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3월의 눈〉

기자명 김영인 기자 (youngin@skkuw.com)

 나지막이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무대를 채운다. 귀에 익은 멜로디인가 싶다가도 갑자기 낯설어지고, 흥겨운 노래인가 싶어 고개를 까딱이다가도 어느 순간 처량함이 밀려온다. 할머니가 부르는 콧노래다. 마루에 앉아 따사로운 햇볕을 맞으며 그녀는 뜨개질을 하고 있다. 그리고 느릿느릿, 할아버지가 다가온다. 꿈인지 현실인지 조차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두어 시간 남짓 진행되는 연극은 이렇게 채워진다. 뇌리에 스칠만한 충격도,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반전도 없다. 다양한 등장인물이나 화려한 볼거리 역시 없다. 더군다나 움직임과 호흡은 너무 느려 지루하지는 않을지 걱정까지 든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특별하지 않은 그저 그런 이야기인 것만 같다. 그러나 이 이야기, 묘하게 우리 가슴을 두드린다. 잘 살고 있냐고, 잘 느끼고 있냐고.
무대 위, 잘 만들어졌지만 낡은 집 한 채가 있다. 그 오래 묵은 집에 살던 할아버지는 이제 곧 그 집을 떠나야한다. 손자의 빚을 갚는다고, 할머니가 죽고 보살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아버지가 떠나고 집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집은 헐리고 그 자리에 삼층 건물이 들어서고, 그 건물은 카페와 액세서리 가게, 그리고 음식점으로 채워질 것이다. 인테리어 업자와 고목재상은 집에 사용된 나무를 탐내고 있고, 결국 문짝과 마루, 기둥이 발라지고 앙상한 뼈만 남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집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담담하다. 화내고 싶은 이유야 많고 하소연하자면 끝이 없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집을 떠나려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해로해온 죽은 할머니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죽은 사람과의 대화. 드디어 이 연극의 특이성이 부각되는 것인가, 슬그머니 호기심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역시 일상적인 것의 연장선상에 놓여있을 뿐이다. 할머니는 죽었지만 할아버지와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가 문창호지를 산뜻한 것으로 바꾸고 싶다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창호지를 사오고 풀을 먹여 바른다. 당장 내일이면 떠날 집이지만 모든 과정은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진행된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산다. 음식물 섭취부터 인간관계, 그리고 생각까지 속도가 관여하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는 너무 자극적으로도 산다. 친구의 슬픔부터 단순한 이야기까지 자극적이지 않으면 관심을 둘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칫 평범한 것들은 그냥 지나쳐 버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극은 말한다. 평범한 것은 가장 본래 모습이고 그 평범한 것이야 말로 취하기에 가장 어렵다는 사실을. 어디 이뿐인가. 떠나가는 것을 잡고 끝나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떠나보내야 할 것은 흩어지고 끝에 다다른 것은 부서질 수밖에 없다는 것 역시 잔인하게도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 넣는다. 그리고 그제 서야 우리는 새삼 깨닫는다.
정말로 3월의 눈이다. 제목 그대로 3월의 눈인 것이다. 흩날리는 동안 잠깐 찬란하지만 땅에 닿으면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는 3월의 눈. 3월에 내린 눈이라는 점에서 특별함을 갖지만 동시에 그 특별한 것은 내리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우리의 오늘과 내일도, 그리고 지나온 어제 역시 어쩌면 3월의 눈이었을지도 모른다.
 
△공연명:<3월의 눈>
△공연일시:2011년 6월 5일까지
△공연장소:백성희장민호 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