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칠드런> 속 소설<보바리 부인>

기자명 엄보람 기자 (maneky20@skkuw.com)
▲ 영화 <리틀 칠드런> 속 한 장면

 다 자란 사람이 무엇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랑말랑했던 가치관은 콘크리트마냥 굳어버린 지 오래. 변화란 안락하게 굳어버린 자신을 모조리 부수고 쓸어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달갑지 않으며 동시에 어려운, 게다가 그 파편에 주변사람까지 다치게 만드는 위험한 것. 어른의 변화는 그런 것입니다. 

영화 속에는 일생일대의 변화를 목전에 두고 발을 담글까 말까 고민 중인 두 남녀가 있습니다. 둘은 놀이터에서 처음 만났지요. 브래드는 아들의 손을 잡고 사라는 딸의 손을 잡고 말입니다. 한 눈에 서로에게 매력을 느낀 둘은 얼떨결에 입술을 나누게 됩니다. 자신이 쌓아온 틀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른 그들은 각기 혼란에 빠지고 말지요.
아이들 물놀이를 빌미로 마을 수영장에서의 만남이 계속되던 어느 날. 더는 참을 수 없는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가까운 사라의 집으로 비를 피해 들어간 둘은 결국 찰랑찰랑 차오르던 일탈의 늪에 몸을 내던지고 맙니다. 그리곤 점차 서로를 진심으로 갈망하게 되지요.
한창 변화의 달콤함에 취해있던 무렵, 사라는 친한 이웃의 권유로 동네 독서 토의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 주의 주제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유명한 소설 『보바리 부인』. 주인공 엠마 보바리에 대해 평하는 사라는 당당하지만 어쩐지 애처로워 보입니다. 대학시절 엠마에 대해 처음 읽은 사라는 그녀를 그저 ‘바보같은 여자’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남자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짓만을 일삼다가 스스로 무너져버렸으니까요. 하지만 십여 년이 흐르고 브래드를 만난 지금 사라는 보바리 부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난 그녀에게 매혹됐어요. 그녀의 반란은 아름답고 대담한 것이에요. 엠마는 비참한 삶에 대항하고 대안을 갈망한 페미니스트였어요” 무언가를 안간힘을 써 피력하려는 그녀의 말 틈틈이 브래드와의 짜릿했던 순간들이 깜박깜박 끼어듭니다.
화목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를 꿈꾸던 사라에게 엠마 보바리는 ‘되지 말아야 할 여자’의 교과서였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만에 그녀는 사라의 우상이 돼버리지요.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렇듯 사랑이나 이상, 가정 등 소중한 무언가에 있어 자신이 처한 상황이 변한다면 인간은 금세 인지를 통째로 바꿔버리기도 합니다. 견고한 듯 박혀 있던 생각의 뿌리를 뽑아 거꾸로 꽂아서라도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라. 그녀의 모습은 모든 주변 이야기를 자신의 논리에 맞춰 바꾸는 어린아이의 버릇과 비슷합니다.   
손바닥 뒤집듯 마음을 바꾸는 일. 흉이 될 수 있겠지요. 지조가 없다, 기회주의자다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본능이 표출된 인지체계의 변화는 그야말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 번 사용하고픈 황금열쇠이기도 합니다. 말한 대로 행하지 않아도, 살던 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반항. 보바리 부인을 옹호하고 감싸는 사라는 솔직하기에 당당하고 절박하기에 애처로워 보이는지도 모릅니다.
엠마 보바리와 똑같이 사라도 선택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불륜드라마가 그렇듯 그녀도 결국 좋은 엄마이자 아내로 남는 길을 택하고 말지요. 잠깐의 일탈. 뿌리 뽑힌 나무를 거꾸로 심었던 한여름의 꿈은 이제 하나의 추억이 됐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뿌리를 하늘로 치켜든 나무에 새순이 돋을 때까지 어머니와 아내로 오래오래 살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