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게 한 것, 그것은 희망이더라
나를 살게 한 것, 그것은 희망이더라
  • 설우윤 기자
  • 승인 2011.07.06 17:54
  • 호수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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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엿장수 딸로 태어난 가발 공장 여공이 식모살이하러 갈 사람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식당 일을 하며 대학에 입학한다. 사랑을 만나 결혼했으나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남편. 너무나도 가난했다.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피해 유산 휴유증을 지닌 채 28살 늦은 나이에 미 육군에 자원입대한다. 1981년 미 육군 소위가 됐고 이듬해 남편과 이혼한다. 10살 연하의 미국인과 재혼했지만 1983년 둘째 동생의 부음 소식을 듣고 한국에 간 사이 남편이 그녀의 양딸을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1985년, 이런 고난을 딛고 한국 출신 여성 최초로 일반 중대의 중대장이 됐다. 1987년 14년 만에 대학 졸업장을 받아든다. 2년 뒤, 마흔셋의 나이에 하버드대학원에 입학한다. 1993년, 소령으로 진급하며 사상 최초의 여성 연락장교가 된다. 1999년 소령으로 미 육군 전역. 그리고 2006년, 쉰아홉의 나이로 마침내 하버드 박사 학위를 받는다…

누군가는 “소설의 설정이 과하다”며,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며 혀를 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희망연구소 서진규 소장이 지난 64년 겪은 삶의 질곡 중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가발공장에서 하버드까지. 여성과 못가진 자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자 전국을 누비며 강의를 하는 그녀를 여의도의 카페에서 만났다.
#1. 차별의 벽에 갇혀

■ 어린 시절, 단지 ‘딸’이라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심한 차별을 받았다
억울했지. 내가 언제 여자애로 낳아달라고 해본 적도 없고, 내가 선택해서 그 집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차별을 받아야 하는지, 그래서 억울하고 분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우리 어머니는 작은 술집을 하고 있었어. 6학년 때 언니가 시집가면서 그동안 언니가 맡았던 일을 내가 해야 했지. 이후 4년간 겪었던 고통과 훈련에 마음도 지옥, 몸도 지옥이었어요. 집안 살림이 너무 싫었어. 일을 끝냈을 때 뭔가 보여줄 수 있고, 계속 남아 있고, 그런 일이 하고 싶었지. 예를 들어 박사가 되는 것 처럼. 그런데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가 안 나요. 하기도 싫은데, 재미도 없고, 인정도 못 받고. 엄마는 “가시나는 집안 살림 살다 시집가면 장땡”이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불쌍해서라도 그런 삶을 살 수 없었어. 이후 미 육군에 입대하고 겪었던 고통은 이때 겪은 고통에 비할게 아니었지.
뜨거운 물에 손을 덴 후 미지근한 물에 손을 데면 별로 그게 고통이 심하지 않은 것처럼.

■ 그런 환경이었기에 오히려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맞아 맞아. 그래서 내가 엄마를 내 삶의 1등 공신이라고 부르는 거야. 집안일은 영 체질이 아니라는 것을 엄마가 일찍 깨우쳐줬고, 공부만이 나의 유일한 탈출구였거든.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사랑을 만나지만 또 다른 벽, 빈부의 격차에 막혀 실패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식모를 구한다는 광고만 보고 적도 없는 미국행을 결심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아. 나에게 한국은 지옥이었어요. 가발 공장 직공 하다가 식당에서 일하고, 그러다 직장에 들어갔는데 사장은 자꾸 치근덕대고, 버림받고, 버림도 그냥 사랑 때문에 버림 받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위치 때문에 버림받고. 여기에 어떤 미래가 있겠어요. 그렇지만 거기(미국)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미래가 있을 수도 있잖아. 그렇다면 지옥과 미지의 세계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어?

#2. 희망의 증거로서

■ 결과론이지만, 한껏 엇나갈 수도 있는 상황들을 지혜롭게 헤쳐나간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돕고자 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무엇을 활용하면 도움이 될까를 항상 고민했어. 그 중 하나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재미를 붙인 수학이었지. 수학은 어차피 날마다 해야 하는 일이었고, 하다 보니까 재미를 느꼈어. 수학에는 항상 명쾌한 답이 존재했고 이 점에서 매력을 느꼈었어. 나중에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면서도 수학 과목은 항상 거의 만점을 받았지.

■ 남편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입대한 미 육군 생활도 결국엔 선생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맞아. 지금은 남편이 밉고 그러진 않아. 죽이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내 최고의 자산, 딸과 아들이 생겼거든. 이 둘을 준 것만 해도 내가 죽을 때까지의 큰 힘이니까. 그리고 그 사람 덕에 군대라는 것을 만나고, 군대가 나에게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돼주었으니까.

■ 세상이 많이 변했고, 요즘 세대는 선생님과 같은 밑바닥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어떻게 내면의 불꽃을 살릴 수 있을까
하버드 박사도 많고, 한국 출신도 많은데 왜 서진규만 가지고 난리일까? 보통 하버드에 입학하는 사람들과 달리 서진규는 바닥에서 시작해서 이뤄낸 결과야. 시작이 풍족했다면 더 높은 비전을 가져야지.

■ 목표에 결코 한계를 두어선 안 된다는 말인지
목표는 자기가 그것에 두려움을 느낄 때까지 한껏 높여야 돼. 처음에는 막막하지만 점차 길이 보이기 시작할거야. 사실 모든 사람이 같은 크기의 기회, 행운을 가지고 있지만 목표의 크기에 따라 그 정도밖에 보이지 않아. 간절한 필요에 의해, 필요한 만큼만 보이는 거야.

■ 그런 욕심 때문인지 유독 1등, 수석을 많이 차지했나 보다
그건 그냥 한국 사람의 본능, 경쟁의식의 발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나는 그저 아주 평범한 한국 사람의 반응을 취했을 뿐이었어. 상대가 한국 사람이었으면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나와 상대했던 사람들이 약간 해이할 수 있는 외국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계속 1등, 1등, 1등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하버드 석사 과정도 A-의 성적으로 마칠 수 있었어.

■ 하버드 박사 과정을 밟을 때는 분노의 대상이었던 차별의 벽을 대부분 허물어낸 뒤였다. 싸워야만 했던 벽이 없어진 상태에서 다시 하버드 천재들과 경쟁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나
사실 내가 박사과정 포기한다고 해서 나를 무시하거나 우습게 볼 사람은 없었어. 당시에는 C형 간염이 너무 심해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거든. 암 수치도 상당했어. 돈도 어느 정도 벌어 놨고 쉰이 넘어서 이 힘든 일을 해야 하나, 그냥 때려치우려 하다가도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으로 나를 다잡았어. 그래도 흔들릴 때는 ‘사람들이 너를 영웅으로 알고 있는데 중간에 때려 치면 사람들에게 얼마나 창피하겠느냐’며 나 자신을 보채고 속였어. 나 자신의 감정들을 활용하고, 나 스스로와 심리전을 펼치고, 혼자서 온갖 쇼를 했던 거야. 결국 다 자기한테 달린 거지.

■ 삶을 ‘나’에게 한정시키지 말고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말인지
사명감, 배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그게 그냥 자기가 만들어낸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자기가 하는 일이 고귀해 보여, 뭘 해도. 자신이 대단해 보이면 더 재밌고 더 성실하게 되고 더 효과가 나타나는거야.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 요거 하나에 따라서.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나 자신에게 속삭여. 누가 나에게 그렇다고 말해준 적 전혀 없었어. 그냥 내가 만들어낸 거지. 그러고 나니까 용기가 생기고 내가 참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남들이 멸시할, 초라한 사람이 아니라는 자신감이 가질 수 있었어. 자기 암시와 최면의 힘이지.

#3. 대학생들에게

■ 재일 미 육군사령부에서 여성 최초로 정치군사고문 겸 일본 자위대 담당 연락장교로 재직했었다. 동아시아 외교의 최전방에서 일하셨던 것인데, 우리 대학생들이 동아시아 외교 관계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지녀야 할지
세상을 이상적으로 보는 동시에 현실적으로 보는 눈이 필요해.
사실 대학생 중에는 자신이 반미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이 있어. 왜 반미냐고 물어보면 미국은 자기들을 위해서 한국을 이용하고 세계적으로도 오직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인다며 분노하지.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분노, 열정 자체는 좋은데 너무 현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건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이 미국을 위해서 존재하나? 절대 아니지. 똑같은 케이스로, 미국은 미국을 위해서 존재해.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서 세계 평화를 생각하는 것이지 미국이 없는 세계 평화는 생각하지도 않아요. 이는 다른 나라도 똑같아요. 그래서 내가 느끼는 것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 같다는 인식을 지녀야 해요.
또 한 가지. 세상은 강자의 것이에요. 우선 대한민국을 강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를 미워하고 원망하기 이전에 나는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해요. 강한 나라는 강한 국민이 만들어.
외교는 그런 것이에요. 강자의 세계. 그리고 각 나라는 자기 나라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 그 이치를 잊지 않고 그것에 대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해요.

■ 오늘 인터뷰 이후로도 변하지 않을 내가 두렵다
자기 자신을 돕고 싶다는 마음만 있다면 변화에 저항할 이유가 없어. 내가 나를 돕지 않으면 누가 나를 도울 것인가? 풍파 같은 인생을 헤쳐나가야 할 사람은 결국에는 우리 자신이야. 현재에 안주해 변화하지 않으면 나와 경쟁하고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게 돼버려. 이렇게 생각하면 괜한 자존심으로 변화에 저항할 시간이 있을 수 없지.

#4. 희망은 계속된다

■ 앞으로의 계획은
내 마지막 꿈은 미국 국무장관이 되는 거야. 하지만 중간에 포기할 가능성은 많지. 미국 국무장관이 되려면 적이 생기잖아. 오프라 윈프리가 되면 적이 없거든. 어디서나 환영을 받아. 오프라 윈프리는 신나잖아. 내가 그렇게 될 수 있는데 내가 왜 굳이 국무장관을 해야지? 될 수는 있는데 할지 안 할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 나이가 있으신 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린다는 것이 좀 묘하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인데, 인생 전체를 보면 지금 나이에 그렇게 급하게 애쓸 필요는 없어. 김연아를 봐요. 얼마 전 세계 선수권에서 2위를 하고도 우는 모습에 너무 가슴이 아팠어. 너무 일찍 성공하면 나머지에 더 불행을 많이 겪게 되. 이왕이면 천천히 성공을 거두길. 자기가 정말 가고 싶은 길로.
그리고 가장 신이 나는 부분은 “It is up to me.” 모든 것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는 거야. 그래서 결론. 세상은 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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