의 가장 큰 무기는 투표라고 생각한다”며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약속하는 사람에게 표를 행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의향이 있는 학생들은 다양한 단체 활동에 참여하면 되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행동에 나서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한국대학생연합 정서영 서울지역 집행위원장은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많은 사람이 힘을 모아야 한다”며 일차적으로는 사안에 관심을 가진 뒤 공동 소송이나 집회, 서명 운동 등의 활동에 적극 참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집 없이 태어난 민달팽이가 하루아침에 보통 달팽이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민유의 장시원 사무국장은 “적어도 현 20대가 주거권과 관련해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 알고는 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의 말처럼 주거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기반을 조금씩 다진다면 달팽이 집은 아닐지라도 안락한 보금자리 정도는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