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규(법60) 동문

기자명 김희연 기자 (ohyeah@skkuw.com)

 탕! 신호가 울리면 민첩한 속도로 얼음판을 지쳐 나간다. 웬만한 순발력과 체력으로는 힘겨운 스피드스케이팅을 19년째 타고 있는 박선규 동문을 만났다. 놀라지 마시라. 그의 나이는 자그마치 일흔넷.

1960년 우리 학교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박선규(법60) 동문은 55세인 1992년도부터 스피드스케이팅을 처음 타기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 그가 스피드스케이팅을 타기로 결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부터 그는 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인 이규혁 선수의 아버지이자 당시 국가대표였던 이익환 선수의 굉장한 팬이었다.  “직접 타지는 않았지만, 시합이 있으면 항상 응원을 나올 정도로 좋아했지요.” 50대 중반에 이르러 건강을 위한 운동을 찾던 그는 운명처럼 스케이트 화를 신게 됐다.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1996년 전국동계체전 1천5백m 동메달으로 시작해 각종 대회에서 순위권을 차지하면서 그는 매년 최고령 선수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실력이 쌓이기까지 어려움은 없었을까. 중고교 시절 축구선수 생활을 했던 그에게는 스피드스케이팅이 힘들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축구로 유명한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당시 주장을 맡았을 정도로 실력자였다. “지금도 하체가 튼튼하니까 열 살 아래와 시합해도 나를 못 따라와요.” 이렇듯 어렸을 때부터 길러진 운동감각과 함께 꾸준한 연습 또한 그의 체력의 비결이다. 매일 △러닝(running) △스트레칭(stretching) △웨이트(weight) 등의 지상훈련과 2~3시간의 빙상훈련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의 스케이팅 인생에는 한 차례 굴곡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의사를 하셔서 내가 의학 공부를 좀 했어요. 암 관련 책을 읽다 보니까 의심이 생겨서 병원을 찾았지요.” 그렇게 국립암센터에서 위암을 선고받은 그는 2003년 말 위장의 2/3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그 후유증으로 그는 식사량이 현저히 줄고 육식을 자제하게 됐다. 그러나 그는 수술을 받은 지 4개월 만에 전국체전 5백m 장거리에 출전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 당시 현 국가대표인 이규혁 선수와 시합을 한 그는 “비록 시합은 졌지만 59초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이규혁 선수가 깜짝 놀라더라고요.”라며 그때를 회상했다. 또한 그는 같은 해 제28회 고빙상인추모 남자일반주 1천m에서도 2위를 하는 등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1998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동계체전에 이름을 올리던 박 동문은 지난해 시즌을 아쉽게 불참했다. 빙상훈련을 하던 중 펜스(fence)에 몸을 부딪쳐 어깨와 팔목 부상을 당한 것이다. 비록 개근기록을 놓쳤지만 그는 현재 부상에서 거의 회복해 이전과 같이 매일 태릉 국제빙상장에 출석해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스케이팅 기본자세를 올바르게 잡으면 즐거운 여행을 하는 것과 같이 재미있고 기본자세가 잘못되면 고통스럽고 재미를 못 느낀다’는 개념을 원칙을 삼고 스케이팅을 타는 박선규 동문. 그는 17년이라는 경력에도 2009년부터 다시 스케이팅 강습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일흔을 넘기니까 몸이 예전 같지는 않아서 기초 동작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그의 최종 목표는 76세가 되는 내후년, 5천만m 장거리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그는 “올겨울부터 시합을 계속 나가면서 암 수술한 지 10년이 되는 2013년에 가서는 나이 들어서도 운동을 참 열심히 잘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줄 거예요”라며 포부를 밝혔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함께 그의 열정과 부지런함을 응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