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최재천 교수

기자명 양명지 기자 (ymj1657@skkuw.com)

고등학교 때 국어 공부깨나 한 사람이라면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이라는 글을 기억할 것이다. 그럼 이 글의 저자가 생물학, 그중에서도 동물학의 권위자라는 것도 기억하시는지. 국어 교과서에 글이 실리는 과학자라니, 알고 보니 그는 지난 2008년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고 에코과학과 통섭의 개념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내 최초’라는 업적을 남기고 있었다. 팔방미인 최재천 교수를 만나봤다.


#1. 산과 들을 좋아하던 소년

정송이 기자 song@skkuw.com
■ 학부로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했다. ‘동물학과’라니 생소하고도 특이한데, 특별히 전공을 택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지금은 생명과학부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였지만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생물학이 식물학, 동물학, 미생물학과로 나뉘어 있었다. 이 중 동물행동학은 말 그대로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행동이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난 어릴 적부터 새가 날아다니는 걸 보길 좋아했고 TV로 동물의 왕국을 즐겨봤다. 다른 데는 영 취미가 없었다. 같은 생물학이라도 세포를 들여다보거나 생화학 연구하는 것 등에는 흥미가 없어서 동물행동학을 택했다.

■ 서울대 학사에 하버드대 석ㆍ박사까지, 누가 봐도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잘했나
사실 난 어릴 적 공부를 잘 못했다. 밖에 나가 노는 걸 좋아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등쌀에 밀려 억지로 공부했다. 그래서 대학도 떨어져 보고 과도 원해서 갔다기보다는 어떻게 하다 보니 밀려서 가게 됐다. 진정한 공부는 미국에서 했다. 한국에서 배워보지 못한 분야였고 남들 공부하는 시기에 안 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미국서 박사과정을 하던 중 너무 어려워서 자원해서 석사 과정으로 내려왔다. 기초를 쌓기 위해 학사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다. 새롭게 배우는 모든 게 정말 신기하고 좋았다. 그렇게 공부하기 싫어하던 놈이 유학 몇 달 만에 잠자는 시간을 아낄 법을 궁리하고 스스로 어떻게 하면 더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질문을 던지게 됐다. 그래서 딴짓도 안 하고 연구와 공부만 했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려서 동료들을 따라잡았다.

#2. 동물학자의 길

■ 우리가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실질적으로 적용되는 분야는
막말로 얘기하면 별로 소용없고 돈도 안 되는 분야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 삶의 모든 일이 행동 수준에서 일어난다. 아무리 생각을 한들 행동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동물행동학은 근원적인 문제를 파고드는 학문인 만큼 아주 중요하다.

■현재 이화여대에서 에코과학부 교수로 계신데, 어떤 걸 가르치나
인간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연구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인간의 70%가 도시에 살 것이다. 설악산만 연구해서는 인간의 환경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제는 도시 생태를 연구해야 한다.

■해외 유명 대학의 오래 축적된 데이터에 비해 우리나라는 연구 기간이 짧아 경쟁력이 뒤진다고 들었는데
기상학과 생물학은 오래 연구해야 한다. 숨이 긴 학문이라 자료를 오랫동안 축적한 후 그것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가를 따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지금 당장 성과를 내라고 한다. 수백 년은 연구해야 변화의 트렌드가 보이는 데 말이다. 옥스퍼드대의 경우 박새만 70년을 연구했다. 그 긴 세월 동안 자료가 축적됐으니 그럴듯한 결과를 내놓는다. 나도 15년 전부터 까치 연구를 시작했다. 나는 이 연구를 70년, 80년, 백몇십 년 하고 싶다. 물론 나는 그전에 죽겠지만 기반을 마련하고 싶다.

#2. 오지랖이 넓다고?!

■ 강연도 하고 방송출연이나 언론 기고 활동도 활발하다. 이렇듯 과학을 대중에게

보다 친숙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우리나라는 과학자가 대중에게 다가가면 이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은 연구비를 받으면 과학자가 자신이 연구한 것 중 일부를 대중에게 알리게 돼 있다. 유학 시절 내 지도교수는 대중에게 매우 친밀한 생물학자였고 그를 보고 살아온 나는 한국에서도 당연히 대중에 친밀한 과학자가 되려 했다. 처음에는 욕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과학이 점점 대중화돼가는 현시점에 난 이미 과학의 대중화에 발을 들인 이상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의 집필과 호주제 폐지에 생물학적 근거 제공하는 등 생물학자가 여성 관련한 일이라니 특이하다. 평소에 여성 문제에 관심이 있는지
동료들은 “오지랖도 넓다, 그 시간에 연구나 해라”고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있다. 내 전공 분야 중 하나가 사회생물학인데 이는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동물들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중에서도 내 전문 분야는 다윈의 성(性) 선택론이다. 동물의 짝짓기와 관련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니 내게는 가장 중요한 연구 주제다. 그러니 내가 인간 남녀관계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다른 사람들 보기엔 이게 딴짓으로 보일지 몰라도 모두 연구의 일환이다.

■ 과학자 하면 ‘글 잘 쓰는 사람’하고는 거리가 멀 것 같은데, 글을 쉽고 재밌게 잘 쓰시는 것 같다. 비결은 무엇인지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라 치열하게 쓴다. 글을 써 놓고는 소리 내 읽으면서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난 원래 과학자가 되려는 생각이 없었다. 학교에서 억지로 날 이과에 집어넣어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과학자가 되긴 했다. 하지만 워낙 문과 체질이다 보니 늘 한쪽 발은 인문학에 들여 놨었다. 나에게 글 쓰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정송이 기자

■ 2005년 스승인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이라는 책을 번역함으로써 화제를 모았다. 간단히 융ㆍ복합이라 표현할 수 있는 통섭 개념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사람으로서 우리 학교의 ‘비전 2020’ 등 학과 통폐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학과 통폐합의 경우 통섭의 관점에서 볼 때 일단은 바람직하다. 나는 서울대가 동숭동에 있던 시절 문리 대학에 다녔다. 다양한 과의 사람들이 어울리다 보니 다른 학과 수업도 듣고 그랬는데 자리를 옮겨 간 후 자연과학대, 인문대, 사회과학대로 파편화됐다. 이는 굉장한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통섭하는 건 좋다. 다만 어떻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하느냐가 문제다. 취지가 좋아도 실행이 잘 안 될 수 있는 거다. 그런 점에서 성균관대가 잘 됐으면 좋겠는데, 지켜보겠습니다.

#3. 이 동물학자가 사는 법

■ 교수님 인생의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는
난 대학 때 학점 관리를 거의 안 했다. 전공은 전부 D 학점이었고 인문대 수업만 쫓아다니며 들었다. 대학교 3학년 때는 각종 동아리 장(長)만 9개를 도맡아 했다. 나는 학교에 가면 수업을 안 듣고 동아리 지원 등 ‘업무’를 봤다. 수업에 몇 번이나 갔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리고 4학년이 돼서 많은 고민을 했다. 영원히 동아리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뭔가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학을 포기할 건지 아니면 한 번 덤벼 보기라도 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그래서 4학년 1학기 첫날 나의 모든 사회생활(?)을 접고 실험실에 들어갔다. 동아리 사람들이 실험실로 찾아와 다시 장을 맡아 달라고 했지만 공부를 이유로 거절했다. 그러던 중 미국 유타대 조지 에드먼드 교수님이 한국으로 하루살이 채집을 오셨고, 우연한 기회로 일주일간 조수로서 전국을 같이 돌게 됐다. 처음엔 ‘뭐 저런 짓을 평생 하고 사나’했지만 가만 보니 그분이 진정한 생물학자였다. 나도 관심이 생겨 그 분야에 관해 물어보고 조언을 많이 받았다. 덕분에 미국으로 가 공부를 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은 신이 보낸 천사 아니었을까.

■ 학생들을 가르치는 본업 외에도 강연, 집필, 연구 등 많은 활동을 하려면 부지런해야 할 것 같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 내는 노하우가 있다면
밤무대를 안 뛰어서 그렇다. 나는 밤에는 절대 약속을 잡지 않는다. 굉장히 힘든 일이긴 하지만 내가 많은 책을 쓸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거다. 집필 활동 외에도 많은 일을 해내는 건 하버드 학생들에게 배운 것이다. 그곳 학생들은 공부만 하는 게 아니다. 학생회, 동아리와 같이 자기가 하고 싶은 정말 많은 일을 한다. 그들의 비법은 미리 하는 거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진다. 미리 한 것과 임박해서 한 것은 엄청난 질적 차이가 있다. 신문에 글을 십몇 년 쓰는 동안 나는 기자들 사이에서 원고를 마감 3일 전에 주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3일 전에 원고를 주려면 미리 해야 한다. 원고를 미리 끝내 놓으면 시간 여유가 생겨 계속 다듬은 후 보낼 수 있다. 고치고 또 고치니까 글을 잘 쓰는 것처럼 보인다. 미리 하는 건 어마어마한 비결이다. 내가 언젠간 이 비법을 책으로 써서 베스트셀러를 만들 생각이다.

#4. 아픈 청춘에게

■ ‘OO 세대’라는 식으로 끊임없이 규정지어지고 있는 현 20대다.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어하는 대학생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해 주고 싶은 말은
나도 미안하다. 좋은 얘기보다 힘든 얘기를 먼저 해야 해서. 여러분 세대는 아마 은퇴라는 개념이 없어질 거다. 정년퇴임 한 사람 수가 일하는 사람 수보다 많아질 텐데 무슨 수로 나라 살림이 꾸려지겠나. 여러분은 100세쯤 죽고 95세까지 일하게 된다. 여성의 경우 20대 중반부터 일한다고 치면 70년을 일하게 된다. 70년 동안 한 직장에서만 일하긴 힘들 거다. 학생들에게 기초과학과 인문학을 가르치면 나이 들어서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쉬운데, 현재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이를 극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독서다. 진정한 독서란 내가 모르는 분야 책과 씨름하는 거다. 처음엔 어렵지만 계속 읽다 보면 나중엔 읽히고, 그러다 그 분야에 관심이 생기면 관련 강연 등에도 관심이 많아진다.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방황’을 많이 하라고 한다. 방황을 안 해본 사람은 나중에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없다. 해보고 싶은 일은 직접 찾아봐야 한다. 관심 있는 것을 뒤져보고 찔러보고 많이 읽어봐라. 통섭 형 인재가 되려면 다른 분야를 알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소양을 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